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학기(논문 학기 포함) 동안 8 개의 에세이와 한 개의 논문, 모두 합쳐서 대략 3만자를 썼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3만자의 쓰레기를 썼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첫번째 학기의 첫번 에세이는 두어 달을 끌고도 끝을 내지 못한 반면, 마지막 에세이는 단 하루만에 끝을 내버렸다. 물론 데드라인에 걸려서. 마감일 직전 일, 이주는 잠다운 잠을 잔 날이 없었고, 마지막 이틀 정도는 날밤을 꼬박 세워야 했다. (6월19일날 논문을 제출할 때도 그랬다.)


학위 논문은 언어 철학 관련 주제. 원래는 비트겐쉬타인에 대해 썼던 입학 에세이를 발전시켜 논문으로 완성해 보려 했었는데, 두번째 학기가 끝나갈 무렵 그동안 공부한 것들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학기에 들었던 언어 철학 강의 때 나는 세미나를 하나 했다. 다른 학생들 하는 것을 참고하려고 맨 마지막 시간에 세미나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러 저러한 이유로 세미나들이 다 취소되어 나만 세미나를 하게 되었다. 세미나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그 주제를 학위 논문으로 발전시켜 보려 했는데, 딱 일주일 후 그것이 임시변통적인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폐기. 이래 저래 학위 논문 주제로 갈팡질팡했다. 


두번째 학기 에세이 제출날에서 학위 논문 제출날까지 딱 한 달이 주어졌다. (비정상적으로 짧은 기간이다.) 일주일 동안 자료들 읽고 생각 정리, 다음 일주일 동안 하루 2000자 꼴로 1만자 완성에 8000자를 썼다. 딱 하루만 더 쓰면 초고가 나오는데 그때부터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주 가까이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 일주일, 다시 엔진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썼던 것을 죄다 뒤집어 엎으며 제출날 아침까지 여전히 뒤집고 있었다. 슬럼프가 너무 길어서 세 번은 뒤집었어야 할 논문을 두 번을 채 다 뒤집지 못하고 제출해야 했다는 것은 정말 아쉽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나름 대견한 점은, 논문 전체를 통해서 하나의 이론 체계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것. 곧 오류가 드러날 것이겠지만... (내가 철학 논문들을 읽으며 배운 유일한 것은, 결코 오류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물론,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 현실이 허락한다면...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잘 하지 못하는지, 무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예를 들어 나는 철학 서술을 하루에 2000 ~ 3000 자 정도 할 수 있다 등등.)


하나의 계절이 끝났고, 이제 다음 계절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다시 긴장 상태로...


(8000자 정도 쓰고나서 이제 하루만 더 쓰면 되겠다 싶었을 때 기념으로 이 사진을 찍어 놓았다. 초고 완성하고 나서 이 논문 저 논문을 읽으며 내 이론을 검토해 봐야지, 이러 저런 대목은 아마 누구를 읽어봐야 겠지...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긴장이 풀어진 걸까... 나는 그 후로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런던에서 R을 만났다. 좋아 보였다. 영국에서 기분 장애 치료를 받다가 차도가 없어서 미국 존슨 홉킨스 병원에서 2주간 치료를 받고 4주 전에 퇴원했다고 한다. R은 그 치료를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R이 그동안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 놓은 것.) 그것을 본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이거 너가 그린 거 맞아?" 그림이 골격에 있어서나 컬러에 있어서나 훨씬 건실해졌다. 나는 "way better"라고 말했다. R은 곧 미술 학교에 등록할 예정이란다. 이제 철학은 부차적인 일이고, 미술이 그의 확고한 관심사가 되었다. 잘 되었다. 그 치료법(CBT)에 대해 얘기하며 공원을 빙빙 돌았다. 이야기는 곧 스피노자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이제 R은 철학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사그라들었다. 그는 에티카를 "not practical, not pragmatic"하다고 말했다. 물론,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가 스피노자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에티카를 읽을 필요조차도 없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지성이나 이성을 이용하여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를 지성론자, 합리론자, 이성주의자 등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소 열띤 토론을 했다. R과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헌책방에 들렀다가 달라이 라마의 "The art of happiness"가 눈에 들어오길래 집어들었다. 3.99 파운드. 집에 오는 내내 읽으면서 웃었다. 우리가 공원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잔뜩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몇 구절을 인용해서 R에게 메일을 줘야지 했는데 아예 책 하나를 사주어야 할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컬리의 에티카 해설서를 읽었다. 컬리는 마음의 불멸성에 관한 스피노자의 이론을 에티카의 가장 어려운 대목으로 꼽고 있었다. 나는 나의 몸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첫째, 그러므로 나의 몸은 나에게 투명하지 않다. 둘째, 그러므로 나는 나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치 제3자인냥, 객관적 관점에서 기술할 수 있다. 후자가 바로 철학의 가능성이다. 혹은 영원의 가능성이다. 


