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혜순이 2011년에 발간한 시집 <슬픈치약 거울크림>을 읽었다. 한국어로 쓰여져 있달 뿐, 그의 시를 읽고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략 80% 정도는 보통 사람들의 기대나 상식을 넘어선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지구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김혜순은 결국에는 이티였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지구인의 관점이나 한국인의 언어체계에서 그의 문자들을 이해하기 힘든 걸 납득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언제 지구에 내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접촉하다보면 그가 타고온 비행체로 초대받을 날이 올 것이라 믿기로 했다. 이해되지는 않지만 왠지 끌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스필버그 영화 중 <미지와의 조우>라는 영화도 있는데, 김혜순 시들은 그런 외계생명체와의 접속(콘택트)의 문인 것같다.

 

그는 몇 년 후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발생한 대참사를 이 시집에서 예언하기도 했다. 왜 그때 미리 깨닫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지구인 수백명이 희생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느 날 장황한 소설이 지리멸렬하게 끝나듯

식구들 지상에서 모두 떠나고

꽃이 피고

나비 날고

저녁 가고

봄 오고

식사 같이 하실래요

영원히 죽지 않는 시계에 사는 망치가 시간 맞춰 때려주는 집

이생에 태어나 몇몇 집에 살다 가게 되는지 헤아리다가 잊어버렸네

이다음에 귀신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어느 집에 제일 자주 출몰하게 될까?

 

꿈 밖에서는 알아들었는데 꿈속에서는

정작 못 알아듣는 말, 우리집

모여 살 때는 알아들었는데 정작 정작에

나 죽은 다음에는 못 알아듣는 말, 우리집

다음 생에선 엄마아빠오빠동생 우리 어떻게 알아볼까? 

 

그러나 그러나 배 가라앉고

바닷속으로 잠겨가면서도 눈 감지 못하던 눈동자들! 

 

집에 가고 싶어! 하던 눈동자들

 

  

                                  <정작 정작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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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wasulemono > "저에게 일을 주십시오!"

추억에 추억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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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다가 그가 소설가이지만 시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그가 심지어 엄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괜찮아」라는 작품을 읽으며 생각하게 됐다.

이 작품이 단지 잘 나가는 소설가 속에 숨어있는 모성애를 이야기하는 데 그치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의 자식도 아니기 때문에...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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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의 단점을 꼽으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각 재료가 가진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힘들다는 점을 나는 꼽고 싶다. 또 한 가지는 더불어 맛보고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요즘 책 읽기가 대체로 패스트푸드 먹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충분히 음미하지도 못하고 더불어 맛을 논하지도 않고, 가끔은 무슨 맛인가를 모르고도 먹는 패스트푸드처럼.

 

나이를 먹어가며 절실히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예전에 봤던 영화나 책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 다시 읽게 되면 또 새로운 의미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새로 나오는 책들이나 영화들에 거의 관심이 없다. 예전같으면 의식적으로 검색을 해서 찾아내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눈에 걸리면 한번 관심을 가져주는 정도가 돼버렸다. 새것보다는 헌것에 오히려 애정을 가지고 찾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 본 것들 중에 다시 보면 좋은 영화나 책들을 생각해보고 찾아보는 식이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는 필요 이상의 책들이나 영화들로 넘쳐난다. 출판업이나 영화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싫은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한 '슬로리딩'이란 프로를 보게 됐다. 초등학교 5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학기 국어 수업을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 한 권만 가지고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학습 태도나 독서 태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추적하는 실험 다큐다. 다큐 초반 아이들의 인터뷰를 보니, 하루에 3권씩 책을 읽는다는 아이들이 흔했다. 그런데 그 3권 읽기가 마치 햄버거 3개 먹기같은 느낌이었다. 한 학기면 적어도 100권은 읽을 시간에 소설책 단 한 권으로 수업하기는 누구나 반신반의하게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한 학기 지난 아이들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EBS 다큐의 극적 결말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프로의 경우 그런 포맷을 에누리하고도 감동이 남았다.

