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vimeo.com/ondemand/loveinthepost
올해는 연극을 많이 봤던 것 같다. 마 레이니즈 블랙 보톰부터 흑백 문제를 다룬 연극을 연달아 3편 보았었고, 최근엔 아일랜드의 이스터 봉기를 다룬 연극을 보았다. 그러면서 쟝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연극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장치로서의 가능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연극에는 희극보다는 비극이 천성적으로 잘 어울린다는 것. 그러면서 뮤지컬에 대한 나의 고정 관념도 풀렸다. 나는 뮤지컬을 최악의 쟝르라고 생각했었다. 뮤지컬은 전달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단순화되고 과장되고 감상적이 되고, 그러므로 피상적이 되어버린다.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뮤지컬 "위키드"를 보면서 나는 이러한 심증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분명 뮤지컬에 연극적 쟝르의 특성을 강요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위키드"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테레비젼으로 최신판 "혹성탈출"을 해주기에 봤는데, 물론 엉망이었다. 원작 영화의 백미는 물론 해변가에서 자유의 여신상 잔해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장면은 사실 반전이라기보다는 귀결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주인공 인류 남성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집요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판 영화에서는 주인공에 대한 성격 묘사가 싹 사라졌다. 그러므로 영화는 여느 재난 영화에 세팅만 바꾼 듯한 영화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최신판은 원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원판의 브랜드 위에서 대중성을 극대화하려 한 것일까? 평심하게 말해서 후자일 것이다. 원판은 물론 고전이지만, 원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신판이 고전으로의 가치를 인정받기는 힘들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현대 문명의 타락이라는, 예컨대 하이데거 같은 사람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테제에 동의하게 될 수 있다. 이 유혹은 정말 크다. 그러나 여기에 빠져들고 만다면, 그것은 마치 뮤지컬에 연극적 쟝르의 성격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다른 데로 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한탄은 게으른 자의 자기 변명일 수 있다. 내게 이 점을 깨우쳐 준 사람은 유투의 보노다.
Don't believe in the sixties
The golden age of pop
You glorify the past
When the future dries up
Heard a singer on the radio
Late last night
Says he's gonna kick the darkness
Till it bleeds daylight
I, I believe in love
Love, love, love, love, love, love
(U2, GOD PART II 중에서)
그래서 나는 영화들을, 수동적으로 전해지는 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서 보기로 했다. "Love In The Post"는 그렇게 보게 된 영화다. 철학과 사랑에 대한 영화. 영화적으로 잘 만들었거나, 철학과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깊이가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 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글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소규모 개인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아서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영화적으로 포착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말하자면 사고의 점들이 분포되는 양상들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킨다는 것? 아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