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2015.8.28):
[아래 글에서, 김용옥의 번역물은 도덕경 하나 뿐인 것 같다는 나의 기술은 완전한 오류인 것 같다. 이 포스트를 폐기해야 할 정도로 커다란 오류인데... 그냥 놔두기로 한다.

왜냐하면 내가 김용옥의 노고와 성취에 무지했던 것에 별로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김용옥이 약속했던 노자 철학, 불교 철학, 자신의 기철학, 최한기의 기철학, 조선 철학사 기획 등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는, 이 웅대한 기획들의 결과물을 기다리다 방송 강의 등에 안주해 버린 듯한 김용옥에 실망하고, 더 이상 기다릴 것 없다고 떠나버린 많은 사람 중의 하나다. 

솔직히 나는 김용옥의 13경 번역에 대해서도 별 느낌이 없다. 지금 꼭 그걸 다시 번역해 내야 하는가? 그걸 꼭 김용옥이 해야 하는가? 김용옥이 해줘야 할 좀 더 어렵고 선구적인 일들이 있지 않은가? 왕부지, 이탁오의 번역,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선 철학사. 특히 조선 철학사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김용옥이 해줘야 하는 작업 아닌가? (이 세 주제에 대해 알라딘 검색을 한 결과 찾아진 것은 없었다.)]


김용옥이란 분이 있다. 동양 고전, 한국 고전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시던 분이었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 동양학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알기로 김용옥의 고전 번역은 노자의 도덕경 번역 하나 뿐이다. 이 번역서에 한정해 읽어 본 소감을 말한다면 아주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해제도 없고 각주도 없고 마치 시처럼 번역된 한국어 번역문이 책의 거의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번역이 김용옥이 그토록 강조하던 완전 번역의 예일까? 노자 연구자가 노자에 대해 논문을 쓸 때 김용옥의 이 책을 인용, 참고 서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전혀 가능성 없는 일이다. 김용옥의 번역에는 아무런 이론도 논증도 논거도 없기 때문이다. 일은 결코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박종현이라는 분이 있다. 플라톤 번역의 대가다. 박종현 번역의 질이 어떠한지는 전문 학자들이 우선적으로 검토할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도 그렇게 검토할 만한 플랫폼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플라톤 번역이 왕성할 수 있는 이유가 박종현의 번역이 토대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종현은 플라톤의 법률도 번역했다. 박종현이 법률을 번역해 놓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플라톤 저작의 완역은 이제 시간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아직 완역이 안되었다면). 그만큼 법률이 양도 방대하고, 현대의 관심에서 외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일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한국에는 들뢰즈가 완역되어 있는 한편으로 플라톤 완역은 요원하다는 식으로 비판만 해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판만 해서 우리가 스피노자의 에티카 한국어 표준판 한 권이라도 얻을 수 있었던가? 

로쟈라는 분이 있다. 번역 비평으로 인기를 끄셨다. 번역 비평이라는 유행도 만들어 내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아무런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분은 우리가 얼마나 표피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창피해 하는 일이 읽지도 않은 책을 죽 진열해 보여주는 것 아니었던가? 우리는 얼마나 뻔뻔해 진 것인가? 읽지도 않은 책을 죽 진열해 보이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내 생각에 번역 비평은 진지하게 받아들여 질 수 없는 것 같다. 1000권의 책에 대해 번역 비평하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허투르게라도 번역해 내는 것이 우리의 인문 환경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1000권의 책에 대해 번역 비평하는 것보다 단 한권의 책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제대로 된 소개글을 쓰는 것이 일반 독자들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번역 비평이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번역자, 출판사, 그리고 관심 독자)이 번역 비평이라는 것을 진지한 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번역 서평자가 최소한 해야 할 일이 있다. 즉, 해당하는 책"만이라도" 통독하고 그에 대한 자기 이해를 서술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은 적어도 번역 비평하는 분이 번역서에서 트집을 잡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아닐 거라고 경계를 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내 생각에는, 대부분의 경우 번역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보다는 해당 책에 대한 보고가 우리의 인문 환경에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책을 통독하고 그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은 표피에서 깊이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의 깊은 의미는 결국 이것이 아니던가? 인문 환경이란 깊이에 대한 추구를 쑥스러워 하지 않도록 고양하는 분위기를 말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읽지도 않은 책을 죽 진열하고 그 일부에서 번역문을 뽑아 그것이 제대로 되었는지 안되었는지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독서라는 행위의 본질에서 얼마나 벗어난 것인가? 

