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2disc) : 일반 킵케이스 - 아웃케이스 없음
곽재용 감독, 조인성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바꿀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친구에게 만년필을 빌렸는데 그만 잃어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그보다 좋은 만년필을 사서 주었더니 그 친구가 버럭 화를 낸다. 이 만년필 말고, 내가 빌려주었던 만년필로 돌려줘. 아니 잊어버린 만년필을 어찌하라구. 게다가 이 만년필은 내가 빌렸던 만년필보다 훨씬 비싼 고급 만년필이야. 그러나 친구는 막무가내다. 자신이 빌려주었던 만년필만을 내어놓으라는 것이다. 너무 화난다. 내가 떼어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도 큰맘 먹고 새 만년필을 구입해서 주었더니 그 구닥다리 만년필을 찾아놓으라니, 이 친구가 야속하기까지 하다.
 
만년필을 빌려주었던 친구에게 있어서 만년필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다. 한 개에 수십 만원이나 한다는 불란서 몽블랑 만년필을 주어도 그 만년필과는 바꿀 수가 없다. 그 만년필에는 소중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소중한 유품이다. 아버지는 그 만년필로 늘 글을 쓰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너도 이 만년필로 좋은 글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만년필을 잃어버리다니, 큰돈을 잃어버렸다고 해서슬픔이 이럴까, 그는 마음이 아프다.

 
도구는 대체 가능한 것이다. 더 좋은 성능, 더 좋은 질의 컴퓨터를 갖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지금 내가 가진 MP3보다 음질도 뛰어나고 메모리의 양도 훨씬 많고, 게다가 디자인까지 끝내주는 MP3를 갖는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도구는 대체 가능한 것이지만 '존재'는 대체 불가능한 어떤 대상이다. 어머니가 교양이 없다고 해서 어머니를 바꿀 수 없고, 아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아들을 바꿀 수는 없다. 더 뛰어난 미모와 인간성을 가진 존재로 나의 애인을 바꾸고 싶다면 이미 그녀는 나의 애인이 아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그녀를 받아들일 때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집과 TV와 컴퓨터…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바꾸려고 한다. 사랑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집을 팔아버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더욱더 가슴 아픈 일이다.
 
세상에는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바꿀 수 없는 것,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마저 바꾸려고 하는 데서 우리의 쓸쓸함과 고독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클래식>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야.
 
 
                   영화 <클래식>중에 삽입된 음악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자전거를 탄 풍경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조그맣던 너의 하얀 손위에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의 약속이 되어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초록의 슬픈 노래로
내작은 가슴속에 이렇게 남아
반짝이던 너의 예쁜 눈망울에
수많은 별이 되어 영원토록 빛나고 싶어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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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피쉬 - [할인행사]
팀 버튼 감독, 이완 맥그리거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현실을 벗어나 현실을 창조하게 하는 힘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희망은 힘들고 버겁기 만한 현실을 버티는 힘이 되어준다. 그러나 주어진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울한 때가 있다.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는 캄캄한 절망의 시간은 있는 법이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가난, 쥐구멍에도 볕 뜰 날이 있다지만 도저히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생활에 신물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때조차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바로 환상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병든 사람일수록, 고통스런 사람일수록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강렬하다. 그러나 현실을 변화시킬 힘이 없을 때, 환상을 만들어 낸다. 환상은 세계를 변형시킨다. 환상은 샤갈의 그림처럼 물고기를 날게 하고, 노새를 헤엄치게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환상이라는 특급열차를 타고 인간은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학대나 받던 불쌍한 소녀 신델렐라도 화려한 무도회의 여주인공이 될 수 있고, 가난뱅이 흥부도 대궐 같은 집에서 매일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만석꾼이 될 수도 있다. 환상의 열차를 타면 주먹이 약해서 언제나 친구에게 얻어맞는 친구들은 슈퍼맨이나 역도산의 파워를 빌릴 수도 있다.
 
영화 <빅피쉬>에서 윌은 아버지, 에드워드(이완 맥그리거)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평생 모험을 즐겼던 허풍쟁이 아버지는 "내가 왕년에~"로 시작되는 모험담을 늘어놓는다. 대체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이 사실일까. 아버지의 말씀은 사실과 허구를 오락가락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배 속으로부터 로켓트처럼 뿜어져 나왔으며, 원인불명 성장병으로 남보다 빨리 컸으며 만능 스포츠맨에, 발명왕이자 해결사였다. 아버지 에드워드는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고, 육교보다 더 큰 높이의 거인, 늑대인간 서커스 단장, 샴 쌍둥이 자매, 괴짜시인 등, 도저히 현실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친구들을 사귀며 영웅적인 모험과 로맨스를 경험한다.
 
