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 90년대 학생운동의 성찰과 전망 - 컬리지언총서 1
이후 외 / 이후 / 1998년 5월
절판


대학사회라는 기반과 학생운동 자체의 괴리는 학생 대중들에 대한 정서적 유대의 강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사고되었다. 지식의 문제, 교육의 문제 등은 이제 무의식적으로도 운동의 사정권 안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이는 대중의 지식인화가 아니라 지식인-대중의 분담관계를 전제한 뒤 그 안에서 둘의 유대를 추구한 NL 주류 사상의 심층의 문제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62쪽

의식화의 처음에는 역시 대학사회 본래의 긴장점에서 출발하지만 (학회) 이후의 활동가 의식화의 과정은 학생회 활동으로, 그리고 사실상 정파 중앙에 의해 내리먹여지는 협소한 정치투쟁 및 대중사업에의 참여 등으로 채워졌다. 일단 활동가가 되고 난 뒤에 활동가 자신이 경험하는 운동이란 결국 일정하게 고착된 관료적 실천이 대부분이었다. 시위에서의 대중동원 여부가 관건이었고 총학생회 선거에서 자기 정파가 승리하는 것이 1년 활동의 목표였다. -63쪽

학생 대중들에 대한 정서적이고 이해중심적인 접근과 활동가들의 과잉 정치주의의 이분법적 세계는 신세대 현상에 대한 최악의 접근의 가능성을 그대로 실현시켰다. 학생 대중들과의 접촉면에서는 신세대들의 소비문화 흡수에 유착하는 문화주의적 접근이 취해지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에 의해 감소되는 학생운동의 급진성은 활동가 이념의 폐쇄성으로 치환, 해결되었다. -66쪽

단, 적어도 학생운동 출신이라면 이 사회에 중심적 모순을 해결하는데 자기가 하고 있는 실천영역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만, 분명히 하고, 그것만 분명하다면 할 일은 얼마든지 많다.-308쪽

여전히 학생운동을 고민하는 친구들의 고민이 너무 추상화되어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로 계속 '말의 성찬'이지 않나 싶다. 다양한 얘기들이 많은데, 담론의 부재를 얘기하면서 담론 과잉이라는 극단적 평가가 있을 만큼, 학생운동이 지나치게 담론의 영역 안에만 있다. 물론 그 자체를 못 세우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생운동의 특성이라는 것이 실사구시가 안되는 점이기도 하다.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어야 실천이 되는 나름의 특성이 있긴 하지만, 문제에 실천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아쉽다.-319쪽

운동적 기득권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거칠게 표현해서 80년대 화려했던 학생운동의 전성기에 대한 미련, 그것을 여전히 학생운동은 그러하다든지, 혹은 80년대 학생운동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선배들은 과거 영웅적인 투쟁을 했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 그런 강박관념에서 빨리 벗어나라.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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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10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천재뮤지션 2007-05-0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습복반. 그날이 오면에는 2권 밖에 없어서 2권 밖에 못 샀는데.
그대는 어디서 1권을 얻게 되었누? ㅋ

바라 2007-05-08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좀 큰 서점에서도 2권뿐이더군.. 난 낙성대의 헌 책방에서 봤다
 

[시론] '호모 사케르'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병권

 

이탈리아 미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은 주권의 본성을 잘 드러내는 존재로 '호모 사케르(Homo Sacer)'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호모 사케르란 말 그대로는 신성한 인간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범죄를 저질렀거나 어떤 불결함을 지녔기에 신성한 제단에 바칠 수 없는 존재였다. 로마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호모 사케르를 희생물로 삼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지만 그를 죽이는 자가 살인죄로 처벌받는 건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 호모 사케르를 죽이는 건 종교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권장되지 않지만, 그들을 죽였다고 처벌받는 건 아니다. 그래서 호모 사케르는 그 사회가 시민에게 부여하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단지 숨 쉬는 생명체로, 날것의 인간으로 살아간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 이런 호모 사케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현재 전체 이주노동자의 반인 20만 명 정도가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떤 범법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부여된 시간(3년)이 넘었거나, 지정된 공간(작업장)을 이탈했기 때문에 불법 신분이 된 사람들이다.

사실 산업체에서는 이들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오래된 이주노동자일수록 한국어가 능하고 숙련도도 높기 때문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이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적 신분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이들이 정치적 사회적 신분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은 어떤 시민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임금 체불을 당해도, 작업장에서 폭력을 당해도, 이들은 경찰서나 노동부를 찾아갈 수 없다. 그랬다가는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져 강제 추방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만난 어느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동료가 사장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뒤, 살겠다며 경찰서로 뛰어들었다. 경찰은 그와 함께 사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사장은 그가 불법 체류자임을 폭로했고, 결국 경찰은 그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넘겨 버렸다. 임금체불과 폭행을 일삼은 사장은 별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게 호모 사케르다.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되지만 행사해도 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다.

지난 11일 여수의 외국인보호소에서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 화재로 이주노동자 9명이 숨졌고 18명이 부상당했다. TV 화면에 공개된 보호소는 그곳이 이름과 달리 쇠창살로 된 감옥임을 말해준다. 강원도에서는 실제로 '불법체류자'들을 감옥에 수용해왔다. 하지만 이들은 재판을 받고 복역하는 그런 범죄자들이 아니다.

이들의 불법성은 대부분 법과 제도가 정한 시간과 공간을 지키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이들의 불법성은 이들의 행위보다는 법과 제도에 더 크게 좌우된다. 실제로 산업연수생제를 운영했던 2002년의 경우 불법체류자의 비율은 80%에 육박했다. 그러나 2003년에 35%로 감소했다. 그것은 이들 행동에 어떤 변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고용허가제로 제도가 바뀌면서 이들의 신분이 합법 체류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에서도 불법체류자 비율은 계속 늘어 현재 5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고용허가제 자체도 재검토할 시간이 된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고용 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이런저런 법과 제도로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는 일은 이제 무의미해지고 있다. 사실 세상 어디에도 그 자체로 불법인 존재는 없다. 존재의 어떤 행위를 불법으로 볼 수는 있으나 존재 자체를 그렇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행위가 아닌 존재 자체가 불법 취급을 받고 있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라는 예외적 존재가 권력의 정상적인 작동을 폭로한다고 생각했다. '예외가 정상이다'. 우리 사회의 예외적 존재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역시 우리 사회의 정상성이 무엇인지를 폭로한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바로 우리 얼굴, 우리의 야만이다.

수유&너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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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08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한 사회가 기초한 '법'이라는 것의 맨얼굴을 폭로하는 군요. 퍼갑니다.
 
 전출처 : 기인 > [퍼온글] 문학과 철학-유종호, 박이문, 김우창

 

유종호(이하 유) : 오늘은 '문학과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두 분 선생님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왼편에 앉아 계신 분이 박이문 선생이십니다.(함께 박수) 우리나라에는 무주택자들이 많습니다. 웬만큼 살면 보통 집이 한 채씩 있는데, 그 이상으로 살면서 집이 서너 채씩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이문 선생은 학위가 서너 개가 됩니다. 그러니까 1가구2주택식으로 문학에도 학위가 있고 철학에도 학위가 있습니다. 그것도 문학은 프랑스에서 철학은 미국에서 수여를 해서 보통 사람들을 기죽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나오셔서, '문학과 철학'이라는 제목의 연사로서는 더 이상 적합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최적임의 인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저서를 가지고 계시고 또 미국에 시몬스여대라고 하는 보스턴 근처의 명문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치셨습니다. 요즘은 연세대학에서 특별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고려대학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김우창 선생이 나와 계십니다. 이전에 한 번 나오셨는데, 오늘 이 자리에는 꼭 모셔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다시 모셨습니다. 윌러스 스티븐즈라고 하는, 매우 철학적이고 어려운 미국 시인을 연구하셨고 문학 이외에도 철학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 방면에 조예가 깊으십니다.


철학과 문학은 상당히 근친성이 많은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자이자 동시에 문학자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르트르도 그렇고, 또 어떻게 보면 니체 같은 사람도 시인이면서 동시에 철학자이고, 그래서 근친성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옛날부터 그리스에서도 철학과 시가 어떤 경쟁 관계에 있다고 해서 플라톤 같은 사람은 철학이 시보다 한층 더 우위에 속한다, 시는 철학에 비해서 조금 낮은 차원의 것이라는 얘기를 해서 철학과 시의 관계, 철학과 문학의 관계는 친연성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두 분 선생님께서 어떻게 철학과 문학을 같이 접하게 되셨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지요.


박이문(이하 박) : 저는 제대로 문학도 못하고 철학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직업상으로 문학을 하고 철학을 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고 불편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은퇴하면서 상당히 자유롭게 해방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처음에 문과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문과대학의 많은 학생들이 입학을 앞두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의 경우는 전연 주저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학교 1,2학년 때부터 시인이 된다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 시인만 된다면 죽어도 그만이다 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해방 직후에 서울에 와서 서점에서 시집을 보게 되면, 나는 시집을 언제쯤 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도 친구들이, 네가 시집을 엮으면 내가 내주겠다고 했을 정도이지만 그 당시 시집 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시인(작가)이 되고 싶었냐 하면, 제가 어려서부터 주위의 삶의 모습을 둘러보면서 상당히 불편함을 느꼈고 산다는 것에 대해서 즐거움이라든가 놀라움보다도 어려운 일이고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비교적 지방에서는 고통 없이 지냈지만 관찰하는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삶에 있어서 부족한 무엇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시라는 하나의 형태에서 발견할 것 같고, 잘 모르지만 나도 그런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 주저없이 문과에 들어갔다고 했지만 약간의 주저는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가 6년 졸업이었는데 3,4학년 때부터 알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된 철학적인 책을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많이 뒤져보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는 문학을 통해서 채워지지 않는 여러 가지 정서(연애, 실연)가 문학적인 욕망으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시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당시부터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가령, 나의 시는 내가 진심으로 고생하면서 쓴 시인데 좋다고 하는 사람이 없고 왜 김소월의 시는 뜨거운 말도 아닌데 좋다고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세상을 조금 분명하게 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당히 추상적이고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모든 것을 분명히 설명해보고 싶다는 철학적인 욕망이 일어나서, 맞지 않는 양면의 세상을 보는 두 가지 욕망이 양쪽으로 갈라진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세상을 분명히 보자, 끝까지 캐보자, 논리를 따져보자는 욕망, 가장 궁극적이면서 지적인 욕망이 철학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욕망이라면, 거꾸로 뜨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그런 시적인, 예술적인 욕망이 문학적인 욕망입니다. 그 두 가지 욕망을 보면 한편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적인 냄새가 안 나는 문학작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 한 편을 쓰더라도 거기에는 인생에 대한 고민을 담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철학적 사유는 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수업 시간에도 시를 쓸 정도로 문학에 도취했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뭔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격동기에 우리가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무언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찾고자 하던 저의 욕망이 철학적인 욕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불문학과를 졸업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불문학하는 것이 제일 화려하다고 생각하고 프랑스를 가장 멋있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상놈 같고 구라파는 양반 같은 편견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적으로 불문학을 하게 된 것은 저의 큰형이 일본에서 유학을 하면서 법과대학을 나왔는데 많은 문학 서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시를 쓴다고 했는데 잘 안되었고, 억지로 문학의 학위를 끝냈고, 세상을 알아보자, 세계를 밝혀보자 라는 욕망에서 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을 하면서 교수가 되겠다는 직업적인 욕망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없이 먹고살려니까 교수가 되고 그러다 보니까 평생 철학 교수로 있었습니다.


: 김우창 선생께서는 아주 방대한 양의 철학적인 책을 많이 읽으셨는데, 처음 철학책을 읽으신 얘기라든가 철학에 매료된 얘기를 조금 해주시지요.


김우창(이하 김) : 방대한 철학책을 읽은 것같은 인상을 주는 재주가 있어서 읽은 것같지, 실제로 읽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지금 박이문 선생님께서 철학과 문학에 대한 깊은 생에 있어서의 신비적인 불이(不二)를 정열적으로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는 그렇게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학을 하면서 일생을 보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후회스럽고 공연한 것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 다닐 때,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서 읽은 것인데, 한정된 돈을 가지고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살 때 하나를 사면 다른 것을 못 사기 때문에 주인공이 여러 가지 많은 것에 대해서 마음을 결정할 수 없었다 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뭘 했어도 후회는 했을 것 같지만 문학을 선택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박이문 선생님처럼 자전적인 얘기를 좀 하자면, 고등학교 때 문학책도 읽고 철학책도 읽고, 우리 세대가 일본말을 조금 할 줄 아는 마지막 세대니까 일본말로 된 책도 읽고 남이 못 읽는 것을 읽는 재미로 읽은 책도 있습니다. 제가 정치학과를 들어가서 1년을 다녔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해야겠다고 해서 철학과를 갈까 문학과를 갈까 궁리를 하다가, 철학하는 사람은 머리 기르고 이상하게 다니는 것이 너무 싫어 보여서 정상적인 복장을 하고 다니는 문학 공부하는 사람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철학하는 사람이 그런 경향이 좀 있었습니다. (박 : 저는 거꾸로 생각했습니다.)(함께 웃음) 그래서 결국 문학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 외적인 것도 있었지만 사실 자기가 어떻게 해서 오늘날 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왜 제가 문학하는 사람이 되었고 문학 선생이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때 그 외면적인 이유로 문학을 했는데, 또 달리 생각하면 우리나라에 그 당시 철학도 그렇고 다른 책들을 읽어봐도 심금에 오는 글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학 작품을 읽어도 쉽고, 제가 대학 다닐 때 실존주의가 유행했는데 실존주의는 철학이지만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면도 좀 있어서 철학보다 문학이 좀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철학이 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이과였는데 과학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것저것을 해봤기 때문에 논리적인 것이 더 많은 철학이 더 낫다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또 그게 뭔가 실감이 안 난다는 느낌을 가졌고, 제가 박이문 선생님보다 나이가 훨씬 아래지만 저희도 우리 역사가 복잡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해방 전에 초등학교 다니고 해방 후에 중학교 들어가서 다니다가 6.25 전쟁 일어나고 군사 독재가 있었고, 이러니까 모든 추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혐오감이 있었습니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것 이런 것에 대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듣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반공을 국시로 하는 식의 철학 자체도 상당히 추상적인 것 같아서 언어로 하는 문학이 더 낫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학 언어라는 것은 추상적인 것보다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있는 것이고, 또 달리 얘기하면 우리가 마음 속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밖에서도 정당한 소리가 되는 것이 문학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내면의 소리가 곧 외면의 소리가 되고, 거창하게 릴케 식으로 얘기하면, '세계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내면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고 자기 시에 대해서 그렇게 얘기한 것이 있습니다. 뭔가 우리가 스스로 마음에서 느끼는 것이 밖에서도 정당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학에는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 구질구질한 얘기를 하면서, 남에게 내놓는 것은 구질구질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 속에 느끼는 것이 당신에게도 올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 소리를 하는 것일 겁니다. 내면적인 소리가 외면적인 소리와 일치하는 세계, 추상적인 것에 의해서 강요되지 않는 세계가 문학 속에 있다는 느낌이 있어서, 고등학교 때 물리학, 수학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지만 그런 것보다는 철학, 철학보다는 문학, 이런 식으로 흘러흘러서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 아까 불문과가 화려해 보인다고 하셨는데, 영문과 들어가기보다 쉽지 않았나요?(함께 웃음)


: 아니죠. 영문과는 싱거운 사람들이 하는 거지요.(함께 웃음) 프랑스 문예가 그림이나 미술에서 얼마나 화려했습니까. 쉬르리얼리즘, 다다 등이 다 프랑스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다리도 런던보다는 예쁘고 그렇습니다.


: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에는 이렇다할 음악이 없지 않습니까?(박 : 예, 그렇긴 하죠.) 문학과 철학의 친연성이나 근친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 철학과 문학을 얘기할 때, 철학과 문학을 각각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전연 다른 얘기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텍스트들, 가령 파스칼의 {팡세} 같은 작품은 문학사에도 나올 수 있고, 철학사 혹은 사상사에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령 성서라든가 불경 같은 경전도 어떤 면에서는 보기에 따라서 은유적인 문학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쓴 글을 분류하는 것이 엄청나게 애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문학이다, 아니다 라고 하지만, 어떤 텍스트를 보면 문학으로 읽어야 할지, 철학적이고 사회학적인 비문학으로 읽어야 할지가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최근에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해체주의니 하는 말들이 많이 나와서 미국에서도 리차드 로티라는 철학자가 왔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요새 얘기하기를 문학과 철학은 구별이 안된다는 얘기가 아주 강하게 주장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철학적인 차원에서 주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주장의 근거가 상당히 막역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여러분이 아시겠지만 미술사에서 뒤샹의 변기가 있지 않습니까? 대리점에 쌓여 있는 변기와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변기는 전연 형태나 구조가 같은 복사물이니까 생산물로서는 같지만, 뒤샹이 갖다 놓은 변기는 굉장히 중요한 예술 작품이라고 하고 다른 것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고 분류합니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많은 경우에 어떤 것은 처음부터 예술 작품으로 봐야 된다는 기호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으로 봐서, 눈으로 읽어서 문학과 철학이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기에는 어떤 텍스트인지 구별이 안 되고 실제 물체로서의 집합으로는 똑같지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떤 변기는 예술 작품이 되지만 어떤 변기는 예술 작품이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 문학과 철학은 분류상에서 구별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을 문학이다, 철학이다 라고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나옵니다. 그런데 어떤 작품을 쓸 때, 자기 나름대로 깊은 생각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깊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느낌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철학적인 욕망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문학뿐 아니라 예술 작품은 일종의 철학적인 요소가 있고, 철학적인 욕망이나 필요에 의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평이라든가 미술평을 보면, 이것은 우주의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다, 현대의 부조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것이 전부 철학적인 언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어떤 것이 철학인지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철학은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철학과 문학은 서로 뗄 수 없지만 반드시 떼어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일반적인 진리라든가 가장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서 근본적인 명제를 언급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추상적입니다. 철학과 예술은 진리의 문제를 추구하는 점에 있어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 철학자가 예술가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가장 투명하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냥 느낌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밝히고자 하는 것이 철학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석적이고 조직적입니다. 수학적인 욕망, 물리학적인 욕망, 과학적인 욕망이 철학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욕망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을 분명히 설명하고 밝혀서 이론화하려는 욕망이 철학자의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흐릿하게 하면, 그것은 철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상당히 분석적이고 추상적입니다. 그런데 예술적인 표현의 토양은 분석적이 아니라 상당히 감성적이고, 종합적입니다. 일부러 흐리멍텅하게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것처럼 해야 됩니다. 분명하게 한다면 시나 문학이 아닙니다. 가령 분명히 쓴 작품을 시라고 읽고, 분명한 관점에서 그 작품을 해석할 때에는 문학적인 해석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건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시를 쓰고자 하는 욕망과 요청, 조건은 철학적인 진리를 찾고자 하는 욕망과 한편으로는 양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가면 학생들이 성경을 많이 공부하는데, 종교적인 교리로 공부하는 것보다 많은 경우에 문학으로서의 성경이라는 강의를 듣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문학책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문학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서뿐만 아니라 모든 신문 기사도 그렇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말한 것처럼 어떤 작품의 총체를, 하나의 통일된 무엇을 문학 작품으로 보느냐, 철학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그냥 눈으로 보아서 되는 게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의해서 구별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뒤샹의 변기는 물질로서는 똑같지만 그것을 어떤 관점이나 맥락에 의해서 쳐다보느냐에 따라서 문학적인가 아닌가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A라는 작품을 문학적인 관점에서 보고,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달라지는 것이지, 구체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내용의 차원에서 구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저의 이론입니다. 그 이론을 양상론이라고 하는데 어떠한 양상에서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술이 무엇이고, 문학이 무엇이고,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철학적인 것입니다. 양상이라는 것은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가령 꽃은 빨갛다 라는 문장이 있다면, 그것의 현재적인 양상, 칸트가 얘기하는 것인데 꽃이 그렇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즉 그것이 어떻다는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주장인 것입니다. 거꾸로 사실이 아니라,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않느냐 라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꽃은 빨갛게 보일 수 있다 라고 할 때에는, 내 말이 맞다, 틀리다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가령, 꽃은 빨갛게 보일 수도 있고 파랗게 보일 수도 있다고 할 때에는 맞는지 틀리는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건적인, 가상적인 관점에서 '볼 수가 있다'는 가능성은 세계를 보는 가능한 틀을 제공하는 것이지, 사실이라고 확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렇다고 하는 단정적인 명제와 '볼 수 있다' 라는 가설적인 명제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그런 것을 양상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정언적 양상, 개연적 양상, 필연적 양상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작품을 문학 작품이냐 철학적 서적이냐 라고 할 때, 그것을 그냥 봐서는 모릅니다. 철학적, 역사적인 배경, 어떤 관점에서 어떤 양상으로 그 저서가 제출(제안)되었느냐 하는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결정할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문학적인 역사와 논리적인 관계 같은 것을 아는 틀에서만 둘의 관계가 설명된다고 생각합니다.


