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집에 가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은근슬쩍 따라왔다. 현관문을 여니 쏙 들어와 집 이 구석 저 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보다시피 털도 잘 관리된 집냥이다. 주인들이 여행을 갔나? 참치캔을 하나 따 주었더니 잘 먹더라. 현관문을 빼꼼히 열어 두었었는데 참치 먹고 나서 바로 가버렸다. 몇 칠 있다가 길거리에서 한번 마주쳤는데 아는 체도 안하더라. 하여튼 고양이란...

 

고양이나 개가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소나 돼지도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올해의 결심을 몇 가지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포유 동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올해는 일단 물고기 종류만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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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가 터키에 갔다가 커피 끓이는 포트와 커피 가루를 사갖고 왔었다. 마침 터키 커피는 다 떨어졌고 필터 커피 얻은 게 있어서 필터 커피를 터키 커피식으로 끓여 보았는데 나름 나쁘지 않은 맛이 난다. 끓이다 보면 표면에 약간 굳은 막이 형성되는데 좀 휘저어 주어야 한다. 안그러면 검고 굵은 커피 입자가 한모금씩 입안으로 침투한다.


1인용 터키 커피 끓이는 포트다. 나의 친구. 이스탄불 시장에서 사왔다.


완성. 좀 서둘러 끓여서 황색의 크레마(라고 하나?)가 덜 형성되었다. 불을 약하게 하고 끓이면 좀 맹맹하고 불을 키우면 좀 진한 맛이 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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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5-12-3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커피도 커피지만 렌지가 특이하네요. 청소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weekly 2016-01-08 23:4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답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댓글이 달릴 글이 아니라고 넋놓고 있다가 그만...

하하 지금 보니까 렌지 화구 주변에 커피 끓이다 흘러 넘친 자국이 보이네요. 기억의집님께서도 그걸 보신 듯:)
포트가 작아서 렌지 위에 석쇠같은 걸 얹어 놓은 거구요. 렌지 자체는 한국에서 쓰는 거랑 똑같아요...
 

올 5월달에 일주일 정도 크레테 여행을 했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낀 것도 많았는데... 미처 기록을 해놓지 못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기록해 두려 키보드 앞에 앉고 보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 

1. 크레타 섬 한 가운데 산 속에 있는 생태 마을에서 묵었다. 이름이 생각 안난다. 첫날 밤 늦게 도착했는데 숙소에 가보니 라끄 한 병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더라. (라끄는 소주보다 강한 술이다. 터키, 그리스 등에서 주로 마시는 것 같더라.) 라끄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는 순간 크레테에 마음을 주어 버린 것 같다.

2. 몇 가지 사건 사고. 타이어가 터져 버렸다든지, 차키를 잃어 버렸다든지. 다행히 조치 가능한 지역 내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겁없이 나다니던 비포장 비탈 산길에서 타이어가 터졌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3. 크놋소스 유적지. 내 기억에 4000년 전 유적인데 그 규모나 감각이 참으로 놀라웠다. 그러나 영국인 고고학자들이 좀 과하게 복원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크레테에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유적지이다.

4. 영국 관광 안내 책자에 소개되어 있는 해변가를 찾아 갔다. 지저분하고 기다란 길목 양쪽으로 프리미어 축구를 중계하는 커다란 티비가 걸린 펍, 햄버거집, 피쉬앤칲스 가게... 등등 영국스러운 풍경이 죽 펼쳐졌다. 영국 사람들은 이런 데까지 와서 저러고 놀고 싶을까... 하며 웃었다. (앞으로는 체력도 달리고 하니 패키지 여행으로 다녀야 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5. 크놋소스는 크레테 북부에 있는데, 크레테 남부에도 커다란 유적지들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을 잇는 요지에도 작은 유적이 있더라. 그러니까 크놋소스 미노안 문명이 섬 전체에 퍼져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북을 잇는 작은 유적지에도 다녀 왔는데, EU 발굴단에서 발굴 중에 있었다. 유적지를 돌아보고 나서 입구 쪽에 작은 돌 몇 개를 표식으로 쌓아 올려 놓았다. 나중에 크레테에 다시 가게 될 것을 기약하면서.

6. 발로스 해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포장 해안 도로를 탈탈거리며 30분 정도 달려야 한다. 그 해변가에 누워서 DG의 전기를 읽었다.

