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국상으로 치를 것이냐를 놓고 또 한 차례 회오리가 몰려올 뻔 했다. 일단 MB정부가 이번엔 학습효과란 것이 있어서인지 제법 유연하게 대처한 셈이지만,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 편으론 이 자들의 역사인식이란 이다지도 몰지각하구나란 것을 새삼 느꼈다. 대통령 재임 중 서거한 경우에만 국상으로 치른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국상으로 치르기 어렵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이해가 된다. 다만 이왕 국상을 치르기로 했다면 그냥 국상으로 치뤄도 좋을 것을 두고, 청와대 보좌진들 가운데 일부가  이승만 전 대통령도 국상을 치르지 않았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을 국상으로 치르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누군가 나에게 국상에 대해 묻길래 딱 한 마디 해주었다. "지들 애비면 그렇게 말하겠느냐?"고... 물론 이때의 지들 애비란 친아비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정치적 정통성, 계보의 의미로 한 말이었다. 나는 부분적으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의미 역시 평가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건국의 어려움을 전제로 이해해보자는 의미이지 그가 한강다리 끊고 도망가면서도 '서울 시민 여러분! 국군은 용감하게 반격하고 있고, 정부는 끝까지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으니 안심하라'고 한 것도 이해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그 뒤에 벌어진 일은 더더욱 이해해주면 안 될 일이다. 그렇게 도망간 정부가 돌아와서 서울에 남겨진 시민들 가운데 부역자를 골라내 죽이거나 빨간 칠을 하여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가 비록 국부였을지는 몰라도, 사사오입 개헌을 비롯해 결국 국가공권력을 동원해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수많은 학생과 시민에게 피를 뿌리게 만들었던 인물이란 점이다. 그 시점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통치자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했다. 하와이 망명생활 끝에 죽음 뒤에야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인물을 국상으로 모시지 못했으니 김대중 전 대통령을 국상으로 모실 수 없다는 논리, 아니 그런 해괴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대통령을 보필할 자격을 상실한 자임은 물론 어떤 공직에도 나서면 안 되는 자다.   

자신들의 정치적 아비가 누구인지, 자신들이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를 계승하고 있는 정부인지 이 보다 잘 보여주는 말도 없다. 이해해줄 부분과 이해해주어선 안될 부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국민신뢰도 최하위인 <조선일보>와 그 추종자들이면 족하다. 정부 기관의 종사자들, 그것도 최고 통치기관인 대통령을 보필해야 하는 보좌관들의 역사 인식 수준이 그 정도라면 국가의 품격이 한참 떨어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상으로 치러질 수 있었던 배경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국민들에게 지닌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장례가 국상으로 치러질 수 있게 된 또 다른 배경은 국내보다 국외에 있는 것 같다. 우리 곁에 있을 때는 잘 알지 못했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세기 대한민국이 배출한 가장 세계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그러하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많은 세계인들의 추모 분위기와 조문 행렬의 수준이 몰인정하기 그지 없고, 몰지각한 정부로 하여금 자신들의 정치적 의지와 상관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상으로 승격시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꼼수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장례절차는 9일장, 7일장, 5일장, 3일장 같이 홀수일로 치르는 법이고, 전통을 지킨다는 것이야말로 전통적인 의미에서 '보수주의'다. 어떻게 갑자기 6일장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임금이 죽으면 9일장, 제후는 7일장, 사대부는 5일장, 평민이 3일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상은 9일장을 치렀는데, 같은 국상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6일장이라니 이건 격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일이 아닌가? 이승만도 국상을 치르지 않았으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상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던 이들이니까, 이번엔 국상을 치르기로 해놓고도 박정희보다 길게는 치를 수 없는게 아니냔 꼼수를, 그것도 7일장과 5일장 사이의 애매한 기간을 국상 기간으로 한다니 참 하는 짓이 치사하게 여겨진다.  

국상(國喪)의 품격(品格)이 국격(國格)이다. 너희들이 국가와 민족을 생각한다는 보수우파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차라리 '나'라도 이 나라를 '보수(保守)'해주고, '우파(右破)'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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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08-20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해괴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대통령을 보필할 자격을 상실한 자임은 물론 어떤 공직에도 나서면 안 되는 자"라는 데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자들이라서 발탁해놓은 것 아닌가 해서요...

바람구두 2009-08-21 23:08   좋아요 0 | URL
흠, 농담하시는 건 알지만, 약간 정색을 하자면...
저는 그 지점(그런 자들이라서 발탁)에서 전선이 형성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원래 그런 애들이라고 해줘 버릇하면 진짜 버릇이 드럽게 들거든요.


치유 2009-08-2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기가 막혔어요..뭐 기막힌 일이 이것뿐이겠습니까..만은;;
신문보다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아무래도 우리 나라 전통부터 배워야 할듯..6일이란 숫자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참;
나같은 무지랭이도 기가 막히는데..하물며...

바람돌이 2009-08-21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하는 짓 하고는...유치하고 치사한걸로는 세계최고수준일듯...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주었던 분으로 그를 기억합니다.(다음 대통령은 기대보다도 훨씬 못했었습니다) 돌아가셔서까지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 상황을 보니 정말 어이가 없어서... 그래도 역사는 그분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가을산 2009-08-21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상이 7일이면 월요일이 되잖아요... 그러면 관공서가 하루 쉬게 되니,
어디 쉬는 꼴을 보겠습니까.... 그래서 6일이 된것이겠지요. (농반 진반...)

비로그인 2009-08-21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전부도 그렇지만 마지막 말씀에 특히 공감합니다.

조선인 2009-08-21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걔네들은 3,6,9로 아는 듯 해요. 바보새끼들. 천하의 상것들.

syyjys 2009-08-21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그들이 큰 두려움에 빠져있다고 봅니다.

paviana 2009-08-2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 생각의 최대한 예우가 서울광장 봉쇄안한거라고 생각할걸요.

무해한모리군 2009-08-2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 나도 어디 유럽 태어났으면 '우파'해보는 건데 이런겁니다 --;; 머리를 뜯어보고 싶다니까요.. 정말 삽한자루 들어있는거 아닐까요 ㅠ.ㅠ

바람구두 2009-08-2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효, 이 글을 언제 썼냐 하고 되돌아보니 어제 일이네요.
마감은 했는데, 다른 일로 쫓기다보니 여러분 글에 일일이 댓글도 못달았습니다.
속이 뒤집혀도 이것이 현재 우리 수준이기도 한 거니까요.

제 결론은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고민이 좀더 깊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