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CNN을 켜보았다. 놀랍지는 않았다. 이미 브렉싯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러나 정말 실망스럽기는 하더라. 당분간 뉴스를 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적인 것을 먼저 말하자면 힐러리 클린턴이 너무나 약점이 많은 후보였다. 미국의 양당 구도가 참으로 깝깝하게 여겨졌다. 한국 같으면 제3의 후보가 튀어나와 얼마든지 양당 후보 정도의 경쟁력을 보일 수 있었으련만...
거기서 어떤 흐름이나 의미를 말하자면 아마도 서구 자본주의의 수축기에 있어 백인 노동자 계급의 선택의 경향성을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것 같다. 브렉싯에서와 똑같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자신들이 'left behind'하다고 느끼는 계급의 선택이 투표의 최종적인 결론이 되었다. 기득권에 대한 반발, 변화에 대한 갈망...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의 최종적 양상은 영국에 있어서나 미국에 있어서나 공히 영국-성, 미국-성의 회복이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 브렉싯 투표에서 영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인 선더랜드에 사는 사람들, 그러므로 실업률도 높고, 그러므로 이민자도 거의 없고, 그러므로 EU 보조금의 혜택을 많이 받는 지역의 사람들의 다수가 "영국의 자주권을 다시 회복한다"라는 말로 표현된 브렉싯을 선택했다. 아마 기득권을 증오하고 변화를 바라는 미국 백인 노동자 계급 사람들이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고 상속세를 폐지하고 법인세 감면에 찬성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 모순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총괄적으로 미국-성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선택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 그러므로 그 선택에서 단지 경제적인 의미만을 읽어내려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모순들이 너무 빈번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성과 같은 가치적인 면에만 주의를 기울여서도 안된다. 거기에는 분명 자기기만이 놓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은 쉽지만 실제는 어려운 일인, 총체적 관점을 구축하는 이론적 작업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론화 작업 없이도 매우 명백해 보이는 사실이 있다. 이제 유럽의 중심 국가들에서 똑같은 일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지리라는 것을 과연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다시 이론적인 측면, 혹은 철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최근 료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다시 읽었기 때문에, 거대서사에 대한 종말 선언은 정말 섣부른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관념의 관념성을, 즉 그 무능성을 드러낸다...
(나는 피쉬앤칲스를 좋아한다. 피쉬앤칲스 가게에 가서 주문을 하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 거기 비치되어 있는 썬과 같은 황색 저널을 본다. 선정적이고 재미있다. 브렉싯 전에 나는 이민자를 공격할 요령으로 써제낀 기사들을 킥킥 대며 읽었다. 어이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브렉싯 이후 나는 더 이상 그 저질 신문들을 보며 킥킥 댈 수 없다. 나 외에는 모두 영국 로컬 사람들이고, 후즐근한 복장의 워킹 클라스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그 선정적 신문 기사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분위기다. 그 분위기는 내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것이지만, 단지 주관적인 것일 수만은 없다. 설사 사실은 피쉬앤잎스 가게의 영국인 손님들 전부가 썬의 논조에 반대하는 사람들일 지라도... 불행하게도 이런 부정적, 퇴행적 분위기가 점점 더 많은 지구 면적을 덮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