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월달에 일주일 정도 크레테 여행을 했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낀 것도 많았는데... 미처 기록을 해놓지 못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기록해 두려 키보드 앞에 앉고 보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
1. 크레타 섬 한 가운데 산 속에 있는 생태 마을에서 묵었다. 이름이 생각 안난다. 첫날 밤 늦게 도착했는데 숙소에 가보니 라끄 한 병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더라. (라끄는 소주보다 강한 술이다. 터키, 그리스 등에서 주로 마시는 것 같더라.) 라끄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는 순간 크레테에 마음을 주어 버린 것 같다.
2. 몇 가지 사건 사고. 타이어가 터져 버렸다든지, 차키를 잃어 버렸다든지. 다행히 조치 가능한 지역 내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겁없이 나다니던 비포장 비탈 산길에서 타이어가 터졌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3. 크놋소스 유적지. 내 기억에 4000년 전 유적인데 그 규모나 감각이 참으로 놀라웠다. 그러나 영국인 고고학자들이 좀 과하게 복원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크레테에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유적지이다.
4. 영국 관광 안내 책자에 소개되어 있는 해변가를 찾아 갔다. 지저분하고 기다란 길목 양쪽으로 프리미어 축구를 중계하는 커다란 티비가 걸린 펍, 햄버거집, 피쉬앤칲스 가게... 등등 영국스러운 풍경이 죽 펼쳐졌다. 영국 사람들은 이런 데까지 와서 저러고 놀고 싶을까... 하며 웃었다. (앞으로는 체력도 달리고 하니 패키지 여행으로 다녀야 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5. 크놋소스는 크레테 북부에 있는데, 크레테 남부에도 커다란 유적지들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을 잇는 요지에도 작은 유적이 있더라. 그러니까 크놋소스 미노안 문명이 섬 전체에 퍼져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북을 잇는 작은 유적지에도 다녀 왔는데, EU 발굴단에서 발굴 중에 있었다. 유적지를 돌아보고 나서 입구 쪽에 작은 돌 몇 개를 표식으로 쌓아 올려 놓았다. 나중에 크레테에 다시 가게 될 것을 기약하면서.
6. 발로스 해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포장 해안 도로를 탈탈거리며 30분 정도 달려야 한다. 그 해변가에 누워서 DG의 전기를 읽었다.
7.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 사실 나는 더 이상 카잔차키스를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크레테에 왔으니 한번 찾아가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 개장한, 작지만 알차게 꾸며 놓은 박물관이었다. 기념으로 "자유와 즉음"이라는 책을 샀다. 관리하시는 분이 얼마 전에 한국의 젊은 여성이 이라클리오 공항에서부터 비를 쫄딱 맞으며 몇 시간을 걸어 왔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열정에 있어서라면 한국인도 만만치 않다.
8. 크레테에는 미노안과 후속하는 그리스 문명 유적지 말고도 로마 유적지도 있다. 로마 시대 집단 거주지 유적지에는 돌무더기들이 방치된 채 뒹굴고 있었다. 대리석 기둥 등도 그냥 널부러져 있다. 유적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짐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9. 내 눈에는 크레테 사람들이 터키 사람들과 비슷해 보였다. 터키는 이슬람, 크레테는 그리스 정교이지만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비슷했다. 그러나 터키 사람들이 농담도 잘 하고 말 걸기도 쉽고 호기심도 많아 보인 반면 크레테 사람들은 무척 무뚝뚝해 보였다. 영국에서 있으면서 나는 사람들과 눈길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는 습관이 들어 버렸는데, 크레테에서는 이런 미소 짓는 얼굴을 버렸다. 너무 부드러운 척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터키 사람들은 술을 거의 먹지 않는다. 대신 하루에 몇 십 잔이고 차이라는 차와 커피를 마신다. 반면, 크레테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더라. 식당에 가도 전주로 라끄, 후주로 또 라끄가 나온다. 여기 사람들은 이 술을 라끄라고 부르지 않는데 내가 그 이름을 까먹었다.)
크레테는 유럽에 속한다. 그러나 유럽과는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에 공연 안내 포스터를 붙여 놓는데 거의 전부가 무슨 연주 포스터였다.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여흥으로 즐기나? (공연에 가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빠듯하여 그러지 못했다.) 곳곳에 그리스 정교 암굴이 있다. 거기서 간단하게 기도를 드리고 그러는 것 같았다. 듣기로 90% 이상의 크레테 사람들이 그리스 정교 신자라고 했다. 크레테에는 유럽과 다른 어떤 순수함이 있는 것 같았다.
크레테 할머니들과 터키 할머니들은 똑같이 생겼다. 그 분들이 미소 지을 때 호호 아주머니처럼 둥그랗게 모아지는 코 옆의 살도 똑같다. 한국의 마음씨 좋고 푸근한 할머니들도 꼭 그렇게 생기셨다. 나는 그분들의 얼굴에서 똑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아마 그 분들은 평생을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한 걸음 뒤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면서, 가족들의 행복을 자신의 숙명으로 삼으시면서, 삶에 불평함 없이, 모든 것을 포용하시면서 그렇게 사셨을 것이다. 이 분들의 얼굴, 이 분들의 분위기를 하나의 단어로 이야기하라면 그것은 "엄마"가 될 것이다. 엄마라는 단어는 한쪽의 극에서는 신이고 다른 쪽의 극에서는 개이다. 우리의 고단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품어 주는 절대적인 편안함의 존재로서의 신, 그리고 신이 사망한 시대에 신의 역할을 떠맡아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여 주는 나의 애완견, 이것들의 근원에는 엄마에 대한 경험이, 혹은 요구가 놓여 있다고 나는 믿는다.
크레테와 터키의 늙은 여인들의 얼굴은, 냉정한 언어로 말하면 교육받지 못하고 관습과 남자들(아버지, 남편, 아들)에 부수하여 평생을 주변적으로 살아야 했던 여인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얼굴들은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아마 50년 후, 100년 후에는 더 이상 이런 얼굴을 찾아볼 수 없게 되리라. 이런 변화는 필연적이다. 이런 뜻에서 역사는 자신만의 얼굴을 갖는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