 

책 읽기를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북플 회원님들도 일람해보시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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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12-1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게 되면 저절로 슬로 리딩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혼자서 읽은 책을 시간이 지난 뒤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읽으면 새롭게 느껴져요. ^^

wasulemono 2018-12-1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 그런 기회를 가질 수 다는 건 인간이 누리는 오복만큼 큰 복일 것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1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지만 저도 1년에 몇 권 읽었나를 계산하던 인간이었는데 이게 진짜 웃기더군요. 슬로 리딩... 해야 할 것 같습니다..

wasulemono 2018-12-21 16:15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의식적으로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천천히 걷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읽는 건 좋은 습관인 것같아요. 양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요^&
 


올해가 시인 김수영 서거 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사후 고인의 작품에서 나오는 인세를 기반으로 돈을 보태서 만들어진 게 김수영 문학상이었을 것이다. 1981년부터 지금껏 시상해오고 있는데 이 상을 받은 시인들 다수가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시인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존재감이 없는 몇 사람도 끼어 있는 것이지만.

 

얼마 전부터는 순전히 출판사에서 알아서 상을 준다고 하는데, 최근 수상자들의 수상작을 몇 편 읽어봤지만, 솔직한 말로 예전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에게서 기대함 직한 뭔가를 가진 시인들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시인을 뽑아 상을 준 것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특히 다른 시인의 이름을 걸고 주는 상도 아니고 김수영 문학상인데.

 

김수영이야말로 자유와 부정, 비판 정신의 상징같은 존재인데 최근 수상자들의 시에서는 그런 기운을 잘 느낄 수 없다. 여기에는 뭔가 내가 알지 못할 내막이 있을 듯하다. 여하튼 이렇게 되면 결국 김수영 문학상은 없느니만 못한 형국이 돼 버릴 게 분명하다.

 

예전 날고 긴다 하는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 중 여전히 활발하게 시를 써내는 사람 중 한 사람이 김혜순이다. 김혜순이란 이름이 생소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같다. 이름 자체는 상당히 착하고 고분고분한 성격의 전통적 여인상을 연상케 한다. 이런 이름의 시인이라면 여성적 서정성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시를 연상케 된다.

 

그런데 정작 시는 그렇지 않다. 이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지식인연하고, 쓸데없이 난해한 지적 유희와 피해망상의 시만을 주야장천 써내는 시인 취급을 곧잘 받는 사람이다. 등단할 때부터 그런 부류의 시들을 써왔으니 근 40년 가까이 그렇게 살아온 셈이다. 이 정도면 주변에서 병자란 소리를 들을 법도 할 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연민과 짜증 같은 단순한 감정에서 시작해서 뭔가 심연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까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마음을 갖게 된다. 정말 진정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기존의 방식으로는 제대로 말할 수 없어서 끊임없이 입을 여는 누군가를 옆에 두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마음을 열고 머리를 털고 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해왔지만, 그녀의 시들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루트는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것같다.

 

󰡔여성, 시하다󰡕는 지난 15년간 그녀가 써온, 시 아닌 것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흔히는 시론(詩論)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글들이다. “바리데기”, “유령”, “”, “”, “쓰레기같은 버려지고 억압되고 하찮은 것으로 분류된 것들 중심으로 자기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다.

 

대체로는 자기 시나 문학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만 때로는 자신의 동년배 시인들이나 소설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그녀들이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쓸데없는 지적 유희와 피해망상의 재탕 아닐까 하는 혐의를 완전히 내던지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읽고 듣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도 존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심각하게 했다. 김혜순은 세상의 주류적인 시각이 읽어내지 못하고 배제해버리고 망각해버리는 많은 것들을 고집스럽게 보듬고 자기식으로 말하려고 하는 드문 인간이라는 인간에 대한 감동도 겸해서.

 

김혜순의 프로필을 확인해보면 그녀는 소월의 이름으로도 미당의 이름으로도 상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소월이나 미당 그 어느 이름도 그녀에게는 오명(誤名/汚名)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녀에게는 오로지 김수영이란 이름만이 본명(本名)이다. 굳이 다른 상은 안 받는 게 나았을 텐데, 왜 받았을까. 자기한테 맞지도 않은 그 이름들을.

 


* 사족1: 이 시점에서 민음사는 김수영 문학상 폐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 독자든 수상자든 출판사든 결국 아무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무엇보다도 고인을 욕되게 하고 있다.


* 사족2: 17세기에 침몰한 거대한 배를 인양해 전시하고 있는 스톡홀름의 바사박물관에서의 체험과 생각을 담고 있는 <시인은 가라>라는 글은 세월호 추모관이 있는 안산으로 출퇴근하는 시인의 애도와 결심을 담고 있는 글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녀와 진심으로 마음이 닿았음을 처음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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