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로드무비님이 올리신 볶음쌈무를 보고서, 실은 그게 아니라 월남쌈이 먹고 싶어졌다. 뭐 재료야 얼추 비슷하고 쌈무 대신 라이스페이퍼만 준비하면 되는 거니까. 토요일에 snowdrop님이 말씀하신 이대 앞 씨클로에 가서 월남쌈과 쌀국수를 먹을 생각이었는데, 허리도 여전히 아프고 날이 너무 더워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더랬다. 월남쌈 먹고 싶다는 내 칭얼거림에, 마음 착한 친구, 백화점에 들러 월남쌈 재료를 한보따리 사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오전에 실컷 먹었다.

 

내가 준비한 (..이 아니라 친구가 사다준) 재료는,

소고기 (간장, 설탕, 마늘, 참기름, 깨소금 등등 양념에 재워뒀다 다른 재료가 모두 준비된 후에 볶는다),

숙주 (베트남 음식점에서는 보통 날걸로 주는데 난 살짝 데쳤다),

오이, 당근, 깻잎, 노란 파프리카, 빨간 파프리카, 피망, 크리미(맛살 종류), 새싹, 치즈

냉장고에 있는 파인애플과 토마토를 빼 먹었다.

 

소스는 네 가지

피넛 버터 (올케는 여기다 땅콩을 갈아 넣으면 좋다고 했는데, 그렇게까지는 못한다),

파인애플 드레싱 (새싹 샐러드에 따라 온 것),

간장 소스 (간장, 올리브오일, 물, 레몬즙을 섞었다. 올케가 알려준 것),

파인애플 소스 (파인애플 통조림 국물에 레몬즙을 섞었다. 요리 사이트에서 본 것)

 

냉면기에 뜨거운 물을 담아놓고 라이스페이퍼를 한장씩 익혀 준비한 재료를 싸 먹는다. 맛있다. 냠냠. (사진찍어 자랑을 했어야 하는데 항상 다 먹고 난 다음에야 사진찍을 생각이 난다는게 문제. 퍼 온 사진이라도.)

 



 

오후에는 역시 친구가 백화점에서 사다 준 떡(절편과 대추설기)과 오렌지 주스 한잔. 저녁에 시노스 치즈케이크 1/4 조각과 토마토 갈은 것 한잔.

 

너무 더워서 그 좋아하는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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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07-2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걸 집에서.

urblue 2005-07-2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무지 쉬워요. 그냥 썰어놓기만 하면 되는건데. ㅎㅎ

urblue 2005-07-25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도 월남쌈 좋아하시나보네요. ^^ (자랑질이 좀 먹혔나. ㅋㅋ)

로드무비 2005-07-25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화판 병상.^^
(그 누군지 친구를 잘 두셨네. 잘 드셨다니 좋습니다요.^^)

인터라겐 2005-07-2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두 가끔 집에서 월남쌈 해먹어요... 칵테일 새우 넣으면 모양이 예뻐지더라구요..
소스는 깨하고 땅콩을 갈아서 해요... .물좀 넣고 간장넣고 설탕 식초 꿀한스푼 넣어서요.... 처음엔 이렇게 하면 무슨 맛으로 먹나 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요..
피시 소스 사다가 해봤는데 그건 별루 더라구요....

플레져 2005-07-2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는 못한다....... 인상적인 멘트 ^^:;;
아이스커피는 안 좋아하시나봐요?

urblue 2005-07-25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친구를 잘 두긴 했죠. ㅎㅎ 뭐 저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는 그렇게 생각 안 할지도 모르지만. ( '')

인터라겐님, 칵테일 새우는 파는 건가요? 이잉..역시 요리의 세계는 어려워요.

플레져님, ^^;; 찬 음료 잘 못 마셔요. 빙수같은 것도 못 먹는답니다. 얼음 안 넣은 주스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시원한 음료의 한계랄까요. 아이스커피도 별로 안 좋아하구요. 에휴.

인터라겐 2005-07-25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칵테일 새우 그거 냉동시킨 깐새우예요...ㅎㅎ 이름만 그럴싸하지요? 그런데 그거 데쳐서 놓으면 다들 맛있다고 그러시더라구요...

날개 2005-07-2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넘 맛있겠어요...!! 소스도 네가지씩이나.....^^

urblue 2005-07-2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맛있었어요~ 소스야 뭐 그냥 대충 만든거지만서도. 히~

인터라겐님, 칵테일 새우, 음, 다음엔 것도 사다 넣어야겠군요.
 

허리가 아파 의자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다보니 집에서는 거의 컴퓨터를 켜지 않고 지내고 있다. 덕분에 책은 많이 읽는다만 기록을 해 놓지 않아 그새 읽은 게 가물가물. 내일이랑 모레랑 쉴거니까,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좀 오래 앉아 있지 뭐,의 자세다.

7월 둘째 세째주 독서 일기.

