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호모 사케르'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병권

 

이탈리아 미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은 주권의 본성을 잘 드러내는 존재로 '호모 사케르(Homo Sacer)'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호모 사케르란 말 그대로는 신성한 인간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범죄를 저질렀거나 어떤 불결함을 지녔기에 신성한 제단에 바칠 수 없는 존재였다. 로마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호모 사케르를 희생물로 삼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지만 그를 죽이는 자가 살인죄로 처벌받는 건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 호모 사케르를 죽이는 건 종교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권장되지 않지만, 그들을 죽였다고 처벌받는 건 아니다. 그래서 호모 사케르는 그 사회가 시민에게 부여하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단지 숨 쉬는 생명체로, 날것의 인간으로 살아간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 이런 호모 사케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현재 전체 이주노동자의 반인 20만 명 정도가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떤 범법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부여된 시간(3년)이 넘었거나, 지정된 공간(작업장)을 이탈했기 때문에 불법 신분이 된 사람들이다.

사실 산업체에서는 이들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오래된 이주노동자일수록 한국어가 능하고 숙련도도 높기 때문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이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적 신분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이들이 정치적 사회적 신분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은 어떤 시민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임금 체불을 당해도, 작업장에서 폭력을 당해도, 이들은 경찰서나 노동부를 찾아갈 수 없다. 그랬다가는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져 강제 추방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만난 어느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동료가 사장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뒤, 살겠다며 경찰서로 뛰어들었다. 경찰은 그와 함께 사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사장은 그가 불법 체류자임을 폭로했고, 결국 경찰은 그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넘겨 버렸다. 임금체불과 폭행을 일삼은 사장은 별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게 호모 사케르다.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되지만 행사해도 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다.

지난 11일 여수의 외국인보호소에서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 화재로 이주노동자 9명이 숨졌고 18명이 부상당했다. TV 화면에 공개된 보호소는 그곳이 이름과 달리 쇠창살로 된 감옥임을 말해준다. 강원도에서는 실제로 '불법체류자'들을 감옥에 수용해왔다. 하지만 이들은 재판을 받고 복역하는 그런 범죄자들이 아니다.

이들의 불법성은 대부분 법과 제도가 정한 시간과 공간을 지키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이들의 불법성은 이들의 행위보다는 법과 제도에 더 크게 좌우된다. 실제로 산업연수생제를 운영했던 2002년의 경우 불법체류자의 비율은 80%에 육박했다. 그러나 2003년에 35%로 감소했다. 그것은 이들 행동에 어떤 변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고용허가제로 제도가 바뀌면서 이들의 신분이 합법 체류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에서도 불법체류자 비율은 계속 늘어 현재 5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고용허가제 자체도 재검토할 시간이 된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고용 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이런저런 법과 제도로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는 일은 이제 무의미해지고 있다. 사실 세상 어디에도 그 자체로 불법인 존재는 없다. 존재의 어떤 행위를 불법으로 볼 수는 있으나 존재 자체를 그렇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행위가 아닌 존재 자체가 불법 취급을 받고 있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라는 예외적 존재가 권력의 정상적인 작동을 폭로한다고 생각했다. '예외가 정상이다'. 우리 사회의 예외적 존재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역시 우리 사회의 정상성이 무엇인지를 폭로한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바로 우리 얼굴, 우리의 야만이다.

수유&너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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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08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한 사회가 기초한 '법'이라는 것의 맨얼굴을 폭로하는 군요.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