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사기꾼 - 모세, 예수, 마호메트 패러독스 12
스피노자의 정신 지음, 성귀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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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의 표지를 잘 들여다보자. 얼핏 보면 모자를 쓴 사람처럼 보이지만 뒤집어보면 그냥 그릇에 담긴 야채더미일 뿐이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지금껏 진실이라 믿으면 인류를 짓눌러온 것들이 사실은 모두 다 거짓이며 말도 안 되는 사기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책에 썩 어울리는 표지이다.

그렇다면 온 인류를 상대로 사기를 친 세 명은 누구일까... 놀랍게도 이 책이 주장하는 사기꾼은 모세와 예수 그리고 마호메트이다. 덕분에 이 책은 아직까지 지은이가 누구인지조차 의견만 분분할 뿐 밝혀지지 않았다. 이 책이 17세기 유럽에서 써졌다고 하니 그 당시 기준에서 본다면 금기에 도전한 불온서임이 분명하지만 지금에서 보자면 딱히 금서라느니.. 불온서라 할만하지는 않다.

사실 이 책은 세 명만을 콕 집어 사기꾼이라고 주장하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무지하며 어리석은 대중, 그들은 이용하여 온갖 거짓으로 그 위에 군림하는 왕을 비롯한 소위 말하는 지도자들, 그리고 자신들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종교를 만들어낸 종교지도자들이라 불리는 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저 자연일 뿐이고 필연적인 것들이 어떻게 신이라는 존재와 영혼 등으로 인류 초기부터 진화 발전해 왔는가를 개념부터 정리하기 시작하여, 어떻게 조작되고 대중을 혼란시켜 복종시켰는가...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모세, 예수, 마호메트를 비롯한 역대 사기꾼들이 어떻게 대중을 호도하였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가를 나름대로 증명한 후 결국 악마도, 천사도, 천국도, 지옥도 지금껏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허무맹랑한 것임을 주장한다.


[사정이 그런 만큼 각 종교를 지지하는 ‘선생님’의 행태는 여전히 서로를 미워하고 무시하고 경멸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맹신자라, 저주받은 자라. 낙오자라 몰아붙이는 형국이다. 흡사 공수병에라도 걸린 미친개들처럼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다.]


그 용감한 도전만큼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17세기에 써진 이 글은 오늘날에 비추어 봤을 때도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다. 무슨 악에 받친 듯 풀어내는 내용이 저자가 비판하는 사기꾼들이 자신들을 미화하는 방식만큼이나 지나친 감이 있어 흠결이 적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귀 기울일 만한 여지는 있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온 대로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서로를 미워하고, 무시하고, 경멸하면서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 현재의 작태가 과연 신이 원하는 것일까?

신을 위해 고통 속에 죽어간 사람들, 신으로 인해 서로를 저주하는 사람들, 오늘도 총부리를 겨눈 채 나의 믿음만이 진짜라고 외치는 사람들...

과연 신은 기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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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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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먼저 읽어서겠지만 여러 가지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한비야님은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려 하고 실제 일하면서 겪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또박또박 써내려갔다면, 김혜자님은 보다 감정에 충실하시고 안타까운 사연을 위주로...한비야님의 표현을 쓰자면 독한 장면을 위주로 서술하셔서 읽는 내내 눈물샘을 자극하신다.


뭐 이런 저런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점이라면 두 분 다 정말 진심이라는 것과 분명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티비에서 볼록 나온 배와 깡마른 몸으로 얼굴에 붙은 파리조차 내쫓을 힘도 없이 앉아있는 어린아이를 보고도 마음이 무너지는데, 직접 눈으로 보고 몸소 경험을 하신 분들의 음성이 진심이 아닐 리가 없고 그 호소를 듣는 사람의 마음 역시 움직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인간은 왜 세상을 창조한 하나뿐인 신을 믿는다고 큰소리치면서, 땅을 가르고 깃발을 만들어 다른 편을 죽이려고 할까요. 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미사일을 쏘면서 하나님에게 자기들이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걸까요? 하나님이든 알라신이든 분명히 신은 사랑이 아닌가요.]


김혜자님은 끊임없이 묻는다. 왜...왜...왜...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누구나 똑같이 묻고 있을 것이다. 왜...왜...왜...

