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을 봤다. 잘 만든 좋은 영화다. 영화적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적잖이 있었지만...


이 영화는, 내 관점에서 보자면 텍사스 신화라는 쟝르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돈 컴 노킹, 다운 인 더 벨리 같은 영화들이 이 쟝르에 속한다. 이 쟝르는 위험하고 무뢰한 마초들이 갖고 있다고 전해지는 진실을 탐구한다. 혹은 미국의 영혼에 대한 탐구. 또, 감독의 자의식 속에서는 현대 문명, 고도화된 관료주의, 압도적인 제도화에 반항하는 돈키호테의 이야기처럼 해석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은 모두 신화이고, 그것의 진실은 그것이 신화라는 사실에 있다. --굉장히 재미있는 일은 이런 신화를 정치적으로 극우에 속하는 사람들과 극좌에 속하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최근에 주로 켄 로치 감독의 작품들을 봐왔기 때문에 떠돌이 노가다꾼들, 실업자, 싱글 맘, 영국 제국주의에 고통을 당하는 아일랜드 사람들 등, 말하자면 거대 서사가 잘 조명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본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은 또 다른 소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두 이야기가 서로를 배제하는지를 두고 유럽의 사상가들은 40년 이상을 싸우고 있다. 어이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론적으로 문제는 간단하다. 두 영역을 이어줄 매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얼마 전 알자지라에서 쿠바의 언론과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쿠바의 언론은 권력에 종속되어 있어서 권력에 대한 비판은 영화가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구 세계라고 다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감독들이 있다. 켄 로치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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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은 과반이 붕괴되었고 노동당은 30석 가까운 의석을 새로 가져갔다. 여전히 압도적인 제1당은 보수당이지만, 노동당은 궤멸 직전의 위기에서 기사회생해서 차기 총선에서는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의미 깊은 일은, 노동당이 이번 선거의 의제를 주도하며 전체적인 정치 지형을 왼쪽으로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면 승부해서 돌파해내었다는 것이다. 투표권은 없지만 나는 영국 노동당 당원이고, 또 소액이긴 하지만 노동당에 기부도 하여서 노동당의 이번 선전이 무척 기쁘다.


1. 보수당 메이 총리의 조기 선거 요청. 보수당은 이미 과반을 확보하고 있었고 브렉싯에 대한 대권도 의회를 통해 다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왜 메이 총리는 조기 총선을 의회에 요청한 것일까? 오로지 노동당을 궤멸시키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당시 보수당은 지지율에서 노동당을 2배 이상 앞서고 있었고 당장 선거가 치러진다면 최대 과반 + 80, 90석 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 못해도 과반 + 40, 50석.


2. 메이는 이번 선거가 브렉싯에 대한 것이며, 브렉싯 협상을 하는데 자신이 적임자이냐 노동당 당수 코벵이 적임자이냐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선거 모토도 스트롱 앤 스테이블 리더쉽이었다. 보수당에서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 뒤 배경에는 코벵 얼굴이 폭탄과 함께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보수당이 선거에서 과반을 잃은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는 장면이다.


3. 한국에서 문재인이 언론의 집중 포화 대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코벵도 각종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아왔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비비씨 등 방송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에 비비씨 등 모든 방송사는 거의 똑같은 장면을 내보냈다. 거리의 노인들에게 총리 감으로 누가 나으냐고 묻는 것이다. 영국 노인들은 압도적으로 메이를 지지하기 때문에 답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았다. 다행히 선거 전에 돌입하면서 방송들은 어느 정도 균형감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노동당에 대한 지지도도 올라갔다.


4. 노동당 선거 공약이 확정되기 전에 언론에 누출이 된 일이 있었다. 공약이 너무 급진적이라고 느낀 노동당 내부 사람의 소행인 것 같다. 한 바탕 난리가 난 후 코벵은 언론에 누출된 공약을 그대로 수정 없이 확정시켰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공약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고,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약 공식 발표 시점 후 노동당의 지지도는 확실히 상승세를 보였다.


