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만에 아버지 생신에 맞추어 한국에 다녀왔다. 아마 그 4년 동안 한국도 변했겠지만 나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발견한 것 같았다. 아내의 고향 마을에 있는 제석사를 찾았다. 스님이 방문객들에게 차를 끓여주며 한담을 나누는 절이었다. 스님의 이야기가 인상 깊은 것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분위기만은 참 좋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인사동 골목의 한 찻집을 찾았다. 좁은 곳이었다. 우리의 말소리는 낮춰지고 조곤해졌다. 그 분위기가 너무도 좋아서 꼭 영국까지 가져가고 싶었다. 그래서 인사동에서 다기 몇 가지를 샀다. 인사동 거리에는 여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셀카를 찍고 있었다. 너무나 예뻤다. 그래서 아내도 한복을 샀다. 한복의 색상과, 거기에 수놓아진 패턴은, 화려하지만 단아함을 놓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서 어떤 고유한 문화를 발견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나는 그런 문화를 새로 발견한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이렇다. 예전에는 한국의 문화를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하며, 다소는 방어적으로 치켜세우곤 했었다. 대학가에서 풍물 등이 유행한 것에도, 서구 문화에 대항하여 우리 고유의 것도 있다는, 말하자면 운동적인, 혹은 의지적인 요소들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지방에서는, 예컨대 전라도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나면서 국악 등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그것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켜내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인식이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 피상적인 느낌에 이런 우려는 이제 별 근거가 없는 것으로 귀결된 것 같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방어적 의식없이 이런 문화들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성북구에서는 한옥 짓는 강의를 한다고 포스터를 붙여 놨다. 한옥, 국악, 한복, 차... 이런 것들은 아마도 웰빙의 문화로, 다시 말하면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양상의 전개가 가능한 문화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운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해보았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상당히 고양된 사회인 것 같다. 한국은 정말 다양하고 깊이 있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정치가 무척 낙후되어 있지만, 정치와 문화와의 간격이 이처럼 한정없이 멀어진 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곧 정치적 수준도 상당히 고양될 수 있지 않을까? 예닐곱 명의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모두가 동의한 것은 한국의 문화적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었고, 단 한 명도 동의하지 않은 것은 정치적 수준도 곧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낙관론이었다. 내 동생의 말에 의하면 한국은 이미 시기를 놓쳤다는 것... 글쎄 좀 더 지켜보아야 겠다.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흔하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 중장년들의 천편일률적인 등산복 패션과 중고 여학생들의 가부끼 화장이었다. 후자는 그렇다치고 전자들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은 저 세대는 아직 자신의 늙음을 관리할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50대 후반의 대기업 임원 한 분과 저녁을 같이 했었다. 그 분의 화두는 은퇴 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분은 재산도 이미 상당하다. 그러나 은퇴 이후를 겁내고 있었다. 그 분의 결론은 어떻든 돈을 버는 일을 계속해야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현상으로서 은퇴 이후를 고민하는 첫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동생은 사십대 초반의 남자다. 은퇴 이후에 자영업을 한다든지 하는 계획은 전혀 없다. 지출을 줄이면서 여가를 충분히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 단 두 명과 대화하고서 은퇴에 대한 세대 차이를 논하는 것은 정말로 망발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거기서 한국 사회의 빠른 변화 양상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부모님 댁에서 먹고 잤다.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면, 특히 저녁에 집을 나서면 즐비한 다양한 종류의 술집에서 온갖 종류의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구수한 목소리가 전해져 온다. 나는 유흥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 유혹은 나같은 사람에게도 정말 컸다. 나는 짧은 한국 체류 기간 동안 중앙동 곱창 동네를 두 번이나 갔다. 나는 이제야 영국이 심심한 동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서울의 거리에는 온갖 종류의 술집, 음식점, 커피 가게들이 즐비하다. 소비자로서는 천국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물론 그 이면은 어마어마한 경쟁일 것이다. 어떤 작은 커피점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셨다. 정말 맛이었다. 두 번을 찾아갔다. 내가 여태까지 먹어본 에스프레소 중에서 최고라고 진심으로 말해주었다. 커피점 주인은 젊은 청년이었다. 여자 친구와 함께 가게를 냈다고 했다. 그 거리에는 이 커피점 말고도 작은 커피점들이 많았다. 다섯 중 서넛은 몇 년 안에 망하겠지 싶었다. 나는 다만 내가 다음에 한국에 올 때 이 커피점은 망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물론 그 집 에스프레소가 맛이어서만은 아니다...
어젯밤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주차장을 나가는데, 앞에 차 한 대가 정차해 있었다. 차주인이 뒤늦게 주차비를 끊느라 차를 그렇게 방치해 놓은 것이었다. 내가 탄 택시 주인이 크락숀을 한 번 울렸다. 차주인이 나타나서는 이렇게 공간이 많은데 안지나가고 뭐하느냐고 화를 냈다. 아내와 나는 웃었다. 영국에서 흔하게 보게 되는 장면은 아닌 것이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고 한다면 그 말도 맞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번 주 내내 해를 볼 날은 없다. 나는 처음으로 영국의 날씨에 갑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