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사태

 

의 끝은 어디인가


부시정부의 구제금융 요청과 금융화의 계급적

 

 본질



사회진보연대  / 2008년09월27일 15시58분

미국 금융위기의 최근 양상


9월 15일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뉴욕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뱅크오프아메리카에 인수되면서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 역시 자금난에 빠져 미국 정부가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공급하여 지분의 80%를 인수하면서 파산은 면하였으나 공적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다. 5위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는 이미 작년에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올해 3월 16일 JP모건체이스에게 헐값으로 인수되었다. 또 9월 21일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제출한 은행지주회사로의 기업구조 변경신청을 승인했다. 이로써 6개월 만에 미국의 1~5위 투자은행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규모(6,139억 달러, 약 679조 원)는 2002년 엔론과 더불어 회계조작 사건으로 유명한 월드컴의 파산금액(419억 달러)의 15배에 달하는 역대 최고규모이다. 부동산 거품에 편승하여 주택대출상품에 올인했던 리먼브라더스는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주가가 무려 94.25% 떨어져 21센트(180원)의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130개국에 진출한 미국 최대의 보험회사 AIG도 주식가격이 80% 가까이 하락하면서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 가까스로 파산을 면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9월 6일 양대 모기지 대출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부실을 막기 위해 2,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한데 이어 리먼브라더스 파산 후 이틀에 걸쳐 1,400억 달러를 투입했다. 또 유럽중앙은행 300억 유로(427억 달러),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 50억 파운드(90억 달러), 일본중앙은행 1조5,000억 엔(142억 달러) 등 각국 중앙은행도 사태의 확산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9월 19일에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발표했다. 7,000억 달러(약 80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기관의 부실을 떠안을 공적기구를 설립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위기와 부채의 증권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이후 금융위기의 전이과정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모기지시장의 부실화 → 모기지 관련 업체 및 보증기관의 부실자산 증가 → 대형은행 파생상품 가격 하락 → 대형은행 및 금융기관 부실 및 파산. 한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연관된 경제주체는 다음과 같다. 모기지차입자 → 모기지대출회사 → 자산유동화회사 → 채권보증회사 → 투자은행 → 투자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들은 투자은행이나 투자자들로 모기지 부실에 연계된 최종단계의 주체들이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는 투자은행이며, AIG는 투자자의 역할을 담당한 보험회사다.


그러나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계사슬의 최종단계까지 전개됐다는 사실이 위기의 끝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기가 모든 금융주체에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로써 실물경제에 대한 위협이 더욱 높아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초기에는 중간의 어느 단계에서 위기의 전이가 중단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결국 관련된 모든 경제주체들이 위기에 노출됨으로써 미국경제 전반과 세계경제에까지 위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거품이 꺼진 이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에서 시작된 위기가 이렇게 여러 단계로 확산된 것은 부채의 증권화 때문이다. 증권화는 이전에 유통되지 못했던 부채자산을 거래 가능한 증권으로 변경시켜 자본시장에 판매하는 것이다. 예컨대 은행이 채무자에게 자금을 빌려주었다면 은행의 자산계정에는 대출이라는 부채자산이 나타나게 되며, 이 대출자산은 약정된 이자와 원금을 회수하기 이전에는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묶여 있는 비유동적 자산이다. 그러나 채무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받을 이 권리, 즉 대출자산을 누군가에게 판매하면 대출 회수 이전에 은행은 대출을 현금화할 수 있게 되고 또 다른 누구에게 추가로 대출을 해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전통적으로는 은행이 발행하고 보유했던 비유동적 대출(부채자산)을 증권시장에 판매하고 유통시키는 행위를 증권화라고 한다. 증권화 과정에서 은행 등이 매각한 기초자산인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은 유사한 종류의 다른 대출과 함께 재구성되어 이를 담보로 주택담보부증권(MBS),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일종의 구조화된 채권이 발행된다. 이렇게 해서 증권화는 은행의 자산 및 부채구조에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증권화는 은행의 수익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은행이 이제 전통적인 예대업무에서 발생되는 이자수익보다는 부채를 가공해 만들어낸 증권을 발행하고 판매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를 주요한 수입수단으로 삼게 된다. 미국 상업은행의 영업수입 중 비이자수입의 비중이 1980년대 20%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45%에 접근하고 있으며, 그 중 많은 부분이 증권화와 관련되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을 금융전반의 위기로 확산시키고, 투자은행의 파산을 몰고 온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증권화로 투자은행은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중요한 것은 이 증권화 과정이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2차, 3차로 확대되고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위기 확산의 주범이 2차 증권화 과정에서 새롭게 발행된 CDO의 부실이다. 1차 증권화 과정에서 발행된 MBS에 카드대출, 자동차대출, 기업대출, 학자금대출 등을 담로로 발행된 다른 증권을 혼합하여 만든 것이 CDO다. 투자은행들은 CDO를 발행하고 매각할 때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얻을 수 있어서 앞 다투어 CDO의 발행과 인수, 판매에 뛰어들었다. 또 투자은행들은 이 CDO를 다른 자산담보부증권(ABS)과 섞어 3차 증권을 발행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의 증권화 과정을 거치면서 원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이 은폐되었다.


하지만 고수익 추구는 필연적으로 높은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CDO를 발행, 인수, 판매한 투자은행들은 CDO의 채무불이행 위험에 대비하여 채권보증회사(모노라인)와 일종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바로 신용파산스왑(CDS)계약이다. 투자은행이 채권보증회사에 보험료를 내면, CDO에 채무불이행 위험이 발생했을 때 채권보증회사가 원리금의 지불을 보증한다. 따라서 CDO의 원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부실이 발생하여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채권보증회사의 원리금 지불 보증금액이 증가하여 결국 채권보증회사의 부실이 늘어난다. 채권보증회사의 보증능력에 대한 불안이 고조됨에 따라 그 회사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고, 채권보증회사와 계약했던 CDS 계약의 가치가 재평가되어 결국에는 손실로 계상된다. 이것이 바로 CDS의 평가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유발된 금융위기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아직도 주요 금융기관들에서 CDS 같은 신용파생상품의 평가손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예기치 못한 금융기관의 추가부실과 도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서브프라임 위기의 전개과정


이러한 서브프라임 위기의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의 사태 전개과정을 1~6차의 위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미국의 주택거품은 2001년 미국 FRB의 급격한 금리인하 이후 5년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FRB가 2004년부터 2006년 중반까지 여러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에서 5.25%로 인상시키자 주택거품은 폭발했다. 주택판매, 주택건설, 모기지 대출, 주택가격이 모두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 2~3월 모기지 대출회사의 부실화와 파산 위기라는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의 태풍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이자율 상향조정의 첫 번째 물결이 강타했다(1차 위기).


2007년 8월 9일 프랑스계 투자은행 베엔뻬 빠리바가 서브프라임 관련 두 종류의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자 세계적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폭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2차 위기). 먼저 MBS 시장이 사실상 소실되었고, 이는 모든 층위의 CDO 시장을 동결시켰다. CDO 시장이 급격히 위기에 전염되자, 거래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고 추정 가치의 약 80%가 하락했다. CDO에 투자한 헤지펀드, 보험회사, 연금, 은행 등이 줄줄이 손실을 입게 되었다. 메릴린치와 시티뱅크는 대규모 자산상각이 불가피해졌고, 2007년 10월 말 각각 80억 달러와 110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또한 메자닌 트랑시(고수익고위험 등급) 이하 신용등급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았던 헤지펀드는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07년 11월, 투자은행들이 고수익 자산에 투자할 목적으로 세운 구조화투자회사(SIV)를 중심으로 하는 3차 위기가 발생했다. 이제 은행은 갑작스럽게 고객의 즉각적인 유동성 투입 요구에 직면했다. 이러한 자금 소요는 은행간시장(inter-bank market)에서 폭발했다. 2007년 8월 세계적으로 조직된 은행간시장이 급속도로 무질서해지자,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특히 유럽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은 몇 주 동안 대규모 긴급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최고 중앙은행, 즉 ‘최종대부자’의 개입은 선례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9월 18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이자율 인하(0.5%)에 뒤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계속해서 다른 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1월 채권보증회사들(모노라인)의 위기가 현실화되었다(4차 위기). 모노라인은 신용파산스왑(CDS) 계약을 통해서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등으로부터 특정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일정 수준의 신용보증수수료를 받는 대신, 채권에 대한 원금과 이자지급을 보증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눈덩이 불어나듯 커지자 채권보증회사들의 부실이 커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최대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으로 위기가 확산된 것이다(5차 위기). 13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주택 모기지 중 5조 5,000억 달러를 공급하는 두 기관은 민간금융기관들의 주택 모기지를 재매입하여 MBS를 발행했다. 이들은 2005년까지만 해도 비우량 MBS에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비우량 MBS가 폭발적인 수익률을 거두고, 이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2,000억 달러가 넘는 비우량 MBS를 구입했다. 여기에다 미국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모기지 연체율이 상승해 모기지 부실이 서브프라임을 넘어 프라임 부문으로 확산되자 두 업체도 사실상 지급불능 사태에 빠진 것이다. 이에 미국 재무부는 뉴욕연방은행을 통하여 두 업체에 2,0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해 사실상 국유화하게 된다.