최소한 읽자. 그래야 그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이것이 최소한의 요구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정녕 너무 지나친 요구인가? 

(조금 있으면 한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온다. 막간을 이용해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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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 2015-08-28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용옥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벌써 몇 해전에 나이는 먹어가는데 자신이 이룩해 놓은 것이 없다고 반성하면서 13경 번역에 착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논어, 중용, 대학, 효경, 맹자를 번역해 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석도화론>이라는 책도 번역했고, <벽암록>의 일부를 <화두, 혜능과 세익스피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습니다. 장경각에서 나온 <벽암록>과
비교해 보니 김용옥의 번역이 훨씬 나았습니다.

저는 번역비평이 더 활발히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엉터리 번역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오역지적이 해당번역본을 새로 찍을 때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분명 순기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번역하는 사람중에 오역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말씁드릴 것은 오역지적에만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사정인데 저작권 때문에 문제가 많은 번역본을 다른 사람들이 번역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weekly 2015-08-28 18:5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1. 제가 어마어마한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알라딘에서 검색하니 김용옥의 논어한글역주 세트 등의 책이 보이네요. 제가 김용옥의 노고와 성취에 대해서 철저하게 무지했던 것 같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 번역비평에 순기능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순전히 번역비평이란 말이 무얼 의미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번역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번역에 대한 논쟁이 일거나 일반 독자들이 오역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 등등은 모두 건강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의 번역비평은 활발할 수록 좋을 것입니다.

제가 못마땅해 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번역,그리고 독서와 별개의 차원에서 비평이 수행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의 번역비평입니다. 저는 이런, 정확히 말하면 번역 평론은 인정될 수 없다고 봅니다. 아니, 이런 번역 평론을 인정해 주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예전에 로쟈님이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번역 논쟁에 끼여들어 자신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봤습니다. 문제는, 제가 느끼기에, 로쟈님이 해당 대목의 앞 뒤 한 페이지조차 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전문가주의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번역비평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진지한 독서와 그에 관한 토론의 한 형태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 예전에 어떤 사이트에서 어떤 책에 대한 소개글에 어떤 분이 번역이 제대로 되었느냐고 묻자 다른 분이 책은 안읽고 걸핏하면 번역 번역 한다고 비꼬는 댓글을 단 것을 보았습니다. 번역 품질에 대한 관심과 지적이 번역 품질을 높이는데 기여를 한다는 데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번역서 일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인문서, 인문 철학서의 번역에 들어가는 어마 어마한 공력에 비해 역자(그리고 출판사)가 얻는 경제적 보상이 너무도 초라한 것을 알기에(예를 들어 들뢰즈를 번역한 분의 경우), 저같이 소심한 사람은 감히 책의 판매량을 저하시킬 수 있는 공공연한 비판은 하지 못하겠더군요... 역자든 출판사든 보상은 거의 없는데 오역 논란만 무성한 인문 철학서 번역을 기획하려 할까요?

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번역 품질을 높이는데 관심이 있다면, 진정 정말로 그러하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해당 책을 진지하게 읽고 그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지하게 읽는 독자들이 많을 때 번역하는 분들도 경제적으로는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신의 번역물을 한번 더 들여다 보게 되겠지요. 이런 식으로 번역의 품질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한가지 예를 말하자면, 제가 독후감을 쓴 ˝상상력˝이란 번역서가 있습니다. 저는 나름 진지한 독서를 했고 그 결과를 글로 써올렸습니다. 아마 역자와 저의 관심은 같았을 것입니다. 즉, 한국에서 사르트르의 책이 좀 더 많이 읽혔으면 한다는 것. 그래서 역자는 사르트르를 번역했고, 저는 매우 긍정적인 입장에서 독후감을 썼습니다. (물론, 역자분의 어마어마한 노고와 저의 하찮은 생색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보니 그 ˝상상력˝이란 책에 대해 역자분 자신이 일부 번역에 대한 수정의 글을 올리셨더군요. 물론, 역자분의 그 글과 저의 독후감은 전혀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역자분이 자신의 번역물을 을 진지하게 읽어주고, 그 책을 선전해 주어서 흐믓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해 다시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낸 것이라고 강렬하게 믿고 싶습니다.
 

 

 

 

 

 

 

 

 

 

 

맨 위의 것이 엊그제 찍어 놓은 정원의 모습이다. 예쁘지는 않다. 기록해 놓기 위해... 