7.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 사실 나는 더 이상 카잔차키스를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크레테에 왔으니 한번 찾아가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 개장한, 작지만 알차게 꾸며 놓은 박물관이었다. 기념으로 "자유와 즉음"이라는 책을 샀다. 관리하시는 분이 얼마 전에 한국의 젊은 여성이 이라클리오 공항에서부터 비를 쫄딱 맞으며 몇 시간을 걸어 왔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열정에 있어서라면 한국인도 만만치 않다.

8. 크레테에는 미노안과 후속하는 그리스 문명 유적지 말고도 로마 유적지도 있다. 로마 시대 집단 거주지 유적지에는 돌무더기들이 방치된 채 뒹굴고 있었다. 대리석 기둥 등도 그냥 널부러져 있다. 유적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짐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9. 내 눈에는 크레테 사람들이 터키 사람들과 비슷해 보였다. 터키는 이슬람, 크레테는 그리스 정교이지만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비슷했다. 그러나 터키 사람들이 농담도 잘 하고 말 걸기도 쉽고 호기심도 많아 보인 반면 크레테 사람들은 무척 무뚝뚝해 보였다. 영국에서 있으면서 나는 사람들과 눈길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는 습관이 들어 버렸는데, 크레테에서는 이런 미소 짓는 얼굴을 버렸다. 너무 부드러운 척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터키 사람들은 술을 거의 먹지 않는다. 대신 하루에 몇 십 잔이고 차이라는 차와 커피를 마신다. 반면, 크레테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더라. 식당에 가도 전주로 라끄, 후주로 또 라끄가 나온다. 여기 사람들은 이 술을 라끄라고 부르지 않는데 내가 그 이름을 까먹었다.)

크레테는 유럽에 속한다. 그러나 유럽과는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에 공연 안내 포스터를 붙여 놓는데 거의 전부가 무슨 연주 포스터였다.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여흥으로 즐기나? (공연에 가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빠듯하여 그러지 못했다.) 곳곳에 그리스 정교 암굴이 있다. 거기서 간단하게 기도를 드리고 그러는 것 같았다. 듣기로 90% 이상의 크레테 사람들이 그리스 정교 신자라고 했다. 크레테에는 유럽과 다른 어떤 순수함이 있는 것 같았다.

크레테 할머니들과 터키 할머니들은 똑같이 생겼다. 그 분들이 미소 지을 때 호호 아주머니처럼 둥그랗게 모아지는 코 옆의 살도 똑같다. 한국의 마음씨 좋고 푸근한 할머니들도 꼭 그렇게 생기셨다. 나는 그분들의 얼굴에서 똑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아마 그 분들은 평생을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한 걸음 뒤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면서, 가족들의 행복을 자신의 숙명으로 삼으시면서, 삶에 불평함 없이, 모든 것을 포용하시면서 그렇게 사셨을 것이다. 이 분들의 얼굴, 이 분들의 분위기를 하나의 단어로 이야기하라면 그것은 "엄마"가 될 것이다. 엄마라는 단어는 한쪽의 극에서는 신이고 다른 쪽의 극에서는 개이다. 우리의 고단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품어 주는 절대적인 편안함의 존재로서의 신, 그리고 신이 사망한 시대에 신의 역할을 떠맡아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여 주는 나의 애완견, 이것들의 근원에는 엄마에 대한 경험이, 혹은 요구가 놓여 있다고 나는 믿는다.

크레테와 터키의 늙은 여인들의 얼굴은, 냉정한 언어로 말하면 교육받지 못하고 관습과 남자들(아버지, 남편, 아들)에 부수하여 평생을 주변적으로 살아야 했던 여인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얼굴들은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아마 50년 후, 100년 후에는 더 이상 이런 얼굴을 찾아볼 수 없게 되리라. 이런 변화는 필연적이다. 이런 뜻에서 역사는 자신만의 얼굴을 갖는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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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후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네 에피소드를 봤다. 그동안 안보다가 피날레가 멋지다길래 시청 유효 기간이 남아 있는 네 편을 보게 되었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말하면, 여자 주인공인 클라라가 죽었고, 닥터는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거대한 다이아몬드 벽을 맨주먹으로 45억년 간이나 깨부수는 수난을 감내한다. 클라라를 되살려 내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 엉긴 시간 구조를 복구하기 위해 둘 중 하나는 기억을 지워야 했는데 결국 클라라에 대한 닥터의 기억이 지워졌다는 것.