5. 반대로 보수당의 공약은 나오자 마자 역풍을 맞았다. 가장 큰 것은 노인들에 대한 의료비 부담을 그 아들이나 손자에게 떠넘기는 정책이었다. 논란이 일자 공약 발표 5일 만에 메이는 정책 후퇴를 표명해야 했다. 그러므로 스트롱 앤 스테이블한 리더쉽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6. 메이는 코벵과의 일대일 토론은 물론이고 정당 대표간 티브이 토론도 거부했다. 당연히 이 역시 보수당에 역풍이 되었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메이는 쉽게 흥분하고, 고장난 라디오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구체적인 질문에 피상적인 대답으로 도망만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솔직히 박근혜가 생각이 났다. 술술 말은 잘 하는 박근혜. 그러나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전혀 없는.


7.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영국에서는 두 번의 테러가 났다. 런던에서 테러가 있은 후 메이가 내무부 장관 재직 시절 경찰의 수를 줄였다 든지 하는 일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안보는 보수라던데 사실은 그도 아니었던 셈이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8.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발악을 했다. 선거날 가게에 뭘 사러갔는데 거기 걸려 있는 신문 헤드라인이 "메이에게 투표하라 그렇지 않으면 재앙을 보게 될 것이다" 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신문들, 대표적으로는 썬의 구독자의 대부분이 워킹 클라스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계급 이익에 철저하게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하는 신문들을 그토록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저 신기할 뿐이다. 토론회에서 코벵이 학비, 학생들 급식비, 공공 의료 투자 등등에 대해서 말할 때 객석에 앉은 코벵 반대자들(중년의 남자들, 가난해 보이는-.-)은 유사 사태 때 핵미사일 버튼을 누룰 것인가 말 것인가 등에 대해 집요하게 묻더라. 그것이 그대들의 삶과, 그리고 그대의 가족, 이웃들의 삶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북한이 없으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차질 없이 발전될 수 있을까? 전혀. 어떻게든 절대적인 적을 만들어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념이란 이토록 나쁜 것이다.


9. 이번 총선은 세대 대결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렇듯이. 노동당은 젊은 층에서, 보수당은 노년층에서 압도적이다. 선거 전 여론 조사에서 노동당이 격차를 상당히 줄인 상태였지만 선거 결과를 누구도 쉽게 예단하지 못했던 것은 젊은 층의 투표율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총선 정도의 젊은 층 투표율(42%)을 기록한다면 보수당의 압승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젊은 층이 많이들 투표에 참여 한 것 같다. 여기엔 코벵이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층의 큰 호응을 받고 있었고 롹 콘서트 장 중간에 들어가서 위화감없이 아주 선동적인 연설을 할 수 있는 재주도 있었으니까.


10. 이번 선거로 직접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많이 바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이 보수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을 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현실적으로 말해서 5년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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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살면서 영국에 실망을 느끼는 경우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정치나 언론 환경이 그리 선진적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많은데, 하나만 들자면, 매주 정례적으로 열리는 수상과 야당 의원들과의 토론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 멋진 구경거리는 아니다.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모습보다는, 조롱 등의 기술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테러 사태와 같은 위중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영국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언제나 참으로 감탄스럽다. 이번 테러는 영국인 무슬림이 일으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영국 사회의 다양성이 이번 테러 사태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결의를 보여준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를 포함한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연대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방송에서도, 현장에서 자원봉사하는, 터반을 쓰고 턱수염을 두텁게 기른 무슬림과, 사태 당시 시민들을 무료로 실어나른, 역시 비슷한 용모의 무슬림 택시 기사를 인터뷰한다.