 

(옆집 할머니가 잔디 기르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정원이 손바닥만하고 담이 높아서, 햇빛이 잘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가을녁부터는 쥐구멍만한 햇빛이 잠깐 스쳐지나간다. 그래도 겨울을 넘기고 나니 그럭 저럭 언잖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내년에는 더 두툼하고 상쾌한 모습이기를.)

 

(추: 위에서 두번째 사진의 잔디가 아주 파랗고 좋다. 막 깔았을 때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겨울 엄청 장마가 져서 잔디도 거의 폐허가 됐었다. 지금 모습이 그나마 많이 나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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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5-06-3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나무 지금도 있나요?
나무가 단 한 그루라도 있으면 꼭 새가 날아와서 노래해주던데요~.
새벽에 새들이 종알종알 노래해주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weekly 2015-07-29 14:2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셨지요? 댓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댓글 알림 메일이 오지 않았네요...)

나무는... 잘라 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이미 죽은 나무였구요.

제 사는 곳이 시골이기도 해서 그래도 새들은 자주 와 줍니다. 까망새가 지렁이도 잡아 먹고 다람쥐가 와서 도토리 심어 놓고 가기도 하고 동네 고양이가 화단을 지 화장실로 이용하기도 한답니다.:)

좋은 하루 되시구요~
 

 

 

올 겨울 영국은 포근하다. 스코틀랜드에는 눈이 꽤 왔다 하지만 내가 사는 잉글랜드에서는 바닥에 깔린 눈을 딱 두번 봤을 뿐이다. 위 사진처럼 풍요롭게 쌓인 눈은, 아마 이것이 올 겨울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한 이주 전 새벽에 이층 작은방서재(서재라고? 혼자 웃었다.)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전이 다 가기 전에 눈은 다 녹아 사라졌다. 사진을 보니 한국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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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요즘 증세와 복지 문제로 시끄러운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축하한다, 한국! 한국도 이제 선진국에 공통적으로 출제되는 문제를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문제에 관한한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이미 분명히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담세율도 복지 수준도 너무 낮다. 그러므로 이 둘의 비율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증세는 물론 전반적 증세가 될 수 밖에 없다.)

 

방향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담세 수준과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관건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증세와 복지 문제가 이념적 갈등을 야기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성안하고, 그러므로 해결해야 할 책임을 가진 세력이 우파 정권인 박근혜 정권이기 때문이다.

 

증세와 복지 문제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박근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박근혜만큼 대중적으로 신뢰를 받는 정치인도 드물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이 정권을 잡지 못한 것을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노무현 정권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유를 나는 이렇게 본다: 부동산 폭등, 등록금 폭등, 그리고 종부세. 물론 각 사항마다 노무현이 억울해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어쨌든 최종 책임은 고스란히 노무현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만약 문재인이 집권하여 또다시 세금에 손대야 했다면 민주당 정권은 세금 정권이란 오명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앞으로 재집권하기가 정말 힘들어졌겠지. 다행히 세금 정권이란 오명은 지금 새누리당이 받고 있다.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면 박근혜는 이미 레임덕에 빠진 것 같다. 정권의 힘은 이미 청와대에서 당으로 옮아간 것 같다. 총선과 대선을 치뤄야 하는 새누리당은 여론의 동향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내 생각에 상황은 지난 대선 직전하고 비슷해진 것 같다. 그때 새누리당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정책 등으로 표를 모으려 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정책으로 만들어 실행해 내야 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나는 새누리당이 법인세 인상 등을 저지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때마침 문재인이 야당 대표가 되었단다. 사람들이 박근혜를 포기하고 새로운 대안,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설 때 문재인이 전면에 나선 것이다. 아마 그동안은 야당에서 무슨 일을 하던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문재인과 야당에 강력한 포커스가 가고 있는 것 같다. 어젠가 문재인이 박근혜더러 거짓말장이라고 비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높았을 때였더라면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을 발언이었지만 이제는 문재인이라면 응당 할 수 있는 소리로 치부되고 있는 것 같다. 또 문재인은 소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탕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주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를 표적으로 한 것임이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사람들은 박근혜가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허니문이 이미 깨졌기 때문에 이제 박근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은 정상적인 정치 지도자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문재인과 박근혜가 대비되면서, 나는 우리가 너무도 오랫 동안 잊고 있던 그것, 즉 ‘격’이라는 것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쎄, 너무 고리타분한 말일까? 글쎄, 격이 있는 사회에서라면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다 할거예요”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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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 회견을 보았다. 어버버 저버버 했다는 얘기가 많아서 찾아 보게 되었다. 다 보지는 않고 질답 장면만 보았다. 박근혜가 나름 선방한 것 같기는 하지만, 어휘가 입에 착 달라붙지 않고 심하게 겉돈다는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아마 누구나 다 그런 느낌을 받았으리라. 기자회견을 하는 박근혜에게서 내가 본 것을 한 단어로 말하라 한다면? 열등 콤플렉스.

