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계속 JTBC 뉴스를 찾아본다. 오늘 뉴스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손석희 앵커가, 현 상황을 진영 논리로 몰고 가는 세력에 반대하여 이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라고 지적한 부분이었다. 아마 몇몇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손석희가 논리의 벽, 혹은 논리의 한계 앞에 서 있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철학적으로는 손석희의 주장에서 비판점을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그 옛날 데카르트가 말한 대로, 인간이라면, 아니 좁게 잡아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어떤 보편적 진리가 있다는 말인가? 박근혜에 대한 탄핵 국면에서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박근혜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인가? 태블릿 피씨 문제의 본질은 그 내용이므로, 그 소유자, 입수 과정 등에 의문을 표시하는 것은 본질을 회피하려는 수작에 불과한가?
현대 철학의 어떤 흐름에 따르면 손석희의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명제(메시지) 자체의 참과 거짓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파편적일 수 있다. 그 명제가 누구에 의해 발화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에게 전달되는지, 어떤 상황 안에 놓이게 되는지 등등을 고려하여 그 효과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단일한 진리 체계를 구성해 놓고 다수성, 즉 다양한 의견이나 생각들을 단일성으로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해, 그 현대 철학의 지지자들은 하나같이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참조점으로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박근혜파의 대응은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의견을 묵살하려 하지 말라!”
내가 보기에 이것은 현대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철학의 문제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더 이상 인류 보편이니 역사의 방향성이니 역사의 궁극의 목표니, 혹은 손석희처럼 상식이니 하며 우리 스스로는 대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그런 신화는 지난 세기에 이미 모두 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폐허 위에 서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하여 모든 것을 진영 논리 싸움으로 환원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왜 그래서는 안되는가? 어떤 의미에서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시대의 철학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서구의 경우 화이트 워킹 클라스를 중심부에, 흑인, 동성애자 등등을 주변에 놓고 사고하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등등이 여기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한 철학적 답이 주어진다고 현실이 바로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떤 시대적 모순을 포착한 관념은 현실로 전화하고는 했다. 앞서 말한 그 현대 철학의 한 흐름도 현실로 전화한 관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 현실적 관념의 현실성을 다시 고민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