마침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테러리스트를 악마라고 지칭하는 메시지를 냈다. 21세기에도 '성숙'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용납된다면, 나는 트럼프와 같은 사람은 성숙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다. 분명히 이번 테러 기획자가 서구 사회에서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악마', '복수', 등등일 것이고, 보고 싶어하는 것은 같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증오와 갈등일 것이다. 성숙은 이런 즉자적인 반응들을 넘어서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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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 메갈리아를 지지한다고 말했었다. 마음 속으로 이런 지지를 철회한지는 이미 오래고, 이에 대해서 한 마디 써놔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메갈리아 사이트에 간혹 들어가 봤다. 내가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 포스팅을 쓰고 나서 메갈리아에 들어갔었을 때는 사이트에서 난리가 난 이후였다. 남성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표현을 놓고 난리가 난 것이었고, 과격파가 집단으로 탈퇴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단다. 그 전쟁 이후 이용자 한 둘이 간단한 설문을 하곤 했다. 메갈리아 사이트의 방향성에 대해서. 내 기억으로는 2/10 정도가 자신을 진지한 페미니스트로 생각했고, 5/10 정도가 남혐(남성에 대한 혐오자)으로, 3,4/10 정도가 여혐혐(여성 혐오에 대한 반대)으로 자신을 정리했던 것 같다. 여혐혐이라는 사람도 점차로 여혐혐에서 남혐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정도면 메갈리아 사이트를 혐오를 재생산하는 사이트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후 한참 있다가 다시 한번 메갈리아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또 난리가 난 뒤끝이었다. 이번에는 남성 장애인에 대한 비하가 문제였다. 나는 그 시점에서 메갈리아에 접속해 보는 것을 완전히 끊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들은 메갈리아를 혐오의 재생산과 생산 공간으로 정의하는데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을 주동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이고, 어떻게 운동을 표방할 수 있을까?


물론 애초부터 메갈리아는 운동은 아니었다. 예컨대, 이 사이트는 진지하게, 데이트 더치 페이를 신랄하게 비난했었다. 한 이용자가 이런 질문을 올린 것이 기억이 난다. 자기가 여성학 책도 보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데이트 더치 페이를 거부하는 논리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거의 답이 없었다. 그러다 한 이용자가 이런 글을 올렸다. 인류가 진화하고 근대화되었지만, 인류 본원의 욕망이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 등은 그런 본질 중의 하나다... 진지하게 썼지만, 사실 이런 것이 안티-페미니즘이다. 여성이 결혼, 연애, 사업, 승진, 업무 등등에 있어서 여성성을 공공연하게 사용해도 될까? 이를 긍정하는 것이 바로 안티-페미니즘이다. 사실 전반적으로 봐서 메갈리아는 안티-페미니즘 사이트라고 할 수 있다. 데이트 더치 페이 반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예전에, 20세기 이후 여자와 남자의 행복지수가, 남자들은 꾸준히 상승했지만, 여자들은 오히려 하락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남자들만 군대에 가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지만 이제는 여자도 군대에 간다. 예전에는 남자만 운동 경기를 했지만 이제는 여자도 그렇게 한다. 여자도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한다, 등등. 이러한 여권 향상의 결과로 여자들이 더 행복해졌는가? 바로 이 질문에 노,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바로 안티-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그 많던 존 웨인(여자들을 잘 도와주는 신사)은 다 어디에 갔는가?"


나는 페미니즘, 안티-페미니즘에 대해 별 의견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안티-페미니즘을 선택하는 것도 그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다시 페미니즘 이전으로 회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로 한정한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 고위층으로 진출하면서, 여성들에게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이 부과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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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다시 총선 정국에 들어갔다. 브렉싯을 관리할 강력한 리더십을 주장하면서 집권 보수당이 총선을 제안했고, 노동당은, 많은 사람들이 노동당의 뻔한 참패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가운데, 이를 망설임없이 받아들였다.


메이 수상은 토론회 참석을 거부한다. 그리고 단 하나의 이슈, 브렉싯 협상에 자신이 적임자냐, 노동당 당수 코벵이 적임자냐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것이 보수당의 이번 선거 전략인 것이다. 노동당은 브렉싯 뿐 아니라 교육, 환경 등 집권 보수당이 방기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이슈화하고 대안 정책을 내놓고 있다. 결국 영국 국민들의 선택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 메이가 이길 것 같다. 노년의 사람들이 메이 수상을 너무 좋아한다. 아마 그에게서 대처를 보나보다.


트럼프가 되고 나서 이코노미스트지는 세계화의 퇴조에 대해 썼다. 자유무역주의의 강력한 지지자인 이코노미스트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에 놀라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이미 흐름은 바꼈고 트럼프의 등장은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다국적 기업은 현지 기업과의 경쟁에서 별 우위를 보이지 못한다. 자유무역이 꼭이 선진국에게 이득이 되는 시대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선진국들은 문을 닫아 걸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국가주의적 테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서구 선진국들은 바로 이 흐름 위에 있다. 서구 국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그들은 역사에서 배운 것이 있을까? 나는 이 점을 못미덥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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