그 이후 투자은행의 부실 심화로 투자은행의 파산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5대 투자은행이 며칠 사이에 모두 사라졌다(6차 위기).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의 부실이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고, 금융경색으로 자금동원과 지분매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파산은 자금경색 및 이자율 상승을 초래하여 주택가격의 추가적인 하락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더 많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유발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식 금융모델과 투자은행의 몰락?


최근 사태로 인해 미국식 금융모델, 특히 투자은행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높다. 7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1980년대 이후 금융세계화를 이끌어오던 미국 5대 투자은행이 6개월 만에 모두 사라졌다. 이런 사태를 보고 미국식 금융모델의 위기, 투자은행의 몰락을 진단하는 목소리가 높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예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립 투자은행의 몰락이 곧 바로 금융자본의 몰락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 투자은행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1929년 주가대폭락과 그 이후의 대공황을 계기로 J.P.모건이라는 겸업은행이 미국의 주요 대기업을 지배, 통제하는 일종의 금융자본주의가 붕괴했다. 이를 대신하여 경영자-뉴딜관료-조직노동자 간의 불완전한 타협에 기초하여 금융자본(고도금융)을 일정하게 제어하는 관리자 자본주의가 성립했다. 관리자 자본주의에서 금융시스템은 금융당국에 의해 규제되고 통제되었다. 1933년 미국의 은행법(일명 글래스-스티걸법)은 금융자본의 과도한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해서 상업은행의 증권업무와 인수업무를 금지함으로써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완전히 분리했다.


이와 동시에 1930년대 초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일찍 투자은행의 주 활동무대인 자본시장의 제도를 정비했다. 다른 주요 선진국들의 자본시장이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데 비해 미국의 자본시장은 전쟁과 대공황의 혼란 속에서도 발전할 수 있었다. 미국은 1933년 증권법, 1934년 증권거래소법, 1939년 신탁증서법, 1940년 투자회사법 등의 조치를 통해 자본시장을 안정화하고,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형성했다. 또 2차 대전 직후에는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구헤게모니국가(미국과 영국) 간의 불완전한 타협(특히 케인즈의 요구가 부분적으로 반영)으로 각 국민국가들이 자유로운 국제적 자본이동에 대해 일정한 규제와 통제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체제는 본성상 완전한 자유화와 고도의 유동성을 추구하는 금융자본과 양립하기가 어려웠다. 미국 금융자본은 1930년대 이후 70년 동안 케인즈주의 타협으로 가능했던 각종 금융규제를 대부분 해체하고 변형함으로써 자신의 수익성과 유동성을 회복하고 강화시켰다.


미국의 투자은행은 196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파트너십 형태의 소규모 자본에 머물러 있었다. 초기 투자은행의 경우 주된 업무가 암묵적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아주 중요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 이윤율이 하락하고 오일머니가 유입되면서 자금이 자본시장 쪽으로 몰리자 파트너십 형태의 소규모 투자은행으로는 급속히 커져가는 자본시장 업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또한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통신기술이 금융부문에 응용되면서 대규모 거래의 주문체결과 결제가 용이해짐에 따라 대규모 소매거래에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는 대규모 투자은행이 필요했다. 1914년에 소매증권사로 출발하여 인수합병 등을 거쳐 거대 종합투자은행으로 발돋움한 메릴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메릴린치는 1971년에 비로소 기업공개를 했으며 1973년 업계 최초로 금융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한편 월스트리트가 생긴 이후 200여 년 동안 주식매매 중개수수료가 고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는데, 이런 관행도 1970년대 주식거래의 폭발적 증가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마침내 1974년 미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주식매매 중개수수료가 전면적으로 자유화되었으며, 파트너십의 소규모 투자은행들도 주식회사형태로 전환하면서 대형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등장한 정보통신기술이 금융에 접맥되면서 대규모 거래와 결제가 전례 없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가계의 예금, 적금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는 대신 가계의 간접적인 주식보유가 크게 증가했다. 이런 여건에서는 전통적인 상업은행이 기존의 업무영역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지주회사형태의 거대상업은행은 은행지주회사의 자회사 방식으로 투자은행의 자본시장 업무영역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따라서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상업은행은 은행지주회사를 통해 증권업무, 자산관리업무, 보험업무 등 비은행업무로의 확대를 지속해서 추진했다. 1990년대까지 존재했던 은행의 겸업화와 대형화에 대한 걸림돌은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그램-리치-블라일리법) 제정을 계기로 거의 사라졌다. 이 법의 제정은 1930년대 만들어져 미국 금융시스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글래스-스티걸법을 허무는 최종 조치이기도 했다.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의 제정으로 2000년 이후에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경계선이 사실상 모호해졌다. 몇 가지 제한 조치가 남아있기는 하나 은행, 증권, 보험회사 간 합병이 가능해지면서 금융기관의 대형화가 급속히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미 1990년대 중반 이후 거대금융기관 간 합병인수의 결과로 소수의 거대은행들의 금융지배력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이러한 추세가 강화될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기존의 은행지주회사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미국금융자본의 권력은 이전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가 미국금융자본의 핵심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장벽이 금산분리이다. 추가적으로 은행과 상공업 분리원칙마저 무너진다면 산업과 금융 두 영역 모두를 동시에 지배하는 거대권력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5대 투자은행이 상업은행에게 인수되거나(베어스턴스, 메릴린치), 은행지주회사로 전환(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한 것을 두고 투자은행 모델의 몰락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미국 금융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1980년대 이후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경계가 약화되기 시작했고 1999년의 금융서비스현대화법으로 결정적인 장벽이 제거되었다.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독립적인 투자은행이 한꺼번에 사라지기는 했지만 이미 다양한 기관에서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에서 존속될 것이다. 오히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싼 값으로 거대 투자은행을 인수한 금융자본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자본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할 지도 모른다.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금융자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한편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미 베어스턴스를 구제하기 위해서 29억 달러의 부실증권을 인수했고, 2,000억 달러를 들여 패니메이와 프래디맥을 국유화했다. 또 850억 달러를 들여 AIG의 지분 80%를 인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연준 위원장 버냉키와 재무부 장관 폴슨은 미국 시민들의 세금 7,000억 달러를 구제금융으로 금융자본의 부실자산을 대부분 사들이겠다고 제안했다. 또 동시에 미국 정부는 3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머니마켓펀드(MMF)' 예금으로 위기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에 대해서 지급보장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은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세계 1위의 투자은행이었던 골드만삭스의 전직 CEO 출신이다. 그런데 지금 폴슨(또는 골드만삭스?)이 이러한 구제금융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폴슨의 구제금융안에는 정부가 어떤 증권을 구매할 것인지, 어떤 기업이 이러한 보장을 받을 것인지, 증권의 가격은 어떻게 매길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기준도 담고 있지 않다. 오직 정부와 의회가 폴슨에게 7,000억 달러에 대한 처분권을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할 뿐이다.


사실 구제금융을 통한 부실증권 매입은 미국정부로서도 매우 곤혹스러운 결정이다. 어떤 자산을 어떤 가격으로 사야하는지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부실 금융기관들이 매각하는 자산의 가치가 현재의 시장가치보다 낮을 경우에 다시 그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고, 금융경색 현상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 부실자산을 시장가치보다 높게 사들일 경우 정부의 재정적자는 과대해질 것이고,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시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자산에 대한 적정 가치를 측정하는 문제 자체가 현재의 위기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폴슨은 구제금융 절차를 자신에게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구제 과정을 사유화하려고 한다. 폴슨이 고용한 월스트리트의 기업이 부실자산의 가격을 결정하면, 정부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월스트리트 기업의 부실자산을 구매해야 한다. 한편 이 월스트리트 기업은 수억 달러를 금융서비스의 대가로 받을 것이다. 게다가 폴슨과 버냉키는 시간이 지체되면 세계 금융시장이 붕괴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자신들의 구제금융안을 의회가 신속하게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 의회가 이 안을 그대로 통과시킨다면 한 사람에게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결정적인 권한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승인 받기 위해 했던 일과 유사하다.) 또 놀랍게도 폴슨의 구제금융안에는 금융자본에 대한 처벌이나 유사한 사태를 막기 위한 규제방안이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제기하는 부실금융기관 경영자에 대한 보수 제한조치도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는 무관한 파퓰리즘에 불과할 뿐이다.


