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은 아름다워 - [할인행사]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사실은 허구보다 항상 위대한가
나이가 나이인지라 한창 자신의 미모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딸이 엄마A에게 묻는다. "엄마 나 이뻐. 사실대로 말해 줘." 엄마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마음먹고 딸에게 답한다. "너의 두 눈은 비대칭인데다 대한민국 평균인의 눈보다 그 크기가 현저하게 작다. 쉽게 말해서 '새우눈'이지, 코는 약간 정면을 향하여 들렸는데 그런 코를 일러 '들창코'라 한단다. 게다가 너의 입술을 보렴. 상당히 두껍지 않니? 그 끝은 밑으로 처져 있고 말이야. 턱이나 뺨 등의 선은 매끄럽지 못하고 각져 있지. 또 너의 피부는 매끄럽지 못한데다 군데군데 잡티가 있지 않니.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너의 얼굴은 평균 이하, 점수로 치면 대략 40점 정도라고 결론지을 수 있단다."
다음은 같은 질문에 엄마 B의 답이다. "우리 딸보고 누가 밉다고 그러니? 그런 사람 있음 나와 보라고 그래. 세상에 내 딸 미모보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장님이야, 장님! 우리 딸 미모만큼 돼 보라구 해봐."
냉정하게 따져서 엄마 A는 사실을, 엄마 B는 거짓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을 말한 엄마A의 말에 딸은 기분이 우울하다. 왠지 엄마가 야속하다. 엄마가 그럴 수가 있어. 엄마 혹시 계모 아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엄마B의 말을 들은 딸은 엄마의 말이 사실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다. 역시 우리 엄마가 최고다.
어떤 현상이 객관적 상황과 일치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거짓'이라 한다. 상식적으로 사실은 거짓보다 우월한 가치를 가진다. 거짓은 폐기처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모든 거짓이 폐기처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아닐지라도 진정과 사랑이 담긴 '진실'도 있는 법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간 어버지 귀도는 아들 조슈아에게 전쟁을 게임이라고 속인다. 순진한 아들은 전쟁을 1,000점을 먼저 따면 1등상으로 탱크를 받게 되는 게임이라고 믿는다. 아들 조슈아는 1,000점을 따기 위해 숨바꼭질 게임에서 독일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끝까지 숨는다. 이 영화에서 아들을 살린 것은 아버지의 '거짓말'이었다. 만약 사실을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엄마A가 딸에게 사실을 말했을 때 딸이 슬픔과 분노를 느낄 수 있듯, '사실'은 어린 조슈아를 절망과 낙담 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진실'은 어린 조슈아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생명을 열어주는 거짓으로서의 진실, 바로 그것이 예술은 아닐까.
처녀가 아이를 낳았고,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는 종교, 전쟁을 게임이라고 말하는 영화, 물에 빠진 심청이가 왕비가 되었다는 소설, 이 모두가 허구요 가상이다.(물론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나 소설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허구와 가상에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힘이 있다.
과학자나 수사관이나 기자처럼 사실을 왜곡됨 없이 밝히는 작업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사실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만이 중시되는 세상은 '멋'이 없다. 과장도 있고 엄살도 있고, 때로는 그럴 싸한 왜곡도 있는 세상이 오히려 살만하지 않을까. 세상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감독 : 로베르토베니니
감독 : 로베르토베니니
주연 : 로베르토베니니, 니콜레타브라시, 조르지오깐따리니
제작 : 1997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