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 파탈 -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
이명옥 지음 / 다빈치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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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픈 내 가슴속에 비수처럼 박힌 너 화사하고 광기 서린 너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유혹적이다. 팜므 파탈이라는 주제부터가 흥미롭고 페이지마다 실린 거장들의 그림, 어떻게 보면 풀어내기 어려웠을 내용들을 무리없이 서술해내는 저자의 글 솜씨, 무엇보다 남성들과 예술가들을 사로잡은, 저자에게 팜므 파탈로 선정된 여인들 또한 무척 매혹적이다.


세기말 예술가들은 쾌락과 고통, 사랑과 죽음이라는 파격적인 주제에 병적으로 집착했고, 이 주제에 맞추어 새로운 유형의 여인, 팜므 파탈을 창조했다. 팜므 파탈은 게걸스럽게 색을 탐하는 여성이나 냉혹하고 잔인한 요부, 흡혈귀처럼 남성의 정액과 피를 빨아 생명을 이어가는 사악한 여자를 의미한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해 지옥으로 빠뜨리는 악녀, 남성을 섹스로 유인해 파멸시키는 탕녀가 바로 팜므 파탈이다.

먼 신비의 세계에 살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여인, 치명적인 성적 매력으로 남성을 홀려 몰락시키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는 예술가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저자는 팜므 파탈을 ‘잔혹’, ‘신비’, ‘음탕’, ‘매혹’으로 분류해 신화 속에서, 문학에서 그리고 실제로 존재했던 여인들이 팜므 파탈이 된 이유 혹은 팜므 파탈로 불리게 된 이유와 19세기말 팜므 파탈의 대유행과 그같은 열풍으로 걸작으로 남겨진 그녀들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사비나 미술관 관장이라는 저자의 이력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저자는 결론적으로 예술가들의 작품에 나타난 팜므 파탈을 설명하면서 일종의 ‘대중들이 미술과 좀 더 가까워지기’를 시도하고 있는 듯 하다. 한 명씩 팜므 파탈로 선정된 여인들을 소개하고 있는 각 장마다 거의 매 페이지 그녀들의 모습이 담긴 작품들을 실었으며 저자는 그림 속 각각의 상징과 인물의 표정, 행동, 동작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독자들을 그림 속으로 몰입시킨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대부분 그림들 속 인물들은 나체인데다 때론 민망하고 낯뜨거운 상징들로 가득차있기도 하지만 저자의 설명에 몰입하다보면 어느새 조금씩 그림을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을 보면서 누군가의 설명에 너무 의지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누군가 그랬듯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림이나 예술,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에 문외한인(나같은...)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책읽기가 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며 몇몇은(역시 나같은..) 미술에 좀 더 흥미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 목록만 보고 가장 의외였던 것은 스핑크스와 모나리자였는데..결론적으로 남자를 죽였으니 살로메나 유디트는 그렇다치고...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남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니 클레오파트라, 조제핀, 레카미에, 들릴라 등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으나...머리만 여자일 뿐인데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문제를 내고 맞추지 못하면 해친다는 괴물 스핑크스가 팜므 파탈이라니??하지만 그런 스핑크스도 팜므 파탈로 표현된 그림으로 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나리자마저도 팜므 파탈이라...

단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두렵단 말인가?


절대 여자에게 눈길을 주지 마라. 그냥 묵묵히 땅만 보고 걸어라. 아무리 마음의 동요가 없는 깨끗하고 순결한 남자일지라도 단 한 번의 눈길로 영원히 구제될 수 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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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도전 1 - 세상을 뒤바꾼 여성들 이야기
이병철 지음 / 명상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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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TV, 책을 말하다‘에서 이 책을 소개했을 때 기억해 두고 있다가 최근에 읽어본 책입니다

잭 런던의 소설 '길'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는, 인간만이 여성을 학대한다는 점이다. 비겁한 이리나, 가축으로 타락한 개조차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로 몇 십년전이나 늘 똑같이 위인전 한쪽 귀퉁이에 겨우 4...5명만이, 그것도 거의 변함없이 똑같은 인물로만 자리하고 있는 여자 위인들만으로는 현재 변화되고 있는 여성들에게 역할모델이 되기에 불충분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차지하고 있는 분량만큼이나 여자는 훌륭해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동기로 책을 쓴 저자가 남성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자가 염려하는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저자의 딸을 염려한 바 크겠지만 어쨌든 그 결과물로 탄생한 이 책은 두고두고 오래 간직하고픈 좋은 책입니다.  


