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니라 그 세대를 양육하며 디지몬을 함께 본 엄마이다.그래서 디지몬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앉아 집중하던 아이들이 생각나고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천선란‘ 작가의 소설은 이미 여러 권 읽었던지라 그 필력을 믿고 작가가 들려주는 디지몬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 고른 책이다.읽으면서 예상과는 다른 방향의 글이었지만 디지몬이 작가의 인생에 준 영향을 들으며 괜히 가슴이 찡해졌다.어린 시절 디지털 세상 속의 디지몬이 갖고 싶었던 아이는 작가가 됐고, 긴 시간 어머니를 돌보며 살고 있는 대견함에 마음이 먹먹해진다.낯익은 디지몬들의 이름과 주인공들의 대사가 작가를 통해 전달되면서 정제되고 철학적으로 느껴진다.지금까지 작가의 개인사를 모르고 읽었던 소설에서 느껴지던 쓸쓸함과 고독함의 근원을 들여다본 듯하다.디지몬처럼 성장하고 진화해 가는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나는 디지몬의 진화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그 진화가 완전한 성장이 아니라는 점도 좋다. 디지몬은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진화할 수 있고 다시 돌아온다. 잘못 진화하면 다시 진화하면 된다.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무언가 그릇된 것처럼 느껴지면 나는 이 문장을 자주 상기한다. ‘괜찮아, 다시 진화하면 돼.’ (p46)“아빠는 그렇게 생각해.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물론 엄마에게 더 좋았겠지만, 그게 정말 우리 삶의 최상이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 더 나쁜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어. 겪어보지 않은 세계가 최상일 거라 생각하지 마. 지금 우리의 현실이 가장 행복하고, 견딜 수 있는 상황일 거야.“ (p82)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돼 소중한책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기담, 괴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지라 양재천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덜컥 골랐다.역시 기담, 괴담이 붙은 제목은 실패한 적이 없었고 지명이 붙은 소설은 더 오싹하고 괴기스럽다.8편의 기담이 실린 소설집은 모두 양재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근처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불쌍해서 고양이를 죽였다고 강변하는 ‘살‘속의 등장인물이 현실 속 인물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중독의 늪에 빠져 자신을 죽이는 인간의 우매함을 그린 ’품은 만두’와 ’기억의 커피‘ 속 인물들의 참을 수 없는 욕망에 따른 기행이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시어머니와 티타임‘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들어온 여자가 느끼는 부당하고 불편한 감정을 며느리가 된 후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고 해도 동의하며 읽을 것이다.’자판기와 철용 씨‘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약자에 대한 실제 폭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고 끊임없이 ’사유지‘ 속에서 헤매는 남자의 회사 생활이 그에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남유하의 첫 실화 소설”이라는 문구가 뒤표지에 적혀 있지만 실제 작가가 소설 그대로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아니다.실제로 현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극대화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옳은 듯한 소설은 실화 소설이 아닌 허구라도 아주 공포스럽다.작가의 말을 읽으며 작가가 경험한 기기묘묘한 일들을 소설 속의 이야기와 비교해 보게 된다.양재천 근처가 아니라도 사유지를 헤매는 남자를 본 적 없는지 자판기를 관리하는 철용 씨와 마주친 적은 없는지 아니면 고부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알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소설은 읽는 내내 누군가가 떠오르고 내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악의를 들여다보게 한다.소설이 실화가 되는 경험이 넘쳐나는 세상에 <양재천 기담> 속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여름의 끝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담을 읽고 났더니 어느새 가을이 가까이 와 버렸다.한밤중 오싹해진 날씨만큼이나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괴담이 무척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돼 내친구의서재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추리와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오컬트가 함께 하는 아이들의 성장 소설이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는 소설은 한때는 광산 산업으로 번창했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이제 막 여름방학이 끝난 6학년 교실에서는 벽신문을 제작할 게시판 담당을 뽑고 있다.오컬트 마니아인 유스케는 벽신문에 도시 전설이나 심령 현상을 주제로 한 오컬트 코너를 만들 작정으로 자원하게 되고 타고난 모범생인 하타노가 뜻밖의 합류를 하게 된다. 거기에 얼마 전 전학해 온 잘 모르겠는 존재인 미나도 함께 하게 되면서 하나토가 제안한 ’오쿠사토 정의 7대 불가사의‘라는 괴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소설은 아이들이 벽신문에 실을 괴담 조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나간다.특히 피해자가 남긴 ‘일곱 번째 불가사의를 알면 죽는다’라는 말은 조사를 해 나갈수록 아이들을 조여 오는 요소가 돼 더 궁금하게 한다.오컬트 찬성파인 유스케와 부정파인 하타노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미나의 활약은 벽신문의 성공은 물론 각자의 의견을 제시해 나가는 과정에서 점점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인다.과거의 영광이 점점 사그라져가는 마을과 미스터리한 죽음, 그리고 긴 시간 진행된 불가사의한 현상은 추리는 물론 오싹한 오컬트도 함께 즐길 수 있다.