: 박이문 선생의 양상론을 비판하든가, 아니면 김우창 선생께서 생각하시는 문학과 철학의 친연성 혹은 차이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 박이문 선생님은 철학을 하시니까 개념적으로 정리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고, 문학하는 사람은 대개 어물어물 불분명하게 얘기를 하니까, 철학하는 이는 논리적 명증성을 가지고 얘기를 하는 것이고, 문학하는 사람은 이 소리도 아니고 저 소리도 아니게 얘기를 보통 합니다. 양상론과도 연결되는 게 있겠지만, 철학과 문학에 대해서 어떻게 다른가, 같은가 라는 것을 제 생각을 중심으로 보충해서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철학은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이고, 문학은 원리로부터 벗어나서 원리에서 떠난 잡다한 경험적인 현상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차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철학은 하나에 관심이 있고, 문학은 많은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라는 것은 원리인데, 원리라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타당한 것을 얘기하는데 반해서, 잡다한 것은 결국 같은 원리에서 나오더라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우리 주변의 사실, 잡다한 일상사에 대한 문제를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적인 사건에 관계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학의 기본적인 양식이라는 것은 서사, 즉 얘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를 갔더니 마침 누구를 만나서 라는 식으로 주로 사건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신이 그 사람을 여기에서 만나게 된 것에 대해서 인간의 우연적인 만남은 없는 것이고, 그것은 필연적인 인과 관계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는 식으로 원리적으로 사건을 떠나서 얘기하면 철학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문학이 잡다하게 일어난 일들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종합적인 원리가 무엇인가 라고 늘 생각합니다. 문학은 많은 데에서 하나로 가려고 얘기하는 것이고, 철학은 하나로부터 많은 것으로 내려와 보려고 한 원리를 가지고 많은 것을 설명해 보고자 하는 것인데, 즉 방향이 다른 것이지 근본적인 관심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윤리적인 문제,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이 철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얼마전까지 미국 철학은 매우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문학에서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아까 박이문 선생께서 파스칼을 예로 드셨는데, 파스칼의 {팡세}는 문학인 것 같기도 하고, 철학인 것 같기도 합니다. 좀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 같은 것도 철학적인 방법에 관한 얘기이지만, 내용에 보면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다가 겨울에 방에 앉아 있는데, 난로는 따뜻하고, 이런 얘기들이 나옵니다. 내가 어릴 때는 어떤 공부를 했는데, 다 별로 재미를 못 봤고, 결국 믿을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사실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 같은 철학적인 논설도 이야기 비슷합니다. 이것이 불문학의 특징(전통)인 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 다닐 때 불문학이 상당히 부러웠는데, 영문학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저는 영문과를 다녔지만, 소설이면 소설, 시면 시와는 별로 관계없이 철학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같은 코스에서 취급하는 법도 없고, 같은 역사책에서 다루는 법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데이비드 흄과 핸리 휠딩을 같이 다룬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 밑에는 이런 관계들이 있다고 들춰내는 것은 있지만, 영문학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문학에서 파스칼도 그렇고, 데카르트도 그렇고, 몽테뉴의 대표적인 {에세이}도 문학인지 철학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문학과 철학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프랑스가 가진 특별한 전통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고, 또 유럽 전체에 있어서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내려오는 하나의 새로운 문학사적인 양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 문학사적으로도 특별한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유럽 사람들이 17세기 이후에, 어떻게 해서 경험적인 사실들이 하나의 철학적인 원리에 수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학이라는 학문도 생기고, 미학에 관한 서양 철학에서의 중요한 저서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 바움가르텐의 서적 등에서부터 미학을 철학에서의 문제로 삼은 것 같습니다. 철학에서 우리가 잡다하게 생각하는 감각적인, 경험적인 사실들이 어떻게 하나의 원리 속에 이해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유럽의 철학과 문학에서 어떻게 해서 경험적 사실이 하나의 통일된 원리 속에 수합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철학사나 문학사에서 특별한 현상이기도 하고, 철학이나 문학의 중심점이 옮겨갔다는 얘기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는, 철학이라는 것을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거룩한 말씀으로 인생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개념을 풀어주기도 하고, 우리에게 도움이 될만한 거창한 말들을 설명해주고, 논리적인 관계도 지키면서 설명해주는 것이 철학이 하는 일이었는데, 데카르트, 몽테뉴, 파스칼을 통해서 철학의 중심은 개념적 분석에서부터 의식의 통일성으로 옮겨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 같은 사람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하는 유명한 말은 의식이 굉장히 중요해졌다는 것이고, 몽테뉴에서도 수필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존재로서 파악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몽테뉴의 관심은 세상 만사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지만, 또 자아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냐 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몽테뉴는 굉장히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아라는 것, 자의식이라는 것을 하나의 원리로 해서 잡다한 것을 설명하려고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개념이나 원리가 아니라 움직이는 자아(자의식)를 가지고 잡다한 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철학이 훨씬 유연해집니다.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하면 문제가 많은데, 움직이는 의식이라는 것은 늘 대상 세계에 대해서 열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상 세계의 잡다한 것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몽테뉴나 파스칼도 그렇고, 이런 전통이 계속 되어서 문학에서 가령 프루스트 같은 사람의 작품은 굉장히 문학적인 얘기지만, 철학적, 심리학적인 반성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재미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느릿느릿 움직이니까 너무 관찰을 많이 하고 거기에다가 개념적인, 심리적인 자기 반성을 많이 하다 보니까 재미가 없어지긴 하지만, 그게 의식의 움직임이 많이 보입니다. 20세기 초에 서양 문학에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소설 테크닉으로도 등장을 하게 됩니다. 의식으로 철학의 중심이 옮겨오면서 하나의 통일된 의식 속에 잡다한 경험을 통합할 수 있느냐 라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철학적인 소설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얼른 보기에는 철학적인 소설들이 아니지만 밑바닥에는 사실 철학적인 충동이 담겨 있는 소설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사에 있어서 특이한 현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잡다한 인생을 경험하면서 이것을 통합하는 하나의 원리가 무엇인가, 하나의 통일된 의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 하나의 통일된 의식을 가지고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현실을 설명하려는 특히 현상학에서 그것이 많이 드러나는데, 일과 다를 합쳐서 그것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보려는 철학적인, 문학적인 충동은 서양사에서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문학과 철학이 그렇게 존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령, 이퇴계를 읽으면 아무 문학적인 재미가 없습니다. 퇴계의 성리학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는 얘기도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몸을 단정히 하라는 추상적인 얘기를 하기 위한 것이지, 이야기 차원에서는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논어를 보면, 공자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내가 상가집 개 같다 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공자라는 사람도 이런 느낌을 가졌구나 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문학적으로 호소하는 것들이 있긴 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실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수라는 강에 가서 목욕하고, 비파나 뜯으면서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을 보면, 공자의 내면적, 감각적, 경험적인 사실이 논어에 나와 있지만, 다른 특히 신유교, 성리학, 주자학은 다릅니다. 퇴계나 율곡을 보면, 철학은 도학이니까, 도학 군자들이 하는 것이고, 허튼 얘기는 공부 심각하게 하는 사람이 읽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 플라톤의 글을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플라톤은 시를 심각하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면 안된다고 얘기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볼 때, 몽테뉴, 파스칼, 데카르트를 한 쪽으로 하면서, 프루스트나 영국의 제임스 조이스라든지 미국의 헨리 제임스 같은 사람들의 철학적인 소설은 매우 특이한 역사적인 현상이고, 문학과 철학은 별개의 것으로 존재해왔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결론적으로 보태서 하나를 얘기하자면, 문학이라는 것은 이야기 재미인데, 무엇 때문에 이야기를 하느냐 라고 하면, 답변하기 곤란한 것이 많습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하나의 원리를 내놓아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서양 근대소설에서는 그 원리로써 형식적인 정합성이라든지 의식의 단일성이라든지 여러 가지 숨은 원리들이 나타나게 되고, 동양뿐만 아니라 비서양 세계에서는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인생을 단정하게 도덕적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갖다 붙여서 {춘향전}은 외설스런 이야기도 있고, 잡담이나 농담도 많은데, 정조를 지키라는 것이라고 주제를 붙입니다. 이야기 재미로 한 것에다가 어떤 철학적, 윤리적인 의미를 가짜로 갖다 붙인 경우도 굉장히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세계적으로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지, 서양에서의 파스칼의 경우는 서양적인 특이성을 얘기하는 것이지, 철학과 문학은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옛날에 니체 전기를 읽어봤는데, 니체의 {비극의 탄생} 같은 것은 아포리즘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자기 딴에는 체계적으로 글을 썼는데, 나중에 아포리즘 같은 것이 굉장히 많고, 단편적인 것이 많이 나오는 책을 썼지요. 그것은 몽테뉴와 라 로쉬푸코의 글을 읽고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평전을 쓴 사람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프랑스 문학이나 철학을 말씀해주셔도 좋고, 체계적인 철학자와 비체계적인 철학자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지요.


: 니체의 글이 문학성이 있다고 해서, 그의 저서를 문학서로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니체가 가지고 있는 수사학적인 멋있는 말, 발랄한 표현이 내용과 동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니체의 글이 문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표현의 발랄함, 신선성, 참신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여러 가지 인생에 대한, 종교에 대한, 신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철학적인 얘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붙잡는 깊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철학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철학이 추구하는 목적과 문학이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철학이 하는 것은 문제를 가장 일반화해서 체계적으로 설득, 설명, 입증하려고 하는 담론이나 텍스트에 초점이 갈 때에 그것이 철학적인 것이고, 거꾸로 사람을 홀리거나 놀라게 하거나, 경이롭게 하거나 일상적인 생활과는 다른 것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잠깐 화제를 돌려서, 책을 굉장히 많이 내셨고 시집도 많이 내셨습니다. 그런데 대개 시집을 내는 철학자들이 분석철학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박이문 선생을 굳이 우리가 구별하자면 분석철학자이신데, 어떻게 시를 쓰는지가 좀 궁금합니다. 그리고 시의 언어와 철학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조금 말씀해 주시지요.


: 언어의 표현 방법에 대해서 초점을 두는 텍스트가 문학적인 것이고, 일반적인 명제에 대해서 초점을 두는 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적, 문학적인 언어는 가능하면 새로운 것, 놀라운 것을 말하는 것이고, 즉 상투적인 것이 아니라, 똑같은 것도 다른 말로 바꿔서 신선하게 표현을 하고자 하는 느낌과 생각이 문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문학적인 언어의 호소는 언어의 의미를 감성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말이라도 추상적인 사랑이라는 말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사건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문학적인 언어이고, 철학적인 언어는 추상화된 이성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진리는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어야 되지, 감각적인 것은 아닙니다. 플라톤이 시인을 공화국에서 추방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예술가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자꾸 헷갈리게 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이데아를 복사하기 때문에 예술적인 표현들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얘기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느낌이나 지각이 아니라 이성에 의한 직관에 의해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이 자신의 관점에 의해서 그렇게 얘기한 것이지,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플라톤이 예술을 잘못 이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문학적인 언어를 쓸 때에는 다원적인 해석이 가능하도록 불투명하게 쓰는 편입니다.


: 김우창 선생께서도 시의 언어와 철학적인 언어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을 좀 해주시지요.


: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아까 유종호 선생께서 말씀하신 대로, 로쉬코프처럼 단편적인 종류로 쓴 철학과 체계적인 철학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조금 덧붙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사람이 쓰는 철학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글쓰기 가운데에서 중요한 것이 우화인 것 같습니다. 농부에게 두 마리 소 중에서 어느 소가 더 좋은 소냐 라고 물으니까, 귓속에다 대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물이라도 함부로 남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얘기하면 안된다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자상스럽게 생각하면서 느낌을 가지고 사물을 대해야 된다는 우화가 들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만년에 쓴 이야기들에도 그런 글들이 있습니다. 우화라는 게 상당히 원형적인 글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철학도 포함하고, 문학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얘기들도 우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딱 부러지게 좋은 우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가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할 때, 얘기이긴 하지만 얘기 안에 도덕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데, 사실 이것이 상당히 원형적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얘기를 하는 것은 얘기 재미로도 하지만, 그 다음 단계에 있어서는 뭔가 사는 데 보탬이 될만 하니까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천적인 교훈을 가진 얘기를 전달해 주는 게 우화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화의 힘이라는 게 굉장히 큽니다. 이솝 우화를 지금도 읽고 있고, 성경을 가지고 신학도 만들어 내고, 신앙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성경에 들어 있는 여러 우화적인 것이 중요하고, 동양에 있어서도 사실 그렇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쓴 글이라는 것이 전부 우화는 아니지만, 아까 퇴계 이야기를 했지만, 퇴계 같은 사람이 쓴 글에도 중국 어디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했습니다 라는 식으로 사례를 들고 교훈을 끄집어냅니다. 그걸 계속 끌고 나가면서 철학 논의를 전개하고, 임금님께 간하는 상소도 합니다. 그래서 우화라는 것이 얘기이면서 도덕적 내용을 가진 중요한 장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어느 문화나 전통에서도 다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우화는 도덕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을 철학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철학적이라고 할 때의 철학은 윤리학적인 관심을 가진 실천 철학입니다.


그러나 현대 철학의 관심은 실천적인 것보다는 진리의 문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에 참여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고,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것은 이차적인 관심밖에 되지 않습니다. 니체의 경우에 잠언적인, 경구적인 것도 많이 있지만, 실천적인 내용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리에 관련된 발언이 간접적으로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는 없다, 진리는 다 거짓말이다, 진리는 다 권력의 편이다, 진리는 엉터리다 라는 얘기까지도 진리에 관한 발언입니다. 현대 철학이라는 것이 진리에 관한 관심을 증대시키면서 우화적인 전통으로 연결해서 생각하면 철학으로 바뀌게 되었고, 진리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강하지 않은 채로 실천적인 관심을 가진 것이 우화로 남았고, 또 거기에서 진리라든지 도덕이라든지와는 거리가 먼 감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이 문학적인 언어로서 성립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문학이라는 것은 대개 그러한 부분에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니체도 그렇고, 로쉬코프도 그렇고, 잠언적인 것이 철학이냐 문학이냐 하는 것은 길고 짧은 것도 물론 관계가 있고, 논리적으로 하나를 가지고 계속 전개해 나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리에 대한 발언에 관계되어 있느냐, 실천적인 내용만을 가지고 있느냐, 또는 감각적인 경험에 관계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진리에 관계된 내용이 들어 있으면 그것은 철학적인 것이 되고, 주로 감각적인 것, 실천적인 것에 관계되어 있으면, 윤리학이나 문학의 도덕적인 영역에 대한 발언으로 간주하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또 우화를 다시 생각할 때, 우화에서는 어떤 교훈을 끄집어냅니다, 옛날에 어떤 유명한 점쟁이가 있었는데, 뭐든지 안 보이는 것을 척척 잘 맞춰서 쥐를 통에다 넣어서, 쥐가 몇 마리냐고 원님이 불러서 물었더니, 다섯 마리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세 마리밖에 넣지 않았는데, 점쟁이가 다섯 마리라고 얘기하니까 '이놈 고약한 놈이다' 라고 해서 결국은 점쟁이에게 형벌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점쟁이를 죽이고 나서 문득 생각이 들어서 쥐의 배를 갈라 보니, 새끼가 두 마리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성급하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만들면서 교훈을 만드는 것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냐 하면, 도덕적인 교훈도 있지만, 사람 머리의 재치에 대해서 상당히 감탄을 하게 됩니다. 잠언 같은 것을 보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거기에 들어 있는 예지 때문에도 좋아하지만, 재치가 있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사람 마음의 반짝 빛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철학하는 사람은 거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은 재치가 번뜩이는 것, 사실이 맞든지 안 맞든지 간에 농담이라도 기발한 농담을 하면, 그런 마음의 번뜩임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줄여서 얘기하면, 진리에 관심을 많이 가져서 진리병에 걸린 사람들이 철학하는 사람들이고, 진리가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학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저는 명료하게 논의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시를 쓰는데, 시를 쓰면서는 억지로 말이 안되는 것을 쓰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한편 수상 같은 수필, 하이데거의 [숲속의 오솔길] 같은 것을 보면 그것이 문학인지 철학인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한편으로는 투명하게 해서 세상을 알고 느끼는 것이 전제가 될 때, 그것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철학적인 요청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산다는 것, 경험한다는 것은 논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시를 쓰면, 철학에서 담지 못하는 개인적인 경험, 느낌, 생각 등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도 아니고, 시도 아닌 것이 있을 텐데, 그래서 다른 수필 같은 것, 가령 몽테뉴 식이나 하이데거 식의 수필을 써보려고 노력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명상의 공간} 같은 글을 썼습니다. 거기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못한 경우가 있어서 칼럼 같은 것도 많이 쓰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다 하는 것 같지만, 한 장르로는 할 수 없는 다른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의 추상화된 텍스트 속에서 벗어나서 하고 싶은 얘기들이 시적인 언어로 표현된 것입니다.


: 여기에 계신 분들이 대개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분들인데, 문학을 공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철학책 같은 것이 있다면, 어떤 책을 권고해 주고 싶으신지요.


