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2disc)
이정향 감독, 유승호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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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은 적인가?

누구나 시간의 화살을 피할 수는 없다. 영원한 젊음은 없다. 썩지 않는 불후(不朽)의 존재를 꿈꾸어 보지만 시간 앞에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스는 없다. 트로이의 영광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간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낡음과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낡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눈가의 주름은 처단해야할 그 어떤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오늘의 세태다. 체모가 줄어들고, 피부는 건조해져 탄력을 잃어버리고, 몸의 저항력이 감소되어 환경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노년의 징조들이다. 눈은 침침해지고 기력은 점점 쇠하여진다. 기억은 가물가물해진다. 오늘날의 광고는 이 모든 노년의 징후들을 적대적 감정으로 바라본다. 탄력과 싱그러움과 건강만이 최고임을 은연중에 강조하면서. 
 
농경사회에서 노인들의 지식은 감탄의 대상이었다. 병충해가 들끓을 때는 이렇게 해라, 소가 기력이 약해졌을 때는 이런 방법을 써보아라, 노인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대로 소중한 삶의 지혜였다. 그러나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는 지식의 속도가 빨라졌다. 오늘의 지식은 빠르게 낡아 과거의 지식이 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다가는 낡은 생각의 소유자, 현실을 모르는 구닥다리 세대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이런 현실에 맞서려면 부단히 자신의 지식을 업그레이드시켜 가야 한다. 쉴 틈이 없다.
 
영화 <집으로>에서의 노인은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다.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시골 외딴집에 남겨진 상우는 전자오락기와 롤러블레이드의 세상에서 살아온 아이다. 컴퓨터는 물론 전자오락실 하나 없는 산골에서 상우는 자신의 욕구불만을 외할머니에게 드러낸다.  영화는 어린 상우가 어떻게 할머니라는 존재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우린 이런 질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 속의 상우만 미성숙한 존재이고 영화 바깥의 우리들은 성숙한 존재들일까. 우리 역시 늙음의 가치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미성숙한 존재들이 아닐까. 물론 늙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육체의 눈이 약해지면 마음의 눈은 밝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 몸의 역설이다. 영화 <집으로>에서의 노인은 어린 손자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말로써가 아니라 몸으로써 보여준다. 아무리 시대가 새로운 것을 요구하더라도 그 사랑은 낡은 것이 아니다.
 
<집으로> 이정향 감독. 김을분, 유승호 주연. 2002 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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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w21 2004-10-2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체스의 아이들'좋네요.아주아주 오랫만에 : 졸업선물 앨범이었거든요, 감상했어요.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