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려다오 태학산문선 110
이용휴.이가환 지음, 안대회 옮김 / 태학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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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다’, ‘참신하다’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나를 돌려다오’는 18세기 조선시대 문장가인 ‘이용휴’와 그의 아들 ‘이가환’의 글을 모은 산문집으로, 이 책 속에 담겨있는 글들은 문체의 독특함, 발상의 참신함, 그리고 압축된 글 속에 선명하게 부각되는 메시지 등 조선시대에 써진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척 신선하다.


[공은 세상에 있을 때도 늘 세상을 싫어했지요. 이제 영영 가는 것은 먹을 것 입을 것 마련하는 일도 없고, 혼사나 상사의 절차도 없고, 손님을 맞고 편지를 왕래하는 예법도 없고, 염량세태나 시비의 소리도 없는 곳일 게요. 다만 맑은 바람과 환한 달빛, 들꽃과 산새들만이 있을 뿐이겠지요. 공은 이제부터 영원히 한가롭겠구려]


이 글은 이용휴가 돌아가신 친척을 위해 쓴 제문이다. 보통 제문에는 일정한 형식을 갖춰 고인의 이력이나 슬픈 마음을 표현하기 마련인데, 이 글은 그저 고인이 이 세상의 온갖 예법이나 근심걱정이 없는 곳으로 갔음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원문으로도 88자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글 속에 고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으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기존의 형식을 파괴한 아주 신선한 글이다.

아버지 ‘이용휴’에 비해 아들 ‘이가환’의 글은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그렇기는 해도 어디까지나 아버지에 비해서이지 글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글이나 문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만큼 아는 것이 없는지라 달리 길게 쓸 말은 없지만 곁에 두고 틈틈이 읽어볼 만한 좋은 글을 찾는다면 이 책 또한 아주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는 교육적인 목적으로도 좋을 것 같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글을 쓰는 형식이나 간결함 속에 드러나는 주제 등 모든 것이 참신하고 새롭기 때문이다. 또한 18세기 조선을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을 문틈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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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니 2010-10-2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참한 리뷰군요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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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나보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죽어있는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시내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변두리동네로, 거의 시골이나 다름없어서 이런저런 곤충이나 뱀, 새 따위를 늘상 보고 살았다. 나는 그때 그 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저 새를 묻어줘야겠다’고 결심하고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새가 떨어져있던 곳 바로 옆을 열심히 팠다. 어느 정도 파내려간 후에 책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한 장 쭉 찢어서 새를 돌돌 말고는 구멍에 넣고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면서 혼자 흐뭇해했었다. 이렇게 하면 이 새가 좀 더 편안할테니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주인공 작은나무는 5살에 부모를 잃고 체로키족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숲 속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체로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법과 삶을 살아가는 방식, 자연의 이치를 배운다.

매일 아침이면 산이 깨어나는 광경을 보고, 대지의 여신 모노라의 숨결을 느낀다. 자연은 봄을 낳기 위해 산통을 겪고, 여름이면 자연이 자라고,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고, 겨울에는 잠을 잔다. 그리고 인간은 반드시 필요할 때가 아니면 자연에게 결코 해를 가해서는 안된다. 절대 취미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잡아서도 안되고 함부로 나무를 잘라서도 안된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인 짓인 것이다.

그리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널리 퍼지게 된다.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사랑했던 것을 잃었을 때는 마음이 아프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다.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정말 별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여전히 가치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항상 사려깊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작은 나무는 그렇게 매일매일 훌륭한 인디언으로 성장한다.


[ 보라 굽이치면서 높이 솟아오른 저 산들을.

붉은 태양이 산등성이 위로 떠올라 아침을 탄생시키면,

하얀 안개 시트는 그녀의 무릎을 휘감고

그녀의 손가락인 나무들을 스쳐가는 바람은

하늘에다 대고 그녀의 등을 긁어주네. ]


난 이제 더 이상 죽은 새를 보고 가엾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날이면 이맛살을 찡그리며 오늘은 재수없는 날이라고 투덜거릴 것이다.

하지만 작은 나무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법에 의해 고아원에 가서도 늑대별을 보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떡갈나무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이 책을 남겼다. 이 책은 1976년 제1회 에비상을 받았다. 전미 서점 연합회가 설정한 에비상의 선정기준은 서점이 판매에 가장 보람을 느낀 책이라고 한다.

작은 나무가 고아원에서 다시 산으로 돌아오던 날 신발을 벗어던지고 다시 대지의 숨결을 느끼듯이, 이 책은 손길이 닿는 어느 누구나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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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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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양원은 요동에서 활동하던 장수라 오랑캐와 싸울 줄은 알았지만 왜적과의 싸움에는 미숙했기 때문에 패했던 것이다. 또 평지에 있는 성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몰랐던 탓도 있었다. 김효의가 전하는 내용을 자세히 전하는 까닭은 훗날 성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알려 주어 대비토록 하려는 까닭이다.]

