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찾아서
-서산 개심사

떠나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행인지 불행인지 일상은 적당히 견 딜 만하다. 더구나 고여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늑한 일인가.(경우에 따라서는 한 자리에 둥지를 틀고 썩어 가는 일도 과히 나쁘지는 않을 터) 여기서 더 뭘 바라겠는가 생각해버리면 지금 이곳이 그대로 극락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때로는 내 안에서 어떤 반역의 힘들이 솟구친다. 어떤 쇄신, 어떤 충전이 필요하다. 가끔은 낯선 시간과 공간 속에,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속에 나를 던져 보고도 싶은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낯섬과 위험'은 존재를 불안하게 한다. 부와 명예도 이 앞에선 오금을 못 편다. 존재에의 각성(覺醒), 오직 '내가 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격렬하게 인식된다.

여행이란 단어가 탈출과 모험의 욕망을 자극하고 위험과 불안의 감정을 환기시키지 않는다면 대체 여행이란 무엇인가. 탈출과 모험의 욕망, 위험과 불안이 거세된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다 차라리 '관광'으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 관광에는 열락은 있어도 각성은 없다. 그러나 각성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질 좋은 열락임에 틀림없다. 고통을 스스로 찾아나서는 구도자들과 고행자들이 권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런 종류의 열락이다.

절을 찾아간다는 것, 그것도 비신자인 '내'가 절집을 찾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고요를 맞는 것, 침묵을 내 몸 안에 침투시키는 일이다. 아무런 실용적 관심 없이 아침의 전나무숲을, 황혼녘의 산사를 바라보는 일이다. 너무 많은 말을 반성하는 일이다. 그냥 묵묵 히 하나의 풍경 속에 녹아버리는 일이다. 그럴 때 나는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끽해봐야 나는 풍경 속의 일부인 것이다.

서산 개심사(開心寺)는 침묵을 만나기에 좋은 절이다. 얼마나 많은 명산 대찰들이 이미 침묵을 잃어버렸는가를 상기해 보라. 그곳들은 이미 여행의 절이 아니요, 순례의 절이 아니다. 그곳들은 관광의 절이다.
가령 수덕사의 대웅전은 장중·엄숙하고 유려한 깊이를 가졌지만 그곳으로 오르는 '뺀질뺀질한' 대리석 석재들은 대웅전이 그 고색창연한 맞배지붕으로 애써 벌어 둔 침묵들을 깎아 먹어버린다. 그러나 개심사로 오르는 돌계단에서 마주치는 것은 좋은 침묵이다. 풍우에 깎이고 시간 속에 풍화된 암석들이 넉넉한 역사를 전해준다.

개심사 입구에서 세심동(洗心洞)이라는 표지와 만난다. 마음을 씻으라니, 무엇으로 씻으라는 말인가. 울창한 홍송들이 그 답을 말해준다. 숲이다. 절들은 그 입구에 울울창창한 숲을 세워 오탁에 찌든 속인들의 마음을 씻어준다. 오대산의 월정사, 조계산의 송광사가 그러하던가.

개심사로 오르는 돌계단에서 엄격한 직선을 찾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여기에선 알맞게 꺾이어 있다. 홍송이 그렇고 앞머리를 외로 튼 길이 그렇다. 절로 가기 위해선 얼마동안을 우회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단축해야겠다는 것은 문명이 우리들에게 가르친 못된 버릇이다. 삼천 배는 아니더라도 조금의 수고로움도 없이 대웅전을 보겠다는 심사도 나쁜 버릇이다. 그러나 나를 만나려거든 응당 뼈를 깎는 수고로움을 거쳐야 하느니라, 하는 오만한 자의식도 개심사로 오르는 돌길에는 없다. 1㎞ 남짓, 어느 정도 숨이 가쁘다 싶을 때, 당도하는 곳이 개심사다. 봄이라면 돌계단을 올라온 쌔근거리는 숨결에 왕벚꽃의 향기가 물씬 풍겨 올 것이지만 겨울의 개심사에는 도심에선 호흡할 수 없었던 서늘하고 청량한 대기가 있다.