R과의 대화 한 대목을 떠올린다. 의사들이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고. 나는 젠 마스터의 가르침과 비슷한 거 같다고 말했었지. 나는 지금 미래의 어떤 계획에 집착하고 있다. 사실 그런 집착함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요는 그런 집착이 나를 비생산적으로 만들지 않도록 그걸 내가 관리할 수 있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매우 쉬운 일일 수 있다. 아침에 108번의 절을 한다고 해보자. 108이라는숫자를 집착이라 말해도 좋고, 아니라고 말해도 좋다. 어쨌거나 그 숫자가 없다면 촛점이 맞추어진 행위도 없다. 중요한 건 108이라는 숫자를 마음에 갖고 1, 2, 3... 에 동일한 흥분을 분배하며 행위 하나 하나를 쌓아나가서 108이라는 숫자에 이르는 것이다. 108번의 절은 매우 훌륭한 훈련이다. 삶에는 점프가 없다. 시다르타도 108배를 하기 위해서는 108번 절을 해야 했을 것이고, 셰익스피어도 햄릿을 쓰기 위해서는 한번에 한 단어씩 써나가야 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원에 있는 나무를 자를 거라고 하니까 큰 나무는 함부러 자르면 안된다고 하신다. 이미 죽어버려서 잘라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다음날 절에 다녀오셔서는 막걸리로 잘 위로해 주라 하신다. 사실은 요즘 계속 나무귀신이 나타나고 있다. 자고 있는 나를 살짝 누르기도 하고(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뭐라 한 두 마디 하기도 하고... 한뺨 굵기의 나무 두 그루를 베어 낼 때 마음이 무척 안좋았다. 땅을 파헤치다 삽에 지렁이들이 걸려 나올 때도 마음이 안좋았다. 담장 쪽에 벌집이 있었는데 사람을 불러서 여왕벌만 죽였다. 그러면 나머지 일벌들이 다 흩어진다고. 그후 몇칠 동안 벌 한 두 마리가 벌집 근처를 빙빙 돌기도 하고, 창문에 머리를 들이받기도 했다. 살아있는 것들을 정말 하찮은 이유들로 죽이니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오늘 저녁에 소주로 악어의 눈물을 흘려야 겠다. (집에 막걸리가 없다.)


(7월의 초순이 지나가고 있다. 연말까지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오늘 아침부터 그걸 시작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런던 템즈 강변에 셰익스피어스 글로브라는 아담한 야외 극장이 있다. 셰익스피어 당대의 글로브 극장을 비슷하게 복원한 것으로 셰익스피어 관련 극을 주로 올린다. 처음 영국에 온 다음날, 비를 맞으며 이 극장을 찾아 걸어서 "앤 볼린"이라는 연극을 본 기억이 난다. 어제 저녁에 이 극장에 "맥베스"를 보러 갔었다. 셰익스피어도 읽고, BBC판 맥베스도 유튭으로 보고, 이제 연극 무대를 잔뜩 기대하고 간 것이었다. 처음부터 확연한 것은, 연극과 영화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연극은 무대가 있고 관객이 있다. 그것이 배우들의 연기에 다이나믹함을 부여한다. 이런 역동성을 영화로 그대로 옮기면 연기가 과장되거나 산만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셰익스피어 극을 영화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잘 옮겨 놓은 영화들을 챙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손 웰즈라든지, 올리비에, 아키라 감독 등의 작품을 찾아 보고, 다시 보고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사고가 생겼다. 한참 몰두하여 극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쉬는 시간에 극장을 빠져 나와야 했다. 나중에 다시 올 것을 다짐하며. (왜 갑자기 현기증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직전에 맥주 한 잔을 마셔서?)