 

예를 들어 농구를 잘 한다고 자랑하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 친구는 농구를 잘 안하려 한다. 아무도 없는 밤에 빈 코트에서 혼자 슛 연습을 하거나, 초등학생들하고만 어울려서 농구를 한다고 하자. 우리가 이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또, 이 친구가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 친구의 머리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친구에 대해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데는 이미 부족함이 없다. 이 친구는 자신의 농구 실력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고 그 때문에 농구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친구는 농구에 대한 열등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박근혜에 대한 모든 설명은 열등 콤플렉스 하나로 끝난다. 박근혜는 자신이 공주인 줄 알고 있는가? 소통을 잘 안하려 하는가? 부모가 모두 살해되는 시련을 겪어서 사람을 잘 믿지 않는가?  그래서 한번 신뢰를 준 사람만 계속 쓰는가? 복잡하게 이야기할 것 없다. 박근혜는 단지 심각한 열등 콤플렉스를 갖고 있을 뿐이다.

 

국무위원들과 대면 보고를 늘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근혜는 국무위원들을 돌아다 보며 대면 보고가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대면 보고가 왜 필요한가? 긴급 현안이 있을 때,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 대해 좀 더 깊이 파악할 필요가 있을 때, 또는 장관이 어떤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적 지원을 바랄 때 등등. 그런데 대면 보고가 있으려면 둘 사이에 설명, 청취, 질문, 재질문 등의 대화가 오고갈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가 이런 대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마 아무도 이에 긍정으로 답하지는 못하리라.

 

그러므로 모든 안건들은 일단 참모들 손에 넘겨져서 박근혜가 이해가능한 수준으로 가공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가 야기한 7시간의 국정 공백은 대통령의 즉각적인 반응을 요하는 현안에 박근혜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증명한다. 당시 박근혜에게 올라간 보고서에는 사건의 요점만 있지 대통령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서술은 없었을 것이니까. 박근혜가 그 문고리 권력 참모들을 교체하라는 요구에 귀를 막고 있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다. 그 사람들은 박근혜에게 어떤 식으로 보고를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들인데 이 귀한 사람들을 어떻게 교체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는 1년에 한번 밖에 기자회견을 안한다고 한다. 가능한 피하는 것이다. 자신에 완전하게 맞춰진 상황(국무회의)에서나 원고를 보고 말을 한다. 기자회견을 할 때도 질문은 사전에 청와대에 전달되는 것 같고, 추가질문은 당연히 없다. 비판에 극도로 민감하여 "바보같은 짓"이니 "엄청난 조작"이니 하는, 대통령이 공적으로 쓰기에 민망한 말들을 사용해 가면서 사안을 덮어 버리려 한다. 분명 이 모든 것은 열등 콤플렉스의 징후다.

 

이런 사람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전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박근혜는 한국의 엘리트 시스템 속에서 장기간의 검증을 거쳐 대통령이 된 것이니까. 다시 말하면 박근혜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 하나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나는 여기서 똑같은 단어를 다시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열등 콤플렉스.

 

예를 들면 대한항공 회항 사건에서 그 부사장은 직원들을 무릎 꿇게 했다고 한다. 어떤 주차장, 어떤 백화점에서도 고객이 직원들 무릎을 꿇게 했다고 한다. 극단적인 열등 콤플렉스의 예이다. 상대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능력이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무조건적인 굴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숱한 예를 들 수 있다. "너 나이 몇 살이야?", "어디서 감히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봐!", "내가 누군지 알아?", "너 말고 여기 책임자 오라 그래!"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일까? 이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면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화가 난 척 하며 합리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매우 이상하게도 이런 열등 콤플렉스 환자들이 갖고자 하는 것을 쉽게 갖도록 허용해 준다. 정말 관대하다.

 

열등 콤플렉스로 꽉 차 있는 사회에서라면 열등 콤플렉스로 꽉 차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필연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는 오늘의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아주 질 좋은 거울일 뿐이다.

 

그런데 거울은 우리가 우리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한국 사회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열등 콤플렉스에 대한 논란들은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콤플렉스에 대한 극복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는 헤겔주의자는 아니자만 어쨌든 이런 낙관은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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