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된 수사와 기소가 가능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

세월호 참사 120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곡기를 끊은 지 꼭 31일이 되었습니다. 국민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큰 절을 올리는 우리 가족들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 국민의 힘으로 바꿔냅시다.

8월 15일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함께 해주십시오

청와대를 향한 10만의 함성 (8월 15일 오후 3시)
특별법 제정 촉구 촛불문화제 (8월 15일 오후 7시)
416인 광화문 국민농성 (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광화문 416광장)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세월호 참사의 모든 아픔을 끝까지 함께 나누고, 성역 없는 진상 조사와 철저한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모으며,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전국의 8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한 세월호 참사 대응 범시민사회단체 연대기구입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활동소식은 아래의 곳들에서 꾸준히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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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죽어 돌아온 아이의 얼굴은 보랏빛이었습니다. 가족이 힘들어할 테니 보여주지 말자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었습니다. 미운 짓 한다고 서운하던 때조차도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그래서 못다 전한 사랑한다는 말이 한가득 쌓였는데 전할 방법을 알 수 없는 우리는, 무엇이든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어가야 했는지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랏빛 얼굴조차 아직 만나지 못한 열 명의 실종자에 대한 죄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참사가 반복되어왔지만 너무 쉽게 잊어왔던 우리를 용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쳤습니다.

대통령도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약속이 아니라 책임 회피라는 것은 뒤늦게서야 알았습니다. 5월 대국민담화의 약속은 국회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있는 국회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안을 만들고 국민의 힘을 등에 업어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들여 7월 본회의에서 제정하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행동은 달랐습니다. 청와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료를 제출하라는 국회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스스로 밝혀야 할 진실인 ‘사라진 7시간’에 대해서는 입을 닫은 채 더욱 숨어들어갔습니다. 국회 본청 앞에서 잠을 청한 지 한 달이 가까워질 때 우리에게 온 것은 특별법이 아니라 여야의 밀실 합의 소식이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법이 아니라 진실을 숨기는 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분노한 우리는 여야 양당에 재협상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묵묵부답입니다. 다시 협상을 약속한 여야 원내대표는 무엇을 골몰하고 있습니까.

새정치민주연합은 적당히 무마하려고 골몰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철저한 진상 규명 권한을 걸고 싸우지 않은 채 슬금슬금 눈치만 보고 있습니까? 새누리당은 우리를 완전히 포기시키려고 골몰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문명사회 운운하며 피해자에게 수사권 주지 말라고 엄포를 놓습니까? 그러면 가해자가 칼자루를 쥐는 것은 문명사회입니까? 피해자가 진실을 밝혀달라며 한 달 넘게 단식을 하고,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은 문명사회입니까? 우리의 마음에 포기라는 단어는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포기라는 단어를 가져가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십시오. 진실을 감추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든 시도를 포기하십시오.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든 눈속임을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책임지십시오.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청와대로 가려고 했습니다.

몇 걸음 떼기도 전에 경찰들이 달려와 길을 막았습니다. 길을 열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며 앉은 우리를 경찰은 사지를 잡아끌며 길옆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가족이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경찰을 강력히 규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규탄은 경찰이 지키려고 했던 청와대를 향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양당 원내대표도, 국회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우리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 분명히 알았습니다. 당신들이 지켜주고 있는 것이 결국 청와대일 뿐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택하십시오. 많은 국민들이 가족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버리기도 하셨습니다. 가족의 감사를 전합니다. 여전히 청와대를 지키려는 자들이 국민 여러분들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명확합니다.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방법을 정히 모르겠다면 우리가 알려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포기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많은 국민들과 함께 다시 이 자리로 오려고 합니다. 해산되어서는 안 될 진실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해산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어 다시 오겠습니다.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특별법은 제정할 수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결단할 수 있는 일이며,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대통령의 빠른 결단을 촉구합니다.