연극이 시작되기 전 모습이다.


셰익스피어스 글로브 극장에 가는데 R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안부 메시지. 나는 그리 사교적인 사람이 아닌데다 학기 에세이와 학위 논문을 쓰는 두 달 동안 집에 거의 틀어 박혀 있었다. (학교가 있는 런던을 왕복하기에는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므로 안정적인 공부 환경으로 집을 선택한 것) 그 동안 R과도 거의 연락이 없었다. 현기증 때문에 극장을 빠져 나오는 도중에 보니 R의 문자가 하나 더 와 있었다. 그동안 기분 장애(mood disorder)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고... R은 내가 학교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다. 당연히, 나의 동행이 나를 비난했다... R의 집안은 큰 부자다. 이 말은 R이 재능과 열정을 갖고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R의 문제는 바로 이것, 열정을 쏟아부을 대상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R은 스스로를 "empty"하다고 느낀다. R은 화가가 되고 싶어하고, 내가 보기에 재능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재능에 있어서도 놀파구가 있어야 한다. R은 미술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했고 나는 그와 동행하여 미술학교 입학 센타에 갔었다. 그때 나는 R에게 말했었다. 네 그림들은 좋다. 그것들은 순수한 재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네 그림들을 미술학장 앞에 내놓고 입학을 청원한다고 생각해 보라. 너가 미술학장이라면 네 그림을 뽑아줄까? 아닐 거다. 네 그림에는 아직 어떤 강력함, 열정, 모색, 방황, 실험, 에너지... 등등이 결여되어 있다. 우린 돌파구에 대해 이야기했었고, 나는 철학 공부에 힘들어 하는 그에게 (누군들 철학 공부를 수월해 할까?) 철학과를 자퇴하고 미술에 모든 것을 걸어보라고 했다. 열정은 그렇게 모든 것을 거는데서 나온다. 그리고 열정은 재능을 창조한다. 다음날 R은 앞으로 철학 공부 열심히 할 거라고 내게 말했고, 나는 웃었다. 삶은 쉽지가 않다... 극장을 나와 주말인냥 시끌벅적한 템즈 강변을 걸으면서 나는 세잔을 생각했다. 세잔의 재능은 처음부터 주목받은 것이 아니다. (피카소와 다르게.) 세잔의 인생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실험, 방황, 모색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것이 그의 불안정, 소심함, 의지부족마저 설명해 준다. 그건 "아니다"라는 말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살롱 대상 작품 앞에서 "저건 아니야"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잔을 상상해 보라. 그렇다면 세잔에게, 제대로 된 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그게 아직 현존하고 있지 않다면 그걸 창조해야 할 책임이 세잔에게 부여된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운 회화 세계고, 그것은 엄청난 프로젝트이다. 세잔이 이런 프로젝트 앞에서 쉽게 좌절하곤 했다면 나는 100% 세잔을 이해한다. 그의 무기력함, 조급증, 쉽게 포기하는 태도 등을 결코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R에게는 아직 이런 대범한 비젼이 없다. 내가 R에게 이런 비젼을 발견했다면 나는 그를 몰아부쳤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란...) 나라는 인간은 R에게 미술을 취미로 삼고,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봐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음주 월요일날 R을 보기로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많이 들으려 한다. 그는 할 말이 아주 많다고 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래 포스팅에 이어 생각난 김에.


플랑크가 자신의 집에 모아 놓은 콜렉션 사진을 보고 나는 거의 포복절도했었다. 그런데 그 사진들을 구글에서 찾아봤더니 없더라. 그래서 플랑크의 회고록에 있는 사진을 직접 찍어 올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