1972년 미국 연방 의회는 ‘법 아래서 평등한 권리는 성을 이유로 축소되거나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헌법 수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여성해방운동진영에 승리를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 수정안은 그 뒤 10년 동안 35개 주에서만 비준되는데 그쳐 38개 주를 넘기지 못함으로써 1982년 끝내 실효되고 말았다. 미국 연방 헌법에는 그래서 남녀평등을 규정한 조문이 없다. 잭 런던은 옳았다.


‘세상을 뒤바꾼 여성들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 제목만큼 아름다운 도전으로 세상을 바꿔놓은 여성들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20명의 여성 모두에게 ‘참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제목이 어울린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영상의 미술사 레니 리펜슈탈, 사진 기자 마거릿 버크화이트, 권력자의 천적이었던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졌다는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여성 스스로 아이를 낳을 권리를 주장했던 마거릿 생어 등 그녀들이 평생을 통해 이룩한 것들은 분명 여느 남자들 못지않은, 아니 어느 경우에는 더 뛰어난 것들이었으며 분명 기억해야 할 이름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2001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호주제가 존속한다.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 제도가 없어지지 않는 한 여성이 남성과 법적, 경제적으로 평등해지기는 불가능하다. 당장, 이혼한 여성이 키우는 자녀 수만 명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법이 이러하니, 하물며 법보다 고치기가 훨씬 어렵다는 인습을 어느 세월에 바꿀 수 있으랴. 잭 런던은 옳았다. 


책의 앞부분은 혁명가, 이론가, 페미니스트들을 위주로, 뒷부분은 예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을 위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에바 페론’과 ‘에스테 로더’를 소개한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녀들 역시 이 세상을 뒤바꾼 여성들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약 350페이지 분량에 20명을 적절하게 배치하였고, 글도 쉽게 써져있어 어렵지 않게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나처럼 되지 마라. 절대로 아내 따위가 되어 남편이나 아이의 노예가 돼선 안 된다. 난 네가 일을 갖고 홀로 서는 사람이 되어 온 세계를 휘젓고 다니길 바란다. 멀리 가거라. 훨훨 날거라. 혼자서 날아야 해!” - 오리아나 팔라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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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 - 반민주주의자에 대한 민주주의 재판
박홍규 지음 / 필맥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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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4백년 전 한 철학자가 아테네 민주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이름 소크라테스. 우매한 대중에 의해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았음에도 ‘악법도 법’이라며 최후의 순간까지 법을 지키면서 죽었다는 이 늙은 철학자는 오늘날 ‘철학의 아버지’, ‘인류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와는 반대의 주장을 한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가 한 적 없는 이 말이 마치 그가 한 것처럼 한동안 우리의 교과서에 실리며 전 국민의 상식으로 자리잡은 이유로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전체주의, 권위주의 국가론을 지지했기 때문이며, 이 말은 과거 우리의 군사정권이 한 철학자의 힘을 빌어 악법을 합법화하는 길을 터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아버지’는 커녕 인류 역사 속에 등장한 '반민주주의, 수많은 사상검열관들의 아버지'로, 그의 죽음을 ‘반민주주의자에 대한 민주주의 재판’으로 규정하면서 그를 사형에 처한 아테네의 민주정을 변론하고 있다.