2014. 8.14.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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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프리즘 총서 12
찰스 테일러 지음, 정대성 옮김 / 그린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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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설명이 불필요한 헤겔 연구의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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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 그의 철학적 주제들 헤겔총서 1
프레더릭 바이저 지음, 이신철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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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이저의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헤겔 철학에 대한 입문서 중 최상에 속하는 것 같다. 저자는 브랜덤이나 맥도웰 같은 영미철학자들이 채택하는 분석적인 해석 방식(가령 <정신현상학>에서 감각적 확신 부분을 '소여의 신화' 비판 등에 비추어서 이해하는 식)이 아니라 보다 전통적인 해석학적 방식으로 헤겔의 전 저작을 균형있게 다루면서, 헤겔 철학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를 소개하고 비판한다. 헤겔에 대한 분석적 해석 등을 비롯해 새롭게 헤겔을 주목하는 많은 주석가들이 헤겔의 형이상학이 갖는 부담을 피하려고 하지만, 바이저는 헤겔 철학의 근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형이상학, 낭만주의의 유기체적 형이상학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이면서 이러한 형이상학적 토대에 대한 이해 없이는 헤겔의 사상을 이해하기 어려움을 주장한다(바이저의 인터뷰: http://www.3ammagazine.com/3am/diotimas-child/). 헤겔 저작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는 각 저작에 할애된 분량이 많지 않기에 헤겔 철학 전반을 짧은 시간 안에 훑어보기에 좋다. 번역 또한 무척 좋아서 거의 원서를 펼쳐볼 필요가 없었다. 역자의 노고에 감사하며 몇 가지 사소한 사항들만 적어두기로 한다. 


31: 그는 플라톤, 실러, F. H. 야코비, 루소 그리고 볼테르를 읽었다. 다음 문장에 "헤겔이 가장 애독했던 저자는 루소였다"his favorite author was Rousseau 누락됨
128
쪽에 "스피노자는 -기계론자였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원-기계론자arche-mechanist이고 139쪽의 "유기체들이 -기계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에서는 extra-mechanist
165
쪽에 숭고한 -> 귀족적인noble
167
"내용이 아닌 형식의 차이"에서 내용->실체substance
180
쪽을 비롯한 여러 civic religion 공적 종교로 번역되었는데 시민 종교가 좀 더 나을 것 같다.

315 " 번째 대화" - > 2논고 또는 인간불평등기원론

341 "커다란 역설" -> 커다란 아이러니

정열 -> 정념

379 "전율할 만한 존재" -> 눈엣가시bete noire

380 "줄잡아 말해서도" -> 과소평가under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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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의 인터뷰집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를 읽었다. 

얇은 책인데다가 글씨와 여백이 커서 다 읽는데 몇 시간 걸리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철학자들의 생각을 빠르게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장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기대가 컸던 탓인지 미진한 구석도 눈에 많이 들어온다. 다른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만 적어보기로 한다. 





가령 해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자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약도"라는 제목이 붙은 전반부의 20쪽을 보자.


"한국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는 자크 랑시에르, 클로드 르포르,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도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분리라는 전제에서 자신들의 논의를 출발시키고 있다.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이들을 큰 범위에서 '탈정초주의post-foundationalism'라고 부르는 명명법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른바 미국에서 과잉 생산된 포스트담론에 대한 하나의 교정으로서 이 용어가 등장했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탈정초주의 (또는 포스트정초주의)라는 정의 또한 포스트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본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특정 이론가들에게 모자를 씌우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전혀 주석이 없어서 누가 탈정초주의라는 명명법을 쓴다는 것인지, 또 누가 그것을 주목한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음 문장에서 이것이 포스트담론에 대한 하나의 교정이라고 설명하면서, 이택광은 또한 다음 문장에서 탈정초주의라는 정의 또한 특정 이론가들에게 모자를 씌우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할 경우 탈정초주의라는 말을 애초에 왜 꺼냈는지 알기 어렵게 된다. 탈정초주의라는 명명법이 유익하다는 것인가 문제가 많다는 것인가? 이어지는 21쪽에서는 또 이런 말이 나온다. 