폴슨은 2007년 봄에만 해도 미국이 금융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서 세계 금융시장에서 우위를 빼앗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폴슨은 '금융제국'의 대리인이자 건설자로서 이러한 금융 위기를 만든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금융자본과 자신과 같은 금융엘리트들이 만든 현재의 위기를 시민들의 돈과 책임으로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처리 과정의 결정권을 자신의 수중에서 통제해서 7,000억 달러를 사용하려고 한다.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7,000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금융위기를 현 상황에서 제어한다면 금융자본과 미국 지배세력에게는 좋은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점적인 권리를 통해 권력을 재승인 받는 금융엘리트와 금융자본은 새로운 금융권력을 형성하려고 할 것이다. 9월 25일 미국에서는 사회운동네트워크인 평화정의연합(United for Peace and Justice, UFPJ) 주최로 월스트리트를 위한 자금 지원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8,000억 달러 이상을 쓴 미국 정부가 월스트리트를 위해 7,000억 달러를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미국 경제의 금융화는 미국 내 소득 격차를 축소하기는커녕 더욱 확대했다. 즉 금융화의 수혜는 소수 고소득자에게 부를 더욱 집중시켰다. 하지만 금융화 거품이 붕괴하는 순간 그 막대한 회생비용은 결국 다수의 민중이 부담하게 된 것이다. 미국 금융위기는 금융화가 내포하는 계급적 본질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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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베르그손,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에 관한 시론>, 최화 옮김, 아카넷

 질 들뢰즈, <베르그송주의>, 김재인 옮김, 문학과 지성사

 황수영, <베르그손-지속과 생명의 형이상학>, 이룸 


 들뢰즈는 철학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올바로 제기하는 일이라고 한다. <베르그송주의>에서 들뢰즈는 지속, 기억, 엘랑 비탈 세 가지 개념을 통해서 베르그손을 읽자고 제안한다. 먼저 들뢰즈는 방법으로서의 직관의 세 가지 규칙을 이야기한다. 첫째 문제의 제기와 창조, 둘째 진정한 본성 차와 실재의 마디를 발견하기, 셋째는 공간보다는 시간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기와 관련된다. 들뢰즈가 보기에 문제를 제대로 제기하는 것은 발명이나 창조이다. 첫째 규칙과 관련하여 거짓문제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 문제들과 잘못 제기된 문제들이 그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문제들은 더와 덜의 문제를 착각하고 부정적 관념들을 앞세우는 지성의 착각에서 유래한다. 또 잘못 제기된 문제들은 분석된 강도량 개념, 공간화된 시간(동질적 시간), 자유의 문제에 대한 오해이다. 이는 본성상의 차이를 갖는 것들을 혼동하고 뒤섞어 정도상의 차이를 갖는 것으로 파악하고 질적 차이를 양적 차이로 환원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경험 자체는 복합물이기 때문에 직관을 통해서 이것들을 본성상의 차이를 갖는 지속과 공간, 질과 양으로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양적 다양체는 불연속적인 동질적 요소로 되어있으며 상호외재적인 정도상의 차이를 갖는다. 질적 다양체는 서로 연속적이면서 이질적이고 상호침투하는 유기적 전체로서 본성상의 차이를 갖는다. 특히 공간과는 달리 지속은 나누어지면서 본성을 변화하는 것이다.

이중에서 특히 공간화된 시간의 문제, 동질적 시간이라는 관념은 이러한 문제를 요약할 만한 커다란 중요성을 갖는다. 베르그손의 국가박사학위논문인 <의식에 직접 소여론>은 시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부논문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론에 관한 것만 상기해보더라도 그에게 있어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말년의 베르그손은 자신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해달라는 부탁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시간이 있고, 그것은 공간과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의식에 직접 소여론>(이하 <시론>) 2부를 중심으로 베르그손의 생각을 살펴보기로 하자.

 

수 개념과 공간 표상

베르그손은 <시론> 2부에서 우선 수 개념 분석을 통해 지성의 공간 표상을 밝힌다. 수 개념은 양화quantification 작업의 토대가 되는데, 양 50마리를 세는 경우를 살펴보자. 양을 세기 위해서는 첫째로 개체들의 구체적 성질이 무시되어야 하고 둘째로 각 개체들은 동질적이면서도 서로 구별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모두 섞여버릴 것이고 50마리의 양들은 공간 속에서만 구분될 수 있다. 공간은 수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장이다. 왜냐하면 양들을 셀 때 우리는 매 순간 한 마리의 양들과 관계할 뿐이며 이렇게 순간 속에서 파악된 개체가 50마리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그것들 전체를 단번에 직관할 수 있어야 하고 각 개체들의 이미지를 매순간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의 형성은 동질적 단위unity를 이상적 공간 속의 한 점으로 표상하면서 그것들의 합을 전체로 직관할 때 가능해진다. 이 때 단위들을 무한히 분할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들이 연장된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분할가능성은 수학적 공간을 전제로 하며 지성의 작용과 분할가능성, 수학적 공간은 이렇게 서로 맞물려 기능하는 개념이다. 한편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수와 공간은 서로 동근원적이며 이때 공간의 특징은 상호 외재성이다. 또한 연장 실체로서 물질의 고유한 본성으로 불가침투성을 상정하는 근대철학의 사고도 전형적인 공간적 사고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공간 표상을 시간 속에 투사하는 데서 발생한다. 실재적 시간은 구체적 변화 속에서 느껴지는 시간이며 질적 변화, 생성이다. 이 질적인 시간의식을 느끼기 위해서는 의식의 심층적인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외적인 자극과 행동의 실용적 요구에 몰두한 의식은 소통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인 공통적인 것, 질의 추상화, 일반화에 이끌린다.

시간은 계기적successive이며 공간에서 나타나는 병렬적인 성격을 갖지 않는다. 요소들은 불가분적으로 상호침투하며 지속한다. 이것들은 이질적이면서도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서 통합되어 연속적이다. 마치 음악의 선율에서처럼 과거, 현재, 미래가 적극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의식상태들은 비가역적이며 과거 기억의 전체가 축적된 채로 부단히 변화한다. 축적된 과거 기억이 현재 속에서 새로운 것과 함께 매 순간 질적으로 변화하고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성은 의식 상태들에 공간 표상을 투사함으로써 의식의 본성을 왜곡한다. 예컨대 시계바늘과 시계추의 운동으로 상징되는 시, 분, 초로 분할된 객관적, 과학적 시간을 다루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성은 지속의 직관과 대립하는데 지성은 의식을 외재화하고 공간표상을 통해 파악하기 때문이다. 반면 내적 의식은 순간 밖에 없는 객관 세계에 연속성을 부여한다. 일종의 삼투압처럼 의식의 내재성과 지성의 공간적 사유가 타협해서 만든 것이 동질적 시간이다. 공간은 공존coexistence, 시간은 계기succession라는 형식에 의해 각각 동질성을 띠게 된다. 베르그손은 공간을 동질적인 것으로 정의하며 거꾸로 모든 동질적인 것은 공간이라고 말하는데, 질의 부재로서의 동질성은 일종의 가상이다. 공간은 우리 의식의 상호 침투하는 상태들을 분리하여 그것을 병렬시킴으로써 동질적 시간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동질적 공간의 기원에는 인간 지성의 노력이 있다. 가령 동물들에게 공간은 인간에게서처럼 동질적이지 않으며 고유한 질적 특성을 띠는 방향감각을 갖는다. 사실 인간에게서 조차 오른쪽과 왼쪽의 감각은 분석이나 정의가 불가능하다. 자연에 적응하고 그것을 지배하기 위해 생겨난 인간 지성에게 질적 차이는 부담스러운 것인데, 베르그손은 칸트와 마찬가지로 공간을 주관의 형식으로 간주하되, 그것을 넘어서 지성의 형식으로까지 간주한다. 지성은 이질성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동질적 공간을 형성하고 모든 질을 양화시킨다. 인식론에서 발생학으로의 전환. 동질적 공간의 범형은 유클리드 공간이며 피타고라스의 무리수 문제, 파르메니데스의 일자, 제논의 역설 등은 이러한 공간 표상의 극단에서 성립하는 산물이다. 요컨대 공간 표상은 실제적 삶과 행동의 필요성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실재적 지속의 직관과는 상반된다. 그러한 이유로 공간화된 시간은 들뢰즈가 말하듯이 불가피한 초월론적 가상(칸트)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도 있다. 여하튼 직관하는 심층자아가 상호침투하는 흐름이고 본래적 자유라면 사회적 삶과 관계하는 표층자아는 소통의 필요에 의해 내적 상태를 양화하고 언어로 표현하는데, 언어 역시 유동적 실재를 고정하는 공간 표상의 산물이다. 이처럼 지성적 인식은 행동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실재의 본 모습은 지성이 아닌 내적 직관, 지속 안에 위치하여 그것과 하나가 되는 행위에 의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이제 “지속과 공간이라는 두 항이 동시성으로 연결되며, 그것이 시간과 공간의 교차”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말할 차례이다. 베르그손에서 동시성은 지속과 공간의 교차로 정의된다. 권리적으로는 지속과 공간은 올바른 나눔division의 방법에 의해 엄밀히 구별되어야 하지만 사실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경험은 복합물이며 지속과 공간이라는 두 경향은 서로 삼투한다. 의식적 삶은 물론 이질적인 계기들이 불가분하게 상호침투하는 유동적 흐름이지만, 지속에 어떤 순간을 잘라낸다면 일종의 동시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과학은 속도를 잰다고 할 때 운동의 시작점과 끝점, 두 동시성을 찍고 그 사이의 공간을 셈한다. 만약 우주의 모든 운동들이 두 배, 세 배 빨라질 때 의식은 어떤 질적인 느낌을 갖지만 과학이 다루는 물리적 공식은 수정될 필요가 없다.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으로서 동시성은 그것을 접점으로 하여 지속하는 공간, 공간화된 지속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아 속에는 상호 외재성이 없는 계기만이 있으며 자아 밖에는 계기 없는 상호외재성만이 있다. 시간을 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양자 사이의 삼투현상에 의해 생긴 것이다. 지속과 외부 세계의 결합, 가령 종소리를 들을 때 그것이 주는 선율로서 질적인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지속에 속한다면 종소리를 구별하여 하나하나 세는 것은 공간적 사유인 것이다. 순수한 이질성이 상호침투하고 내적이고 유기적으로 결합한 의식의 상태를 서로 병치시키고 계기를 연속적인 선으로 표상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지성의 작용이다. 이처럼 시간이 구별하고 세는 장소가 된다면 공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며, 베르그손은 동질적 시간은 공간의 제4차원이라고 부른다.  