대체 감독 팀버튼은 왜 이런 허구와 환상을 영화 속에 남겨 놓은 것일까. 동화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환상이 가지는 파워를 회복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가상공간 속의 배경그림, 플래쉬와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애니매이션은 그 자체로 환상적이다. 그러나 진정한 환상은 현실의 불우함을 견디게 하는 힘,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게하는 능동적인 힘이 아닐까.
 
<빅피쉬> 팀버튼 감독. 이완맥그리거, 알버트피니, 제시카랭, 스티브 부세미 등 주연. 2003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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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2disc)
이정향 감독, 유승호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늙음은 적인가?

누구나 시간의 화살을 피할 수는 없다. 영원한 젊음은 없다. 썩지 않는 불후(不朽)의 존재를 꿈꾸어 보지만 시간 앞에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스는 없다. 트로이의 영광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간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낡음과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낡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눈가의 주름은 처단해야할 그 어떤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오늘의 세태다. 체모가 줄어들고, 피부는 건조해져 탄력을 잃어버리고, 몸의 저항력이 감소되어 환경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노년의 징조들이다. 눈은 침침해지고 기력은 점점 쇠하여진다. 기억은 가물가물해진다. 오늘날의 광고는 이 모든 노년의 징후들을 적대적 감정으로 바라본다. 탄력과 싱그러움과 건강만이 최고임을 은연중에 강조하면서. 
 
농경사회에서 노인들의 지식은 감탄의 대상이었다. 병충해가 들끓을 때는 이렇게 해라, 소가 기력이 약해졌을 때는 이런 방법을 써보아라, 노인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대로 소중한 삶의 지혜였다. 그러나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는 지식의 속도가 빨라졌다. 오늘의 지식은 빠르게 낡아 과거의 지식이 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다가는 낡은 생각의 소유자, 현실을 모르는 구닥다리 세대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이런 현실에 맞서려면 부단히 자신의 지식을 업그레이드시켜 가야 한다. 쉴 틈이 없다.
 
영화 <집으로>에서의 노인은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다.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시골 외딴집에 남겨진 상우는 전자오락기와 롤러블레이드의 세상에서 살아온 아이다. 컴퓨터는 물론 전자오락실 하나 없는 산골에서 상우는 자신의 욕구불만을 외할머니에게 드러낸다.  영화는 어린 상우가 어떻게 할머니라는 존재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우린 이런 질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 속의 상우만 미성숙한 존재이고 영화 바깥의 우리들은 성숙한 존재들일까. 우리 역시 늙음의 가치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미성숙한 존재들이 아닐까. 물론 늙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육체의 눈이 약해지면 마음의 눈은 밝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 몸의 역설이다. 영화 <집으로>에서의 노인은 어린 손자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말로써가 아니라 몸으로써 보여준다. 아무리 시대가 새로운 것을 요구하더라도 그 사랑은 낡은 것이 아니다.
 
<집으로> 이정향 감독. 김을분, 유승호 주연. 2002 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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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w21 2004-10-2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체스의 아이들'좋네요.아주아주 오랫만에 : 졸업선물 앨범이었거든요, 감상했어요. 덕분입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 [초특가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1
피터 웨버 감독, 스칼렛 요한슨 외 출연 / 기타 (DVD)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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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외국 속담이 있다. 솔직한 것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이야기다. 솔직함의 미덕이야 백 번을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을 모두 쏟아내는 것이 ‘솔직’이라면 이건 좀 곤란하다. 우리의 내면에는 순진함만이 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의 괴로움을 보며 즐거워하는 마음,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파하는 마음,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마음, 타인을 내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싶은 마음... 그대로 표출되면 문제가 될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런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는 것, 내 욕망의 원칙대로 살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위험한 발상이다. 물론 혼자 사는 세상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세상에는 반드시 내가 아닌 타인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의 자유는 아무래도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끝날 수밖에 없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장편 『진주 귀고리 소녀』를 영화화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16세 소녀 그리트는 아버지가 시력을 잃자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베르메르는 장모와 아내, 여섯 아이의 가장이다. 그만큼 그는 책임이 무겁다. 베르메르는 색채와 빛 등 회화의 세계를 하나둘 알아보게 되는 그리트의 재능을 알아보고 색을 보는 법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두 사람은 말없는 교감(交感)을 한다. 교감이란 마음의 주고받음이다. 너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의 주고받음을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살짝 벌어진 입술이 무척 관능적인 이 소녀를 화가인 베르메르는 욕망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영화는 어떤 누드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의 살갗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트는 고전적 의상에 감싸여 있다. 베르메르는 그녀에게 어떤 사랑도 고백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관객들조차 저들이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의심이 간다. 가벼운 포옹도 없고, 입맞춤도 없다. 관능적인 장면을 기대했던 관객들로서는 이만저만 실망이 아닐 것이다.
 