: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려운데, 데리다가 대표적이고 적극적으로 차이가 없다, 다 똑같다고 얘기합니다. 마찬가지로 문학이냐 시냐 소설이냐 하는 구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데리다가 뒤죽박죽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이 틀린 것은 기혼자나 미혼자의 구별은 눈에 보이는 구별이 아니라, 제도적인, 관념적인 구별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책을 도서관에 정리할 때, 문학 서고에 넣느냐, 철학 계통의 서고에 넣을 것인가 라고 할 때, 그때 그때의 판단에 따라서 구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뭘 읽어야 될지 얘기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은 문학적 감성으로 쓰는 게 좋고, 쓸데없는 관념을 가지고 조작을 하게 되면, 생경하게 되어서 작품 자체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관념을 없애버리고, 선입견을 없애버리고, 경험 자체에 충실하도록 해야 되기 때문에 문학하는 사람이 철학책에 관심을 가지면 오히려 해롭다 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늘 그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현대 문학 작품에 있어서는 철학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적인 감성에 호소할 수 있게 되려면, 철학적인 내용이 있어야 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서양 문학의 기준에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또는 세계 문학의 기준에서 얘기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노벨상이라도 받으려면, 철학적인 뭔가가 들어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철학적인 내용이라는 것은 개념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성 자체가 철학적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헨리 제임스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고 철학적인 사람인데, 문장도 어렵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다 생각이 들어있는 문장입니다. 그 생각이라는 것이 아주 깐깐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제임스의 철학적인 관심을 두고, 엘리엇이 말하기를 '개념이 범할 수 없는 지성을 가진 사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개념에 의해서 뒤틀리지 않는 지성, 굉장히 지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인데, 또 동시에 개념에 의해서 뒤틀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숨은 철학적 관심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작품도 숨은 철학적 관심이 있지만, 표면에는 그것이 안 나타나 있습니다. 프루스트라는 사람이 철학적이라고 하지만, 표면에는 안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깐깐하게 생각하고 꼼꼼하게 쓰는 기술로서 철학적인 의식이라는 것이 쿤데라 같은 가벼워 보이는 작가에게도 들어 있고, 프루스트 같이 더 심각해 보이는 작가에게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또 요즘은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너무 깐깐하게 생각해서 쓴 작품이라는 것은 한물 갔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그래서 깐깐하게 쓰는 것보다 규칙을 어기면서 쓰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마술적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원리가 없는 예술 작품을 얘기하기 위해서 나온 말인데, 그런 경우도 니체가 진리라는 것은 다 자기 기만이다 라고 하면서 진리에 대해서 얘기한 것처럼, 깐깐한 것은 다 엉터리다 라고 하면서 깐깐하지 않은 얘기를 해야 통하게 되어 있는 것이 요즘의 문학 작품의 실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서, 특히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과학적인 사실에 대한 존중이 별로 없습니다. 시가 과학이 아니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사실을 존중하면서, 우리의 심금을 울려야 됩니다. 시는 감정을 얘기하되, 감정을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안됩니다. 과학적인 사실을 존중하면서, 사실적인 세계도 존중하면서, 거기에서 감정을 보이지 않게 짜내야지, 내놓고 눈물을 마구 짜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냥 사실적인 얘기를 했는데, 눈물이 나오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숨은 과학적 인식, 숨은 철학적 원리, 숨은 의식의 통일성 등에 대한 관심이 문학 속에 들어있어야 되고, 그것을 무시하는 작품도 그것을 무시한다는 의식이 있으면서 그것을 무시해야지, 그냥 순진한 상태에서 무시해서는 별로 먹혀들어가지 않는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실 문학하는 사람들도 철학을 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철학적인 원리를 가진 책들, 그런 소설들도 읽어야 되지만, 철학책도 읽어야 합니다. 옛날 고전도 읽는 것이 좋겠지만, 요즘 박이문 선생님의 글 같은 것들도 읽고, 심지어는 분석철학도 읽으면서, 작품을 쓸 때에는 다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작품에다가 표현하면 안됩니다. 안 보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대적인 관심이 있는 책들을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데리다도 읽는 게 좋고, 포스트모더니즘도 읽는 게 좋지만, 그것을 문학에다 표현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숨은 것으로 남아 있어야 됩니다.


: 훌륭한 예술가(시인, 작가)들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셰린느도 깡패 같이 살았던 사람이고, 장 쥬네 라는 사람도 못된 짓은 다 하고, 감옥에서도 살고, 사생아였습니다. 장 쥬네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 사람의 작품이 이미 고전 속에 들어 있습니다. 아주 무식한 사람이고, 문장도 형편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꼭 체계적인 철학서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체험으로 얻는 것이 좋습니다. 아까 김우창 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도 철학적인 생각,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가는 경험, 사물을 보고 느끼더라도 철저하게 하는 안테나를 달고 태어난 사람이면 철학적인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밤낮 상투적인 얘기, 달콤한 얘기, 구름 같은 얘기를 하면 안됩니다. 철학에서는 남의 것을 정리하는 것도 철학이라고 하지만, 예술에서는 새로워야 합니다. 생각이나 감성도 혁명적인 것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러한 감성의 세련도와 혁명성은 혼자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가에 대해서 사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거름을 얻기 위해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것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영 딴판으로 다루는 것이 좋습니다. 문과를 졸업해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경험들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 상투적인 작품을 쓰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문학 작품에 긍정적인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이 찬란하다고 하는 작품이 많은데, 정말 찬란한가를 물은 다음에 찬란하다고 해야지, 그냥 찬란하다고 하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묻는다'는 것이 철학과 문학의 공통점일 것 같습니다. 단지 철학은 겉에 내놓고 묻는 것이고, 문학은 묻는 것을 속에다 감추어놓고 있는 것이 문학입니다. 그러나 물음으로써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문학이나 철학이 공통된다고 생각합니다.


 - 질의 응답 -


질문자 1 : 박이문 선생님의 [나의 길, 나의 삶] 같은 수필을 보면, '나는 새를 좋아한다' 라고 시작하는데, 지금도 좋아하시는지요.


박 : 제가 시골뜨기입니다. 벽촌에서 살았는데, 집에서 새장을 직접 만들어서 그 안에 새들을 기르곤 했습니다. 겨울이면 참새를 잡아서 사랑 부엌에서 구워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함께 웃음) 개를 좋아해서 개에게 프랑스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삐에르' 라고 붙였는데, 하루는 오후에 들어오니까 개를 잡으려고 하는데, 그것을 개가 알고서는 대청마루 밑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결국은 동네 앞 개천에 끌려가서 저녁 때 잡아 끓여서 멍석을 펴놓고, 보신탕을 해먹는데, 저는 맛있어서 더 달라고 했었습니다.(함께 웃음)


질문자 1 : 새와 개에 대한 호감 얘기가 나오고, 앎에 대한 지적 갈증 때문에 프랑스로 가서 소르본느 대학에서 공부하고, 보스턴에도 유학을 갔었다는 글을 봤습니다. 유종호 선생님께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금요일의 문학 이야기'에 그동안 많은 명사분들을 뵈면서 저서나 프로필을 보면 수상 경력이 많은데, 박이문 선생님의 약력에는 수상 경력이 안 나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유 : 박이문 선생은 일찌감치 프랑스에 가셨습니다. 1957년에 만났는데, 이 분은 프랑스 간다고 의기양양해서 왔다갔다 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오셔서 다시 이화여대에서 잠깐 가르치다가, 그야말로 지적 갈증을 느끼셔서 프랑스로 다시 갔다가 미국으로 가셨습니다. 가셔서 오랫동안 계셨기 때문에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됩니다. 사실 미국 사람들이나 프랑스 사람들이 더 가까울 겁니다. 오랫동안 한국에 안 계셔서 상을 탈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박 : 저는 상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습니다.


유 : 박이문 선생께서 여기에 오래 계신 적이 없고, 여름 방학이면 두어 달 정도 부모님을 뵌다는 핑계를 대서 왔다가 갔기 때문에, 보통 철새라고 얘기했었습니다.(함께 웃음) 우리 사회에서는 정처가 없는 철새에게 사회적 명예나 보상을 안해 주는 것 같습니다. 보통 65세가 되면 명예퇴직을 하게 되는데, 이 분은 포항공대에서 70세까지 근무하시고, 요즘 연세대학에서 또 교수직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다 보상을 받는 거지요.


질문자 2 : 유종호 선생님 마지막 시간이어서 여쭙고 싶은데, 아까 두 분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어떻게 접하셨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유종호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어떻게 접하시게 되셨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유 : 박이문 선생께서 아까 시골 분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박이문 선생보다 더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충북 증평에서 다녔는데, 증평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시골에 놀이감도 없고 그래서, 또 저희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의무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가보면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많았는데, 제가 학교를 들어가보니까 제일 꼬마였습니다. 자연히 동기생들과 나이가 한 서너 살 차이가 나니까 친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미를 붙인 것이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다양한 관심을 가져야 되는데, 제가 좀 미련해서 여러 가지 관심을 못 가지다 보니까 나중에 책을 좋아하게 되어서 문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어릴 때에는 책이 많지 않아서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다가 그냥 문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고, 책을 읽자면 외국어 하나는 마스터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외국문학과를 선택해서 오늘에 이르른 셈입니다.


질문자 3 :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어떻게 문학적인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겠는지요.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 텐데, 국어 사전 같은 것을 놓고 보도록 하는 것이 좋을는지요.


유 : 사전 같은 것에 아이들이 재미를 붙여서 찾아보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좋은 공부일 겁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대학생들도 사전을 안 찾습니다. 사전에 다 있는데, 안 찾습니다. 영어 사전도 안 찾고, 우리말 사전도 안 찾습니다. 그러니까 기회를 줘서 하면 좋겠지만, 과연 아이들이 사전 찾는 것을 즐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놀이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어릴 적에 모르는 말이 있어서 사전을 찾아보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옛날에 노천명의 시가 교과서에 실려 있었는데, '대추 방울 돈 사야 추석을 차렸다'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돈 사야' 라는 말을 찾아 보면 안 나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전이 잘 되어 있어서 물건을 파는 것을 황해도 같은 곳에서 '돈 사다' 라고 한다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재미있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사전을 잘 안 찾아보는 것은 자습서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그렇지요. 사전 찾아보는 풍습이 생긴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질문자 4 : 20년도 훨씬 넘게 두 분 선생님을 참으로 많이 존경하고 흠모해왔었는데, 특히나 박이문 선생님께서는 20년도 더 된 과거에 {노장 사상}이라는 책을 쓰셨었는데, 그때 제가 그 책을 보면서 이렇게 독자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도록 필자가 자신의 논리를 아주 세밀하게 정리해가면서 쓸 수도 있구나 하면서 경이로움을 경험했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문학적인 표현을 통해서 빚어진 철학이라든가 양상을 제 경우에 있어서는 소위 말하는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문학을 통해서 접했었습니다. 사실은 어렵고 딱딱한 철학책보다도 문학 속에 녹아 있는 철학의 정수를 접했는데, 그게 젊은 날에 서양 고전만을 섭렵하다 보니까, 저의 가치관이나 사고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 문학을 관심 갖고 많이 읽게 된 것은 참으로 늦은 시기였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번역된 서양 작품만 많이 읽었고, 철학의 줄거리 같은 것들은 주로 서양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문학과 관련해서 문학과 철학의 관계는 어떻게 얘기할 수 있고, 논의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한국 문학에서 논의할 수 있는 철학이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저는 모르겠습니다. 유종호 선생님이나 김우창 선생님께서 한국 문학을 전공하셨으니까, 한국 문학 속에서 표현된 철학이라든가 끌어낼 수 있는 철학이 있는지, 전통이 있는지, 그리고 소위 현재 동시대에 한국 문학에 있어서의 철학의 부재라는 측면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김 : 그것은 철학을 뭐라고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한국에도 철학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미에서 개인적인 체취를 느끼게 하는 철학, 서양 철학의 경우에 아무리 무미건조한 것 같아도 개인적인 철학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어서 그것이 조금 드문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철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용운 같으면 불교적인 명상이 많이 들어 있고, 다른 현대시를 쓰는 분들은 철학적인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시적 체험이라는 것이 세계에 대한 철학적인 인식을 갖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시라는 것은 세계, 또는 자연의 원초적인 체험에 접하는 하나의 통로로서 생각되었습니다. 가령 퇴계의 한시에도 맑은 호수를 그린 시가 있는데, 맑은 호수에 그림도 비치고, 새가 날아가는 것도 비치는데, 자신은 새가 물을 차고 올라가다가 수면이 깨질 것을 걱정한다 라는 종류의 간단한 4행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조용한 자연의 체험을 얘기한 것이지만, 또 동시에 늘 맑게 있어야 한다는 것, 움직이면서 혼란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에 움직임을 경계해야 된다는 것,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라는 것은 맑은 상태를 유지해야 된다는 것 등의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시는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한시에 그런 내용들을 가진 시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상투화되어서 사람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을 명경지수라고 표현해서 밝은 거울 같고, 움직이지 않는 물과 같이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식으로 자연에서 따온 체험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그게 도덕적인, 정신적인 교훈을 차지하는데, 많은 시들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한국 전통에서 한시라는 것은(물론 시조도 그렇지만) 정신적 경지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했고, 정신적 경지에 이르는 데에는 자연적 체험이 상당히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은 앞으로 많이 밝혀지고, 또 다른 주제들이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서 얘기를 하게 될 겁니다.


박 : 제 생각에는 동양적인 전통에서는 철학과 문학을 전통적으로 확실히 구별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노장이라고 하는 도덕경을 사상이라고 하지, 서양적인 관점에서 철학이나 문학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도 결국은 사상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전통에서는 철학적이고 분명하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의 전통, 비판적인 언설 등이 희랍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특수한 의미에서의 철학적인 전통입니다. 철학을 세계관, 우주관, 가치관으로 생각한다면, 어느 사회에서나 어느 개인이나 누구나 조금의 철학은 갖고 있습니다. 한국 작품에도 중국과 다른 세계관이 있을 것이고, 얼마만큼 다르고, 얼마만큼 독창적이고 깊이 있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유 : 아까 김우창 선생께서 헨리 제임스의 소설에 대해서 T.S. 엘리엇이 개념에 의해서 왜곡되거나, 개념에 의해서 범해지지 않는 지성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시나 소설에도 찾아보면, 철학적인 요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개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체계적인 요소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는 면이 드물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데, 그것은 과거의 지적인 전통에서 우리가 그런 쪽에 조금 취약하지 않았는가, 또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소설을 쓰고 시를 쓰는 분들이 대개 사춘기에 쓰다가 안 썼습니다. 그러니까 정신의 성숙에 발맞춰서 작품세계를 꾸려나간다는 면이 매우 드물어서 철학적으로 빈약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겨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가령 최근에 미당 같은 시인이 있는데, 그 분이 많은 시편을 썼고, 거기에 그 분 나름대로의 깊이나 지성에 의한 면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함께 박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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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을 향하여-한나 아렌트와 동일성의 정치

[월간 사회운동] 12월호에서 퍼옵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다른 기사들도 읽을 수 있습니다. :-)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653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을 향하여

한나 아렌트와 동일성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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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호니히 | 노스웨스턴 대학
역주: 한나 아렌트는 20세기 이후 정치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아렌트는 그리 편치 않은 사이였다. 그 이유로는,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한 데 묶어 ‘전체주의’로 평가했다는 점,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을 체계적으로 평가절하했다는 점, 그리고 『혁명론』에서 사회 혁명이자 민중 혁명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혁명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사실 우리로서는 아렌트가 제기한 쟁점 중 많은 부분을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중 아렌트의 ‘전체주의’ 개념에 대한 체계적 비판은, Domenico Losurdo, Towards a Critique of the Category of Totalitarianism, Historical Materialism, volume 12:2, 2004를 참고하라.] 게다가 아렌트적 문제설정, 발리바르 식의 구분법을 사용하자면 ‘해방의 정치’를 주목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변혁의 정치’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대체물로 여긴다는 점도 우리가 볼 때 문제가 많은 접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정치 및 해방에 관해 매우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아렌트와 함께 아렌트에 맞서’ 그녀를 읽는 호니히의 작업은, 아렌트의 탁월한 통찰을 남김없이 취하면서도, 그 통찰에 따라 아렌트를 내부에서 ‘해체’함으로써 변혁의 정치와 양립가능하게끔 아렌트를 개조하는 비판적 독해의 전범을 보여 준다. 특히 이 논문에서 호니히는 (어떤) 페미니즘에 입각해서 아렌트를, (어떤) 아렌트에 따라 페미니즘을 각각 개조하는데, 우리는 특히 전자와 같은 접근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는 페미니즘이 보편적 이념 아래 종속된 특수한 분야가 아니라, 보편적 이념의 난점을 극복하고 그것을 한층 보편화하는 데 필수적일뿐더러 대체불가능한 지적․정치적 자원이라는 점을 실천적으로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본래 Feminists Theorize the Political, ed. Judith Butler and Joan Scott (New York: Routledge, 1992)에 수록되었다가, 갈등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후기를 포함하기 위해 상당히 개정되고 확장되어, Feminist interpretations of Hannah Arendt(Re-Reading the Canon), ed. Bonnie Honig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5)에 재수록되었다. 이 번역본은 재수록본을 옮긴 것이다.


페미니즘 정치의 자원을 넓히려고 애쓰는 사람이 한나 아렌트라는 인물을 주목하는 것은 뜻밖이거나 심지어 거북스런 일이다. 엄격한 공/사 구별로 악명 높은 아렌트는, 그녀 식 정치의 독특한(sui generis) 성격과 공적 영역의 순수성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 정의와 성별 쟁점들의 정치화를 금지한다. 이 같은 종류의 업무는 정치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론화한 것처럼 전통적인 가사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렌트는 자신이 “여성 문제”라고 부른 것들을 정치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1)
그렇다면 왜 아렌트를 주목한단 말인가? 내가 아렌트를 주목하는 것은 그녀가 성별 이론가라거나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페미니즘 정치에 크게 이로울 수 있을 갈등주의적(agonistic)[역주: 'agon'은 본래 고대 그리스에서 운동․음악․극 따위의 각종 경연이 벌어지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서, ‘갈등’이나 ‘분투’, ‘논쟁’, ‘고뇌’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 고희극(古喜劇)에서 주요 인물들이 서로 대립되는 주장으로 갈등하고 언쟁하는 부분을 의미하기도 한다.]이고 수행적인 정치의 이론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렌트를 주목하는 것은 그녀가 정치에 대한 자신의 관점에 포함시키는 것 때문일 뿐더러, 그녀가 정치에서 배제시키는 것(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때문이기도 하다. 이 같은 배제에서 활용되는 용어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견고한 구별을 다루는 페미니즘 정치에게 유익하다. 아렌트가 공/사 구별에 집요하게 기대기는 하나, 그것을 정치화할 수 있는 자원들은 정치와 행위(action)에 관한 그녀의 설명 안에 제시되어 있다. 아렌트 정치의 갈등주의적이고 수행적인 충동에 기반하여 아렌트를 읽으려면, 바로 그 정치를 위해, 증대(augmentation)와 수정(amendment)이 미치지 않는 공/사 구별의 선험적 결정에 저항해야만 한다. (증대와 수정의 가능성을 영속시키려는) 이 저항 자체가 아렌트가 설명하는 정치 및 정치적 행위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나는 (반드시 저항이라고 할 수는 없는) 저항력(resistibility)이 아렌트 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조건(sine qua non)이라는 점을 논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그런 다음, 정치 영역에서 신체를 배제할 때 아렌트가 사용하는 용어들을 간략히 검토할 것인데, 우선 아렌트가 이론화하는 바와 같은 신체의 일의적․전제적․불가항력적(irresistible) 성격에 초점을 맞춘 다음, 수행적 화행(話行, speech-acts)을 통해 정치적으로 쟁취된 동일성(identity)―아렌트는 이를 [높이] 평가한다―을 획득하는 행위하는 자아(acting self)의 다중성(multiplicity)을 조명할 것이다. 아렌트의 설명에서 동일성은 수행적 산물이지 행위의 본질이나 표현적 조건이 아니다. 아렌트 작업의 이 같은 특성이 작업 배치의 토대가 되는 공/사 구별과 결합되면서, 아렌트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자들이 그녀가 여성 및 여성들의 쟁점에 호의적이지 않은 정치를 이론화했다고 비난할 여지를 주었다.2) 하지만 내가 볼 때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아렌트의 가치는 그녀가 표현적이고 동일성에 기반을 둔 정치를 기각한다는 바로 그 점에 있다. 문제는 아렌트의 이러한 기각이, 성별과 같은 사적 영역의 동일성들을 잠재적인 정치화의 장소들로 대하는 것에 대한 거부에 입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아렌트가 그녀의 유대(Jewish) 동일성과 그 동일성에 동반되는 책임의 문제를 놓고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과 벌인 유명한 논쟁에 주목하는데, 이는 그녀가 (이른바) 사적 동일성들을 “전(前)정치적” 영역에 가두는 데 실천적으로 실패했음을 예증하며, 동일성의 정치와 보다 직접적으로 연루되기 때문에 더욱 고무적인 저항과 재의미화(resignification)의 대안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가리킨다.
나의 결론은, 성과 성별을 이원적이고 구속적인 동일성의 범주로 구축하고 정치 공간을 공적․사적 영역으로 이원적으로 분할하려는 지배적 흐름에 (수행적이고 갈등주의적으로) 대항하려는 페미니즘에게 아렌트의 정치가 유망한 모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아렌트 자신은 이처럼 그녀의 작업을 급진화하려는 것에 틀림없이 반대했을 테지만, 나는 이 같은 시도가 그녀의 (정초적) 문헌들을 증대시키는 것인 만큼, 그녀의 정치를 매우 잘 따르는 것이라고 믿는다.