 

제논의 역설

파르메니데스에서 비롯하는 엘레아 학파의 일자 문제는 오랫동안 주된 철학적 주제가 되어왔다. 특히 제논의 역설에 대해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무한급수), 라이프니츠(미적분), 칸트 등의 철학자들이 그 대답을 내놓았지만 그 문제들을 진정으로 풀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베르그손이 보기에 이 역설은 동적인 실재와 우리의 지성에서 성립하는 공간 표상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즉 운동이 지나간 공간적 궤적trace과 운동 그 자체(운동의 운동성)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속을 공간 중의 신체가 갖는 운동 표상이나 감관 지각이 주는 외적 대상의 표상과 섞어버린다. 이와 같은 지속과 공간의 삼투 효과가 공간화된 시간과 동질적 시간을 낳는 것이다. 공간은 시간의 계기성이나 방향성이 제거된 상호외재적인 동시성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다시 제논의 역설로 돌아와보면, 아킬레스의 걸음과 거북이의 걸음 각각은 불가분적인 하나의 행위act이며 공간처럼 분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베르그손은 공간은 무한히 나눌 수 있는 상호외재적인 것이지만 운동은 나누어질 수 없는 것 자체이며 지속으로서의 시간이다. 아킬레스나 거북의 각 걸음은 자신의 고유한 질적인 것으로 의식에 주어지며, 이러한 질적인 것을 나누는 것은 그 질을 본성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공간이 정지와 순간, 동시성과 동질성의 표상이라면 지속은 이질성을 계기로 갖는 운동 자체이다. 지속에서는 정지된 순간을 구분할 수 없으므로 공간 속에서 파악되는 것처럼 한 위치와 일치시킬 수 없다. 운동의 실재성은 우리의 살아있는 내적 의식 및 지속의 관련 하에서만 보아야 한다. “설탕이 녹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는 베르그손의 유명한 말도 시간과 지속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성이 상정하는 부동적이고 동질적인 공간 표상에서는 결코 운동 자체를 파악할 수 없으며, 실재 자체는 우리의 직관을 통해서 인식 가능한 것이다. 베르그손에게 공간은 제작적 삶이나 행위에 관심을 둔 지성의 산물이고 모순율에 기초해서 동적 실재를 고정화시킨 표상이다.  




칸트와 베르그손의 공간론 

칸트는 감성적 인식에서 시간가 공간이라는 선험적 형식의 의미를 강조한다. 칸트가 보기에 공간은 버클리가 본 것처럼 감각들 간의 관계로서의 공간도 아니며 데카르트가 파악한 것처럼 외적 연장 실체도 아닌 주관의 형식이자 순수직관이다. 공간부분들로 이루어져있고 이것들을 서로 포함 관계를 갖는다. 이에 반해 개념은 특수한 대상들을 일반화하여 자기 아래에 포섭subsumption한다. 개념과 공간이 이러한 차이를 지니며 칸트는 공간이 감각적 현상에 관해서는 경험적 실재성을 갖고 물자체에 관해서는 초월적 관념성을 가짐을 주장한다. 문제는 칸트가 시간 역시 공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내감의 형식이지만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부분들이 단 하나의 시간에 귀속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간의 직관적 성격을 보이기 위해 칸트가 들었던 ‘대칭적 대상의 역설’의 예는 시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공간과 시간 관념의 동형성은 연장적 크기와 강도적 크기의 분석에서 잘 드러나는데, 양과 질의 범주에 의해 성립하는 순수지성의 원칙은 각각 직관의 공리와 지각의 예취의 표제 하에 논의된다. 칸트는 경험적 의식에서 다양성의 통일은 곧 시공간적 직관의 통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지각의 예취 원칙에서 감각내용을 양적 본성을 갖는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도를 질의 범주의 초월적 도식으로 파악하는 것인데, 이때 강도적 크기는 시간의 내용을 채우는 감각의 강약의 정도를 의미한다. 즉 강도적 크기는 ‘질의 양’으로 파악된다. 베르그손에게 시간은 의식상태의 질적 존재방식과 관련되므로 칸트의 강도량 개념은 비판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베르그손은 칸트의 선험적 형식으로서 공간을 지성의 산물로 본다. 오히려 베르그손은 동질적 공간과 연장을 구분한다. 연장은 본능에 의해 파악되는 구체적 실재이며 수학적으로 파악된 추상적 동질적 공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순수공간, 즉 동질적 공간은 모든 질의 부재로 이루어지는데, 칸트는 시간을 감각들이 그 안에서 순차적으로 전개되는 동질적 장소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해된 시간은 베르그손이 보기에 순수의식의 영역에 공간 관념이 침입해서 생긴 사생아적 개념이다. 동질적 시간 파악의 비밀은 바로 공간 속에 있다. 공간에 비해 지속은 서로에 대해 내재적이며 상호침투한다. 칸트가 물자체와 현상계를 구분하면서 오로지 상대적 인식만이 가능하다고 보았다면 베르그손은 지속의 직관을 통한 절대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본다. 베르그손이 지성의 근본적 토대로 제시하는 동질적 공간은 삶의 실용적 목적 외에 다른 기원을 갖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성의 형식은 단지 행동의 필요성과 관련될 뿐이며 진화적 기원을 탐구함으로써 발생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 본능과 달리 무기적 도구를 제작하기 위한 실용적 필요를 갖는 지성은 지속에 무차별적이고 동질적인 공간을 투영함으로써 물질을 분해하고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여>의 구분에 따르자면 이러한 공간화된 시간은 사회적 의식언어생활과 관련된 표층의식과 관계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논변을 통해 베르그손은 플라톤의 독단론과 칸트의 불가지론을 극복하는 이중적 목표를 갖는다.   




과학적 인식과 직관

과학은 모든 것을 정태적으로 관찰, 분석, 물질 언어로 계량화해서 표시한다. 과학은 내재적 의식의 흐름으로서의 시간, 양화할 수 없는 삶의 시간, 의식의 상태마저도 그렇게 한다. 과학적 인식, 개념적 사고는 대상 사이에 공통되는 것을 추출하고 추상화, 일반화하는 분석이며, 이러한 실증과학은 절대적 인식은 될 수 있어도 전체적 인식은 결코 될 수 없는 부분적 인식일 따름이다. 질적 차이를 양적 차이로 환원하고 질적, 내적 강도를 강도량으로 환원하는 과학적 인식은 상대적이다. 과학적 인식을 지도하는 지성은 도구를 만들고(호모 파베르) 감각의 연장이자 행동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과학적 인식은 적어도 물질에 관한 한 절대에 접촉할 수 있지만 결코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부분적인 것이다. 수를 세고 헤아린다는 것은 동질적 공간 안에서 상호 외재적인 것을 병치하는 것이다. 

 과학이 지성에 의존해서 물질을 다룬다면 철학은 정신을 자신의 고유대상으로 삼는다. 직관이 요구되는 까닭은 과학이 상정하는 바와는 달리 세계가 부단히 움직이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은 베르그송의 직관은 종래 철학자들이 말하던 지속의 밖에 위치한 지성적 직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직관은 구체적 실재 내부에 파고들어가 대상에 합일하는 공감이다. 대상에 일치하여 그 대상을 전체적으로 또 직접 파악하는 것이 직관이며, 이런 점에서 직관은 내적 지속으로 향하는 단순한 행위이다. 직관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지속 속에서 사고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방식을 통해 형이상학은 궁극적으로 질적인 미분과 적분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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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p 2011-12-12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글 읽고갑니다. 감사해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발제





 



1.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신경증자로서의 주체

라플랑슈와 퐁탈리스가 쓴 『정신분석사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약술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부모에 대해 느끼는 사랑과 증오의 욕망의 조직 전체. 이른바 그 콤플렉스의 양성적 형태는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에서처럼, 경쟁자인 동성 부모의 죽음을 욕망하고 이성 부모에 대한 성적 욕망으로 나타난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인격의 구조화와 인간의 욕망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1)라플랑슈. 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정신분석 사전』, 임진수 옮김, 열린책들, 2005, p261.)

프로이트는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정신분석학의 주춧돌”2)(홍준기, 「자끄 라깡, 프로이트로의 복귀-프로이트ㆍ라깡 정신분석학: 이론과 임상」, 김상환, 홍준기 엮음, 『라깡의 재탄생』, 창작과 비평사, 2002, p45. 이하에서 발표문의 바탕이 될 이 논문의 인용 시에는 별다른 표기없이 괄호 안의 쪽수를 써넣어서 표기하기로 한다. 인용 속의 강조는 원문의 것이다.)로 보았으며 거세콤플렉스는 유한한 인간에게는 완전히 제거될 수 없는 “구조적 암반”이라고 생각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야말로 정신분석의 가장 근본적인 개념 중 하나이며,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이 비로소 성적 주체로 태어난다는 점에서 정신분석의 독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곧 정신분석학이 하나의 학적 체계로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는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46)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분석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들은 대부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을 겨냥하고 있다.3) (실증주의적 과학관에 기초해서 정신분석의 사례들을 반증불가능한 사이비 과학으로 보는 포퍼의 비판과 모계 사회 연구 등을 기반으로 프로이트가 근친상간 금지의 문화적 성격을 간과했음을 비판하는 말리노프스키의 비판에 대해서는 홍준기, 『라캉과 현대철학』, 문학과 지성사, 1999, pp.236~246을 참조할 것.) 이들 통속적인 비판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우리의 상식적인 도덕의식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해, “인간을 과거에 고착되어 자유를 상실한 존재로 만든다는 비판”이 그 주종을 이뤘는데, 그 비판의 정당성을 따져보기 이전에 정신분석학의 내적 맥락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성이 성적 결합이나 성행위 같은 좁은 의미가 아니라 부모와 아이 간의 “모든 양육행위, 관심과 애정의 표현”, 곧 “시선과 목소리의 교환”, “똥 누이기” 등도 정신분석학의 맥락에서는 넓은 의미에서의 성적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 둘째로 프로이트가 본능Instinkt과 충동Trieb을 구분한다는 점(46).