  모든 욕망은 즉각적인 실현을 꿈꾼다. 식욕은 ‘먹음’을 꿈꾸고 성욕은 대상의 정복을 꿈꾼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의 욕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잡아먹는 자, 즉 포식자의 욕망의 반대쪽에는 잡혀먹히는 자, 즉 피식자의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은 서로 충돌한다. 충돌하는 곳에는 반드시 다툼이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다툼은 힘센 자에 의해 평정된다. 힘센 자의 욕망만이 최후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문명의 세계다. 문명이 없는 곳에 예술도 없다. 예술은 욕망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세계다.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이며 내 마음은 현재 이런 상태야, 라고 말하는 데에는 아무런 기교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나의 ‘꾸밈없는’ 내면을 바라보는 자는 몹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지금 노래를 참을 수 없어, 나는 노래하고 말 테야, 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타인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노래를 불러 젖힐 수도 없는 일이다. 타인의 불쾌감을 고려하여 나는 내 욕망을 포장하고 꾸민다. 그러나 포장과 꾸밈 속에는 여전히 나의 욕망이 들어 있다. 단지 그것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화가 베르메르의 욕망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술가는 욕망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숨긴다. 그것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겠다는 예술가의 고려다. 그것은 나의 욕망만이 보상받아야 할 최우선의 것은 아니라는 겸손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내 욕망을 보여주고 말할 권리가 있지만 당신에겐 그것을 보고싶지 않고 언급하고 싶지 않은 욕망이 있다. 통속적인 예술가들은 이 사실을 곧잘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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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아이들 - 할인행사
짐 셰리단 감독, 사만다 모튼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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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의미를 묻는 <천사의 아이들>

‘고양이 앞에 쥐’라지만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생쥐도 고양이에게 겁이 없이 덤벼든다. 그러나 이런 모성애도 호르몬 활동의 결과라는 설도 있다. 미국 위스콘신대의 스테판 가미 교수는 “젖을 먹일 때 어미의 공포와 불안감이 감소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며 “이런 현상이 공포감을 느낄 만한 상태에서도 공격을 하는 어미의 행동을 설명해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연구 동기를 밝혔다. 결국 우리가 극구 상찬해마지 않는 모성애도 호르몬 활동의 결과라는 것이니 허탈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린 하나의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모성애가 호르몬이라는 물질 활동의 결과라면 왜 어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희생을 하고, 또 어떤 부모들은 자식을 버리는 부도덕한 행동을 하게 되는지가 궁금해진다.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유물론자들은 호르몬 분비량의 많고 적음이 모성애를 결정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물질로서 환원해서 이해한다면 인간은 어떤 극악한 범죄적 행위에 대해서도 아무 잘못이 없다고 강변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물질의 탓이니 나는 죄가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기는 인간은 물질에 종속된 존재요, 인간의 의지는 물질의 활동에 불과한 것이라면,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해서 우린 어떤 가치 판단도 할 수 없게 된다.
 
영화 <천사의 아이들>(In America)에서는 막내아들 프랭키를 잃고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조니 설리반과 새라 설리반 부부가 등장한다. 부부는 아일랜드에서 두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남편은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은 죽으면 산에다 묻는다고 했다. 낯선 이국의 도시에서의 삶도 힘들지만, 태어난 지 2년 여 만에 뇌종양으로 죽은 막내아들 프랭키를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한다는 게 더 힘들다. 그러나 슬픔에만 매달릴 수 없는 것이 부모다.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해보지만 이역에서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아무도 그들의 고통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러나 툭하면 괴성을 지르는 괴팍하고 험상궂은 흑인 화가 마태오가 그들의 고통을 알아본다. 그 또한 죽음을 앞둔 시한부 인생. 아이들의 순수한 눈은 험상 궂은 외양 너머에 존재하는 따뜻한 마음의 마태오를 알아본다. 피부색을 뛰어넘는 그들의 우정은 눈물겹다.
 
<천사의 아이들>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피부색이 달라도 사랑으로 맺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족이 아니겠는가.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희망을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이라면 굳이 피를 나누지 않아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감독:짐 셰리단. 주연:사만다 모튼, 지몬 혼수. 제작년도: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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