정치적 행위와 저항력

아렌트가 정치와 행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가장 간명하면서도 예리하게 논하는 것은 『미국 독립 선언』 독해에서다. 아렌트 설명의 모든 기본 요소들이 여기 다 나와 있다. 독립 선언은 정치적 행위이자 권력 행위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일련의 제도를 정초하고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구성/입헌(constitute)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낳”고, “새로운 관계를 확립하며 새로운 현실을 창출한다.”3) 그것이 정치적 행위의 “완벽한” 사례인 까닭은 그 본질이 “‘행위를 옹호하는 논증’에 있다기보다는” 말 속에서 출현하는 행위(an action that appears in words)에 있기 때문이다.4) 이는 수행적 언표이자 화행으로서, 공적 영역의 대등한 이들(equals) 사이에서 그리고 그들 앞에서 수행된다.
“우리는 이 같은 진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한다”(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는 유명한 문구에 초점을 맞추면서 아렌트는, 새로운 정체(政體)의 권력과 권위가 자명한 진리에 대한 진술적/확인적(constative) 지시 관계(reference)가 아니라 “우리는 생각한다”는 수행문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5) 극적인 동시에 비지시적인 수행문은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낳는다. 그것은 “우리”를 구성한다. 이 화행은 모든 행위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언표(되고 반복)되는 순간(들)에 행위자들을, 말하자면 탄생시킨다.
“우리는 생각한다”는 수행문과는 대조적으로, 자명한 진리에 대한 진술적 지시 관계는 자유로운 합류가 아니라 강박과 필연에 대한 고립된 묵종(黙從)을 표현한다. 자명한 진리에는 “동의가 필요치 않다.” 그것은 “논쟁적 증명이나 정치적 설득 없이 강제한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전제 권력’만큼 강제적이다.” 진술문은 “불가항력적”이다. 그것들이 “우리에 의해 견지(held)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에 의해 견지된다.”(OR 192~93). 자유로운 정치적 행위를 위해 아렌트가 독립 선언과 그 정초에서 숙정하는 것은 그 폭력적이고 진술적인 순간들, 신과 자명한 진리, 그리고 자연법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정박점이다. 이 같은 함(doing) 배후에는 어떤 “~임”(being)도 존재하지 않는다. 함, 수행이 전부다.6)
아렌트의 설명에 따르면 새롭게 정초된 공화국 권위의 진정한 원천은 진술적 순간이 아니라 수행적 순간이고, 고립된 묵종이 아니라 공동 행위(action in concert)이며, 자명한 진리가 아니라 “우리는 생각한다”이다.7) 그리고 공화국 권위의 진정한 원천은 이제부터 그 유지 방식, 재정초와 재구성/입헌에 대한 개방성이 될 것이다. “따라서 헌법의 수정은 미국 공화국의 기원적 정초를 증대하고 확장한다. 물론 미국 헌법의 권위 자체는 수정되고 증대될 수 있는 그 본래적 역량에 있다.”(OR 202, 강조는 필자) 헌법적 수정과 증대, 재정초에 이처럼 우호적인 성향을 지닌 정체는 신과 자연법, 그리고 자명한 진리라는 정초적 정박점을 반드시 기각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알다시피 신은 증대를 허용하지 않고, 또는 신은 증대될 필요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 자연법, 자명한 진리 이 세 가지 모두는 불가항력적이고 완전하다. 이 문장(紋章)들은 권력을 굳게 만든다. 이들이 수행문을 진술문으로 사물화(事物化, reification)하면 재정초와 증대가능성이 감소함으로써 정치의 공간이 폐쇄되고 정체의 권위가 박탈된다. 저항력, 개방성, 창조성, 그리고 미완성성은 이 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아렌트가 공적 영역에 신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고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단순하고 일의적인 신체

인간 신체는 한나 아렌트에게 있어 순수 과정의 결정과 필연성, 불가항력, 모방성의 주문(主文)이다.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 볼 때 깨닫게 되는 가장 강력한 필연은 생명 과정으로, 이는 우리의 신체에 고루 미치고 신체를 항상적 변화 상태로 유지하거니와, 그 운동은 우리 자신의 활동과 독립하여 자동으로 진행되고 불가항력적이다 ― 즉 압도적으로 집요하다. 우리 자신이 하는 것이 적어지고 우리의 능동성이 낮아질수록 이 생물학적 과정이 더욱 강력하게 나서면서 그 본래적 필연을 우리에게 강제하게 되고, 모든 인간 역사의 기저에 깔린 단순한 발생의 운명적인 자동 운동으로 우리를 위압한다. (OR 59; 강조는 필자)

그렇다면 공적 영역의 행위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사적 영역에서 노동하고 일하며 (무엇보다) 궁핍화된 존재들을 괴롭히는 순수 과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적어도 『혁명론』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것은 이런 식인데, 여기서 그녀는 프랑스 혁명의 막대한 실패를 기록하면서 그 책임을 “신체의 필요에 떠밀린 빈민들이 무대로 난입하여” “사회 문제”를 정치적 고려의 중심으로 만듦으로써 정치 공간을 실질적으로 폐쇄한 사실에 돌렸다(OR 59). 굶주리거나 가난한 신체를 대변하는 요구가 공적으로 만들어지면, 인간이 소유한 개성화하고(individuating) 능동화하는 능력은 침묵하게 된다. 난폭할 정도로 절박할 뿐더러 불가항력적이기까지 한 신체의 필요가 만족되기 전까지는 어떤 발화도, 어떤 행위도 있을 수 없다.
다른 저서인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의 강조점은 달라진다. 여기서도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으로 고려하는 것에 대한 그녀의 적의는 약해지지 않지만, “사회적인 것의 부상”은 행동주의(behaviorism)나 대중 사회, “가사적인”(housekeeping) 용무의 관리가 정치 영역을 찬탈한다는 견지에서 이론화되는데, 이런 것들은 신체의 집요함보다 그 압박이 덜하진 않지만, 불가항력 면에서 보자면 덜 집요해 보인다. 여기서 사회적인 것은 무대에 부상하긴 해도, 난입하진 않는다.
『혁명론』과 대조적으로 『인간의 조건』은 신체를 직접 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신체의 문제가 다뤄질 경우 그 강조점은 신체의 불가항력보다는 그 모방성(imitability) 쪽에 놓인다.8) 아렌트의 말을 예로 들자면, 인간을 구별 짓는 정치적 발언과 행위에서 인간이 “전달(communicate)하는 것은 스스로이지, 단순한 무언가―목마름이나 굶주림, 애정이나 적의나 공포 따위―가 아니다.”(HC 176) 목마름이나 굶주림이 “단순한 무언가”인 까닭은 그것이 우리의 생물학적 실존의 공통적이고 공유된 특성이며, 그 자체로는 우리와 다른 이들을 어떤 의미 있는 방식으로도 구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공통성(commonality, 평범함)은 근대에 들어 과대해지는데, 사회적인 것이 극히 순응적인 일련의 배치로 발전하여 “셀 수 없이 다양한 규칙들을 부과함으로써 … 경향적으로 그 구성원들을 ‘정상화/표준화’(normalize)하고 그 행실을 바로잡으며 자발적 행위나 걸출한 성취를 배제”(HC 40)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행위해야 하는 이유는 신체를 벗어나 그 집요함에서, 일시적으로, 자유로워지려는 필요성에 있지 않다. 대신 아렌트가 초점을 두는 것은 정치와 행위의 해독성 있고 독특한 소용(sui generis goods)을 통해 사회적인 것의 정상화/표준화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나거나 그를 억누르려는 필요성이다. 행위해야 하는 이유는 행위만이 특유하게 갖는 개성화의 역량, 그리고 구별 및 개성화, 걸출한 성취를 향한 자아의 갈등적인(agonal) 열정에 있다.
그들이 행위할 때, 아렌트의 행위자는 다시 태어난다(HC 176). 혁신적인 행위와 발언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자신들의 특유한 개인적 동일성들을 능동적으로 드러내며, 이로써 자신들을 인간 세계에 출현시킨다.”(HC 179) 그들이 공적 영역에서의 행위에 순간적으로 참여할 때 동일성들이 생겨나는데, 이는 그들을 목격한 목격자(spectator, 관객)들이 그들의 영웅적 수행에 관해 말하는 이야기 속에 영원히 새겨진다. 행위 이전에 또는 행위와 떨어져서는 이 자아는 동일성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이며 불분명할뿐더러 무엇보다도 전혀 흥미롭지 않다. 생명을 떠받치고 심리적으로 결정되어 있으며, 시시하고 모방가능한 사적 영역의 생물학적 피조물인 이 자아가 동일성을 얻는 것은 ― “누구”(who)가 되는 것은 ― 행위를 통해서다. 그것이 될 수도 있는 “누구”를 위하여, 자아는 근본적으로 우연적인 공적 영역의 위험을 무릅쓰는데, 여기서는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고, 행위의 결과가 “무한하고” 예견할 수 없으며, “생명이 아니라 세계가 쟁점이 된다.”9)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내버리는 것은 “무엇임”(what it is, 현재의 본질)이라는 안락한 안전함, 사적 영역에서 그것을 정의(하고 심지어 결정)하는 역할과 특성들, “그것이 내보이거나 감추는 특징들, 재능들, 솜씨들과 단점들,” 그리고 그 작인(作人)을 특징짓는 의도와 동기, 목표다.10) 그렇기에 아렌트의 행위자들은 결코 자기-주권적이지 않다. 사적 영역에서 신체들(과 심리들)의 전제주의에 추동되는 그들은,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에서도 자신들이 하는 것을 결코 실질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 행위자로서 그들이 용감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행위는 자발적이고, 무에서 솟아나거니와,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그것이 스스로를 놀라게 한다(self-surprising)는 점이다. “타인들에게는 그렇게 뚜렷하고 틀림없이 나타나는 ‘누구’는 그 개인 스스로에게는 숨겨진 상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11)
우리가 “무엇”인가("what" we are)에는 흥미롭거나 별다른 것이라고는 없으며, 심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자아에도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 사적 자아의 특성은, 우리의 장기와 마찬가지로 “전혀 특유하지 않다”(HC 206). 아렌트는 생물학적 자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이 내부가 드러난다면, 우리는 모두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12) 여기서 아렌트가 가치를 두는 수행적 화행과 대비되는 침묵은 난폭할 정도로 집요한 신체적 필요가 유발하는 묵언(muteness)보다는 차라리 엄격하게 (의사)전달적이고 극히 지시적인 ― 발화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시적인 ― 일종의 진술적 말하기이자 말없는 (의사)전달이다. 여기서 “발화는 부차적인 역할을 노는데, 그 역할이란 (의사)전달 수단이거나 말없이도 성취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부산물이다”(HC 179). 사적 영역에서 언어의 초점은 (신체의) “즉각적이고 동일한 필요와 부족을 전달”하는 것이므로, 이는 의태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이 단순하고 일의적인 신체는 발언의 도움 없이 이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아렌트는 “기호와 소리면 충분할 것”(HC 176)이라고 말한다.

다중적인, 행위하는 자아

유일하고 일의적인 신체와는 대조적으로, 행위하는 자아는 다중적이다. 이 갈라진 자아는 진술적인 면과 수행적인 면으로 갈라진 독립 선언의 구조 위에 겹쳐진다. 진술문과 신체는 모두 전제적이고 불가항력적이며 일의적이고 창조성이 없다. 양자 모두 분란을 일으키며(disruptive), 무대에 부상하거나 난입하여 정치 공간을 폐쇄시키겠다고 늘상 으르렁댄다. 이 항존하는 위협 때문에 우리는 신체적이거나 진술적인 강박의 침입에 맞서 공적 영역, 수행성의 공간을 방심하지 않고 경계(警戒)해야 한다.
행위하는 자아는 선언의 수행적 순간과 유사하다. 그것은 자유롭고 (자기)창조적이며 변혁적이고 모방할 수 없다. 아렌트의 수행문들은 복수성(plurality, 다원성)을, 그 행위자들은 다중성을 상정한다. “우리는 생각한다”는 수행문의 힘은 구별되고 다양한 개인들에 의해 현행화되는데, 이들은 행위 이전까지는 세계에 대한 관심과 구별을 향한 갈등적(agonal) 열정을 제외한다면 별 다른 공통점을 갖지 않는다(OR 118 곳곳). 마찬가지로 아렌트의 행위자들이 행위하는 것은 그들의 이전 본질(what they already are) 때문이 아니며, 그들의 행위는 사전적인 안정된 동일성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은 불안정하고 다중적인 자아를 전제하는데, 이 자아가 추구하는 것은 기껏 해 봤자 행위에서의, 그리고 행위의 대가인 동일성에서의 일시적인 자기실현이다.
아렌트는 이 다중적인 자아를 투쟁의 장소로 특징짓는데, 이 투쟁은 자아가 행위하는, 그리고 수행적 산물인 동일성을 쟁취하는 각각의 순간에 일시적으로 진정된다. 투쟁은 사적인 자아와 공적인 자아 사이에서 벌어지는데, 전자가 위험을 기피하는 폐인(stay-at-home)이라면 후자는 우연적인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용감한 심지어 경솔한 행위자다. 이 같은 사적․공적 충동의 갈라짐이 자아에 새겨지지만, 자아의 파편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적 영역에 홀로 있을 때에도 이 자아는 세 가지 구별되고 경합하며 양립불가능한 정신 능력들―사고, 의지, 판단―에 고취되어 서로 갈등하는데, 이 각각의 능력 또한 내적으로 쪼개지고 “반사되며” “스스로에게 다시” 되튕겨진다. 아렌트는 항상 “이 같은 내적 저항이 남아 있다”13)고 말한다. 자율성이 부과된 구축물이라고 아렌트가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파편적이고 다중적인 자아에게 일의성을 부과한다. 그것은 “스스로의 자아에 대한 지배와 타인들에 대한 통치에 의존하는 정복”을 포함한다. 그것은 아렌트가 설명하는 자아가 그것에 대해 저항하는 구성체(formation)다(HC 244). 이 자아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아렌트가 (때때로) 정치라 부르는 갈등주의적인 투쟁의 장소다.14) 그리고 아렌트는 이를 찬성하는데, 왜냐하면 니체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이 같은 자아의 내적 다중성이 그 힘과 활력의 원천이자, 창조적인 수행적 행위의 조건 중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15)
일의적 신체와 다중적 자아 간의 이 같은 갈라짐은 개별적 자아들의 속성으로 제시되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아렌트가 친애하는 모형인 고대 그리스에서 일부 자아들을 타인들과 구별 짓기 위해 실제로 작동한다. 여기서 행위의 경험은 극히 소수에게만 허용된다. 신체의 판에 박힌 일상과 집요함은 『인간의 조건』에서 암묵적으로 ― 고대 그리스에서 명시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 여성과 노예(그리고 또한 아이들, 노동자들, 그리고 폴리스의 모든 비-그리스인 거주자), 곧 “신체적 기능과 물질적 용무들이 숨어 있어야 하는”16) 사적 영역에서 신체와 그 필요에 전념하는 노동하는 신민들(subjects, 주체들)과 동일화된다. 이들 사적 영역의 주민들은 신체와 본성이 그들에게 강요하는 요구, 그리고 그들을 재산으로 소유하는 가구(household)의 주인이 그들에게 지시하는 명령에 수동적으로 종속(subject)된다. 지루할 정도로 뻔하고 반복적이며 순환적인 본성의 과정 및 가구의 전제주의 양 쪽에 희생당하는 그들은, 아렌트가 공적 영역에서의 행위와 동일시하는 자유를 행할 수 없게끔 결정되어 있다. 반면 자유로운 시민은 사적 영역에서의 자신들의 사적 필요를 돌볼 수 있지만(그보다는 신민들이 돌보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런 다음 이 숙명적이고 생명을 떠받치는 용무를 뒤로 하고 자유와 발언과 행위의 공적 영역에 입장할 수 있다. 사실 이 용무를 뒤로 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야말로 그들이 행위할 능력이 있다는 표지다. 정치에서는 어쨌거나 “생명이 아니라 세계가 쟁점인 것이다.”
자유로운 시민들이 이처럼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주기적으로 통행하는 것을 보면, 이 두 영역의 간극이 협상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HC 24). 그러나 이는 오직 시민들에게만, 그러니까 자신들의 신체화(embodiment) 조건과 본질적으로 동일화되지 않는 이들에게만 적용된다. 이는 실질적으로 그들의 시민권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반면] “타자들”, 그러니까 그들의 동일성이 그들의 신체화와 동일하다(이것이 그들의 야만을 측정하는 기준이다)는 본성 자체 때문에 결코 시민이 될 수 없는 이들의 경우 공/사의 불통(不通)을 협상할 여지가 없다.
이처럼 문제점이 많은 정치적 행위를 아렌트가 폴리스에 귀속시키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를 아렌트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옳을까?17) 분명 아렌트는 그녀 식의 사적 영역과 거기서 일어나는 노동 및 작업 활동들이 특정 계급의 인민이나 신체, 또는 특히 여성과 동일화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그러나 한나 피트킨이 지적하듯, 경우에 따라 사적 영역과 노동 및 작업 활동들은 특정한 계급이나 집단보다는 “공적 영역이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특정한 태도(들)”을 표상한다.18) 예를 들어 노동, 곧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조응하는 활동”이라는 하나의 양태 안에서는, 생명의 숙명론적 본질과 특정한 종류의 합리성의 도구적 성격이 우리를 너무나 철저하게 지배하는 나머지 정치의 자유 및 특유의 생성적인 수행성이 떠오를 수 없다(HC 7). 노동 및 작업에 관해 아렌트가 정말로 근심한 것은 그것들이 행위를 방해하거나 파괴하는 특수한 감성들(sensibilities)을 요구하고 일으킨다는 것이기 때문에, 피트킨은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아마도 ‘노동자’는 그의 생산 방식이나 빈곤이 아니라 그의 ‘공정’(工程, process) 지향적인 관점에 따라 식별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가 필연에 떠밀리는 것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그가 스스로를 행위할 능력이 없이 떠밀리는 존재라고 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19)
또는 차라리 정치적 행위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마도 노동하는 감성일 텐데, 이 감성은 활동으로서의 노동에 특징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어떤 특정 노동자의 사고를 특징지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니와, 이 감성은 노동자가 노동할 때 표현되는 노동하는 본성이나 본질을 신호하는 것으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 이 함 배후에는 어떤 “~임”도 없다. 동일한 분석이 작업에도 적용된다. 이 설명에서는 정치적 행위에서 배제되는 개인들의 명확한 계급이란 없다. 대신 정치는 다양한 감성들, 태도들, 성향들, 그리고 접근들로부터 보호되는데, 이 모두는 모든 자아들과 주체들을 일정한 정도로 구성하고, 자아를 지배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며, 아렌트가 가치를 두는 행위의 이해(들)과 양립할 수 없다. 요컨대 노동, 작업, 행위를 감성들로 해석함으로써 그것들을 탈본질화하거나 탈자연화(denaturalize, 변성(變性))할 수 있다. 각각은 스스로를 수행적 산물로, 즉 어떤 계급이나 성별의 진정한 본질의 표현이 아니라 개인들과 사회들, 그리고 정치적 문화들의 행위와 행실, 규준, 그리고 제도적 구조들의 항상 (침전된) 산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20)
노동과 작업과 행위를 이처럼 (경합하는) 감수성들로 읽는 것은 자아를 다중성으로 보는 아렌트의 관점과 양립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신체를 진술의 폐쇄와 모방성, 불가항력의 주문으로 취급하는 아렌트의 견해를 부드럽게 전복하는 길을 가리킬 것이다. 아렌트의 설명에서 노동은 결국 신체적 기능일뿐더러 신체에 전념하는 양태, “생명 과정 자체에 필요한” 사물들에 몰두한 양태가 되는 것이다. 만일 노동(모든 것을 때때로 떠미는 결정적 감성)이 수행적 산물일 수 있다면, 신체 자체는 왜 안 되겠는가? 노동, 작업, 행위를 감성으로 보는 이 같은 독해는 신체를 탈본질화하고 탈자연화하고, 아마도 복수화하며, 어쩌면 심지어 그것을 아렌트적인 의미에서 수행적 산물, 행위가 가능한 장소로 보게 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밀고 가지 않겠는가?