저자는 그리스적 의미의 아마추어리즘을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적 인간이라고 부르는 전인적 인간, 즉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갖고 그 모든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조화롭게 갖추어져 자주적 인간으로 완숙한 상태에 이른 교양인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바로 이런 아마추어리즘이 민주주의 핵심이며 이런 교양인이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의 고대 그리스적 이상적인 인간상이었으나 소크라테스는 그런 교양인이 되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는 모든 사람이 전문가가 되고, 특히 전문가 중에서도 철학전문가인 철인이 독재자가 되어 정치를 하는 이상국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단 한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기에 플라톤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저서를 통해서만 그의 사상이나 철학 등을 짐작할 뿐 어느 것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이 책의 저자는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저서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을 중심으로 지금껏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구분지었던 것과 달리 둘의 사상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플라톤의 저서에 남아있는 소크라테스의 발언을 그의 사상으로 보고 논의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 책에 쓰여진 저자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나 그가 제시한 여러 증거들과 해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서술된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왜 변론에 성공하지 못했는가? 저자는 폴리스 시민의 아마추어리즘이 소크라테스의 프로페셔널리즘에 의해 부정됐고 그래서 그가 처형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처형은 ‘민주주의의 오점’이라고 지적한다. 비록 민주주의에 반대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그 마저도 허용돼야 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중을 멸시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했던 소크라테스...결국 민주정에 의해 소크라테스는 처형당했지만 그 후 아테네의 민주정은 사라졌고 2,0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서야 민주주의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주의는 중우정이고 우리 사회는 또 다른 모습의 소크라테스들이 곳곳에서 여전히 프로페셔널리즘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제는 민주주의가 중우정에 불과하다는 식의 편견을 버려야하며 경제적 이윤추구의 상징인 배부른 돼지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주의로 말라비틀어진 소크라테스도 아닌,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모든 분야와 모든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자주적으로 발언하며, 자기 사회의 자치에 대해 책임을 지는 아마추어리즘의 시민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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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가르쳐 준 거짓말
제임스 W. 로웬 지음, 이현주 옮김 / 평민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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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건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또한 진실은 누구의 판단에 의해 그 사실 여부가 가려지는 것인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바로 이런 의문과 분노,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신이었다.

이 책은 지금껏 우리가 어릴 때부터 진실이라고 배웠던 것들...그리고 상식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서 그것은 때로는 축소되고, 가려지고 어떤 경우는 모두 거짓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거짓은 국가에서, 정부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선생님에 의해서 지금껏 이어져왔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그리고 그 이면에는 인종차별주의, 유럽중심주의 혹은 서양우월주의, 민족주의, 영웅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선생님이 가르쳐 준 거짓말'은 미국 역사교과서의 거짓을 폭로한 책이다. 하지만 비단 그 거짓이 미국이라는 나라에만 국한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교과서 또한 그네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급진적 사회주의자였던 헬렌켈러를 귀머거리에 맹인이었으며 매우 신경질적이었던 어린시절에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 하버드에 입학했다는 인간승리의 전형으로만 다루고 있는 건 미국의 교과서만이 아니다.

3.1운동의 원동력이었다며 시험까지 봤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그러나 벨기에만을 위한 것이었을 뿐 우리 같은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교과서는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나 마젤란, 바스코다가마 등의 이름에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지만 실제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 '발견'했던 아프리카계 페니키아인의 이야기는 없다.

또한 우리는 미국의 남북전쟁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콜럼부스가 노예상인이었다거나 조지 워싱턴 같은 자들이 노예소유주였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위대한 프런티어 정신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무서운 것이었다는 걸 우리는 상상이나 했을까? 

우리의 교과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인종차별주의, 서양우월주의, 민족주의,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건 비단 미국의 교과서만이 아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책 내용 모두를 사실로 여기는 걸 경계하고 있다. 저자가 진실로 중요하게 여기는 건 역사교과서의 변화이다. 단순한 내용의 변화가 아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그것을 암기하게 하는 역사교과서에서,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여 주어 스스로 결론을 도출하게 함으로써 역사에 흥미를 갖게 하고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 조지오웰-

미국의 역사이기에 잘 모르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사용하고 있고, 우리는 그간 교과서에서 미국 역사에 대해 많이 배웠기에 크게 고개가 갸우뚱거리지는 않는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현재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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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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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


작가 최인호가 15년 전부터 구상하였다는 소설 ‘유림’은 이렇게 조광조가 유배지 능주에서 사사당하기전 썼다는 절명시와 함께 그가 사약을 받고 죽은 곳에 세워진 ‘적려유허비’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시작이 좀 뜻밖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자 화자가 작가 자신인 것이다.


