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국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유튭도 로그 아웃 상태로, 내가 외우고 있는 채널명을 일일이 입력하여 주기적으로 체크한다. 삼프로 채널, 김영익 교수 채널 등등.
그러다 오늘 삼프로 채널에서 이재명이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1시간 반이나 되는 것을 끝까지 다 보았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요즘 시대 사람답게 표현하면 한국 주식이 사고 싶어졌다...
이재명과 삼프로 진행자들 사이의 토론, 대화는 한국에서는 도대체 희귀한 것이었다. 모두가 자기 말을 더 하고 싶어하는, 약간 떠들썩하고 혼잡스러운 분위기마저 좋았다. 방어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말하고, 상대편 말에 귀기울이고, 그러면서 자신의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고,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정치인을 앉혀놓고 하는 토론이 생산적일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번 편이 보여준 것 같다.
나는 이재명이 지난 번 대선 시절보다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 놀랐다. 박영선이 국회의원이 되고 나니 책 읽을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더라는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재명은 무려 당대표다. 거기다가, (아직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일주일에 세 번 재판을 받으러 다닌다고 했다. 그러면 주기적으로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정책 개발을 하고 등등을 할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럴려면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마 거의 불가능하리라. 이재명의 지적 역량은 이미 수십년 간 변호사, 투자자, 행정가 등의 일을 하면서 축적되어 온 것일 것이고, 정치인이 되면서부터는 전문가 집단들과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토론해 온 결과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이번 편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재명은 상대편의 지식을 자기화하는데 매우 능숙해 보였기 때문이다. 작은 예를 들면, 이재명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진행자가, "시장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거죠?" 라고 깔끔하게 정리해주자 이재명은 "세련된 언어로 정리해주셔서 감사하다" 며 웃었다. 아마 다음에 비슷한 주제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생기면 이재명은 분명 '성숙'이라는 말을 써서 간명하게 표현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느꼈다.
탄핵된, 그리고 탄핵될 두 명의 대통령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토론을 할 수 없고, 지적 호기심이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둘이 대통령이 되고자 한 이유도 한없이 어설펐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윤석열은 부인의 사법 처리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뭘 하겠다는 비젼이 없다. 그러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끌어올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유능한 사람을 찾아쓰겠다는 동기도 없다. 이것이 둘의 비극의 원천이자 한국의 비극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정한 수준의 지적 역량을 갖춘다고, 또 토론을 좋아한다고 만사가 풀리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그것들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고난의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자 자본주의 강국의 대통령들 중에서 그런 자질이나 성향을 전혀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퇴행적 정치 인사들의 등장에 대해서는 한국인들 전체가 스스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현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그러나 이를 도덕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스스로를 반성하고 등등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나는 위대한 정치인은 위대한 교사라고 생각하며, 좋은 정치인이 진영 논리라는 편함에 안주하지 않고 모든 것을 투명하게 열어놓고 토론하고, 반론하고,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실행하고 등등의 모습을 보여주면 사회 전체가 그것을 새로운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그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