공과 사를 구별하기

이렇게 아렌트의 설명을 급진화하는 데 방해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수행문과 진술문이라는 표제 아래 함께 모아 둔 일련의 구별들에 아렌트가 의존한다는 점이다. 아렌트는 이 구별들을 협상할 수 없고 겹치지 않는 이원적인 대당으로 다루며, 그것들을 그녀 작업의 (움직이는) 중심에 놓여 있는 (역사적으로 매우 불평등한) 공/사 구별 위에 배치한다. 물론 앞으로 밝혀질 것처럼 방해가 되는 것은 하나 이상인데, 왜냐하면 아렌트가 다층적인 체계로써 자신의 공/사 구별을 확고히 하기 때문이다. 이 구별은 수많은 이원성을 낳는데, 각각은 그 이전 것에 덧붙여진 새로운 층의 보호막이며, 이들은 아렌트가 그것에 할당한 존재론화하는(ontologizing) 기능에 저항하는 구별을 더 견고하게 지키려는 의도를 갖는다. 수행문 대(對) 진술문, “우리는 생각한다” 대 “자명한 진리”, 다중적 자아 대 일의적 신체, 남성 대 여성, 저항가능한 대 불가항력적인, 용감한 대 위험회피적인, 발언 대 묵언적 침묵, 능동적 대 수동적, 비범한 대 평범한, 개방적 대 폐쇄적, 권력 대 폭력, 자유 대 필연, 행위 대 행실, 비범한 대 평범한, 모방불가능한 대 모방가능한, 분란 대 반복, 빛 대 어둠, 요컨대 공 대 사.
왜 이렇게 많은가? (선)긋기가 아렌트적 의미에서 비범한 행위긴 하지만(그것은 새로운 관계들과 새로운 현실들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이 구별을 긋는 것 자체에서 아렌트는 불안한 반복의 순환에 사로잡힌다. 이 모두를 필요로 할 정도로 희박한 구별이 침식당하는 것에 저항하려는 영웅적 노력 안에서, 이원적 구별과 형용사적 쌍들은 서로의 위에 덧쌓인다. 참으로 희박하지 않은가. 아렌트의 설명에서 이 같은 구별들이 서로 침투하는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아렌트는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에 너무나도 쉽사리 식민화되고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에 관해 아주 솔직하다.(그녀가 『인간의 조건』과 『혁명론』에서 대답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다.) 그녀의 솔직함 때문에 우리는 이 구별들을 긋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사적 영역의 제국주의에서 공적인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역도 성립한다. 아렌트에게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사적 영역의 신뢰성, 일의성, 그리고 평범함을 행위와 정치의 분란에서 보호하는 것이다.21) 요컨대 아렌트는 행실뿐만 아니라 행위 자체도 길들인다. 그녀는 행위에게 근거지라 부를 만한 장소를 부여하고, 행위에게 그것이 속해야 하는 이곳에 머무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물론 행위는 이를 거부한다.
행위의 진정한 위험은 바로 여기, 이 거부에 있다. 스스로를 놀라게 하는(self-surprising) 행위의 특성은, 행위가 항상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의도대로 되어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제한되지 않는다. 또한 행위자로서의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된 것이 “누구”인지에 대해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가 스스로를 놀라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 곧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난다(it happen to us)는 의미에서다. 우리는 수행할 것을 결정하고 난 후에 공적 영역에 입장하여 그 영역을 특징짓는 우연성에 우리의 수행을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다. 종종, 정치적 행위는 우리에게 도래하며, 신중하다거나 계획적이라거나 의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를 휘말리게 한다. 행위는 그 행위자들을 생산한다. 우연적이고 일시적으로(episodically, temporarily) 우리는 행위의 갈등주의적 성취다. 아렌트의 설명에서 미국 혁명은 미국 혁명가들에게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으로 이끈 운동은 부주의(inadvertence)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혁명적이지 않았다”(OR 44). 그리고 때때로, 특히 그녀가 의지를 설명할 때, 행위는 원래 사적 영역에서, 사적인 자아에게 일어난다.
아렌트는 의지를 행위의 선행항로 간주하지만, 그것이 실은 행위를 지연시킨다는 점에서 기묘한 종류의 선행항이다. 반사적이고, 내적이며, 원함과 원치 않음(willing and nilling)의 잠재적으로 영원한 동역학에 사로잡혀 있고, 이 동역학을 저지할 능력이 없는 의지는 구원을 기다린다. 그리고 구원이 도래할 때, 그것은 행위라는 형태 자체로 온다. 행위는 의지의 강박적인 반복에 분란을 일으킴으로써, 의지의 마비적 “우려와 근심”에서 자아를 해방한다. 행위는 사적 영역에, 말하자면 진입한다(come in). 그것은 아직 채비를 갖추지 못하고 완전히 의지를 굳히지 않은(왜냐하면 또한 여전히 원치 않기 때문에) 사적 영역의 주체에게 일어난다. 쿠데타처럼 행위는 “벨레(velle, ‘원한다’는 뜻의 라틴어)와 놀레(nolle, ‘원치 않는다’는 뜻의 라틴어) 간의 갈등을 중단”시키고 의지를 구원한다. “즉 의지(Will)가 구원받는 것은 의지하기를 그치고 행위하기 시작함으로써이며, 중지가 의지하지 않을 의지(will-not-to-will)의 행위에서 비롯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또 다른 의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22)
공/사 영역의 이종교배 사례들은 넘쳐 난다. 그것들은 이종교배의 불가능성, 도착(倒錯), 기괴함을 설명하게 되어 있는 구별들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렇다면 성/성별 수행성을 다룬 한 페미니스트 이론가처럼 “신체 자체에 수행성을”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23) 무엇이 공/사 구별의 희석을 금지하는가? 사적 영역의 진술적 동일성들이 실제로는 개인들, 사회들, 그리고 정치적 문화들의 규준들과 제도적 구조들, 행실들, 행위들의 (침전된) 산물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에 대한 벌이 무엇인가? 내기에 걸린 것은 무엇인가?
아렌트에게서 내기에 걸린 것은 행위 자체의 상실, 행위가능한 것(actionable, 기소할 수 있는)이 허용되는 영역의 상실이다. 이것이 근심의 진정한 원인이며, 특히 사회적인 것의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규칙들”이 정상적이고 행실 바른 주체들을 생산하는 데서 거둔 놀랍고 불편한 성공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을 허용하기 위해 아렌트는 공적 영역에서 거의 모든 내용을 비워 버린다. 내용을 가진 것들은 어쨌거나 진술문이고, 아렌트의 이론화에서 폐쇄의 장소이며, 수행문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장애물이다. 한나 피트킨이, 저 시민들은 “저 광장(agora)에서의 끝없는 회의(palaver)에서 [무엇에] 관해서 함께 얘기하는가”라고 어리둥절하게 여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24) 아렌트가 행위를 사실상 형식화하는 것, 협상불가능한 공/사 구별로써 행위를 보호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사회적인 것의 그 어떤 부상보다, 표면적으로는 불가항력적인 신체들의 그 어떤 난입보다 더 행위를 상실하고 폐색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공/사 구별의 침투성, 부정확성, 모호성은 그것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희석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불가항력적으로 새겨진 아렌트 자신의 공/사 구별을, 모래 위에 그어진 선, 그 자체로 부당한(illicit) 진술문, 구성적인 표식이나 문헌, 반박․증대․수정되기를 갈등주의적으로 호소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어떻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공과 사의 지리적이고 독점적인 은유를 없애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어떻겠는가? 아렌트의 공적 영역을 고대 그리스의 아곤과 같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행위를 일으킬 법한 ― 지형(학)적인(topographical) 동시에 개념적인 ― 다양한 (갈등주의적) 공간들의 은유로 대한다면 어떻겠는가?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건으로서의 행위, 평범한 사물의 질서에서 새로움과 구별로의 길을 여는 갈등주의적 분란, 불가항력적인 것에 대한 저항의 장소, 다양한 행실을 구성하고 통치하며 통제하려는 정상화/표준화하는 규칙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우리는 훨씬 더 광범위한 진술/확인의 정렬 안에서 정치적 행위의 장소들을 식별할 수 있는 위치에 설 것인데, 이 정렬의 범위는 신이나 자연, 기술, 자본 등의 자명한 진리에서부터 동일성, 성별, 인종, 종족성 등에 이를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행위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 사적 영역에서 말이다.
아렌트는 물론 그녀의 설명을 이처럼 수정하는 것이 지나친 정치화라고, (낸시 프레이저가 아렌트를 대변해서 쓰듯) “모든 것이 정치적일 때, 정치적인 것의 의미와 종별성은 희미해진다.”25)고 염려할 것이다. 프레이저가 볼 때 정치에 대한 아렌트의 이론화는 하나의 역설에 빛을 비춘다. 만일 정치가 모든 곳에 있다면, 그것은 아무 데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수정된) 설명에서 모든 것이 정치적이지는 않다. 그것은 단지 정치화로부터 존재론적으로 보호받는 것은, 필연적으로나 자연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공과 사의 구별은 정치 투쟁의 수행적 산물로서, 어렵사리 획득되고 항상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이 역설은 역전될 수 있다.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의 분할을 정초적으로 보존하려는 충동은 정치적인 것의 보존을 염려하는 것이라고 표명되지만, 그 자체는 반정치적인 충동이다. 아렌트는 이를 알았다. 독립 선언의 진술적이고 정초적인 토대를 그녀가 비판할 때 기초로 삼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선언의 자명성에 수행성을 적용하도록 그녀를 자극한 것도 이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충동이 아렌트의 공/사 구별 자체에 수행성을 적용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이 같은 갈등의 분산은 아렌트가 이론화한 정치의 또 다른, 사뭇 상이한 계기에 의해 정당화될 수도 있다. 아렌트는 상황의 긴급함 때문에 정치가 지하에서 움직이도록 강제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녀는 점령 프랑스의 지하 정치에 유의하면서, 저항의 장소, 전복적인 정치 행위의 네트워크가 증식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했다.26) 아렌트가 “사회적인 것의 부상”과, 틀에 박히고 관료적이며 관리적인/행정적인(administration) 정체(政體)에 의한 정치의 전위라고 묘사한 것을 점령이라는 용어로 불러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제도적 장소가 부재할 때 페미니즘 정치는 지하에 숨어들면서, 개인적이면서도 제도적인 동일성들의 틈과 균열에서 조심스럽게 스스로의 거처를 정하고, 새로운 관계들과 현실들을 확립한다는 희망을 품고 수행적이고 갈등주의적이며 창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사적 영역에서 행위하기

사적 영역의 자명성 안에 위치한 갈등주의적인 수행성의 정치라는 이상의 개념을 탐색한 것은 주디스 버틀러인데, 그녀는 특히 성과 성별의 구축 및 구성에 초점을 둔다. 버틀러는 사적 영역의 진술―아렌트가 자연 순환의 무심하고 지루하며 완벽하고 억압적인 반복이라고 서술한 것―의 가면을 벗기고, 일상적으로 성/성별 동일성을 (재)생산하는 수행성으로 이들을 재서술한다. 이 같은 수행들은 “이성애적 계약”에 의한, 그리고 그것에 중심을 둔 이원적인 성별 구성의 규제적 실천의 강제적 산물이라는 것이 버틀러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행위들은 “내적으로 불연속적이다.” 그것들이 생산하는 동일성들은 “이음매가 없지”(seamless) 않다. “지시대상[자아]의 다중성과 불연속성은 기호[성/성별]의 일의성을 조롱하고 이반한다.” 이 조롱(mockery)과 반란의 공간들, “이런 행위들 간의 자의적 관계 안에, 다른 식으로 반복할 가능성 안에” “성별 변혁의 가능성들”이 있다.27) 전복적인 반복은 대안적인 성/성별 동일성들을 수행적으로 생산할 것인데, 이 동일성들은 증식할 것이고 이 같은 증식(과 전략적 전개) 속에서 지금 성/성별 동일성들을 규제하고 남김없이 구성하려 드는 사물화된 이원성들에 대항하여 저항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략은 동일화주의적인(identitarian) 관리, 규제, 표현에 저항하거나 거기에서 벗어나는 공간들을 식별함으로써 동일성들을 수행적 산물로 탈권위화․재서술하고, 성공적인 진술문을 열망하는 동일성들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렌트의 용어를 빌자면 이 전략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성별 동일성들이 행위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수정되고 증대될 수 있다는 믿음에 의지한다. 정치 이론의 과제는 새로운 시작들을 환대하는 (긴장과 결정불가능성, 그리고 자의성의) 공간들을 넓힘으로써 (재)정초의 실천을 돕고 북돋는 것이다.28) 이들은 정치의 공간, 수행적 자유의 (잠재력 있는) 공간들이다. 여기서는 사적 영역에서 행위가 가능해지는데, 왜냐하면 사회적인 것과 그 정상화/표준화의 장치들은 아렌트가 지나치게 속단한 것과 달리 완벽한 폐쇄를 획득하는 데 시종일관 실패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것의 야망이 이처럼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은 정치를 마비시키는 응고되고 딱딱하며 사물화되고 자연화된 동일성들과 정초들을 전복할 수 있다는 것, 행위가능한 것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것, 수행적 행위들을 진술적 진리들로 침전시키는 것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치와 동일성의 문제에서는 그것을 바로 잡는다거나(get it right) 완전히 끝장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신념을 견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불가능성은 아렌트의 공적․사적 영역의 필요와 억압을 구조화한다. 그리고 이는 어떤 동일성의 정치라도 문제시하고 저항할 수 있는 훌륭한 이유를 제공해 준다.
한나 피트킨은 이익, 그리고 공유된 물질적 필요 및 용무의 재현/대의(representation)의 재판정이나 실천으로 정치를 이론화할 것을 거부하는 아렌트를 열렬히 비판한다.29) 아렌트의 정치가 아무런 함의나 내용도 없을 만큼 형식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근심한다는 점에서는 그녀가 옳다. 그러나 피트킨은 아렌트가 제시한 전망의 유망함(promise, 약속)을 헤아리는 데는 실패한다. 정치적 행위가 우리가 “무엇”인지를 ― 즉 우리의 사물화된 사적 영역의 동일성들을 ― 재현/대의하는 장소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아렌트의 태도에 유망함이 있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재현/대의의 정치는 부과적이고 어긋나는(ill-fitting) 이익들과 동일성들의 그릇된 공통성을 투사한다. 더욱이 그것은 중요한 대안을 차단한다. 그 대안이란, 우리가 “무엇”인지를 재생산하고 재-현(re-present)하는 대신, 우연적으로(episodically) 새로운 동일성들을 생산함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를 갈등주의적으로 낳는 수행적 정치인데, 이 동일성들의 “새로움”은 “행위하는 인간들/여성들([wo]men)에 의해 ― 비록 의식한 것은 아니더라도 ― 시작되고, 그들의 후손에 의해 널리 상연되고 증대되며 오래 간직되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될 것이다.30)