측은지심이라 했던가...불쌍한 것을 보면 마음이 동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지만 성선설이 있는 반면 성악설이 존재하고,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잠자리를 날개를 뜯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분명 남을 해하려는 것이나 잔인한 마음을 품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거의 다 읽을 무렵 또 한번 묻게 된다.

그냥 이 책을 덮어버리고 말 것인가...아니면 이들의 호소에 조금이나 움직였던 마음을 실천으로 옮길 것인가...

결론은 각자의 몫이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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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재판 - 가리옷 유다의 시복재판에 관한 보고서
발터 옌스 지음, 박상화 옮김 / 아침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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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8월 28일, 독일 출신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베르톨트 B.는 유다를 복자로 추대하기 위한 공식적인 시복 심의를 청구한다. 예수를 팔아넘긴 배신자 유다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꼭 예수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섬기던 스승을 돈을 받고 팔아넘긴 행위는 분명 비겁하며 매우 추잡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라니... 불을 보듯 뻔히 결과가 보이는 이 위험한 행동을 그는 왜 하게 되었을까? 잠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유다 없이는 십자가도 없고, 십자가 없이는 구원의 계획도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유다가 없었더라면 교회도 없었을 것이며, 팔아넘긴 이가 없었더라면 팔아넘기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혁명가인 유다가 예수님의 생명을 구해 주었더라면 우리 모두에게는 죽음을 가져다 준 꼴이 되었을 것입니다......누군가 한 사람은 그 일을 해야만 했으며, 그 한 사람이 유다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다는 신의 명에 의해 그 일을 했고 그것은 유다의 운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실한 유다가 거절하지 않고 그 일을 충실히 실행했기에 우리는 구원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꽤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을 심사하는 것은 종교관계자들..그들에게 얼핏 간단해보였던 이 사건은 그러나 예상외로 재판을 열게 되고 학자들 사이에 ‘유다는 원래 누구였으며, 그의 배신의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에 대한 열띤 논쟁이 오고가게 된다.

이에 대해 세 가지 논제가 제기되었으나 모두 폐기되는가하면, 지금까지 제시된 여러 가설들을 근거로 ‘유다의 희생물로서의 예수’‘예수의 희생물로서의 유다’‘하느님의 계획을 위한 공동의 희생물로서의 유다와 예수’라는 세 가지 가설을 세우기도 한다.

이 재판의 검찰 측이라 할 수 있는 신앙검찰관은 이 재판의 부당함을 역설하기도 한다. 아니 소송의 합법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결코 내용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팔아넘긴...악마와도 같은 이에게 복자라니!


자칫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이 책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논제와 가설, 각각의 시각에서 달리하는 성서해석 등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차근차근 풀어가며 놀라운 지적흥미를 제공한다.


“유다는 금발의 인간들 사이에서 홀로 머리가 검은 인간이다......아무튼 그는 다른 존재이다.......열 한 명의 제자들이 함께 집단을 이루고 있고, 그만 홀로 서 있다.”      


책의 마지막장에 이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누군가를 유다로 만들지는 않았는가? 또한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유다가 아닐까...

이 세계는 아직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또는 어떤 집단을 또는 어떤 나라를 유다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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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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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이 구절을 읽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으...너무하는 거 아냐? 첫 장부터 울게 하고..

나는 처음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을 내셨을 때부터 최근까지 ‘한비야’라는 사람에 대해서 시큰둥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데도...책은 읽어보지도 않고...그게 뭐...세상에 그런 식으로 여행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야?  

한비야님께서 긴급구호 일을 한다는 건 우연히 버스 안에서 라디오를 듣고 알았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셔서 긴급구호 일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지만 그때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다. 한비야님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건 몇 달 전 ‘TV, 책을 말하다’를 보고 나서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과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 그녀만이 지을 수 있는 시원스럽고도 해맑은 미소는 브라운관 밖의 나조차도 미소 짓게 만들었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하는 이야기들은 비록 투박한 말투일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그런 한비야님의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는 책이다.

왜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물음에 ‘무엇보다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 ‘자신이 가진 능력을 힘없는 자와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 기회의 불평등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겠다는 사람, ‘새장 밖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지고 있는 최대치를 발휘하며 창공으로 비상’하겠다는 사람...

참으로 멋진 사람이다...그리고 그저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니...

그리고 책 속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단 하나의 거짓도 없다는 것이...

적혀있는 글자 한 자, 한 자가 말하고 있다. 모두가 진심이라는 것을...