본능과 충동의 구분은 중요하므로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본능은 인간(동물)을 미리 정해진 특정한 행위”로 이끈다는 점에서 결정론적이다. 반면 충동은 본능에 기초를 두고 있되, “본능과는 달리 상징적 차원에서 작동”하므로 “예외일탈을 허용”(47)하기에 생물학적 재생산, 성감대의 만족과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바처럼, 충동은 육체와 심리 사이의 ‘한계개념’이며, 이것은 “목적성을 갖지 않으므로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다양한 대상에서 같은 만족을 얻을 수 있으며, 심지어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충족에 도달 할 수 있다.”4) (홍준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자의 성, 여자의 성-정신분석강의Ⅰ』, 아난케, 2005, p20. 충동은 그 자체로 성구분을 갖지 않는 무성적인 것이지만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거세콤플렉스를 경유하면서 주체는 타자의 영역 속에서 남성적 또는 여성적 위치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미리 결정된 과정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동의 대상이 꼭 실제 대상일 필요는 없다. 정신분석은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충동, 욕망, 향유jouissance 등의 개념을 그 대상으로 갖는다. 바나나와 사과의 예(47)에서 볼 수 있듯이 충동의 대상인 것은 현실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현실을 유지시키는 환상,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심리적 현실’로서의 환상으로서 “사후적으로nachträglich”(불어의 전미래 시제를 생각해보자 : ‘거세는 실제로 발생한 것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거세 콤플렉스는 아버지가 실제적으로, 역사적으로 위협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아들환상 혹은 환상적 해석의 결과”(47)가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갖는다는 것과 신경증자가 되는 것은 곧 같은 의미인데 이것은 이 두 항이 부동의 기계적, 직선적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서의 증상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원인과 시간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때 신경증자가 아버지가 근친상간을 금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만족을 주는 어머니라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49). 자신의 실존적 공허를 견뎌내는 것보다 이러한 착각이 더욱 견딜만한 것이기 때문에, 신경증자는 오히려 근친상간 금지명령을 욕망한다는 것이다. “완전한 대상을 소유하고 있는 경쟁자가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이 자기의 팔루스적 약함을 견뎌야 하는 것보다 편하다.”5)(페터 비트머, 『욕망의 전복』, 홍준기 외 옮김, 한울, 1998. p148)           




2. 라캉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해석 - ‘아버지의 이름’을 중심으로

이제 라캉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해석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볼 차례이다. 프로이트가 당대의 다윈의 진화론을 신봉하는 등 ‘과학주의적 오류’로 얼마간 편향된 측면이 있었다면, 라캉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은 “철저히 구조적”인 파악으로서, 말리노프스키 등의 프로이트 비판이 함축하는 “생물학적, 역사학적 혹은 신화적 이해방식”(50)과는 대립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레비스트로스와 소쉬르 등의 구조주의 운동과 궤를 같이하는 라캉의 이러한 구조적 해석은 프로이트가 『토템과 터부』에서 제시하는 ‘원초적 아버지’의 원시군거집단의 근친상간금지법 역시 문자적, 역사적, 발생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구조적으로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이 아버지는 “이름”으로 , “상징적 의미” 속에 존재하는, “은유 혹은 기표”(52)로서의 아버지이다. 이 아버지의 이름(nom)은 곧 아버지의 금지(non)이기도 한데, 라캉에게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가족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 속에 존재하는 필연적인 ‘삼각관계’, 즉 구조적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라캉의 팔루스Phallus는 무엇인가? 라캉은 남녀의 ‘차이’ 자체를 상징하는 기표로서의 팔루스와 육체기관으로서의 페니스를 구분한다. 팔루스는 “결여 자체의 상징”으로서 양성의 이상적 합일(“성적 관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이 불가능함을 암시한다(54). 주체는 궁극적으로 무無에 불과한 남근을 상상적 팔루스로 승격시킴으로써 결여를 메우려는 신경증자가 되며, 이 팔루스와 주체가 갖는 구조적, 논리적 위치 또는 향유의 방식에 따라 남녀를 구분한다.6)(홍준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자의 성, 여자의 성-정신분석강의Ⅰ』, 아난케, 2005, p63. 성적 차이에 대한 라캉적 탐구의 보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슬라보예 지젝 외, 『성관계는 없다』, 김영찬 외 엮고 옮김, 도서출판 b, 2005를 참조할 것.) 라캉의 팔루스 개념은 그를 남성중심주의의 옹호자로 오해하도록 부추기기도 하는데, 하지만 라캉의 팔루스는 자신을 지탱할 궁극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 유의해야 한다. 남성을 지탱해주는 팔루스란 단지 결여의 상징이므로 페니스를 가진 남성의 우월의식은 단지 착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곧 “주체에게 상상적인 만족감, 근거없는 충족감을 주는 모든 것, 자신의 결여를 채울 수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일 뿐인 이 모든 것이 팔루스라는 상징 속에 포함된다.”(56) 가령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부재와 현존의 교대 속에서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머니는 왜 팔루스를 욕망하는가? 그것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결여된 존재이기 때문이고, 이때 팔루스는 주체의 결여를 채워준다고 가정되는, 그러나 실정적인 대상으로서 무엇이 아니라 “결여 자체의 상징”(53)이 된다. 만약 아이가 어머니가 원하는 팔루스가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수용하면 어머니와의 상상적 이자관계에서 벗어나 상징계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아버지의 이름’을 수용하지 못하게 되면 상상적 이자관계- 곧 근친상간 관계-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라는 제3자, 아버지의 이름(이 제3자를 라캉은 상징계, 대타자 등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없이 어머니와 아이 간의 둘만으로 이루어진 폐쇄적 세계, “아버지의 이름의 배척(forclusion)”(56)이 바로 정신병의 세계이다.7)(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라캉이론과 임상분석』, 맹정현 옮김, 민음사, 2002, pp. 192~193  “아버지의 상징적인 기능을 전복시키는 것은 이로울 게 없다는 것, 그 결과는 아버지의 기능 자체보다도 더 나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신병의 발병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라캉이 <~이냐, 더 나쁜 것이냐 ~ou pire>라는 제목으로 실행한 세미나 XIX에서 말하려고 했던 바이다. 물론 그 제목에서 생략된 단어는 바로 아버지란 뜻의 père이다.”) 신경증자는 적어도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상징적 거세를 수용한, 곧 자신이 어머니의 팔루스가 될 수 있고 완벽한 만족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포기함으로써, 완결이 불가능한 애도작업Trauerarbeit을 수행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주체이다. “팔루스가 됨(être le phallus)”에서 “팔루스의 소유(avoir le phallus)”로의 이행(57)은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와의 상징적 동일화를 함으로써 가능해진다. 58쪽의 도식 중 왼쪽의 삼각형이 나타내는 것이 상상적 자아moi와 이상적(상상적) 어머니 또는 이상적 자아Ideal ich가 갖는 근거없는 충족감을 주는 상상적 팔루스(Ψ)적 관계라면, 오른쪽 삼각형은 아버지의 이름, 즉 상징적 팔루스(Φ)의 개입으로 자아의 이상(Ich ideal)로서의 어린아이와 상징화한 어머니가 3자관계를 맺는 상징적 관계이다.8)(딜런 에반스, 『라깡 정신분석 사전』, 김종주 외 옮김, 인간사랑, 1998, p327.   “자아이상은 상징적 내사introjection이고 이상적 자아는 상상적 투사projection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자아이상은 내재화된 법률계획으로서, 이상으로서, 상징적 질서에서 주체의 위치를 좌우하는 길잡이로서 작동하는 능기이다.......반면에 이상적 자아는 거울단계의 거울상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것은 자아가 바라는 미래 통합에 대한 약속이며, 자아가 구축되는 통일성의 착각이다.”)  