오솔길 모퉁이를 돌아 경내로 들어서면 경지(鏡池)라 이름한 연못이 객들을 반긴다, 몸소 져내려야 할 낙하의 때를 알고 제 몸을 내려 앉히는 낙엽들이 가을이 깊었음을 말한다. 초여름이면 이곳에서 소담스럽게 핀 수련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으리라.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 안양루.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라는 안양루 현판의 글씨도 어눌하고 굼떴다. 획의 삐침이 없어 밋밋하지만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묵직한 맛을 준다.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의 유흥준은 그 글씨가 일제시대의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의 예서체임을 말해준다. 개심사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안양루다. 이곳에서는 한 번 밑을 바라볼 일이다. 아옹다옹거리던 일상의 날들을 멀찍이 거리를 두고 바라볼 일이다.

안양루를 끼고 돌아 해탈문으로 들어서면 대웅보전, 그 앞에는 소박한 오층석탑이 있다. 대웅보전은 푸근한 느낌을 주는 맞배지붕집. 단정하고 기품이 있다. 수다스럽지 않다. 서정주의 시를 빌어온다면 '내 누님 같이 생긴' 집이랄까. 푸근하며 호들갑스럽지 않다. 넉넉하고 따스한 느낌이다. 부안 내소사의 대웅전은 팔작지붕으로 세련되고 날렵한 인상을 주지만 개심사 대웅전의 맞배지붕은 단순하고 장중한 무게감을 전해준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 하던가. 지극히 교묘한 것은 졸렬함과 같다는 말은 개심사 대웅전의 지붕에 와서 그 실례를 하나 더한 다. 한 마디로 맞배지붕은 어눌하다. 굼뜬다. 그런 우직함, 웅숭깊음을 상왕산이 깊게 껴안고 있다. 분분한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뭐라 해도 절은 산에 있어야 한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고고한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종교가 있어야 할 자리는 거기다.

해탈문으로 들어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무량수각'이라는 당호를 붙인 곳이 나타난다. 이곳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곳. 침묵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발뒤축을 들지 않으면 안 된다. 조심스럽게 그곳을 지나면 명부전이다. 이곳에는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의 시왕과 역사상이 모셔져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194호로 지정된 명부전의 인상은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친근하다. 마치 우리 민담의 도깨비들이 공포보다는 친근감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심검당(尋劍堂)은 천연덕스럽고 꾸밈이 없다. 자연 속에 도드라지지 않게 인간의 삶을 살짝 들어 앉히는 동양의 지혜와 미학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을 주는 곳이다. 뒤틀린 것은 뒤틀린 대로, 휘어진 것은 휘어진 대로 모지라진 것은 모지라진 대로 그 천연덕스러운 질서에 참여한다. 있는 것을 있는 대로 수용하겠다는 투 다. 어느 하나 내치거나 버리지 않겠다는 투다. 그래서 편안하다. 1962 년에 해체·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477년에 세 번 중창하였고 영조 때까지 여섯 번이나 중창을 거쳤다고 한다. 여러 번의 수리 과정 속에서도 심검당은 그 자연스러운 멋을 잃지 않았으니 함부로 원형에 손대지 않으려는 우리 조상들의 겸허함에 마음을 줄 만하다.
상량문에는 중창을 할 때의 연대뿐만 아니라 시주자의 이름과 함께 ' 박시동(朴時同'이라는 목수 이름까지 들어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단다. 조선 초기 건물로 몇 안 되는 유적일뿐더러 전남 송광사의 하사당과 경북 환성사의 심검당과 함께 초기 요사채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축물이라고도 한다. 바로 이곳에서 한 시대의 선지식인 경허가 거처했단다. 그러나 개심사에선 경허라는 한 인물을 도드라지게 상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경내의 고요함이다. 아늑함이다. 가을의 개심사는 단풍이 너무 고와 경지(鏡池)의 외나무 다리를 건널 때는 조심을 해야 한다. 주위의 풍광에 눈이 어두워 마음과 몸의 중심을 동시에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의 개심사도 개심사지만 봄의 개심사는 벚꽃으로 성장(盛裝)을 한 모습이 일품. 사시(四時) 중에 한 계절을 택해 절도 그런 호사를 누리는가 싶다. 그러나 아무래도 절은 늦가을부터서야 비로소 절다워진다. 일체의 수식을 벗어버린 적막함 속에서만 풍경이 운다. 그 적막함은 부처와 조사를 친견하려는 신도들만이 독점적으로 누려야 할 것은 아니다. 소음 세상을 벗어나 귀를 씻으려는 사람들에게 그 침묵은 고루 분배돼야 마땅하다. 세상이 자꾸 소음을 만들어 낸다면 어디에선가에서도 역시 침묵을 생산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바다와 숲이, 산과 계곡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침묵이 다. 우리가 한겨울에도 바다와 산을 찾는 것은 바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이 또 그렇게 침묵하기 때문이다. 다정스러운 말이 인간을 위로하기도 하지만 때로 인간은 침묵 속에서 상처를 다스리기도 하는 것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분명 어딘가가 병들어 아플 때 이리라. 혼자가 된다는 것, 여행의 밤 기차에 몸을 싣는다는 것은 나의 환부를 응시하는 일이리라. 바로 그때 내 옆에 있는 것은 차창에 비쳐 진 '나의 모습과 침묵'뿐. 내가 기댈 곳이 있다면 '나의 모습과 침묵' 뿐이다. 그렇다. 내가 찾아가는 곳, 성전(聖殿)과 사원을 '침묵의 공장' 이라 불러도 되겠다.