아이들이기에 어른을 쉽게 믿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조사에 적극 돕는 모습은 작은 마을 특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 좋았고, 세상에는 좋은 어른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현실적이라 좋았다.그러나 종반부에 밝혀지는 진범의 정체는 오컬트를 표방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전제를 깔고도 급하게 정리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그래도 괴담을 추적하는 아이들의 모험과 적절한 어른들의 도움, 그리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풋풋하게 그려지고 있어 재미있다.주인공인 초등학생이라 싱거운 이야기일 거라는 우려와 다르게 눅진한 괴담과 놀라운 추리를 함께 읽을 수 있어 아주 좋았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돼 옐로스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철썩대는 파도 따라 울렁대는 내 마음.커다란 파도가 덮칠까자꾸만 걱정이 밀려와”파도를 품은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바다가 생각하기에 아이를 안을 수 없는 것도 아이가 만든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것도 다 파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파도는 불쑥 터져 나오기도 하고 순식간에 모든 걸 삼켜 버리기도 합니다.밀어내고 때어내려 몸부림쳐도 끝끝내 덮치는 파도가 싫어 바다는 하얀 새가 알려준 파도 없는 바다를 찾아 헤엄쳐 갑니다.파도를 품은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느 순간 내 마음을 헤집고 지나는 마음의 파동이 되어 내게 다가옵니다.한 편의 시 같은 감성적인 글과 바다가 품은 힘찬 파도 그림이 어울려 여러 생각을 던져 줍니다.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고난도 걱정도 없는 삶을 꿈꿉니다.하지만 때로는 나를 덮치는 마음의 흔들림이 너무 커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고 그 어려움을 무사히 넘기면 별거 아녔던 일이 되기도 합니다.바다가 파도 없는 바다를 찾아 떠났지만, 그곳은 그물처럼 바다를 조여오고 모든 움직임이 사라진 얼음 나라일 뿐입니다.내 마음의 일렁거림 역시 생각하기 나름, 살아있다는 하나의 증거이지요.파도가 없는 바다는 더 이상 바다가 아니듯 감정 없는 ‘나‘는 더 이상 살아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어느 날은 파도처럼 요동치지만, 그 흔들림 속에 나를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삶, 그 자체입니다.파도가 바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높게도 치고 잔잔해지기도 한 것처럼 내 마음 나도 모르겠고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바다나 내 마음이나 모두 그렇다고 잘못된 게 아니라고 다 지나갈 거라고 느닷없이 치는 파도는 요동치는 마음에 작은 위로를 줍니다.
<본 도서는 비채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은 ’도조 겐야‘ 시리즈 중 다섯 번째로 번역된 작품이다.주인공 도조 겐야는 괴기 소설이나 변격 탐정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로 일본 각지에서 전해지는 괴담 기담을 창작 제재로도 선택할 만큼 좋아한다.소설은 고라 지방 도쿠유 촌에 전해지는 세 가지 괴담과 유리아게 촌에 전해지는 한 가지 괴담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겐야는 후배이자 출판사의 편집 담당자인 오가키 히데쓰구의 고향에서 전해지는 네 가지 괴담 중 유리아게 촌에게 벌어진 기이한 사건이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말을 듣고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도쿠유 촌으로 향한다.동행으로는 스스로 도조 겐야의 조수라고 말하는 재능 있는 여성 편집자 소후에 시노와 길을 안내해 줄 오가키 히데스구가 함께 한다.도쿠유 촌에 어렵게 도착한 일행은 마을에 있는 사사에 신사에 머물게 되고, 신관의 안내로 첫 번째 괴담에 등장하는 미로 형태이긴 하지만 열린 공간인 대숲 신사에 가게 된다.그리고 그곳에서 이단의 민속학자인 노조키 렌야의 괴상한 아사 상태의 주검을 발견하게 되고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 마을에서는 연달아 수수께끼 같은 실종과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뒤로는 험한 산과 앞으로는 암초가 가득해 큰 배를 접안할 항구조차 없는 탓에 고립된 가난한 어촌 마을에 전해 오는 괴담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서 겐야가 도착하자 연이어 사망사건이 일어난다.대숲 신사에서는 괴상한 아사 사건이 일어나고 망루에서는 수수께끼 같은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다루미 동굴에서는 모래땅이지만 발자국 없는 살인이 벌어지고 큰 헛간에서는 부자연스러운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겐야의 활약이 앞바다에 잘린 머리처럼 떠 있는 암초인 하에다마를 오랫동안 신성시하고 공양했던 마을의 비밀스러운 사연과 얽혀 공포스럽게 다가온다.가난한 어촌 마을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얼마 전 읽은 일본 작가의 다른 소설이 생각난다.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했던 부끄러운 죄악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은 범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같은 소재의 소설이 쓰였다는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다.소후에 시노의 엉뚱한 활약과 눈치 없는 겐야의 무덤덤한 반응은 무서운 이야기 중간중간 감초처럼 등장해 숨통을 트여준다.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한 용의자 소거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진 않지만 예부터 전해오는 괴담과 현재 벌어진 살인 사건의 유사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난다.특히나 글자로 전해지는 소리는 실제로 들려오는 소리만큼이나 공포스럽다.이미 출간된 시리즈를 읽지 않아서 이 소설을 읽기가 머뭇거려지는 독자가 있다면 전편의 에피소드가 간간이 등장하지만 이해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으니 꼭 시작해 보기를 권한다.읽다 보면 민속 호러와 추리가 결합한 소설의 재미에 푹 빠질 것이 틀림없다.조만간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도 읽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