이것이 유성룡이 이 책을 지은 까닭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하면서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유성룡이 임진왜란과 난의 전후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 후세에 다시는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반성의 기록이자 혹여 이 같은 일이 다시 생기더라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하여 중간중간 '이 일을 기록해 놓은 것은 후에 도움이 될까 보아서이다.' 같은 글귀가 자주 발견된다.

임진왜란...그 기록은 안타깝고...답답하고...때론 눈물이 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약자의 운명은 늘 고통스럽다.

조선 건국 후 태평성대를 이루었다하나 어찌 왜란의 여러 징후를 그렇게 무시하였던 말인가...평소 지배계층이라 거들먹거리던 이들은 어찌하여 그리 무심하게도 자신의 목숨만을 보존하려 했단 말인가...힘없는 백성들은 왜놈에게 뿐만 아니라 성급하고 무지한 양반네들에게도 그 한많은 목숨 유지하기 어려웠구나..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 극한 굶주림 속에서도 우리는 조선을 구하러 왔다는 저들의 배를 채워주야만 했구나...

 [그 무렵 각 도에서는 수많은 의병들이 일어나 왜적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건 자신의 위치에서 목숨을 바쳐 적을 맞아 싸운 여러 장수들과 전국 각지에서 일어선 의병들...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싸웠던 이름없는 백성들의 힘이다. 

조선시대에 씌여진 책이라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쉽게 옮겨져 있어 읽기가 편하다. 많은 사진과 자료, 그리고 여러 인물들과 조선시대 관직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되어 있어 누구나 무난히 이해하며 읽을 수 있다.

징비록을 지을 당시 유성룡의 마음처럼 반성하고 준비하였다면 좋았을텐데...그 후의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우리가 임진왜란의 교훈을 너무 쉽게 잊었다고...오늘을 사는 우리들 또한 깊이 되새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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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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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의 평균수명이 40대 전후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유로는 영양과다,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이 꼽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독살’이다. 이 책은 사후 독살설이 제기된 소현세자와 인종, 선조 등 7명의 왕을 정사와 야사 그리고 여러 문집의 기록을 근거로 그들이 과연 독살되었는지의 여부와 독살설이 제기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들의 죽음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선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30대전후의 젊은 나이였다는 것, 대부분이 전혀 예상치 못한 급서였다는 것, 그들의 죽음이 향후 정권의 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 독살설을 제기한 자들이 대부분 차기 정권에서 화를 당하거나 소외된 자들이라는 것 등이다. 결국 역대 조선 왕 27명 중 10명에 가까운 임금이 독살설에 휘말리게 되는 핵심은 바로 권력인 것이다.


독살의 주모자로 지목된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든 것은 권력 때문이라는 사실이 한층 분명해진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또 신하가 왕을 죽이는 이 피비린내나는 암투에는 권력을 조금 더 강화시키거나 오래 유지하고자 했던 왕과 신하의 서로 다른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목숨보다 중히 여겼던 유교의 나라였다. 또한 강력한 군주제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어떻게 그토록 많은 왕이 독살설에 휘말릴 수 있는가?


가장 큰 이유로는 조선의 왕권이 생각보다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의 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왕이 아니었다. 저자는 ‘이론상의 절대권력이었을 뿐 실제 조선의 국왕은 신하들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다’고 한다. 왕권 강화는 곧 신권의 약화를 의미한다. 신하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왕을 제거했다.


또한 당시 사대부들은 임금의 신하이기보다는 당론을 쫓았던 소속 당의 당인이었다. 사대부들은 조선이 왕의 나라가 아니라 사대부들의 나라라고 여겼고 자신들과 당론이 다른 왕은 왕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임금은 이런 당파를 이용해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데 이용하기도 했으나 임금이 한쪽 당을 등용하면 반대편 당은 곧 멸문으로 이어졌으므로 사대부들은 마음에 들지 않은 왕은 반정을 하여 쫓아내거나 독살을 해서 죽이는 방법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왕을 선택한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한국사는 연구하면 할수록 ‘만약, 이랬다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분야가 너무도 많은데, 독살설 역시 그렇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안타까움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미 수백년 전의 일에 ‘만약..이랬다면..’ 하는 생각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일지 모르나 독살설이 제기된 군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안타까움이 더하게 됨은 어쩔 수가 없다.