 




동물적 인간에서 인간주체로 변하기 위해서 어린아이는 어머니가 원하는 팔루스는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서 라캉은 “아버지 은유métaphore paternelle”를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욕망의 기표인 S'가 아버지의 이름, 기표 S에 의해 대체됨으로써 은유적 의미(s)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름, 명사, 금지로서의 아버지는 엄마를 지워버리며, 중화시키며, 대체한다. 간단히 말해, 아버지는 자신의 금지와 이름으로 엄마를 대체한다.”9)(60쪽 공식에서의 횡선은 기표의 대체와 억압을 보여준다) 아버지 기표가 개입하기 전에는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은 아이 자신이었지만, 아버지의 이름nom du père의 개입으로 인해 아이는 ‘문자적’ ‘육체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은유적 의미에서만 혹은 무의식적으로만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10)(아버지의 이름이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과 은유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언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듯이 ‘아버지임’의 진리는 다른 질서에 속한다. 우리가  ”나는 어떤 정자의 아들 또는 딸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난센스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리프 쥘리앵, 『노아의 외투: 아버지에 대한 라캉의 세 가지 견해』, 홍준기 옮김, 아난케, 2000, pp84~85.) 이러한 은유적 언어사용은 신경증자에게 가능한 것으로 정신병자는 이러한 은유나 간접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라캉은 “팔루스의 의미작용”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팔루스가 영원히 상실된, 도달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에 “의미작용signification의 원천 혹은 의미작용 자체”(61)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라캉에게 아버지 은유는 인간은 유한하고 결여된 존재이며 그 욕망은 결코 완전히, 직접적으로는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라캉의 ‘프로이트로의 복귀’의 의미

요컨대 라캉이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주창했다는 것의 의미 역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비판과 정신분석학에 대한 거부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그 핵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라캉이 안나 프로이트, 하르트만 등의 자아심리학을 “직선적 인과론, 생물학적 환원주의, 생식기 중심주의, 사회순응주의에 근거하”(63)고 있다고 비판한 것은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의 ‘합리적 핵심’을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다른 것이 아니다. 이는 알튀세르가 마르크스 유물론에 대한 인간주의적 해석-청년 마르크스, 루카치,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으로 이어지는-과 싸우면서 인식론적 단절, 과잉결정 등의 개념을 통해 일생동안 마르크스에 대한 재해석과 개조작업을 지속했던 것과 종종 비견되기도 한다.11)(마르크스에 대한 알튀세르의 쇄신 노력에 대해서는 루이 알튀세르, 『맑스를 위하여』, 이종영 옮김, 백의, 1997 및 루이 알튀세르 외, 『자본론을 읽는다』, 김진엽 옮김, 두레, 1991 등을 참조하고 알튀세르가 라깡의 ‘프로이트로의 회귀’의 의미를 평가한 문헌으로는 루이 알튀세르, 「프로이트와 라깡」,『아미엥에서의 주장』. 김동수 옮김, 도서출판 솔, 2000을 참조. 단 위 논문에서 호의적이었던 알튀세르의 라캉에 대한 평가는 이후 「프로이트 박사의 발견」이나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하여」에서 비판적 관점으로 바뀌게 된다.) 라캉의 프로이트로의 복귀는 위에서 “아버지의 은유”를 살펴보면서 보았듯이,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지어져 있다’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소쉬르나 야콥슨의 언어학의 영향 하에서 작업했다는 점에서 물론 라캉은 구조주의 운동의 후예 중 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라캉이 단순히 구조 속에서 해체되는 주체를 말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라캉은 무의식의 ‘주체’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떠한 주체인가? RSI 도식이나 각종 수학소 등의 개념을 계속적으로 가공해나가면서 라캉은 자신의 체계를 끊임없이 쇄신했고 그의 사상은 그만큼 다면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정신분석은 숱하게 많은 이론적 분파들을 낳게 되었지만 오늘날 프로이트를 말하기 위해서 라캉을 우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3.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남는 의문 

지금까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프로이트에 대한 라캉의 해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라캉의 언어학적, 구조적 해석은 프로이트가 이른바 ‘범성욕주의자’라는 비판을 방어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순수하게 생물학적인 성적 요인만으로 규정되지도 않으며 마찬가지로 순수하게 문화적 요인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곧 그것은 중층적 결정 과정이다.  그런데 모든 2자적 관계에 대해 라캉은 모든 인간관계 속에 존재하는 필연적 사실로서 3자적 관계를 말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매개’로서 아버지 은유의 필연적 존재를 도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는데 있어서 가족 모델의 분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12)(질 들뢰즈/클레르 파르네, 『디알로그』, 허희정, 전승화 옮김, 동문선, 2005, p184.   가령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신분석학은 줄기차게 부모와 가족의 통로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다른 분기를 택하지 않고 이 분기를 택했다고 정신분석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 분기로 막다른 골목을 만들었던 점, 어쨌거나 정신분석학이 야기한 새로운 발화체들을 사전에 분쇄하는 발화 행위의 여건들을 고안했다는 점에서 정신분석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3자 관계의 구조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가족과 사회 사이의 일정한 상동성을 전제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가족 내의 가부장적 구조와 사회의 권위주의적 구조를 평행적으로 보는 식의 분석은 둘 사이의 존재하는 차이, 사회가 갖는 고유의 종별성, 복잡성을 사상시킬 우려가 있다. 두번째로 가족을 어떤 공시적인 구조적 모델로 삼는다고 할 때, 가족 자체 내에서, 또는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 관계가 가족을 관통하고 있는 모순과 변화의 역동적 과정을 살피기에는 난점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가족이라는 것 자체의 ‘역사성’을 파악하기에 라캉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은 충분히 개방적인가?13)(예컨대 유럽에서 ‘아버지’ 개념의 변화를 아이에 대한 권리, 아이의 권리, 아이의 친권을 소유할 권리 등으로 나누어 분석한 것으로는 필립 쥘리앵, 위의 책, pp. 47~68을 참조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상환, 홍준기 엮음, 『라깡의 재탄생』, 창작과 비평사, 2002 

홍준기, 『라캉과 현대철학』, 문학과 지성사, 1999

홍준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자의 성, 여자의 성-정신분석강의Ⅰ』, 아난케, 2005

장 라플랑슈. 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정신분석 사전』, 임진수 옮김, 열린책들, 2005

페터 비트머, 『욕망의 전복』, 홍준기 외 옮김, 한울, 1998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라캉이론과 임상분석』, 맹정현 옮김, 민음사, 2002

딜런 에반스, 『라깡 정신분석 사전』, 김종주 외 옮김, 인간사랑, 1998

필리프 쥘리앵, 『노아의 외투: 아버지에 대한 라캉의 세 가지 견해』, 홍준기 옮김, 아난케, 2000

루이 알튀세르, 「프로이트와 라깡」,『아미엥에서의 주장』. 김동수 옮김, 도서출판 솔, 2000

질 들뢰즈/클레르 파르네, 『디알로그』, 허희정, 전승화 옮김, 동문선,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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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주의? 무슨 말인지 모르겠

 


[기획 : 촛불에 미치다] 촛불과 민주주의



유영주 기자 www.yyjoo.net / 2008년07월22일 10시28분

촛불은 아직 진행형. 언제 어떻게 끝날까. 청계광장이 열린 첫날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단정하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진화(鎭火)하려 한다. 무시하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진화(進化)시키려 한다. 진단하기도 하고 기획하기도 하고 물 흐르듯 맡겨두기도 한다. 이렇게 촛불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 ‘촛불과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가능할까. 이 요란하고 역동적인 국면이 어떤 모양으로 일단락되느냐가 확인되지 않는 한 추정과 예측에, 주관적인 진단이 되기 십상 일지다. 그렇다고 정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내용과 형식의 문제는 촛불 이전부터, 그리고 촛불이 켜진 이후에도 한시도 관심 밖의 일이 아니었다. 정치에 대한 시민의 관심만큼 촛불과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지속했다. 이 주제를 놓고 관심을 피력했던 활동가와 연구자의 발언을 쫓아봤다. 정의라기보다는 정리에 가깝겠다.





▲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촛불선언’(시민인권선언) 만들자?


“광장과 거리에서는 직접민주주의 맹아들을 열심히 꽃피우고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새로운 시민혁명이 진행 중인 것 같다. 이 시민혁명은 권리의 혁명이기도 하다. 대의제 민주주의로는 수렴될 수 없는 새로운 주권자가 광장에서 탄생하고 있다.”


박래군 인권활동가의 말이다. ‘직접민주주의의 맹아’라는 말 속에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일정한 불신과 이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뭔가의 희망사항이 포함돼 있다. 일단 ‘새로운 주권자’의 등장에 눈을 떼지 않는데.


박래군 활동가는 이 주권자들이 ‘시민인권선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래군 활동가는 “당장 제도정치로 수렴될 수 없는 급진적인 권리의 내용을 광장에서 서로 제안하고, 토론하고, 합의하여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권으로 확고히 선언하자”고 주장한다. 인권활동가다운 고민과 실천이다.


촛불에서 확인된 민주주의를 둘러싼 쟁점과 논란, 요구들을 급진적으로 정리하되, 대중의 동의와 감성이 살아있는 ‘선언’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시민이 줄줄 외우는,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읊어지는 그런 짧고 간명한, 그러면서도 인민주권과 인민권력의 의지가 꼿꼿이 살아있는 선언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시민은 아직 6.29선언을 대체하는 선언을 갖고 있지 않다. 6.29선언에는 20년 전 6월 10일부터 18일간 ‘직선제’를 외쳤던 시민들의 정치적 열망이 오롯이 반영됐다. 선언의 주체는 지배자였고, 지배자의 입을 통한 선언이었지만, 지배자는 대중의 요구를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혁명이었고, 동시에 미완의 혁명이었다.


지금 촛불은 6.29선언을 대체하는 ‘촛불선언’ 탄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촛불선언’이 만들어진다 해도 6.29선언을 획기적으로 넘을 것인지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6.29선언과 같은 방식으로 정리되지도 않을 듯하다. 예상컨대 ‘촛불선언’이 만들어진다면 그건 대의제 민주주의의 밖에서 광장의 실천과 정신을 함축하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이걸 어디에다 써먹을까. 제대로만 만들어진다면, 그러니까 마치 헌법 제1조 처럼 줄줄 외울 수 있는, 광장에서 실천으로 의미가 공유된 그런 ‘촛불선언’이 만들어진다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와 공백을 들춰내며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의 그림을 그리는데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2년 안에, 곧, 개헌이 추진되면 글자 한 자 밀어넣기 힘든 상황이 된다. 이럴 때 ‘시민인권선언’을 들이밀고 실갱이를 하고 힘겨루기를 하는 지렛대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권력이 시민의 삶에 위협을 가하는 요소요소마다 이 선언을 근간으로 해서 끈질긴 저항을 펼쳐나갈 수 있으면 된다.