동일성의 정치

아렌트의 행위 이론에서 수행성이 중심성을 차지하는 것은, 성별이나 인종, 종족성 또는 국적(nationality, 민족성) 같은 공유된 (공동체) 동일성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정치를 바라보려는 시도에 아렌트가 반대하는 데서 비롯한다. 수행성과 갈등주의는 아렌트의 설명에서 우연의 일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아렌트의 정치가 항상 갈등주의적인 것은 그것이 표현주의의 매력에 저항하기 때문인데, 이는 자아를 그 동일성들이 항상 수행적으로 생산되는 복잡한 다중성의 장소로 보는 그녀의 관점을 위한 것이다. 이 갈등주의는 주체성의 무엇-임(what-ness)의 자기만족적 친숙함을 삼가고, 행위와 새로운 관계 및 현실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상쾌한 역량을 위해 사회적인 것의 유혹적인 안락을 거절한다.
아렌트의 시각에서 볼 때, 선재적(先在的)이고 공유되며 안정된 동일성의 기초 위에 스스로를 구성/입헌하는 정치 공동체는, 정치의 공간을 폐쇄하고 정치적 행위가 상정하는 복수성과 다중성을 동질화하거나 억압할 위험이 있다. 아렌트는 복수성이나 다중성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반드시 “공적 영역 자체의 폐지”와 “모든 타인들에 대한 자의적 지배,” 또는 “실재적 세계를 이 타인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상상적 세계로 교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HC 220, 234). 이 같은 교체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치 공동체들의 비동일성과 이질성들로써, 그리고 또한 정상화/표준화적 주체성의 구축과 자율성의 부과에 대한(또한 성/성별 동일성들을 남성과 여성,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이원적 범주로 형성하려는 것에 대한) 자아의 저항으로써 정치 공간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자아를 정의하려 드는 사회적, 심리적, 사법적 범주들에 대한 자아의 갈등주의적 어긋남은 권력 발생의 원천이자, (대안적) 수행성(들)을 발생시키는 장소가 있다는 신호다.
아렌트가 민족 국가에 적의를 품었던 것은 이처럼 정치와 행위의 조건으로 차이와 복수성을 염려하기 때문인데, 민족 국가의 혐오스러운 “결정적 원칙”은 그것의 “과거와 기원에 대한 동질성”이다(OR 174). 그리고 이것은 또한 그녀가 페미니즘 정치라는 주제에 침묵한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다. 아렌트는 “여성의 경험”이나 “여성의 앎의 방식” 안에서 동질성을 선포하려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굉장히 경계했었을 것이다. 그녀는 저 (이른바) 동일성의 경계 내부의 중요한 차이와 복수성들―또는 심지어 [동일성의 경계]에 대한 저항―을 숨기(거나 금지하거나 처벌하거나 침묵시키)는 보편성을 함축한다거나 그것을 열망하는 여성 범주에 의지하는 어떤 페미니즘 정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의견은 추리한 것인데, 왜냐하면 아렌트가 자신의 이론 작업에서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즘 정치라는 쟁점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그동안 아렌트에게 직접적으로 성별 문제를 제기하길 꺼려했는데, 왜냐하면 아렌트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자들이 이 문제를 도덕주의적인 방식으로 제기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렌트가, 여성으로서, “여성 문제”를 제기하거나, 적어도 여성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를 이론화할 책임이 있다고 가정했다. 그녀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부역자(collaborator)로 규정된다. 이 같은 고발을 가장 쌀쌀맞고 강력하게 제기한 것은 아드리엔느 리치인데, 그녀는 『인간의 조건』이 “거만하고 불구적인 책”이고 “남성 이데올로기로 길러진 여성 정신의 비극”을 보여 준다고 묘사한다.31) 나는 여기서 가정하는 책임에 대해 별로 확신하지 않기에, 이 질문들을 제기하되 이런 방식으로는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이런 책임을 할당하거나 함축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아렌트가 한 패(joiner)가 되기를 거부한 것에 대해, 동일성 정치와 동일성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을 그녀가 경계한 것에 대해,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해(뿐만 아니라, 내 생각에, 그녀 자신에 대해) “그녀 세대의 모든 다른 여성들과 정치적 신념들이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린 여성해방운동에 대해 그녀가 보인 혐오는 중요한 것이었다. 여성 참정권론자(suffragette) 식 평등의 면전에서 그녀는 ‘작은 차이 만세’(Vive la petite différence)라고 대답하고 싶었을 것 같다.”32)라고 말하게 한 놀라운 외고집에 대해 얼마간 존경심을 느낀다.
괴짜스런 논평이다. 그 정치적 헌신을 정치가 아닌 “운동”과의 “불가항력적인” 동일화의 산물로 기각당한 여성 참정권론자들에게는 확실히 부당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흥미로운 논평이긴 하다. 이 룩셈부르크가 찬사를 보냈다고 아렌트가 상상하는 이 작은 차이란 무엇인가? 이는 성적 차이가 아니다 ― 이는 차이이며, 전혀 작지 않다. 작은 차이란 (비록 아렌트의 의미심장한 어법 선택으로 그 자체 성별화되긴 했지만) 성/성별-내적인 차이다. 그것은 룩셈부르크와 여타 여성들을 구별하는 차이다. 아렌트가 룩셈부르크에게서 존경한 것은, 아렌트 자신이 얻으려고 분투한 자질이다. 소속의 거부, 특정한 종류의 평등보다 차이나 구별의 선택이 그것이다.33) 그녀가 이 절에서 얘기하는 “여성 참정권 평등”은 이 여성들이 여전히 얻으려고 분투하는 남성 유권자들과의 공민적 평등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 참정권론자들 사이의 평등, 공동의 대의에 대한 그들의 헌신인데, 이 대의의 명목 하에 그들 간의 차이가 말소된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아렌트가 구성하고 찬사를 보내는 로자 룩셈부르크는, “외부자”이자, “그녀가 혐오했던 나라의 폴란드계 유대인”이며, “그녀가 곧 경멸하게 되는 [정]당”의 구성원이자, “여성,” 곧 여성운동의 “불가항력적” 꾐에 저항하고, 다른 투쟁들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이로써 동질성이 아닌 구별의 동일성을 혼자 힘으로 쟁취한 탁월한 유형의 여성이다.
동일성의 정치에 대한 동일한 감정들, 동일한 거리두기의 기술과 혐오가 게르숌 숄렘과 아렌트의 서신교환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이 서신교환은 아이히만(Eichmann)에 관한 아렌트의 논쟁적 책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은 또는 마찬가지로 아렌트의 (자칭 사적 영역의) 유대인으로서의 동일성이라는 용어에 관한 논쟁이었다.34) 이 짧은 서신교환은 동일성의 정치에서 계발적이고 도발적인 연구다. 아렌트에게 보낸 숄렘의 편지는 동일화와 정치화를 행사한다. 그는 아렌트에게 그녀의 책이 “신자의 확신”을 거의 담고 있지 않고, “허약함”과 “비열함, 그리고 권력욕(power-lust)”을 표출하며, “독자(one)에게 … 편집자에 대한 … 신랄함과 치욕의 느낌을 남긴다”고, 그는 그녀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그녀의 책에 흐르는 “냉혹하고” “거의 냉소적이고 악의가 느껴지기까지 하는 어조”에 그녀의 주의를 환기시켜야만 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친애하는 한나”)에게서 어떤 “아하바트 이스라엘(Ababath Israel, 이스라엘을 사랑하라는 히브리어), ‘유대 민족을 사랑하라’”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고, 이 같은 부재는 “독일 좌파 출신의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전형적이다[고 말한다]. 무엇이 숄렘에게 이 모든 것들을 말할 수 있게, 그리고 그것들을 도덕적 결점으로 낙인찍을 수 있게 허가하는가? 그것은 그가 아렌트를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딸로만 [여길 뿐], 다른 식으로는 전혀”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35)
아렌트는 두 가지 전략적 거부로 대응한다. 첫째, 그녀는 그녀가 “전적으로” 유대적일 뿐, 차이들이나 다른 동일성들에 의해 갈라지거나 구성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둘째, 그녀는 유대적 동일성이 표현적이며, 공적 효과를 갖고 특정하고 분명한 책임들을 동반한다는 숄렘의 가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녀는 특정한 종류의 행위, 언표, 그리고 감정이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 나와야 마땅하다는 주장에 저항한다. 그러나 시종일관 그녀는 숄렘과 마찬가지로 유대적 동일성이 (그녀의 다중적이지만 사적인 동일성의 다른 사실들처럼) “논의의 여지가 없고” 일의적이며 진술적인 “사실”이며 “논의”나 “논쟁에 열려 있지 않다”고 가정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녀에 관한 숄렘의 많은 진술들이 “단순히 틀렸으며” 그녀가 그것을 교정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녀는 “‘독일 좌파 출신 지식인들’ 중 한 명이 아니다.” 만일 아렌트가 “‘어딘가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독일 철학의 전통에서다.”
숄렘이 “나는 당신을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딸로만 [여길 뿐], 다른 식으로는 전혀 여기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아렌트는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진실은, 내가 나 자신인 것 이외에 어떤 다른 식이라거나 다른 무언가인 척 해 본 적이 결코 없으며, 그런 방향으로는 유혹조차 느껴본 적 없다는 것이다.” 요점은 그녀가 유대 민족의 “딸”과 다른 무언가인 척 해 본 적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단지 그녀임(what she is)과 다른 무언가인 척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그녀가 무엇인지(what she is)에 관해 결코 말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식별하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는 전부는 “나 자신과 다른 … 무언가[인 척 하는 것은] …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 말하자면 약간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다시, 그녀 자신에 대한, 이 경우에는 여성으로서의 긍정적 식별이 없고, 단지 그 역을 주장하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을 뿐이다.(그것을 긍정적으로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36)
숄렘이 그녀를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딸로만 [여길 뿐], 다른 식으로는 전혀” 여기지 않는 곳에서, 아렌트는 그녀 자신의 “유대성(Jewishness)을 내 삶의 논의의 여지가 없는 사실적 소여(所與, data) 중 하나”로 “항상 여겨 왔다.” 그녀는 자신의 유대성이 숄렘이 투사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전적으로” 구성하는 동일성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아렌트는 다른 “사실들”에 의해서도 구성되는데, 그녀가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그 중 두 가지다 ― 성/성별, 그리고 독일 철학을 수업한 것이 그것이다.37) 그렇기에 아렌트는, 그녀가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딸”이라는 숄렘의 묘사는 그가 그녀에게 “붙이고 싶어 하는” “꼬리표”이지만, 그것은 “과거에 들어맞아 본 적이 없고, 현재에도 들어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38) 이는 어긋난 채 들러붙어 있는 꼬리표인데, 왜냐하면 아렌트의 유대성은 복잡하고 갈등적인 동일성의 파편이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볼 때, 그녀가 이해하는 식의 유대성이라는 사실에서는 아무 것도 따라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유대성은 사적 문제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며, 전혀 행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점, 그 사실성에 아렌트는 감사함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에 대한 기본적 감사 같은 것이 있다. 주어졌던 것이지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퓌세이(physei, ‘자연적’이라는 뜻의 희랍어)이지 노모이(nomoi, ‘인위적’이라는 뜻의 희랍어)이지 않은 것에 대한,” “토론이나 논쟁 너머의” 것들에 대한 [감사]. 그녀의 종족적, 종교적, 문화적 동일성이 주어진 것이자 사적 사실, 만들어지거나 행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 같은 단언은 숄렘에게 보내는 아렌트의 편지에 구조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아렌트는 그녀의 사적 동일성이라는 사실들에 대한 토론으로 편지를 시작하는데, [이 토론은] 그녀가 사실적 오류라고 간주하는 것들을 겨냥한 일련의 정정으로 제시된다. 이 같은 사실에 관한 문제는 흥미롭지 않으며, “논쟁에 열려 있지 않다.” 아렌트는 편지를 전(前)정치적인 전문(前文)으로, 뒤따르는 정치적 논쟁과 분리된 것으로 제시한다. 오직 후반부만이 발언과 “토론할 가치가 있는 문제들”을 다룬다. 그녀는 이 구별을 강조하기 위해, 동일성에 중심을 둔 예비 단계가 끝나고 정치적 논쟁이 개시된다는 점을 표시하는 다음 문구로 문단을 시작한다. “요점으로 들어가자면.”
그러나 이 편지에서 아렌트가 감사해 한 바로 그것이야말로, 이 대립에서 숄렘이 그녀에게 용인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숄렘은 그녀의 유대적 동일성을 사적 사안으로 대하지 않으려 한다. 숄렘이 볼 때, 식별가능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특정한 공적 책임들과 함의들이 아렌트의 유대성이라는 논의의 여지가 없고 일의적인 사실에서 따라 나온다. 이것이 아렌트가 숄렘의 포함에 저항하는 이유고, 그가 유대 민족의 “전적으로 딸로만” 그녀를 기록하는 것에 저항하는 까닭이다. 그녀는 숄렘이 유대인에게 귀속시키고 요구하는 평등이나 동일성보다, 차이 심지어 작은 차이를 소중히 여긴다. 그녀는 그의 동일성의 정치에서, 행실이 동질화되게끔 통제하고 독립적 비판을 침묵시키는 음험한 자원을 본다.
유대적 동일성의 사적 자유, 곧 숄렘의 고발 및 매우 공적이고 극히 정치화된 이 동일성 논쟁에 의해 이미 문제화된 사적 자유를 고집하는 대신, 아렌트는 유대성을 동일성으로 구성하는 숄렘의 용어에 더 잘 대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아렌트가 쓸 수 없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녀는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숄렘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녀와 숄렘 모두 유대 동일성을 일의적이고 진술적인 사실로 간주한다. 그들이 의견을 달리 하는 것은 그것이 공적인 사실이냐 사적인 사실이냐 여부,39) 그것에서 행위를 위한 요구나 지침이 따라 나오느냐 여부일 뿐, 양쪽 모두 유대성이 “만들어질 수 없고”, 더욱이 말소(unmade)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것은 행위자가 하는 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숄렘이 아렌트를, 그녀가 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외양상의 어떤 “아하바트 이스라엘”의 완전한 결여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딸”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렌트는 그녀가 무엇을 하든 유대인으로서의 그녀의 진정한(authentic) 동일성을 부인하거나 전복할 수 없었다. 이 점에 관해서 아렌트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녀의 방어 전략은 숄렘의 비난의 기본적 전제를 흉내 낸다. 그녀가 행한 그 무엇도 그녀의 유대성이라는 논의의 여지가 없고 진술적 사실을 의문시하거나 전복할 수 없다.
유대적 동일성을 진술성으로 간주함으로써, 아렌트는 유대 동일성에 수행적으로 개입하거나 심지어 전복할 기회, 그 역사성과 이질성을 탐색할 기회, 일의성에 대한 그것의 열망을 몰아내거나 좌절시킬 기회, 그 분화된 가능성들을 증식시킬 기회들을 포기한다. 이 때문에 아렌트에게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특정한 책임들을 함축하고 충성을 요구하는 동질적이고 알의적인 동일성으로 유대성을 묘사하는 숄렘에게 비판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어떤 자원도 남지 않게 된다. 좋은 유대인과 나쁜 유대인을 구별하는 숄렘의 진술적 기준은 본래대로 남아 있다. 건강한 여성과 불구화된 여성을, 충성스러운 여성과 배신한 여성을 구별하는 아드리엔느 리치의 전략에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될 것이다. 그녀가 아렌트를 “전적으로 (여성으로) [여길 뿐], 다른 식으로는 전혀”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독일 철학의 수업 같은) 아렌트의 다른 구성적 동일성들이 아렌트의 ― 여성으로서의 ― 진정하고 일의적인 동일성에 대한 배신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숄렘이나 리치, 나아가 모든 동일성의 정치에 맞선 보다 강력하고 고무적인 방어책은 불가항력적인 것에 저항하는 것인데, 그 수단은 그것을 사유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자칭 불가항력적이고 동질적이며 진술적이고 일의적인 동일성의 가면을 벗겨, 그것이 수행적으로 생산된 것이고, 다중적인 수행과 행실의 균열되고 파편적이며 어긋나고 미완성적이며 침전되어 있고 이음매로 가득한 산물이며, 헤아릴 수 없는 반복과 강제의 자연화된 산물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독립 선언의 “자명한 진리”의 강제적 폭력에 맞서 그 문헌의 “우리는 생각한다”에 힘을 불어 넣은 아렌트의 전략이다. 이 고무(鼓舞)의 전략을 전유하여, 어떤 유대적이고 페미니즘적인 동일성의 정치가 가정하는 일의성과 자명성의 폭력적 폐쇄를 폭로하고 개입하며 전복하거나 저항한다면 어떻겠는가?
여기서의 전략은 기성의 동일성들을 중단시키는 것, 그리고 동일자(sameness)의 평등을 위해 차이를 말소하지 않는 페미니즘과 동질화하지 않는 유대성을 이론화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전략은 차이들을 사물화하기보다 그것들을 증식시키고 탐색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자신의 유대성을 (행)하는(do one's Jewishness) 수많은 길, 자신의 성별을 (행)하는 수많은 길이 있다는 고무적인 발견이나 강조가 될 것이다.40) 어떤 (이른바) 사적 영역 동일성이 갖는 동질화하는 효과는 약화될 것이고, 이는 “동일성들” 자체의 틀 부에서 더 많은 분화와 대항가능성을 허용할 것이다.
이 중단의 전략은 아렌트가 찬사해 마지않았던 국외자(局外者, pariah, 최하층민)이라는 개념 및 국외자의 관점에 대한 중요한 대안을 구성한다.41) 아렌트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하여 아렌트가 존경했던 다른 이들로 상징되는) 의식적 국외자의 외부자(outsider)적 위치를, 그 곳에 있는 이가 독립적인 비판과 행위 그리고 판단에 필수적인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특권적인 장소로 간주한다. 그러나 아렌트가 국외자 위치를 입지(location)하는 것은, 형성된 동일성들 내부에서는 어떤 비판적 지렛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문제적인 가정에 힘입는다. 아렌트가 국외자의 외부자적 지위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동일성들이 성공한다고, 그들이 분명 이음매 없음(seamlessness)과 폐쇄를 획득한다고, 그들은 필연적으로 동질화적이라고 그녀가 믿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전개하고 탐색한 갈등주의적인 수행성의 정치는 그 대신에 동일성들이 결코 이음매가 없지 않다는 것, 기존 동일성들의 단절, 부적합성, 그리고 어긋남들 내부에 비판적인 지렛대의 장소가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그것은 따라서 국외자의 위치는 그 자체로 불안정하다는 것, 국외자는 결코 실제로 외부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의 장소들은 다중적이라는 것을 가정한다. 이 다중적인 장소들은 아렌트적 정치의 특권화된 공적 공간을 탈중심화하고 행위의 장소들을 단일한 공적 영역 너머로 증식시킴으로써 잠재적 권력과 저항의 보다 광범위한 공간들을 탐색한다.42)
이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은 또한 갈등주의를 일종의 공동 행위(action in concert)로 가정함으로써 아렌트의 국외자에 함축된 개인주의에서 벗어난다.43) 갈등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이 개입하는 동일성들은 공유되며, 공적 실천들은 그저 개인적 개성들의 표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갈등주의적 행위가 한 명이나 여러 명의 행위자들에 의해 수행될 수도 있겠지만, 행위의 요점은 다른 이들이 자신의 차례에 각각 탐색하고 증대하며 수정할 수 있는 개성화와 정치의 새로운 공간들을 개방하고 정초함으로써 사회적인 것의 정상화/표준화하는 효과를 상쇄하는 것이다. 이 페미니즘 정치가 전제하는 것은 “여성”이라는 이미 알려지고 통일적인 동일성이 아니라, 갈등주의적이고 차별적이며 다중적인 비동일화된/식별되지 않은(nonidentified) 존재들로서, 이들은 항상 생성 중이며 항상 증대와 수정을 요청한다. (어떤 동일성의 표현적인 열망에 저항하지만 마찬가지로 항상 감응하는) 갈등주의적이고 수행적인 이 정치는, 새로운 관계들과 새로운 현실들을 창조할뿐더러 낡은 것들을 수정하고 증대하고자 한다 … 심지어 사적 영역 안에서도 말이다.

후기: 갈등주의 대 연합주의?44)