운산에서 647번 지방도로를 따라 해미 쪽으로 7㎞쯤 가면 신창리의 길 왼쪽에 신창주유소가 나온다. 그 주유소 약간 못 미쳐 가게 옆으로 개심사로 들어가는 시멘트 길이 있다. 이 시멘트 길을 따라 4㎞쯤 가면 개심사 입구에 닿는다. 신창리 쪽으로 방향을 틀면,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면 가급적 눈을 감는 것이 좋다. 주변의 볼썽 사나운 풍광이 시각을 유린한다. 목장을 조성하기 위해 산을 깡그리 밀어 밀어버린 불경스러움을 피해가려면 말이다. 삼화목장, 개심사 입구 야산의 수목들 을 베어버리고 거대한 초지를 조성하였다. 산에는 나무가 자라고 수풀 이 무성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지만 여기에서 그런 상식은 통 하지 않는다. 자연을 내 뜻과 필요에 따라 변형시키고 굴복시키겠다는 인간의 오만함이 역설적인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여행에선 그런 꼴사나운 풍광마저도 두 눈을 부릅뜨고 보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개심사에는 숙박시설 하나 없지만 개심사 주변으로는 위락시설이 많다. 온양온천 도고온천, 덕산온천, 아산온천이 이곳에서 멀지 않다. 충남 제일의 사찰이라는 수덕사도 이곳에서 멀지 않다. 특히 수덕사는 대가람다운 위용과 웅자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질 좋은 침묵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곳이 수덕사다. 숙박업소와 주차장은 절보다 더 위풍당당하다. 노래방도 버젓하다.

개심사를 찾아가는 여정 중에 빠뜨릴 수 없는 곳이 해미읍성. 북쪽에 가야산과 역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남문인 진남루 앞으로 해미천이 흐르니 이를 일러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라 하던가. 조선 시대에는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있었으며 인근의 중심이 되던 고을이었다. 읍성으로는 가장 잘 보존된 성 중의 하나라는 이곳은 특히 그 일 몰이 아름답다. 성벽에 늘어진 담쟁이 덩굴이 꽤나 상긋한 운치를 더해준다. 1866년 병인양요에 이어진 박해 때에는 이 지역 천주교인들이 이곳 해미영에 끌려와서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해미읍성 근처, 황락리에는 미륵불상이 있다. 황락리 미륵은 세련과는 거리가 먼 질박함이 민중의 날것 그대로의 숨결을 전해준다. 둥근 눈에 주먹코, 재료의 원시적 살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조야한 돌피부는 모던한 디자인에 피로해진 눈에 생기를 준다. 개심사와 함께 서산군 운산면 용현계곡의 국보 84호 마애삼존불과 절터인 보원사지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온천이 몰려 있는 온양이나 도고 쪽보다는 서해 쪽으로 빠져도 좋을 듯하다. 어차피 집을 나온 목적이 관광이 아니라면 말이다. 뉘엿뉘엿 해가 기운다면 더욱 제격이다. 서해의 황혼은 여행을 가장 여행답게 한다. 침묵 속에서 사라지는 태양의 입적(入寂)을 지켜보아야 한다. 밤이 도둑처럼 오고 별들이 하나 둘 돋아날 때 어둠 속 에 서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서둘러 숙박업소를 찾아야 한다면 아무런 장식도 없는 방 하나를 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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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2005-04-15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사진 , 글 너무 좋네요 .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