‘절망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직접민주주의'는 아직...


‘시민권리선언’과 유사한 문제의식은 백승욱 교수의 글에서도 확인된다.


백승욱 교수는 “헌정적 위기의 요소들과 삶의 현장에서의 투쟁을 결합하는 방법”을 고민하되 적어도 세 가지 요소를 담아내야 한다며 “법이데올로기를 의문시하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는 점, ‘노동자 시민’이라는 계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 사상적 자기검열의 벽을 허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 등을 짚었다.


백승욱 교수는 이 세 가지 요소와 결합하는 가운데 “하나의 구호가 이 모든 효과들을 한꺼번에 담아낼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고 서로 다른 운동들이 결합되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나는 이런 세상에 살고 싶다’ 선언자대회> 같은 운동이 아래로부터 조직되어 전국적 파장력을 갖게 되고, 그것이 ‘민중의 권리선언’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삶의 공간에서의 변혁을 위한 노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조건들이 없이는 곤란함을 겪을 것이며, 그럼에도 이런 삶의 공간들 속에서의 변혁을 위한 시도가 없다면 대중들을 정치의 주체로 만들려는 인민주권의 시도의 내용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백승욱 교수는 “어느 누가 집권하던 후퇴시킬 수 없는 대중들의 민주주의의 최저선을 확보하는 것, 그로부터 더 많은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가는 것”에 관심을 집중했다.


그렇다면 박래군 활동가의 고민이 멈춰 선 지점은 어딜까.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7.8월호에서 박래군 활동가는 “인권운동진영이 더 이상 담론에서 밀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변화의 열망을 권리선언이든 권리헌장이든 간에 담아내는 과정을 밟아야 하지 않을까요? 거리에서 경찰의 폭력을 감시하는 활동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직접민주주의, 주권자에 의한 직접 정치의 모델을 만드는 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촛불선언’을 만들고 주권자의 직접 정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직 이 실체는 확인되지 않는다.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맞닥뜨리고 있는 지점이다. 직접 정치의 모델, 그것은 아직 추상이다. 시민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거리의정치가 열리는 것만으로 직접민주주의나 직접 정치가 환원될 수 없는 까닭이다. 때문에 촛불의 주체들은 직접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뭔가를 갈망하지만, 제도 권력과 대의 민주주의의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급진적 인식과 실천이 조우하는 현실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가령 ‘민주주의는 장벽을 넘는다’는 실천은 곧 ‘장벽을 넘은 다음의 민주주의’의 질문 앞에 머뭇하게 된다. 거리의정치 내부의 장벽이라 할 비폭력 논란을 넘고 신자유주의 권력의 상징이라 할 명박산성을 점령할 수 있었지만, ‘절망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직접민주주의’의 실체가 확인된 건 아니다. 단정하자면 ‘거리의정치’에서 시민 참여의 직접성이 제도 권력과 대의 민주주의 안에서의 직접성과 연결되어 있지 않는데, 또 연결되지 않는 데 연유한다.


정당정치와 거리의정치에 대한 당연하고 한가한 조합


6월 10일을 경과하며 ‘촛불 이후’ 대안에 대한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정당정치와 거리의정치를 주제로 하는 의견이 봇물이 터지듯 하였다. 정당정치의 한계이므로 정당정치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거나, 정당정치와 거리의 정치가 병행 발전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예상치 못한 대중행동(거리의정치)을 목도하면서, 과거 거리의정치가 어떻게 정당정치로, 또는 제도 권력 구조로 수렴되었는가를 비교하는 가운데 전망 논쟁이 펼쳐졌다.


가령 이남주 교수는 정당정치의 반성과 거리의정치의 ‘정당’화를 두고 선순환관계를 발전시킬 필요를 제기했다.


이남주 교수는 “거리의정치가 정치발전에 대한 긍정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구도 내로 흡수하기 보다는 제도정치, 정당정치와 병행하면서 정치와 민주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원천으로의 기능에 주목할 필요”를 말하고 “거리의정치가 갖는 해방적 기능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정치행위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거리의정치를 생활정치로 설명하는 경우는 많으나 현재의 거리의정치가 구체적인 생활공간과의 결합 정도는 매우 낮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이남주 교수는 “현재 거리의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단위들 사이의 의제와 주체의 특성에 맞는 수평적 교류들의 활성화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맥락이면 ‘불매운동’을 계기로 한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의 활약이나 소비자주권운동에 주목해볼 수도 있겠다. 언소주는 언론NGO 비영리단체(법인)화를 추진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강남의 학부모들이 지역에서 촛불을 밝히고 교육 문제를 토론하며 네트워크를 한다거나, 과천의 주민들이 광우병 쇠고기 반대 프랭카드 걸기 운동을 하며 지역 주민의 생활과 연결하는 활동 등 촛불의 효과는 분명 작지 않다. 하지만 촛불시위에서 분출된 요구를 5대 의제로 압축해서 본다면, 각 의제에 대한 대안적인 논의와 실천을 전개해온 ‘수평적 교류’ 즉, 의제별 연대활동은 촛불 이전부터 존재했고, 촛불 과정에서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설득력을 갖는 ‘활성화’ 프로젝트가 제시된다면 모를 일이나, 결합해야 한다는 당위 정도로는 이후 실천 동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소환제, 직접민주주의 희구 과잉의 산물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하자며 제기된 하나의 방안으로 ‘소환제’가 주목된다. 2004년 총선 당시 ‘더 많은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운동 진영 내부 논쟁이 벌어진 바 있었고, 주민소환제가 이미 법률적으로 도입되어 있지만 이번 촛불 국면에서 적극적인 대안으로 거론되지는 않는 분위기다.


다만 우석훈 교수가 '주민소환제를 국민소환제로, 주민투표를 국민투표로 강화하자'는 주장을 펴고, 일부 블로거와 네티즌들이 온라인 토론을 펼치면서 이목이 쏠렸다.


우석훈 교수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축으로 서울시 한나라당 구청장과 광역의원을 하나의 명부로 해서 소환 서명을 받자고 제안했다. 촛불 망언을 한 김문수를 축으로 경기지역의 한나라당 시장들과 경기 광역의원도 하나의 축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기구로는 부안 주민투표를 할 때 했던 기구와 비슷한 형태로 각 지역별 주민카페 같은 것이 결합되도록 하고... 우석훈 교수는 “이를 발의하는 것만으로도 한나라당의 힘 절반을 무너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미 도입되어 있는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를 국민소환제와 국민투표로 강화해서 국회와 대통령도 소환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 골자였다.


6.10을 앞두고 제기한 이 글에서 우석훈 교수는 “6.10 기념제는 이 사건이 워낙 시청에서 광화문 사이에서 벌어진 것이니까 전또깡을 내렸던 사건을 상징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시청이 맞을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분산되어서 각 구청장이 있는 구청과 한나라당 당사로, 자신이 사는 동네로 확산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이 시나리오 대로라면 최소한 최근에 서울시의회 의원들의 최악의 뇌물 사건이 터진 데 대해 즉각 소환 운동이 펼쳐지고 있어야 한다. 오세훈 시장과 한나라당 전체에 대한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소환보다 범죄가 뚜렷한 서울시의회 의원의 즉각 소환은 명분과 정당성 모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이 주민소환 의지를 다소 정치적으로 선언한 것 외에 이렇다할 가시적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춧불집회에 나선 시민들이나 추진 주체 공히 ‘소환제’가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과정과 결론을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담을 갖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다음카페 등에서 국민소환제 추진을 위한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옥선 대외협력팀장은 “시장은 서울시민의 10%가, 시의원은 20%가 발의해야 하므로, 쉽지 않은 일이나 법적 절차를 밟아가며 차근차근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한 준비와 국민소환제를 추진이 덩치가 큰 일인만큼 실제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옥선 팀장은 “올해 안에는 발의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덧붙였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누구나 힘을 실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주민소환제든 국민소환제든 소환제가 주민(국민)이 참여하는 직접행동,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갖고 있지만,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내용은 아니다. 국민소환제가 5년단임 직선 대통령제라는 87년헌정체제의 권력제도의 일부를 보완하는 의미를 갖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 형식에 누가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러니까 폄하할 일은 아니지만 국민소환제가 곧 직접민주주의인 것처럼 인지되는 것도 위험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다.





▲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직접민주주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일전에 젊은 블로거들과 좌담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과대한 기대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토론을 펼쳐보였다.