고대 인도인의 시간 스케일에 고대 그리스인의 불굴의 신화를 섞어 일종의 멜로 드라마를 만들어 내었다고 촌평할 수 있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런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질문이고 그에 대해 답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살아난 클라라가 닥터에게 묻는다. 왜 그런 고난을 겪으면서까지 자신을 구하려고 했느냐고. 닥터는 답한다. 너를 안전하게 살게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닥터는 말하자면 의무를 이유로 든 것이지만, 시청자들은 거기서 사랑을 본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그것은 닥터의 말대로 의무일 수 있다. 또는, 동행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자신의 무결성의 오점을 만회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닥터는 동행자가 죽을 때마다 똑같은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45억년의 수난을 반복하는 닥터를 보면서 우리는 닥터를 불쌍하게 생각할 것이다. 닥터는 일종의 편집증일 수도 있는 것이다.

45억년 동안 다이아몬드 벽을 주먹으로 깨부수는 행동만 가지고는 그것이 사랑인지 편집증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분명 뭔가를 놓치고 있다. 즉, 그 행동의 목적으로서의 클라라, 닥터에게 각별히 의미있는 인물로서의 클라라라는 존재를.

요컨대 사랑과 의무를 가르는 것은 그것이 고유한 개체를 지향하느냐 아니면 보편을 지향하느냐에 달린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닥터가 감내한 45억년의 수난이 사랑이었을까? 닥터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클라라만을 위해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일까? 그렇다. 어떻게 아느냐고? 닥터 후의 메인 작가는 셜록의 메인 작가이기도 하다. 왓슨은 소시오패쓰인 셜록 홈즈와 영혼의 친구 사이이며, 또 모르고 그런 것이긴 하지만 청부 살인업자와 결혼을 하기도 했다. 왜? 셜록의 작가는 왓슨이 본질적으로 이들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닥터 후에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닥터와 클라라는 본질적으로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일반화하여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사랑은 본질적으로 자기애라는 것.

그런데 자기애는 자신을 중심 가치로 하여 타자를 대상화, 혹은 도구화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그것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유아에게 엄마는 나를 쾌적하게 해주는, 세계의 어떤 작용이다. 돈 많은 여자는 나의 경제적 난관과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돈으로 내게 표상된다. 그 남자는 나의 외로움과 관련하여 포근한 가슴으로 내게 다가온다, 등등. 

그러나 사랑은 나와 사물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즉, 사랑은 두 인간 실존, 두 인격, 두 가치 중심 사이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자기애로서 사랑은 타자의 전면적 존재를 지향함으로써 나의 전면적 존재를 긍정해야 한다. 나는 사랑 속에서 타자의 인격 전체를 지향하며, 그리하여 그 지향이 나의 인격 전체로 귀착되도록 한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 속에서 타자에게 원하는 것은 내가 자유인 한에서 타자의 자유이다. 말하자면 사랑을 통해 나는 타자를 자유의 존재로 긍정함으로써 나의 자유를 실감하고 타자의 인격을 긍정함으로써 나의 인격의 긍정을 실감한다. (반대로, 타자를 대상화함으로써 나는 단지 나 자신을 대상화할 뿐이다. 그가 나에게 단지 돈일 뿐이라면 동시에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돈에 대한 욕망으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클라라를 죽음에서 구출해 내면서 닥터는 무엇을 원한 것일까? 클라라가 다시 자신과 여행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랬을까? 물론 아니다. 닥터는 단지 클라라가 안전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랬을 뿐이다. 닥터는 클라라의 자유를, 클라라의 전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한 것이다. 대상화로서의 자기애를 극복함으로써 닥터는 사랑 안에 머물러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사랑에 대한 정의가 완비된 것일까? 물론 아니다. 우리는 지금껏 사랑을 개념화하고 있었을 뿐이다. 개념이라는 것은 항상 너무 앞서 간다. 그러므로, 예컨대 법정 스님이 "사랑이란 찬란한 오해"라고 한 말을 우리는 긍정할 수 밖에 없다. 이 말은 사랑을 열린 지평 위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사랑이란 자기애라고, 그러므로 자기애로써의 필연성, 어떤 운명을 갖는다는 식으로 말했었다. 그러나 바로 이 필연성이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오해"라는 것이다. 사랑은 열려 있어야 한다. 사랑은 필연이어서는 안된다. 필연은 사랑을 파괴한다.