"포스트구조주의가 물질적 차원의 '토대'를 부정하는 것이라면(과연 그런가?) 탈정초주의는 이 토대를 긍정한다는 것이 중론인데, 탈정초주의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기서 이들이 지칭하는 그 토대는 수미일관하거나 인과적인 성질을 갖고 있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토대가 무엇인가? 토대가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은데 탈정초주의라는 정체불명의 사조는 역시 정체불명의 토대를 긍정한다는 '중론'을 이택광은 설명한다. 토대가 "수미일관하거나 인과적인 성질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 역시 요령부득이지만, 계속 읽어보기로 하자. 같은 쪽에서는 다시 이런 말이 이어진다.


"오늘날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여하튼 분류하기 좋아하는 '전문가 담론'은 탈정초주의라는 용어법을 통해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철학을 요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구조주의에서 중요했던 것이 '시'학이었다면 탈정초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다"


"여하튼" 문제는 이런 대담한 주장이 별다른 근거 없이 제시된다는 점이다. 다음 몇 문단을 요약하자면 포스트구조주의가 시학을 진리의 지표로 삼은 것은 하이데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탈정초주의가 하이데거주의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이를 급진적으로 변형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그래서 탈정초주의가 기여하는 점이 무엇인가? 또 그 문제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상술 없이 이어지는 23쪽에서는 갑작스럽게 바디우에 대한 호감 표명이 등장한다. 


"탈정초주의의 문제점을 적절하게 인식하고 있는 까닭에 바디우는 정치철학에 반대하는 이론가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바디우는 정치뿐 아니라 예술, 과학, 사랑에서도 진리가 생산될 수 있고, 생산의 절차는 다르지만 이를 통해 만들어진 진리는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바디우의 이런 생각은 현명한 것이다." 


여전히 이택광은 탈정초주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바디우가 어떤 점에서 "확실히" 현명한 것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약도"이기 때문에 이렇게 개략적인 설명만 나오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식의 약도라면 누가 이런 알쏭달쏭한 철학자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을까? 


나머지 논의들도 상당히 혼잡하여 해제 읽기를 포기하고 어차피 원래 목적이었던 인터뷰를 읽었다. 특별한 선정 기준을 알기 힘든 9명의 철학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는데, 일단 분량이 불균등하다. 피터 싱어에 할애된 인터뷰가 단 8쪽인 반면, 랑시에르의 경우는 41쪽이나 할애되어 있다. 분량도 그렇고 그나마 가독성이 좋았던 인터뷰가 랑시에르 편이었던 것 같은데, 알고보니 이 경우는 각각 최정우와 서용순이 불어에서 직접 번역한 것이었다. 해제 뿐 아니라 인터뷰의 몇몇 대목들은 역시 좀 알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었다. 원문이 궁금한 대목들이 몇 가지가 있지만 전화나 이메일 등으로 이루어진 인터뷰이다 보니 원문을 구해서 살펴볼 수 없어 안타깝다. 그런 경우들을 다 나열할 수는 없고, 두 가지만 적어보기로 한다. 하나는 스피박 인터뷰가 나오는 167쪽의 경우다. 이택광의 "당신은 탈식민주의 이론가 또는 젠더 이론가라고 불리는데, 왜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가?"라는 질문에 스피박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탈식민주의라는 주제를 정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정치는 윤리적이라기보다 젠더적이다. 왜냐하면 젠더는 거기에 중요한 문제로 있기 때문이다. 젠더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연구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추상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사회정의에 대한 추상화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젠더의 문제다. 다음 문제는 남아와 여아가 태어나서 상징적인 아버지를 가지고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는 윤리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젠더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젠더 문제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경험을 읽는다는 차원에서 나에게 먼저 존재했던 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스피박의 이 이야기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도 궁금증을 가질 것 같다. 이는 우선 탈식민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없을 뿐더라, 정치가 젠더적인 이유가 "거기에 중요한 문제로 있기 때문"이라는게 무슨 이야기인지, 추상화 능력이 왜 젠더의 문제인지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피박이 원래 이렇게 난해하게 이야기한 것인지, 아니면 번역의 문제인지 누락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크리칠리를 인터뷰한 188쪽에서는 이런 질문이 나온다. 