만약...인종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우리는 세종대왕과 함께 또 한명의 성군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만약... 일찍 서양문물에 눈을 뜬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조선은 훨씬 강한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정조가 개혁정치를 계속 폈더라면 우리는 조선 후기에 벌어졌던 온갖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왕들의 죽음 후의 역사는 퇴행과 반목의 연속이었기에 그 안타까움이 더하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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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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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보씨는 최근에 잡동사니를 쌓아둔 지하실 창고는 청소하다 나무로 만든 보드 뒤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스티커를 발견한다. 스티커에는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평생 그런 스티커를 수없이 보아왔다. 하지만 단 한번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타이완, 타이완. 그것은 그저 스티커 위에 적힌 낱말 한 개가 아니다. 그것은 섬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국가이다. 진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며, 한국에서 남쪽으로 바다를 가로질러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구보씨는 주변에 있는, 지나치게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는 선반들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선반 위에 있는 물건들은 지구상에 있는 온갖 국가들에서 실려왔으며, 구보 씨가 그것을 다 쓰고 나면 다른 어딘가로 실려갈 것이다. 그 모든 상품들은 원인과 결과의 발자취인 역사와 미래를 가지고 있다. 모든 상품들은 나름의 일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구보 씨는 그의 삶과 함께 했던 많은 물건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커피 알갱이들, 신문지들, 음료수 캔들이 수없이 행로를 바꿔 구보 씨의 인생과 교차되는 지점으로 향했을 때 그것들은 과연 세상을 가로질러 잔물결 치는 어떤 흔적들을 뒤에 남겼을까? 그리고 그와 같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물건들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이렇게 우리가 흔히 쓰는 물건들이 어디서 생산되고 만들어져 우리의 손에 들어오게 되고 또 다 쓰게 된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구보씨와 함께 그 비밀스러운 삶을 들여다본다.

일상용품의 삶이 왜 비밀스러운가? 왜냐하면 그것들은 어느 공장에서 몇몇의 노동자들에 의해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구보씨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신다. 한 잔의 커피를 뽑으려면, 그 해 커피나무 한 그루에서 자란 원두의 60분의 1정도인 약 100개의 원두가 든다. 구보씨의 커피를 위해 자라난 커피나무가 있는 콜로비아의 안티오키아 지역에서는 울창한 원시림 대부분이 사라졌다. 농장 주인들이 수확량이 많은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키가 큰 과실수와 활엽수들을 잘라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키 큰 나무에서 서식하던 새들은 멸종됐고 토양은 부식됐다.

구보씨의 커피를 운반한 화물선은 일본에서 만들어졌고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된 석유로 운행되었으며 한국산 강철을 사용했다. 한국의 제철소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부 헤머슬리 산맥의 원주민 구역에서 채굴된 철광석을 사용했다. 그리고 경기도 남부의 한 공장에 도착한 원두들은 노동자들이 거대한 통에 넣고 약 섭씨 200도의 온도에서 13분 동안 볶았다.

원두를 볶는 기계는 열을 가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또는 쿠웨이트의 한 유전에서 채굴된 원에서 뽑아낸 기름을 이용했다. 다 볶은 원두들은 폴리에틸렌, 나일론, 알루미늄박, 폴리에스테르를 성분으로 하는 네 겹의 용기에 포장되었다. 그리고 기름 1리터에 약 20킬로미터를 가는 디젤 엔진을 장착한 대형 트레일러에 실려 서울 근교의 한 창고로 운반되었다. 그 후 약간 작은 트럭이 포장된 커피 용기를 구보 씨 집 부근의 쇼핑 센터에 가져다 놓았다. 구보 씨는 그 커피 원두를 커다란 갈색 가방에 넣어 쇼핑 센터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그 가방은 표백하지 않은 종이를 이용해 중국의 한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인들은 매일 1인당 1킬로그램 정도의 쓰레기를 버린다. 그것은 그들이 하루에 소비하는 재화 전체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매일 약 54킬로그램 정도의 자원을 소비한다. 이것은 그들의 평균 체중에 약간 못 미치는 무게이다.]


구보씨는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본 후 티셔츠를 입고 신발을 신고 평소에 타고 다니던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를 먹었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커피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매우 많은 자원을 소비해 만들어지는 비밀스런 삶을 거친 것들이다.


이 책의 미덕은 복잡한 수학적, 과학적 계산이나 어려운 단어로 환경오염이나 무분멸한 소비가 가져다 주는 지구의 암울한 미래에 대해 겁을 주는 대신, 이렇듯 우리가 쉽게 접하는 일상용품들을 내세워 우리가 왜 자원을 절약해야 하고 소비를 하는데 있어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에서는 그 해결책으로 자신이 소비하는 물건을 골라 쓰라고 제시한다. 감자 튀김은 프레온 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냉동시킨 제품을 골라먹고, 재생용지를 사용하는 책을 읽고, 재활용이 쉬운 병에 담긴 음료를 마시는 것 등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지구가 처리할 수 있는 양 이상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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