정치 이론가들과 페미니스트들은 특히 아렌트 정치의 갈등주의적 차원을 들어 아렌트를 오랫동안 비판해 왔는데, 그 죄목은 갈등주의가 남성주의적이고, 영웅주의적이며, 폭력적이고, 경쟁적이고, (단순히) 심미적이며, 또는 필연적으로 개인주의적 실천이라는 것이다.45) 이 이론가들에게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이라는 통념은 기껏 해야 형용모순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혼잡하든지 아마 위험한 관념일 것이다. 실라 벤하비브는 그들의 시각을 사실상 승인하는데, 그녀는 최근 일련의 유력한 논문들에서, 페미니즘에 적합한 아렌트를 구출하려는 시도의 수단으로써 그녀의 사고에서 갈등주의를 도려내려 한다.46) 벤하비브는 갈등주의를 “연합주의”(associationism)와 병렬하면서 이들이 두 가지 양자택일적인 “공적 영역의 모형”47)라고, 그리고 이들 중에서 연합적 모형이 우위를 점하는데 이는 그것이 “더 근대적인 정치 인식”일 뿐더러 페미니즘에게도 더 나은 모형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벤하비브는 페미니즘에 대한 갈등주의의 의미와 가능성들을 재평가하기보다, 갈등주의를 남성 행위의 기원으로 [보는] 앞선 페미니스트의 성별화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상술한다. 그녀는 개인들이 각자와 공동으로 행위하는 연합적 모형을 특권화하면서, 모든 공동 행위의 필연적으로 갈등주의적인 차원에 대한 절실한 평가를 페미니즘에게서 박탈하는데, 이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연루된 개인들은 서로서로 함께 그리고 맞서서(both with and against) 행위하고 투쟁한다.
“페미니즘 이론과 한나 아렌트의 공적 공간 개념”에서 벤하비브는 갈등주의와 연합주의를 완벽한 거울상으로 구축한다. “도덕적으로 동질적이고 정치적으로 평등주의적인, 그러나 배타적인 공동체”를 전제하는 아곤과 달리, 근대 공적 공간은 이질적이다. “그것에 대한 접근이나 토론의 의제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동질성의 기준에 따라 미리 정의될 수 없다.” 아곤이 안정적인 공적 공간에 자유를 위치 짓는 반면, 연합적 모형은 공간이 아닌 실천으로 자유를 다룬다. 그것은 그것이 발생하는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에 “공동 행위에서 출현”한다. “아곤적인 공간은 협력보다는 경쟁에 기초”하며, 이는 공동 행위가 아니라 “위대함, 영웅주의, 그리고 탁월함”에 초점을 둔다. 그것은 그들을 함께 묶기보다는 “그것에 참여하는 이들을 개별화(individuate)하며 그들을 서로서로 분리시킨다.”48)
[갈등주의의] 반대항으로 가정된 연합주의 편에서 이처럼 갈등주의를 기각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일련의 문제적인 정의와 생략에 기초한다. 첫째, 갈등주의는 엄격하게 고전적인 용어로 정의되는 반면, 연합주의는 근대성에 맞게 개정되고 갱신된다. 이처럼 아렌트적 아곤을 본질적이고 필연적으로 고전적인 영웅적 개인주의의 장소로 그리는 것은, 갈등주의를 공동 행위의 실천으로의 아렌트 자신의 재의미화 앞에서 비산(飛散)한다.(아렌트는 자신이 설명하는 행위는 ― 그것의 가장 아곤적인 형태에서조차 ― 항상, 항상 공동적(in concert)이라는 점을 아주 분명히 한다.)49) 그런 다음 벤하비브는 아렌트적 연합주의를 개정하고 갱신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데, 이는 그녀가 승인하고 싶어 하는 공적 영역의 보다 근대적인 인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벤하비브는 아렌트가 “그녀 자신의 연합적 모형과 양립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녀의 공적 영역 개념을 제한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렌트의 연합주의를 수정하여 아렌트가 반정치적인 것으로 기각한 용무들을 포함하도록 하고(갈등주의의 경우에는 이 같은 수정이 진척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아렌트 자신의 설명에 반하여, 연합주의를 공적 담론의 “실체적이지 않고 절차적인” 모형과 동일화함으로써 이 양립불가능성을 완화한다.50)
문제는 벤하비브가 아렌트의 설명을 수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아렌트와 함께 아렌트에 맞서(with Arendt against Arendt) 사고”51)함으로써 진행되는 것이 자신의 기획이라는 입장을 아주 분명하게 취한다. 문제는 그녀가 아렌트의 다중적인 정치 행위의 전망을 두 개의 구별되고 분리되며 상호 배타적인 공적 공간 유형으로 가른다는 점,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그녀가 역설한다는 점, 그 쌍을 비대칭적으로 간주함으로써 특정한 선택을 유도한다는 점, 그리고 (이 시점에서는 별로 놀라울 것도 없지만) 연합주의가 두 가지 통념 중 더 근대적이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이라고 그녀가 결론을 내린다는 점에 있다.
다른 논문인 “한나 아렌트와 서사의 구원적 힘”에서 아곤은 다시 한 번 평가절하되는데, 이번에는 담론적인(연합적인) 공적 공간과의 대조를 통해서다. 벤하비브는 다시 한 번 비대칭적으로 나아가면서 아렌트적 행위의 담론적인 계기를 은유화하지만 그 갈등주의적 이면은 내버려 두는데, 이 때 갈등주의적인 공적 공간은 “위상학적이거나 제도적인” 장소라고 주장하는 한편, 아렌트의 보다 “근대적인” 통념인 담론적인 공적 공간은 “사람들이 함께 공동 행위하는 경우라면 언제 어디서든 출현한다”고 역설한다.52) 이 같은 은유화의 한계는 그러나 자의적이다. 다양한 다소 갈등주의적이면서 연합주의적인 공적 공간에 대한 아렌트의 설명 중에서, 후자가 전자보다 벤하비브가 추구하는 분산에 더 호의적(amenable)이라고 시사하는 것은 없다. 만일 우리가, “아렌트와 함께 아렌트에 맞서,” 인민들이 함께 공동 행위할 땐 언제나 연합적인 공적 공간이 출현한다고 말한다면, 인민들이 공동으로 각자와 함께 그리고 [각자에] 맞서(with and against each other) 행위하고 투쟁할 땐 언제나 갈등주의적인 공적 공간이 출현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벤하비브는 최근 논문 “국외자와 그녀의 그림자: 한나 아렌트의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 전기”에서 갈등주의/연합주의 이항을 한층 성별화하여, 남성적인 갈등주의적 공간과 이제 명시적으로 여성화된 연합주의를 병렬하는데, 여기서 후자는 살롱으로 모형화된다. 벤하비브는 낭만주의 시대 유대계 독일 살롱 여주인(hostess)에 대한 아렌트의 초창기 전기(傳記) 『라헬 파른하겐』을 과감하게 끌어들이면서, 연합과 친교, 대화와 우정, 그리고 여성 작인(作人, agency)을 북돋는 연합적이고 여성 지배적인 준(準)공적 공간으로 살롱을 옹호한다. 반면 아곤적인 공간은 여성을 배제하고 투쟁과 경쟁을 일으키는 곳으로 언급된다.53)
그러나 살롱이 지지하는 것은 벤하비브의 여성화된 연합주의보다는, 벤하비브가 보존하려는 대당들 예컨대 갈등주의와 연합주의 간의 대당이랄지, 공적 공간의 남성친화적 모형과 여성친화적인 모형 간의 대당들을 약화시키려는 (나 자신과 같은) 시도들이다. 여성들은 분명 다른 공적 영역들에서보다 살롱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가졌지만, 그 권력은 공적이고 사적인 가부장 권력에 의존했다. 여성들이 주인 노릇을 한 살롱은 일시적으로 부재한 아버지들과 남편들의 소유였다. 라헬의 살롱이 거둔 짧은 성공은 부분적으로, 대학이나 의회, 궁정 따위의 경쟁하는 남성적 문화 중심지가 우연적․일시적으로 부재한 데서 비롯됐다.54) 더욱이 살롱은 우정과 교통, 친교뿐만 아니라 험담, 음모, 경쟁, 투쟁 등을 낳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사람들은 거의 … 갈등주의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벤하비브는 이 모두를 인정하지만, 그녀의 연합적 이상에 대한 살롱의 표상이 갖는 이 같은 결점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관심은 살롱 그 자체를 복원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연합주의의 “전조(前兆)”로, “그 미래 잠재력의 일부를 과거에 보유한 존재”로 다루는 데 있기 때문이다.55) 꽤 공평한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화된 연합주의의 모형으로서 살롱이 갖는 결점은, 살롱을 갈등주의/연합주의 이원항을 성별화하려는 수단적 형상으로 활용하는 벤하비브의 견해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가?56) 갈등주의적 차원과 연합주의적 차원을 복잡하게 결합하는 살롱은 아마 벤하비브가 살롱의 사례를 근거 삼아 제시하는 상호 배타적인 대당을 (지지하기보다는) 동요시킬 것이다.
이 논문에서 탐색한 유형의 갈등주의는 벤하비브가 기각한 갈등주의와 같지 않다. 이는 그녀의 이원항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초과하는 공동 행위의 일종이다. 영웅적 개인주의라거나 합의에 기초를 둔 연합주의가 아닌 이 갈등주의는, 항상 투쟁의 장소이기도 한 공동 행위, 차이와 복수성이 새겨지고 갈라진 세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항상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맞서 있는 공동의(concerted) 페미니즘적 노력의 모형을 만든다. 이 갈등주의가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아렌트의 재의미화된 갈등주의지, 고전적인 폴리스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남-녀 대당에도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것은 이 관습적인 대당을 적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것은 수월성(秀越性, excellence)이나 극적 자기과시가 아니라, 동질화와 정상화/표준화를 배경으로 하는 개성화 및 구별을 향한 탐험에 중심을 둔다. 벤하비브가 볼 때 갈등주의란, 행위자들이 “구별과 수월성을” 다투는 실천이다.57)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갈등주의의 구별-수여적(distinction-awarding) 효과를 명성이나 수월성에 대한 갈망과 즉각적으로 동일시하는 그녀의 견해는, 고전적 갈등주의에도 적용될 뿐더러 보다 (탈)근대적인 차원을 가질 수 있는 “구별”에 대한 대안적 독해를 박탈한다. 아렌트의 이론적 설명을 움직였던 구별에 대한 갈등적(agonal) 열정은 또한, 개성화 및 구별된 자아로서의 출현을 향한 투쟁으로 읽힐 수도 있다. 아렌트의 용어를 빌자면, “무엇”이라기보다는 “누구”, 명성 그 자체가 아니라 개성을 소유한 자아, 그것을 정의하고 고정하려 드는 (사회학적, 심리학적, 사법적) 범주들에 의해 결코 소진되지 않는 자아 말이다.
고전적인 아곤만이 수여할 수 있었던 명성과 수월성에 더 이상 속박되지 않을 때, 이 열정을 갈등적(agonal) 열정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승인된 페미니즘 실천들이 갈등주의적인 까닭은 그것들이 투쟁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성별을 지배하는 실천들을 (재)정초하고 증대하고 수정하려는 정치적 투쟁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아곤의 전투원들이 공적으로 지지되는 타자(Other)와 함께 그리고 맞서 투쟁하는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개성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갈등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동료들과의 투쟁을 지지하여 다양한 페미니즘들, 성/성별의 지배적 실천들과 동일성들, 그리고 그것들을 실천하고 강제하는 타인들과 함께 그리고 맞서 스스로를 개성화하고 위치 짓고자 한다.58) 갈등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관습적인 성/성별 실천을 중단시키고 관습적인 성/성별 이원항들의 자칭 우선성을 탈중심화함으로써 개성화와 구별을 획득하고 북돋는다.59) 이 개성화 과정은, 비록 일련의 행위들과 수행들을 누군가가 목격할 수도 있겠지만, 청중(audience, 관객)을 위해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와 같은 타인들과 제휴하여 개성화를 얻는 자아, 그리고 비록 항상 갈등적일 테지만, 이 공유된 지지와 투쟁의 실천들을 통해 동일한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타인들을 위한 것이다. 갈등주의적 개성화는 정치적인 또는 페미니즘적인 행위의 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 아렌트가 잘 알았던 것처럼, 개성화는 차라리 정치적 참여의 부산물 중 하나로 얻어지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인 공동 행위의 신고(辛苦)한 시험을 통해 아렌트적 행위자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발견한다. 이 같은 자기발견이나 변혁을 단순히 유치한(boyish) 태도로 회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또한 현세적인 장치 안에서 특성과 개성의 발전을 신호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이 공동의 정치 행위에 참여하는 효과로 얻어지는 개성의 발전을 강조하는 것은, 갈등주의와 연합주의를 한 동아리로 묶는 아렌트의 본래 시도를 복원한다.60) 이 복원은 현 시점의 동시대 페미니즘들에게 중요한데, 왜냐하면 “여성”이라는 동질화적이고 규율적인 범주를 일부 페미니즘들이 활용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근래 우리가 차이와 복수성에 초점을 두다 보니, 일부 사람들이 통일적 동일성, 대의 또는 토대가 부재하는 가운데 어떻게 미래의 페미니즘이 공동의 행위를 추동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와 복수성을 토대로 놓는 갈등주의적인 공동 행위를 이론화함으로써 (특별히 페미니즘을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돕는다. 그녀는, 주체성의 무엇-임(what-ness)을 행위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여성의] 형상이 항상 이미 알려진 동일성을 의미하게 만들기보다는 “여성”을 의문시하려고 노력하는 페미니즘들을 위한 (의식하진 않았겠지만 귀중한) 모형을 제공한다. 아렌트는 (행위의 동작주(動作主, agents) 내부 그리고 사이에서) 차이들로 갈라진 공동 행위를 이론화함으로써, 공동 행위를 타인들과 “함께”일 뿐만 아니라 항상 동시에 “맞서는” 관계들에 우리를 연루시키는 (재)정초, 증대, 수정의 실천으로 생각하게 해 준다. 요컨대, 일단 우리가 갈등주의와 연합주의를 상호 배타적인 양자택일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면, 우리는 “아렌트와 함께 아렌트에 맞서” ― 페미니스트들이 항상 탈중심화하고 저항하며 초월하고자 노력했던 ― 지배적인 성/성별 이원항을 단순히 재활용하기보다는 그것에 개입하기에 좋은 위치를 점하는 갈등주의적이고 페미니즘적인 정치 행위의 (증대되고 수정된) 전망을 전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될 것이다.61)