"<무한하게 요구하기>에서 흥미롭게도 데리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저작에서 데리다를 언급하지 않고 레비나스를 다룬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레비나스가 데리다보다 더 정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나는 레비나스와 사랑에 빠졌다. 레비나스는 철학자의 진리를 보여준다. (...) 내가 데리다를 통해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도덕적인 개념과 정치적인 개념에 대한 분석이었다. 이를 통해 그 아래에 있는 토대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말년의 데리다는 나에게 그렇게 흥미를 끌지 못했다. 오히려 좀 실망스럽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데리다보다도 레비나스로 나를 이끌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여하튼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을 질문해줘서 거기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데리다의 어떤 점이 실망스러웠다는 것인가? 크리칠리는 데리다주의자였다가 레비나스주의로 전향한 것인가? 이 대목 역시도 상당히 의아한 까닭은, 크리칠리 자신이 이미 <무한하게 요구하기> (2007)보다 훨씬 이전에 씌어진 자신의 첫 번째 책이자 출세작인 <The Ethics of Deconstruction: Derrida and Levinas> (1992)에서 이미 데리다의 해체론은 정치적 궁지에 이를 수 밖에 없으며, 해체론은 레비나스의 윤리학을 통해 보충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애초에 왜 데리다가 아니라 레비나스를 이야기하느냐는 질문은 크리칠리의 기존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며, 이에 대해 크리칠리가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것을 질문해줘서 더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한 대목은 더욱 불가사의하게 여겨진다. 이 부분 역시 인터뷰 원문을 보고 싶은 대목이다. 어쩌면 앞으로 이 책이 제목으로 사용한 베케트의 말처럼 "다시 더 낫게 실패"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기대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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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 오늘 모든 사람은 자기의 희망과 가장 소중한 생각을 감히 그 자신에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내가 오늘 자신에게 원하는 것, 올해 나의 가슴에 떠오르는 최초의 생각 - 즉 어떤 사상이 앞으로의 나의 생에 토대가 되며, 보증이 되며, 달콤함이 될 것인가를 말하려고 한다. 나는 사물에 있어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더욱더 배우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이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운명애: 이것이 나의 사랑이 되게 하라. 나는 추한 것과 싸우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비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자를 비난하는 것 조차 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대체로 언젠가 나는 예라고 말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니체, <즐거운 지식> 















"Zum neuen Jahr. — Heute erlaubt sich Jedermann seinen Wunsch und liebsten Gedanken auszusprechen: nun, so will auch ich sagen, was ich mir heute von mir selber wünschte und welcher Gedanke mir dieses Jahr zuerst über das Herz lief, — welcher Gedanke mir Grund, Bürgschaft und Süßigkeit alles weiteren Lebens sein soll! Ich will immer mehr lernen, das Notwendige an den Dingen als das Schöne sehen: — so werde ich Einer von Denen sein, welche die Dinge schön machen. Amor fati: das sei von nun an meine Liebe! Ich will keinen Krieg gegen das Hässliche führen. Ich will nicht anklagen, ich will nicht einmal die Ankläger anklagen. Wegsehen sei meine einzige Verneinung! Und, Alles in Allem und Großen: ich will irgendwann einmal nur noch ein Ja-sagender s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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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14-01-1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들어온 서재에서 간만에 바라님 글을 읽고 왠지 반가워 몇 자 남깁니다.
우선, 새해에도 좋은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새해 초 어떤어떤 연유로 니체의 저작들의 몇 구절을 다시 읽었던지라 이 포스팅이 반갑네요. 니체를 읽노라면, 전 그가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를 내주는 선생이자 숙제 검사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으로 여겨져 참 매력적이에요. 이번에 저는 '아침놀'을 비롯해 '즐거운 학문' 등의 몇몇 저작에 실린 아포리즘을 읽게 됐는데 구구절절 큰 감동을 받았다는...
암튼, 점점 더 깊어져가는 바라님의 공부가 올 한 해 동안에도 기쁨이 되시길...^^

바라 2014-01-18 01:55   좋아요 0 | URL
chair 님 반갑습니다 ㅎㅎ 인적 드문 이곳까지 찾아와주시고. 저도 니체의 숙제 검사는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숙제 검사에 엄격한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너무 많은 것 같으니까요. 군 생활할 때 처음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집었던 책 중 하나도 <아침놀>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chaire님도 평안하시고 건강한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