한윤형 : 논점을 바꿀 필요가 있는데, 지지율이 떨어지면 뭔가 바뀌어야 정상인데 선거도 없고 할 게 없다.
김현진 : 교육감 선거!
한윤형 : 물가상승률 7%, 경제성장률 4%, 지지율 7%, 그래서 747이라고도 한다.
노정태 : 7.4% 지지율을 7월 안에 달성했다는 해석도 있다.
한윤형 : 이쯤 되면 방도가 있어야 하는데 청와대만 막겠다, 나머지는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김현진 : 세종로 니네 가져 이런 거지.
한윤형 : 그렇다고 혁명을 할 정국도 아니니 사람들한테 뭔가 요구하기도 그렇다. 제도적으로 어떻게 할 방법은 없고, 그래서 직접민주주의 이야기하는데, 근데 직접민주주의라는 말이 좋은 말인지 모르겠다.
김현진 :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한윤형 : 굉장히 아련한
노정태 : 꿈 속에 있는
한윤형 : 평생의 이상형 같은. 누군지 모르겠고, 걔가 쌍꺼풀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아련한. 대의민주주의가 안 굴러간다고 이야기하는 건 맞는데 어떻게 보완할까를 이야기해야.
완군 : 직접민주주의로 갈 거냐, 국민소환제냐, 대의민주주의냐 이야기하지만 이 에너지가 과연 형질 전환되는 에너지일까.


좌담에 참석한 블로거들은 최소한 촛불시위 현장에서 제기되는 ‘직접민주주의’의 거품을 걷어내는 공감대를 보여준다. 직접민주주의의 구호만 들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느니 차라리 대중들이 ‘놀다 가도록’ 해야 한다는 맥락의 ‘습격과 놀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추상의 직접민주주의 논란 대신 시청에서 비정규직 유인물 나눠주기 등 당장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대체하고 자치할 대안이 없는 민주주의는 무엇?


6월 말 경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해야 하고,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의제를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문제 제기해봐야 한다. 정치권력을 어떻게 선출해야 하는가, 정치권력을 어떻게 재편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짚은 바 있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무력하고 신뢰받지도 못한다는 진단을 덧붙였다.


노회찬 대표는 이명박 정권 퇴진 슬로건에 대해서도 “‘정권 퇴진’이라는 표현을 구체적인 정치 프로그램으로 가져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다거나, 대안권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현 상황을 이끌고 갈 정치적 응집력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며 회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비교적 정확한 의견을 피력했다.


이명박 정부가 10% 안팎의 지지율 속에 산성을 쌓고 청와대에서 농성(?)을 하는 모양을 하면서도 ‘퇴진’당하지 않을 수 있는 건 5년 단임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은 데 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잃어버린 10년의 찬탈자들은 행정권력과 의회권력 장악의 위력에 기대어 촛불 진화의 갖가지 수단을 펼쳐가는 것이다. 광우병 협상에 이은 방송통신심의위의 시사프로그램 '공정성' 심의, YTN 낙하산, KBS 장악, 검찰의 MBC 죽이기 등 언뜻 이해하기 힘든, 비상식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한 언론사유화 공작이 시사하는 바도 여기에 있다.


대체하고 자치할 대안이 없는 한 ‘민주주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얼마나 반동적일 수 있는 지는 현실에서 쉽게 확인된다. 87년헌정체제 안에 녹아있는 민주주의 지배 주체가 바뀌지 않는 한, 87년헌정체제를 바꿔낼 대안 정치가 출현하지 않는 한 ‘거리의정치’ 그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도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절묘한 시점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번 선거 결과가 곧 촛불에서 만들어진 직접민주주의의 열망과 실체가 평가되는 바로미터라고 한다면 과연 오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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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9052


누가 신나래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

 

았는가?


[기고] 근조 - 어느 촛불소녀의 죽음



김병인 liebe_kim@hanmail.net / 2008년08월01일 15시16분

'촛불소녀' 신나래 학생의 죽음


2008년 7월 5일 서울시청에서 '미친소 수입반대! 고시철회! 백만 촛불대행진'이 있던 날이었다. 안양 A여자정보고등학교를 다니는 신나래 학생은 백만 촛불문화제에 참가하고 귀가하던 중, 안양에 위치한 모 아파트 15층에서 투신자살하였다. 그녀의 가방에는 손 피켓 뒷면에 적힌 유서가 남아있었다. 신나래 학생의 자살이 알려졌을 때, 많은 시민들은 '촛불소녀의 죽음'이라며 애도하였다.


고 신나래 학생의 유서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과 담임 선생님에 대한 원망 등 개인의 복잡한 심정이 드러나 있었다. 유족 측이 조사한 바이 따르면, 신나래 학생의 죽음은 광우병 시위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평소 신나래 학생은 친구들에게 자주 "광우병 반대 촛불문화제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래 학생의 부모는 강남에서 떡볶이, 순대를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노점상이며, 아버지 신동직 씨는 1급 장애인이다. 또한 나래 학생의 가족은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이다. 가족은 10년째 지하 단칸방에서 살다가 얼마 전 임대아파트를 얻어 이사하였다. 나래 학생은 죽기 전 임대아파트에 살게 된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나래 학생은 집안의 첫째 딸이고, 밑에는 중학교 다니는 남동생과 초등학교 다니는 여동생이 있다. 부모는 오후에 장사를 나가면 새벽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나래 학생이 집안일이며 동생들 돌보는 것을 도맡아서 해왔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고, 대학 진학 후 인터넷 쇼핑몰사업 구상을 계획하고 있었다. 나래 학생은 비록 가난하였지만 꿈 많고 행복했던 소녀였다.


누가 나래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나래,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선택했다. 누가 그녀를 죽음으로 내 몰았나? 유족 측 조사에 따르면, 나래 학생이 다니는 학교는 상습적인 체벌, 성추행, 가난한 학생에게 가해지는 인격모독이 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그녀도 억압적인 학교 분위기와 일부 교사의 폭력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2008년 4월경, 나래 학생의 담임교사는 학급 학생들에게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일어나라'고 강요했다. 그 학급의 6명의 기초생활수급자 중 5명이 일어났는데 나래 학생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금 담임이 호통을 쳐도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담임은 기초생활수급자 자녀 명단을 불러버렸다. 그 날, 나래는 집에 와서 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 교사는 수업료를 내지 못한 학생들을 낼 때까지 자주 학교에 남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나래 학생의 담임교사는 소지품 검사를 한다며, 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여러 차례 여학생들의 가방을 뒤지고, 가방 속 생리대를 빼내 낱개 포장된 생리대 패드를 직접 뜯어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 그녀의 담임교사는 매사 학생들에게 "너희는 상품이고 상품으로서 가치가 없어지면 너희는 끝이다"는 내용을 수시로 말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주었다.


수학 교사 K씨는 여학생 체벌 시 치마를 양손으로 잡아서 앞으로 당기게 한 후 엉덩이를 체벌하는데 이 때, 여학생의 속옷이 보이기도 해 학생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발로 차기도 하고, 욕설도 하면서 '교육청에 신고하려면 해보라'는 식으로 학생들을 윽박질렀다고 한다.


또 수학교사 K씨는 수학시간에 문제를 못 푼다는 이유로 잦은 체벌을 했는데, 일례로 딴 짓을 한 여학생을 엎드려뻗쳐 시킨 후 빗자루로 엉덩이를 38대나 때리는 등 과잉체벌을 했고, 문제를 못 풀면 풀 때까지 체벌을 하는 등 학생들을 비인격적으로 대우하고 과잉 체벌을 일삼아 왔다고 한다.


나래는 자살하기 전, 강압적인 수업 분위기와 친구들에 대한 공개적인 체벌장면을 자주 목격하면서 심리적인 압박과 걱정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이 표현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어린 나래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잘못된 학교교육 현실이 너무 버거웠던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제2, 제3의 나래를 만들지 마라


경기도교육청은 유족의 처절한 외침을 외면하였고 책임회피에 급급하였다. 7월 10일, 유족측은 책임자 징계와 자살예방대책 등을 요구하며 경기도교육청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경기도교육청은 생활 장학사 2명을 파견하여 책임교사를 조사하고 답변서를 보내왔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단 한차례 해당교사와 면담하고 모르쇠로 일관, "자신들에게는 조사권한이 없다"며 "사법기관에서 조사해야한다"며 책임회피에 급급하였다. 이에 분노한 유족측은 경기도교육감과의 면담요청서를 제출하였지만 경기도교육청은 유족 측과의 면담을 거부하였다.


한편 신나래 학생의 모교인 안양 A여자정보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신문사나 TV와 인터뷰를 절대 하지 말라', '누가 신나래 관련 이야기를 물어보면 응하지 말라'라는 식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7월 24일, 빈민, 진보정당, 인권단체, 청소년단체를 중심으로 '촛불소녀 고 신나래 양 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구성하였다. 공대위는 26일 청소년단체 주관으로 추모제를 개최하였고, 28일부터 학교 앞에서 1인시위에 들어갔다. 매주 화, 수요일에는 범계역과 수 수원역에서 각각 촛불문화제를 개최한다.


청소년 자살로 공대위가 꾸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해 109명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죽음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많은 청소년들이 입시, 체벌, 성추행, 차별교육 등의 문제로 죽음을 선택하지만, 교육당국은 '신변비관', '가정환경' 때문이라며 구체적인 청소년자살 예방대책을 내놓지 않고 책임회피에만 급급해 왔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시장화 교육정책으로 인해 더 많은 청소년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공대위는 신나래 학생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며 교육당국과 학교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공대위는 신나래 양의 죽음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자살로 내모는 교육현실을 고발하고자 한다. 교육당국은 더 이상 제2, 제3의 나래 학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장화 교육정책을 중단하고 청소년들을 살리는 교육정책을 입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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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8-04 0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시 교육감은 이 '뉴스'를 보고 있을까요, 그 점이 참으로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