긴급구호가로서 첫 근무지였던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아프리카, 이라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북한까지 경험으로써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들은 그녀가 아파했던 만큼이나 우리도 아프게 하고 책을 덮을 때까지 울게 한다.

또한 그만큼 우리의 가슴까지도 뛰게 한다. 저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그녀는 오늘도 행군하고 있다. 마음의 명령을 따라서...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초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을 옆 사람에게, 또 그 옆 사람에게, 초가 타고 있는 한 옮겨주고 싶다. 그래서 내 주변부터 밝고 따뜻하게 하고 싶다. 모든 일을 해결할 순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눈빛 푸른 젊은이여, 만약에 당신이 내 옆에 서 있다면 내 촛불을 기꺼이 받아주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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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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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여...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뇌성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꺽어버린다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잠시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못 다 굴린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고3때 수능이 끝나고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그때 영화를 보고는 '아...저 때는 저렇게 힘들게 일했구나', 주인공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하는 장면에서는 '배우 고생했겠다'...정도의 감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을 인상적으로 보았을 뿐...

대학을 가고 선배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봤던 질문 중의 하나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란 영화를 봤냐는 것이었다. 나는 영화를 봤고, 그런 모든 내용을 담기에는 영화가 다소 짧았다는 감상평을 내놓았다. 그냥 무심코 한 대답에 선배는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전태일이란 이름을 그저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분신자살을 한 사람 정도로만 기억할 뻔 했다.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는...



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자신도 가진 것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늘 배고팠고, 추위에 떨었고, 누군가에게 쫓겨다녀야했고, 맞아야했다. 어린 나이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구두닦이, 우산장사, 신문팔이 등등의 일로 생계를 이어가던 어느 날, 우연히 평화시장에 붙어있던 '시다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고 그는 16세의 나이에 평화시장에 발을 들여놓는다.

거리에서 떠도는 일명 '거리의 천사'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건 두 가지의 길 밖에 없다. 하나는 범죄의 길, 또 다른 하나는 노동지옥의 길...전태일은 노동지옥의 길을 택했다.

평화시장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지옥이다. 허리조차 펼 수 없는 다락방에서 하루 15시간...그조차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먼지꾸댕이 속에서 잠 안오는 주사를 맞아가며 일하는 곳...한 달에 딱 두 번의 휴일...건강검진 같은 건 없다. 그 속에서 5..6년 정도 일을 하면 100% 병에 걸린다. 병에 걸리면 무조건 해고이다.

그 자신도 빈한했다. 제 한 몸 추스리기도 힘든 노동지옥 속의 노동자가 아니었던가...그런데 무엇이 그를 스스로 붙태우게 만들었는가...



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처음에는 그저 재단사가 되고자 했다. 평화시장의 인력구조에서 재단사는 일거리를 조정하는 정도의 약간의 재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단사가 되면 시다나 미싱사의 편의를 봐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프다고 병원데려가고 직원들 쉬게하고 본인이 혼자 일을 도맡아 하자 사장은 꼬투리를 잡아서 그를 해고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러저런 호소도 해보았으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근로기준법이란 책은 닿고 닿도록 보았다. 바보회를 조직했고, 삼동회를 조직했다. 노동청도 찾아가보았고, 신문사도 찾아가보았다. 진정서도 내 보았고,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쓸 생각까지 했다. 그가 할 수 있는...아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까지 모든 일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하는...

인간을 '현실이 쓰다 버린 쪽박'으로 만들어버리는 잔혹하고 비정한 현실의 냉혈한 얼굴을 가진 세상은 전태일에게 마지막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와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주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불타는 몸으로 그는 이렇게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

이게 그가 스스로 몸을 불태워 외친 말이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불을 끄고 병원에 왔으나 의사는 가난한 그에게 화기를 낮춰준다는 주사 한대 놔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친구들에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부탁을 하고, 마지막으로 '배가 고프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배가 고프다'...그 평생의 고통이었으리라...



지금 그가 죽은 청계천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변했다. 그러나 그를 그토록 매몰차게 내몰았던 세상도 그만큼 변했는지 모르겠다. 지난 세대에게는 성전과도 같았던 이 책은 아직도 팔리고 있지만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도 성전이 될 수 있을 것인가...아직도 그의 외침은 유효한가?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자와도 같았던...가난하고 나약했으나 그 자신보다 더 나약한 자를 위해 스스로 불꽃이 되었던 아름다운 청년...


아직도 그를 모르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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