닥터 후의 작가는 법정 스님을 이해하고 있었다. 닥터는 이렇게 말한다. "클라라라는 이름만 빼놓고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이 다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확실한 것이 있다. 내가 클라라를 만나게 된다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닥터는 이 말을 바로 클라라 앞에서 클라라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닥터가 정말로 클라라를 바로 알아보았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예컨대 어떤 생리적 기제의 결과일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필연성의 고리 밖에 있어야 한다. 

사랑이란 우연한 만남이고, 어떤 인식이고, 그에 대한 재인식이고, 대상성을 전면성으로 바꾸는 결단이고, 자신과 타자의 인격의 전면성을 지향하는 끊임없는 행위일 것이다. 그것은 필연성이 아니라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만들어 가는 공동의 행위일 것이다. 아마도 사랑은 다이아몬드 벽을 주먹으로 내리쳐 깨뜨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엔 항상 어떤 가능성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감질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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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과의 대화의 잔여물...)

현대인들은 고대인에 비하면 분명 노이로제 환자이거나 분열증 환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말하자면 우리는 여전히 프로이트, 니체, 마르크스, 다윈 등등의 그늘 아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 사상가들이 내적으로 잘 구획해 놓은 시대에 살고 있다.

이들은 탈근대의 사상가로 불리운다. 즉, 이들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근대성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성에 대한 재고와 타자성의 발견. 사실 이 둘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이제 새로운 사고 방식에 의하면 주체성은 언제나 타자성을 통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주체성은 여전히 주체성으로 남는다.)
 
이런 통찰은 직관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텔레비젼 광고를 보자. 코트를 걸치고 머리를 박박 깍은 젊은 남자가 휘적 휘적 걸으며 다음과 같은 대사를 말한다. "나는 남이 좋다는 걸 따라 하고 그러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나만의 것을 찾기를 원하죠. 겉으로 보기엔 허름해 보여도 진짜가 항상 있는 법이거든요." 그러면서 시크하게 캔커피를 하나 따 마신다...

이런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피씩 웃게 된다. 이 남자의 겉멋듦을 인식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자기만의 고유한 취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믿지 않는다. 그 남자는 아마 유행 속에 있을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그러면 우리는 나의 취향이란 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즉, 나의 취향은 언제나 타인의 취향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체성과 타자성에 대한 간단한 공식 하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즉, 나와 나 사이에는 언제나 타자가 개입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취향이란 없다는 말은 데카르트적인 주체는 없다는 말과 동등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근대적 주체에 대한 비판 자체가 아니라 그 비판이 우리의 직관에 수긍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어야 한다. 역으로 말하면 데카르트의 주체는 우리의 직관에 수긍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데카르트적인 주체는 사실성의 영역이 아니라 이념성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이 둘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사실, 혹은 구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분열증의 씨앗을 본다. 

데카르트가 철학으로 해석된 근대성이라면 정치 경제학적으로 해석된 근대성은 물론 자본주의일 것이다. 우리가 근대를 고민한다는 것, 탈근대를 고민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자본주의에 대해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예컨대 주체성과 타자성의 문제가 자본주의와 갖는 관련성이 해명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직관에 직접 수긍되거나 기각될 수 있는 것, 즉 구체적인 것에 대한 이론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컨대, 분열증과 자본주의라는 구체적 항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 들뢰즈와 가타리가 이 주제에 대해 작업을 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 들뢰즈, 가타리의 해당 두 작품을 읽지 않았다.)

이러한 모든 것이, 그러므로 우리 시대가 철학에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시대는 철학이 총체적일 것을 요구한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철학의 응석을 너무 많이 받아줬다. 예를 들어 회의론이나 유아론, 각종 상대주의에 귀착되고 마는 철학은 게으른 철학이다. 우리는 철학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철학은, 예컨대 상대주의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주의의 조건을 해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가 시대 착오적인 것일까? 예컨대, 그것은 헤겔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글쎄... 이런 주제는 말싸움이 되기 쉽상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의 말을 빌어 논쟁을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새롭게 사고되어야 한다. -사실 이러한 말들은 내게는 항상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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