작가는 15년 전 경허스님을 주인공으로 불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편소설 ‘길 없는 길’을 신문에 연재하던 중 인도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출발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사상가 원효를 탄생시키며 찬란한 꽃을 피웠듯 우리 민족의 혈맥 속에 또 하나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2천5백년  전 중국에서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교. 그는 유교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고는 우리의 민족성을 파헤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총 2부 6권으로 완성될 소설 ‘유림’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작가는 ‘조광조’를 선택했다.


조광조...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 또 있을까...

17세에 당대 제일의 성리학자 정굉필에게 사사하고 관직에 나가서는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으며 끊임없이 개혁정치를 펴다 반대파인 훈구파에 탄핵되어 결국 기묘사화로 인해 37세의 나이에 생을 마친 인물 조광조...

이율곡은 그를 ‘학문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성급하게 정치에 뛰어든’ 아마추어 정치가로, 퇴계는 ‘천품이 뛰어나고 옳은 정치를 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을 다스리지 못한’ 실패한 정치가로 평가하였으며, 역모를 꾀했다 하여 탄핵되었으나 수많은 선비들은 그 부당함을 호소했고, 제대로 장사조차 치를 수 없는 죄인으로 죽음을 맞이했으나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받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또한 그가 ‘내가 이리 죽게 되었으니 흉가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 유배지는 ‘적려유허비’가 세워지고 유적지가 되었으며, 조광조가 그의 부친이 죽은 후 3년 동안 시묘를 하면서 학문에 정진했던 곳은 서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호를 받은 지 30년 후에 서원이 세워졌고, 그 후에도 사액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 130년이 흐른 효종에 이르러서야 임금에게 편액을 받았다. 이렇듯 조선시대 내내 엇갈리고 있는 그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 또한 조광조를 가장 나중에 선정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작가가 조광조를 선정했을 당시의 고뇌와 그의 평가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를 갈 당시 갖바치가 바쳤다는 짝짝이 신발의 일화를 통해서이다.

사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가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함은 물론 등장인물들이 모두 역사에 기록된 실제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는 서술한 모든 이야기가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소설 속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기 쉬우나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의 이야기는 허구이다.

이는 어느 날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신발을 신고 관아에 출근했던 정도전이 “왼쪽에서 보면 흰 신발만 보일 것이요 검은 신발은 보이지 않을 것이며, 오른쪽에는 검은 것만 보일 것이고 흰 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했던 예에서 따온 것으로, 소설 속에서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신발은 비록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이었으나 발에 꼭 맞는 신으로, 조광조의 정치 철학은 한쪽에서 보면 개혁적이다 한쪽에서 보면 과격하다 할 것이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빛깔에 있지 않고 꼭 맞는 신발에 있음을 이르고 있는 것이다. 조광조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지적함과 함께 오늘날의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일화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


그렇다면 조광조가 결국 이루고자 함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그것은 공자의 유교 이념에 입각한 성리학적 지치주의를 이상적으로 실현하려 함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하늘과 사람은 근본됨이 하나이니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은 하늘의 뜻이 실현되려는 이상사회가 되어야 하며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완성 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광조는 공자의 마음으로 정치를 개혁하려 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중종 또한 공자가 되어주기를 소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광조는 비록 실패했지만 공자의 사상으로 낡은 정치를 개혁하려한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조광조의 발에 꼭 맞게 신겨졌던 신발인 공자에게로 이어진다.  2천5백년전 중국에서 시작된 유교...인, 의, 예, 충, 효를 이야기하는, 이제는 낡아빠진 듯한 유교를 이제 와서 소설을 통해서나마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공자에게, 조광조에게 혼란한 현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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