1) Rahel Varnhagen: The Life of a Jewish Woman, rev. ed., trans. Richard and Clara Winston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4), ⅹⅷ. 본문으로
2) 가장 적대적인 비난은 Adrienne Rich의 On Lies, Secretes and Silences: Selected Prose, 1966~1978 (New York: Norton, 1979)과 Mary O'Brien의 The Politics of Reproduction (Boston: Routledge and Kegan Paul, 1981). 나는 리치의 비난을 아래에서 간략히 논하고 이 논문의 마지막 절에서 갈등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적 기각을 둘러싼 쟁점들을 취급할 것이다. 본문으로
3) The Human Condi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8), 155, 200[국역: 한길사, 1996]; 이하 HC로 인용. 본문으로
4) On Revolution (New York: Penguin Books, 1963), 130[국역: 한길사, 2004]; 이하 OR로 인용. [역주] 아래에서 필자는 아렌트의 정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언어학적 개념을 사용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인다.
우선 기표(記表, signifier), 기의(記意, signified), 지시대상(referent)에 대해 알아보자. 기표란 우리가 말하거나 기록하는 시각적․음성적 물질성이고, 기의는 기표가 의미하는 개념이며, 지시대상은 기표나 기의가 지시하는 현실 속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 ‘집’이라는 글자, 그리고 우리가 ‘집’이라고 발음할 때의 음성적인 물질성이 기표고, 이 기표가 의미하는 내용인 ‘사람이 들어서 살 수 있게 만든 것’이 기의이며, 현실에 존재하는 건물이 지시대상이다. 한 편 기표와 기의가 결합된 것이 기호(記號, sign)이고, 이 결합 과정을 ‘의미작용’(signification)이라고 부른다.
또한 필자는 영국의 언어철학자인 존 오스틴에서 유래한 진술문과 수행문의 구별을 체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진술문이란 예를 들어 “당신은 나의 아내다.”처럼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는 문장이며, 수행문이란 “이 쪽으로 와라.”와 같은 명령, “당신은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 “이 달 말까지 재산을 양도하겠다.”와 같은 약속, 그리고 “이로써 폐회를 선포한다.”와 같은 선언 등, 발화 자체가 하나의 행위인 문장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술문과 수행문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위에서 예로 든 “당신은 나의 아내다.”의 경우 참/거짓을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틀림없는 진술문이지만, 이 언표를 발화함으로써 부부 사이의 위계 관계를 (재)확립하고 아내로서의 의무를 암묵적으로 강제하는 효과가 수반된다는 점에서 수행문이기도 하다. 요컨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술문과 수행문을 엄격하게 나누고 그 중 어느 한 쪽을 특권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술문 안에 내재한 수행적 계기, 수행문 안에 내재한 진술적 계기(또는 차라리 수행문이 진술적 계기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까닭)를 추적하고 폭로하여 다른 가능성을 개방하는 것이 된다. 본문으로
5) 이하에서 나는 J. L. 오스틴(John Langshaw Austin)의 용어인 수행문과 진술문이 나의 아렌트 독해에서 필수적 역할을 놀게 할 것이다. 내가 다른 곳에서 논증했듯, 오스틴의 구별은 정초적 문헌의 두 계기 ― “우리는 생각한다” 대 “자명한 진리” ― 간의 부당한(illicit) 긴장에 관해 아렌트 자신이 만들어 낸 논증들을 유용하고 적절하게 예시한다. 이 긴장은 (“우리는 생각한다”는 수행문에 유리하게 그것을 해결하려는 아렌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것인데, 제도들이 스스로를 “앞으로 내내”(all the way down) 정당화하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아렌트는 그것에 응답하기 위해 권위를 비정초적이고 정치적인 증대와 수정의 실천으로 훌륭하게 이론화할 때, 그 불가능성을 사실상 긍정한다. 나는 여기서 이 실천은 또한 내가 갈등주의적 페미니즘과 동일시하는 동일성의 개입과 중단들을 망라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오스틴의 구별을 활용하는 것은, 실라 벤하비브(Seyla Benhabib)가 주장하듯, “언어적” 구별을 사용하여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아니고, “모든 권력의 궁극적인 자의성이라는 데리다의 테제”(그런데 이는 전혀 그의 테제가 아니다.)를 방어하는 것으로 귀결되지도 않는다. 만일 그것이 벤하비브에게 그런 식으로 보인다면, 이는 그녀가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가 반드시 이론의 영역 내부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나 자신의 기획이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 시도로 나타나거나 정당성의 문제는 해결불가능하다(혹은 이 경우에서처럼 어쨌든 둘 다 일 것이다)는 이론적 주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벤하비브의 시각이나 기획은 나와 다르다. 내가 오스틴과 데리다에게 도움을 받아 아렌트의 독립 선언 독해에서 끌어낸 교훈이란, 정당성 문제의 해결 자체는 진행 중이고, 끝없는 정치적 작업의 기획이자, 민주적 증대와 수정의 영속적 실천이지, 해결되어야 할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적 수준에서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또는 그것이 철학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는 그 정신 면에서 분명히 비(非)아렌트적이며, 정치를 전위시키려는 정치 이론이 갖는 일반적으로 문제적인 경향의 징후다. 더 요점으로 들어가 보자면, 정당성이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 문제라는 벤하비브의 가정은 자신의 진단적 선택지를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단 두 가지로 제한한다. 완전한 정당성과 완전한 자의성이 그것이다. 내가 볼 때 권위를 정치적 증대의 실천으로 이론화하는 아렌트의 주된 매력은, 그것이 이 이원항을 벗어나고 동요시킨다는 데 있다. Seyla Benhabib, "Democracy and Difference: Reflections on the Metapolitics of Lyotard and Derrida," Journal of Political Philosophy 2 (1994): 11 n. 24를 보라; 그리고 Bonnie Honig, "Declarations of Independence: Arendt and Derrida on the Problem of Founding a Republic,"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85 (1991): 97~113. 정치를 전위하려는 정치 이론의 경향에 관해서는, 나의 Political Theory and the Displacement of Politic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3)를 보라. 본문으로
6) 나는 니체를 빌어 말하고 있는데, 아렌트는 그에게, 비록 양가적이기는 하지만, 이 점에 관해 크게 빚지고 있다. Friedrich Nietzsche, On the Genealogy of Morals, ed. Walter Kaufmann, trans. Walter Kaufmann and R. J. Hollingdale (1887; New York: Vintage Books, 1969), 1, ⅹⅲ[국역: 책세상, 2002]. 본문으로
7) 나는 나의 글 "Declarations of Independence"에서 아렌트의 독립 선언 독해에 나타나는 이 같은 본질주의적 구성 요소를 비판하고 수정하면서, 자크 데리다를 따라, 독립 선언의 성공은 사실 그것의 실제적인 수행적 성격보다는 그것의 구조적 결정불가능성, 이 정초적 화행이 수행적 언표인지 진술적 언표인지 여부를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의존한다고 논증한다. 여기서 나의 주장, 즉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이 자칭 진술적 동일성들을 수행문으로 재서술함으로써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겨냥하는 바는, 모든 동일성들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거나 손쉽게 재(再)제정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요점은, 모든 정체(政體)들과 동일성들, 정초들에 개입하지만, (자연과 신체, 또는 신의) 순수한 진술로 은폐되고 가장된 (진술문과 수행문 사이의) 결정불가능성을 되찾는 것이다. 이 구조적 결정불가능성은 증대와 수정의 공간이다. 그것은 자유롭게 부유하는 수행의 집합이 아니라, 진술과 자연화의 상당한 힘에 대한 일련의 정치적 개입과 투쟁을 가능케 한다. 본문으로
8) 한나 피트킨(Hanna Pitkin) 역시 이 차이에 유의한다. 그녀의 "Justice: On Relating Public and Private," Political Theory 9 (1981): 303~26을 보라. 그렇기는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다르게 읽는데, 그녀는 『혁명론』이 “더 솔직하”고, 신체와 사회적인 것에 대한 아렌트의 진정한 관점을 아마 보다 진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334). 그러나 이 같은 결론은 부당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조건』이 얘기를 삼간다는 것을 함축하는데, 이는 전혀 아렌트답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피트킨이 신체에 대한 아렌트의 설명 중 하나를 다른 것들에 대한 얇은 베일로 간주하는 것은, 아렌트가 다른 것 위에 다른 하나를, 신체의 구별되는 특징화를 층층이 쌓는다는 점을 모호하게 만든다. 더 최근 논문인 "Conformism, Housekeeping, and the Attack of the Blob: The Origins of Hannah Arendt's Concept of the Social"(이 책의 3장)에서 피트킨은 덜 본질주의적인 접근을 택하는데, 여기서 그녀는 아렌트의 몇몇 문헌들을 가로지르는 그 복잡한 전환을 추적하면서 아렌트의 사회적인 것 개념을 탈자연화하려고 한다. 본문으로
9) Hannah Arendt, "What is Freedom?" in Between Past and Future, enl. ed. (New York: Penguin, 1977), 156[국역: 푸른숲, 2005]. 본문으로
10) Arendt, HC 179; 그리고 "What is Freedom?" 151~52. 아렌트는 이 같은 작인(作人, agency)의 속성들을 행동적으로(behaviorally), 그 자유를 타협하는 행위의 원인들로 읽는다. 본문으로
11) Arendt, HC, 179. 나는 “스스로를 놀랍게 하는”(self-surprising)이라는 용어를 조지 카텝(George Kateb)가 아렌트를 다룬 Hannah Arendt: Politics, Conscience, Evil (Totowa, N.J.: Rowman and Allanheld, 1984)에서 빌려 왔다. 본문으로
12) Hannah Arendt, Thinking, vol. 1. of The Life of the Mind, ed. Mary McCarthy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8), 29[국역: 푸른숲, 2004]. 이 주장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아렌트가 의미했던 것은 모든 “내부들”이 동일하게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차이들은 흥미롭거나 중요치 않다는 것, 신체로서 우리 모두는 비슷하다는 것이었으리라. 본문으로
13) Hannah Arendt, Willing, vol. 2. of The Life of the Mind, 69. 아렌트는 이 주장을 특히 의지하기와 관련지어 제기하지만, 이는 정신 능력 세 가지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되튐에 특징적인 것이다. 본문으로
14) 내가 말하려는 것은 아렌트가 갈등주의적인 투쟁의 현상을 “정치적”이라고 이름붙였다는 것이지, 아렌트 자신이 이 내적 투쟁들을 묘사하는 데 “정치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했을 것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러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으로
15) 엘리자베스 영-브루엘(Elisabeth Young-Bruehl)은 아렌트적 자아의 다중성에 유의한 유일한 아렌트 독자이지만, 그녀는 자아를 다중성으로 본 이 같은 관념과, 행위를 표현적인 것이 아닌 수행적인 것으로 본 아렌트의 접근을 연관시키려 하지는 않는다. 또 영-브루엘은 이 다중적 자아를 갈등주의적 투쟁의 장소로 보지도 않는다. 반대로 그녀는 “개인 내부에 존재하는 견제와 균형”에 준거하는데, 이는 이 맥락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overarching) 통일성을 함축한다. Elisabeth Young-Bruehl, Mind and the Body Politics (New York: Routledge, 1989), 23을 보라. 본문으로
16) Arendt, HC 73.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그들의 신체로 삶의 신체적인 필요를 보살피는’[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론』 1254b25[국역: 박영사, 2006]를 인용하고 있다] 노동자들과, 자신들의 신체로 종의 물리적 생존을 보장하는 여성들”(72)을 묘사한다. 본문으로
17) 아렌트는 종종 그녀의 폴리스의 아곤(agon)적인 정치의 실천에 대한 (탄복스럽기 그지없는) 묘사와 그녀 자신의 정치 전망을 분명하게 구별짓는 데 실패한다. 그리고 그녀의 비판자들은 종종 전자를 후자로 오해한다. 예를 들어 피트킨은 행위에 대한 아렌트의 설명이 “개인주의적”이라고 적는데, 그러나 피트킨의 인용구는(HC 41) 아렌트가 폴리스의 갈등을 묘사한 것이다. 아렌트가 자신의 정치 관점을 묘사하는 곳에서, 심지어 『인간의 조건』같은 초기 저작―혹자는 이 역시 너무 갈등적이라고 말한다―에서조차 그녀는 그것이 항상, 항상 “공동적”(in concert)이라고 말한다. 본문으로
18) Pitkin, "Justice," 342. 본문으로
19) Pitkin, "Justice," 342. 나는 “감성들”이라는 용어를 쉬라 도사(Shiraz Dossa)에게서 빌려오는데, 그는 피트킨과 아주 유사한 경우다. 그와 피트킨 모두, 노동, 작업, 행위가, 감성으로서 모든 자아들을 특징짓는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다. The Pubilc Realm and the Public Self: The Political Theory of Hannah Arendt (Waterloo: Wilfred Laurier University Press, 1989), 3장; 그리고 도사에 대한 나의 서평은 Political Theory 18 (1990): 322를 보라. 본문으로
20) 노동과 작업과 행위를 탈자연화함으로써 그것들의 효과를 우리 자신의 하기(doing)의 산물로 보라는 이 같은 요청은, 이 책에 실린 한나 피트킨의 논문에 담긴 입장과 유사하다. 피트킨은 아렌트가 사회적인 것에 할당한 믿을 수 없는 힘에 어리둥절해한다. “우리에게 우리의 힘을 가르치는 것―우리는 우리의 곤란의 원천이고 우리가 현재 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에 주되게 노력한 사상가에게서, 사회적인 것을 블롭(Blob, 유명한 SF 공포영화에 나오는 우주생명체)이라 보는 공상과학적인 전망[“우리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우리의 자유와 정치에 달려든다.”]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다”(53). 본문으로
21) 아렌트는 정치“의 모든 영역"이 “제한”되어야 하고, 그것은 “인간과 세계 실존 전체를 포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Arendt, "What is Freedom?" 264). 본문으로
22) Arendt, Willing, 37~38, 101~2; 강조는 필자. 나는 다른 곳에서 아렌트의 설명에서 의지는 자기산출적이면서 동시에 그 고유한 활동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Arendt, Identity, and Difference," Political Theory 16 (February 1988): 81. 그러나 이 글에서 강조한 문구 때문에 나는 아렌트가 후자의 특성을 의지에 부여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부여했다는 점을 납득하게 됐다. 본문으로
23) Judith Butler, "Performative Acts and Gender Constitution: An Essay in Phenomenology and Feminist Theory," in Performing Feminism, ed. Sue-Ellen Cas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0), 273. 본문으로
24) Pitkin, "Justice," 336. 본문으로
25) Nancy Fraser, Unruly Practices: Power, Discourse, and Gender in Contemporary Social Theory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9), 76. 본문으로
26) Arendt, "Preface," in Between Past and Future, 3~4. 본문으로
27) Butler, "Performative Acts," 276, 271, 280, 그리고 271. 본문으로
28) 이론의 고유한 사명은 정치 제도들의 포괄적인 정당화를 제공하는 데 있다는 관점에 맞서, 위와 같이 정치 이론의 과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옹호하는 나의 견해는 각주 5를 보라. 본문으로
29) Pitkin, "Justice," 336. 본문으로
30) Arendt, OR 47. Cf. Judith Butler, "Performative Acts," 274. 본문으로
31) Adrienne Rich, On Lies, Secrets and Silence, 211~12. 아렌트의 독자들은 한 동안 이 인용문을 재유통시켰다. 리치의 논문 "On the Coditions of Work" 역시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어쨌거나 “불구적”인 책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만한” 책에서 인용한 문구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자주 언급되지 않았다. 본문으로
32) Hannah Arendt, Men in Dark Times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68), 44[국역: 문학과지성사, 1983]; 이하 MDT로 인용. 아렌트는 정치적으로 능동적인 여성들이 여성 참정권 활동에 이끌린 이유가, 그 운동이 당시 여성에게 개방된 몇 안 되는 활용가능한 정치적 행위의 기회였기 때문이라는 가능성은 결코 고려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33) 이 얘기는 출처가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아렌트는 미국 정치 과학 협회 여성 간부 회의에 출석하기를 거부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
34) 아렌트의 Eichmann in Jerusalem[국역: 한길사, 2006]의 출판을 둘러싼 논쟁은 Dagmar Barnouw의 Visible Spaces: Hannah Arendt and the German-Jewish Experienc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0)에 잘 기록되어 있다. 본문으로
35) Gershom Scholem, "'Eichmann in Jerusalem:' An Exchange of Letters between Gershom Scholem and Hannah Arendt," Encounter (January 1964): 51~52(강조는 필자). 이하 숄렘에서의 모든 인용문은 51~52에서다. 이 절에서 아렌트의 모든 인용문은 53~54에서다. [역주] 번역하기 아주 까다로운 이 문장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fact that he regards Arendt "wholly as a daugher of our people and in no other way." 본문으로
36) 그녀가 스스로를 “독일 철학의 전통”과 동일화할 때조차, 이는 조건부다. “만일 내가 어딘가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독일 철학 전통에서다.” 더 넓게 보자면, 이 같은 어법은 아렌트가 그녀의 기원이라는 문제가 단순히 발언의 주제가 아니기를 선호했으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즉, 그녀는 “어딘가에서 온 것이라고 말해지길”(강조는 필자) 원치 않은 것이다. 본문으로
37) 그리고 숄렘 또한 마찬가지로 그의 유대주의와 시오니즘 이외의 차이들과 동일성들에 의해 구성된다. 아렌트는 그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키는데 ― 그리고 그녀의 동일성을 그가 투사한 것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보복한다 ― 그 방법으로 그녀는 숄렘이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서명할 때 그의 히브리 이름 “게르숌 숄렘”을 사용하는데도 “친애하는 게하르트(Gehard)”라는 호칭을 쓴다. 본문으로
38) 나는 숄렘이 이 맥락에서 “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렌트가 성/성별 차이에 의해 구별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적 형상, “우리 민족”에 대한 의무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간주한다. 요컨대 숄렘의 문구에서 “딸”이라는 용어는 아렌트의 성/성별을 그녀의 유대 동일성 안으로 문제 없이(unproblematically) 동화시키려 든다. 본문으로
39) 동일성이 하나의 사실이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은 그러나 맥락에 따라 분명히 달라진다. 그녀는 누군가가 “공격당하는 동일성의 견지에서” 스스로를 방어해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스스로를 자신의 동일성의 견지에서 위치 짓는 것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이 책에 실린 Dietz, 48 n. 106을 보라). 이 전략의 맥락의존성 때문에, 누군가는 항상 상황을 진단하고 행위의 공간에서 동일성의 (아렌트에게는 불운한) 적절성에 동의할 것인지 아니면 그 사적 자유나 부적절성을 고집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이 진단에 관한 토론은 페미니즘이 주기적으로 대면하는 것이다.) 나의 주장은, 숄렘과 서신을 교환했던 이 경우에는, 아렌트가 상황을 잘못 진단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공격당하는 동일성, 유대인이 되는 그녀의 고유한 방식의 견지에서 대응했어야 했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부분적으로는, 그녀와 숄렘이 둘 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녀의 유대 동일성은 공격당하는 것일 수 없고 마찬가지로 대응을 기초 짓는 근거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그녀의 동일화주의적 가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본문으로
40) 나는 “자신의 성별을 (행)한다”라는 통념을 Judith Butler, "Performative Acts," 276에서 빌려 왔다. 본문으로
41) Hannah Arendt, The Jew as Pariah, ed. Ron H. Feldman (New York: Grove, 1978). 본문으로
42) 나는 아렌트의 설명에서 정치적 공간의 다중적인 장소들을 Political Theory and the Displacement of Politics, 116~17에서 추적한다. 본문으로
43) 사실, 아렌트의 국외자 관점에 함축된 개인주의는 숄렘과의 관계에서 그녀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숄렘은 자신이 배신자라고 간주하는 아렌트에게 회복시키고자 하는 유대 민족의 공동체적 형상을 되풀이해서 호소한다. 아렌트는 이 용어들을 받아들이고 그 틀 내부에서 대응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견해에 동감했을 만한 (과거나 현재의) 타인들과 동맹을 맺을 수도 있었고, 유대 공동체에 대해 그녀 자신을 유대 내적 비판이라는 대안적인 유대 역사의 일부로 위치 지을 수도 있었다. 아렌트는 이 마지막 전략을 그녀의 레싱 연설에서 활용하는데 ― 리사 디쉬(Lisa Disch)가 주장하듯(이 책 12장) ― 이 때 아렌트는 독일 계몽주의 전통에서 레싱을 재생시켜 그녀 자신이 그 상속자인 대안적인 지적 계보의 일부로 그를 위치 짓는다. 본문으로
44) 이 절의 초안에 논평해 준 것에 대해 린다 제릴리(Linda Zerilli)와 모리스 캐플런(Morris Kaplan)에게 감사를 전한다. 본문으로
45) 예를 들어 한나 피트킨은 아렌트의 정치적 행위자들이 “유치하게 젠체하며” “낭만주의적”이고 “갈등주의적인 남성 전사”의 동호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비난한다("Justice"). 또한 Patricia Springborg, "Hannah Arendt and the Classical Republican Tradition," in Thinking, Judging, Freedom, ed. G. T. Kaplan and C. S. Kessler (Sydney: Allen and Unwin, 1989)를 보라; 그리고 Wendy Brown, Manhood and Politics (Totowa, N.J.: Rowman and Littlefield, 1988). 본문으로
46) 요컨대 벤하비브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논쟁들을 사실상 되풀이하는데, 이들은 아렌트가 팔로스중심주의적(갈등주의적)이거나 여성중심적(연합주의적)인 사상가라고 비난했다. 벤하비브의 혁신은 아렌트 사상의 이 같은 차원들의 한 쪽 면으로 그녀를 배타적으로 동일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렌트적 도식 안에 양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가 인정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앞선 페미니스트들처럼 그녀는 이 두 가지 차원들을 대립적이고 위계적으로 위치 지으면서, 우리가 그것들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고 고집하는 식으로 나아간다. (아렌트에 대한 앞선 페미니즘적 수용에 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나의 "The Arendt Question in Feminism,"과 Mary Dietz의 "Feminist Receptions of Hannah Arendt," 이 책의 1장과 2장을 보라.) 본문으로
47) Seyla Benhabib, "Feminist Theory and Hannah Arendt's Concept of Public Space," HIstory of the Human Sciences 6 (1993); 97~114. 본문으로
48) 위의 책, 103~4, 102. 본문으로
49) 각주 18을 보라. 벤하비브가 아렌트에 의한 갈등주의의 재의미화를 무시한 것은 이 맥락에서만이다. 다른 곳에서 그녀는 그것의 한 차원에 분명히 주목하면서, 아렌트는 “호메로스적 전사-영웅을 진압하고, 그렇다, ‘길들여’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신중한 시민을 낳는다.”(위의 책, 103; 강조는 원문)고 주장한다. 본문으로
50) 위의 책, 104, 105. 본문으로
51) 위의 책, 100. 본문으로
52) Seyla Benhabib, "Hannah Arendt, and the Redemptive Power of Narrative," Social Research 57 (1990): 193~94. 본문으로
53) "The Pariah and Her Shadow," 이 책, 94~95, 97~100. 본문으로
54) 위의 책, 87~88, 93, 97. 파른하겐의 살롱이 거둔 매우 일시적인 성공, 그리고 그것이 가부장적 제도 권력이 겪은 이 같은 우연하고 일시적인 공백에 의존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이 사례의 진정한 교훈은, 연합주의를 옹호하려는 이들은 이 같은 귀중한 대안적인 행위의 공간을 국가와/나 가부장적 공적 영역의 헤게모니적 열망에 맞서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갈등주의를 배우고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55) 위의 책, 104 n. 23. 본문으로
56) 요컨대 여기서 나의 목표는 연합적이거나 페미니즘적인 공적 공간의 모형으로서 살롱의 장점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주의와 연합주의를 이원적 대당으로 위치 짓고 ― 성별화하여 ― 합의적인 정치 모형과 담론의 공통 기반에 합치할 수 있는 아렌트와 페미니즘을 발전시키려는 벤하비브의 더 큰 노력 안에서 살롱의 역할을 간략하게 기록해 두는 것이다. 본문으로
57) "Feminist Theory and Hannah Arendt's Concept of Public Space," 103. 본문으로
58) 아곤을 공동 행위와 동시에 투쟁의 장소로 설명하는 것에 관해서는, 나의 "The Politics of Agonism," Political Theory 21 (August 1993): 528~33을 보라. 본문으로
59) 이 같은 (변모하는 동맹적) 실천의 몇몇 사례에 관해서는, 이 책 14장에 있는 멜리사 올리(Melissa Orlie)의 논문을 보라. 올리는 성/성별의 정치가 또한 항상 인종, 계급, 성욕의 정치와 겹쳐 있는 방식을 소중하게 부각한다. 본문으로
60) 이 갈등주의가 아렌트의 그것과 갈라지려는 목적이, 그녀의 행위가능한 영역을 넓히고 이른바 사회적인 용무들과 이른바 진술적 사실들을 포함하는 데 있는 한에서, 갈등주의는 (이 책 36의 매리 디에츠와 반대로) 동일성을 그것의 필수적으로 중심적인 용무로 간주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다만 이 논문에서만 그럴 뿐이다. 만일 이 갈등주의가 항상 얼마간 동일성의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면, 이는 동일성―특히 (사법적이거나 사회적) 법 아래서 주체성의 형성과 생산―이 항상 사회-정치-사법적인 질서의 하나의 효과나 수단이며, 따라서 정치적 개입의 필수불가결한 하나의 장소라는 점을 갈등주의가 알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61) 특히 이 문구 “함께 그리고 맞서”는 벤하비브가 독자로서 아렌트에 대한 자기 자신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Feminist Theory and Hannah Arendt's Concept of Public Space," 100). 그렇게 하면서 그녀가 갈등주의적 관계를 묘사하는 것은 적절하다. 그녀의 아렌트 독해는 벤하비브 자신의 입장을 동시에 개성화하는 공동 행위다. 또한 벤하비브 자신이 일시적으로나마 갈등주의와 그녀의 연합주의의 변종이 실제로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도 유의해야만 할 것이다. “구별과 수월성을 겨룬다는 의미에서 모든 진정한 정치와 권력 관계들이 갈등주의적 차원을 포함하는 한편, 갈등적 정치는 또한 설득과 함의의 힘에 기초한 연합적 차원을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두 모형 간의 날카로운 분화는 완화될 필요가 있다”(103). 이렇게 말했으면서도 벤하비브는 계속 이 대당의 용법을 상술하고 그것을 완화시키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식으로 계속한다. 본문으로
2006년12월12일 19: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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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야만적 단속·추방 정책이 이주노동자 9명을 죽였다


오늘 새벽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보호소'에서 불이 나, 감금돼 있던 이주노동자 55명 중 9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치는 끔찍한 참극이 벌어졌다. 병원으로 옮긴 부상자들 중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 것이라고 한다.

'코리안드림'을 품고 한국에 와서 온갖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인간사냥식 단속에 걸려 짐승처럼 감금돼 있던 이주노동자들은 불길 속에 몸부림치다가 죽어갔다. '보호소' 벽에 남아있는 검은 손자국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친 노동자들의 처절한 최후를 보여 준다.

이 참극은 노무현 정부의 범죄적인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정책이 낳은 살인에 다름 아니다. 불이 났지만, 여수 '보호소'의 화재경보기도, 스프링쿨러도 작동하지 않았다. 2년 밖에 안된 신축 '보호소'이지만 지난 2년간 소방 점검이나 시험 가동은 이뤄지지도 않았다.

여수 '보호소'의 직원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살려달라"는 절규에도 도망칠까 봐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을 잠가 둔 채 소화기로 불을 끄려던 시도는 시간만 낭비하며 실패했다. 뒤늦게 소방대원이 출동해 문을 열어줬지만 이미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살아남은 중국인 이주노동자는 "불이 났는데 구조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수건으로 입을 막고 숨을 쉬기 위해 발버둥쳤다. 문을 마구 두드리며 구조를 기다렸다"고 증언한다.

빽빽한 쇠창살과 몇 겹의 자물쇠들은 소방대원들의 구출 시도를 방해했고, 통역이 제대로 안돼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비극은 더 커졌다. 다친 노동자들도 출입국관리소에 항의한 끝에 5시간 후에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이 '살인극'은 이주노동자 '보호소'가 감옥보다 못한 수용소임을 고스란히 보여 줬다. 우삼열 외국인 이주노동자 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름은 '보호시설'이지만 실제는 감옥과 다름없는 이런 게 '보호시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게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보호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창문이 없어 햇볕도 안 드는 조그만 방 안에서 CCTV의 감시 아래 수십 명이 갇혀 있다. 옷을 갈아입거나 몸을 씻기도 힘들어 피부병이 나기 일쑤며 정신질환에 걸리기까지 한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구타·폭행·폭언·욕설도 심각한 상황이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남성 직원에 의해 알몸검사나 신체검사를 받기도 한다. 지난 2년간에만, 2명의 이주노동자가 이런 끔찍한 '보호소'에서 탈출하려고 창문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이주노동자들을 인간사냥하듯 잡아다 짐승처럼 가둬두고 추방하는 데 혈안이던 법무부·출입국관리사무소가 이번 '살인'의 공범들이다. 노무현 정부는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자그마치 6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단속·추방했다. 가스총·그물총·전기충격기까지 동원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잡아갔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쳤다. 지난해에만 터키 출신 코스쿤 셀림과 인도네시아 출신 누르 푸아드가 단속 과정에서 사망했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출입국관리소·경찰·언론은 "중국인 김모 씨가 CCTV 가린 채 방화"라며 이미 사망한 이주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끔찍한 '학살극'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악마와도 같은 짓거리를 시도하는 것이다. 저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저들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는 이주노동자를 죽이지 말라! 비인간적인 '보호소'를 즉각 폐쇄하라! 살인 공범들을 즉각 처벌하라! 야만적인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을 즉각 중단하라!



맞불31호 (기사 입력일 : 2007년 0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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