  책에 관해서는, 나는 좀 보수적인 편인가보다. 옛날(?) 같았으면 <가족관찰기>같은 이런 책은 아마 출판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선현경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물론 알콩달콩 재미있다.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꾸며놓으니 제법 그럴 듯 하다. 하지만 역시, 이런 내용이라면 알라딘 서재지기들의 생활이 훨씬 재미있다. 일 한다고 해 놓고 놀기만 한다고 엄마를 꼬집는 똑똑한 주하나, 집안 일은 당연히 같이 하는 거라고 제대로 알고 있는 작은별, 별난 엄마 덕에 본의 아니게 여장을 하는 연우, 사진찍는 엄마 앞에서 장난치는 마로 등등. (물론 이 엄마들도 장난아니다! ㅎㅎ) 알라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이런 책을 내면 어떨까. 소재야 무궁무진할테고 그림은 진/우맘님이랑 검은비님이랑 등등 재주있는 분들이 맡으면 될테고. 흠, 진짜 재밌을 것 같은데.

  아이들에게 인권의 개념을 이해시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도움이 되겠다. 아버지 때문에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상담 편지에 대한 답변이, 집을 나가는 건 마지막 방법이다, 집을 나갈 땐 확실히 갈 데가 있어야 한다, 라는 데에 좀 놀랐다. 상담센터나 보호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조언을 한다는게 맞는건가. 몇몇 군데에서 턱 걸리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어쨌거나 인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만화와 사진으로 구분된 두 개의 세계, 그리고 접점. 그림도 사진도 훌륭하다.

 

 

 

  최근 박노자의 저작들은 개화기를 연구한 것이 많다. <우리 역사 최전선>이나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와 같이 읽으면 좋을 책. 두껍긴 하지만 술술 읽힌다. 경쟁에서 지면 죽는다라는 우승열패(優敗), 약육강식의 신화가 어떻게 자리잡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찰. 주로 사회진화론과 아시아주의의 유입을 다루고 있다. 1880~90년대 사회진화론에 심취한 유학파, 일본 국가주의를 익힌 1920~30년대 우파 민족주의자들, 1960~70년대 파시스트 정권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에 정착한 억압 구조의 계보를 들여다볼 수 있다. (허리 아픈 관계로 리뷰는 한없이 미뤄지는 중. 이런 상태면 리뷰쓰기는 불가능일지도 모르겠다.)

  차모니아 제국에서도 책의 도시 부흐하임에서 일어나는 모험담. 이런 도시가 있다면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가 보고 싶다! 내용 뿐 아니라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삽화도 귀엽다. 역시, 리뷰는 보류. 티셔츠 받아야하는데. -_-

 

 

  현재 세계의 주요 문명을 8개(중화, 일본, 힌두, 이슬람, 정교, 서구,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로 구분한 전제부터 수긍할 수 없고, 결국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가 보편제국으로써 전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결론은 더더구나 인정할 수 없다. 보는 내내 짜증냈다. 헌팅턴이야 미국인이고, 미국의 세계 전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책을 썼겠지만, 일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 책에 환호했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게 우리나라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맞는 모양이다. 젠장.

 

  코엘료와는 궁합이 안 맞는다. 리뷰 썼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무렵 갑자기 등장한 대중의 성격에 대한 고찰. '대중은 자신의 삶을 우수한 소수로 구성된 상층 권위에 맡길 필요가 있다.' 우수한 엘리트가 지도하고 대중은 따라야 하는데, 갑자기 등장한 대중이 이것을 거부하는 것이 '대중의 반역'이다. 가세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은 무식하다, 대중은 철부지다, 대중은 폭력적이다, 라는 내용을 읽고 있자니, 상당히 거북하다. 내가 이를 인정못하겠다고 하면, 가세트는 아마, 그게 대중의 특성이라고 말했을테지.

 

으아, 허리 아프다. 이제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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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7-22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엘료씨....알라딘에서 불땅해요..흐흐^^

perky 2005-07-23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 많이 읽으셨네요. 부러워요. ^^ (전 요즘 책이 한줄도 안 읽혀서 무지 괴롭답니다. ㅠㅠ)

sudan 2005-07-2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울어진 아이,는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그런데, 허리는 좀 어떠세요?

chika 2005-07-2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리 아픈거 괴로울텐데... 좀 쉬세요. ^^

클리오 2005-07-23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책 정말 많이 읽으셨군요... 우승열패의 신화. 사놓았는데 당분간 이제 근대는 보류~~ ^^

로드무비 2005-07-2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울어진 아이는 저도 보고 싶네요.
<가족관찰기>가 별로 재미없단 말이주? 흥=3

urblue 2005-07-2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가족관찰기는 알콩달콩 재미있다, 라고 썼는데요. 재미없다는 게 아니라, 님 사시는 얘기가 더 재밌단 말이라구요.

클리오님, 우승열패의 신화 재밌어서 술술 읽히던데요. 하긴, 님은 요즘 너무 많이 읽으셨죠? ^^

치카님, 주말에 잘 쉬었습니다. ^^

수단님, 기울어진 아이, 포토리뷰라도 올릴까요?

차우차우님, 왜 책이 안 읽힌답니까? 하긴, 뭐 그런 때도 있는거죠. 그럴 땐 그냥 마구 놀아버리는 거여요. ㅎㅎ

여우님, 코엘료가 인기있는 이유,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알라딘에서만 불쌍한 건가..^^;

urblue 2005-07-2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에 관심이 있으실까. ^^
 
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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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재미있기 위해선 가지 조건이 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여주든지,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든지, 등장 인물들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되어 감정이입이 이루어지게 하든지, 아름답거나 독특한 문체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런 조건들을 전부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중 하나만 만족스러워도 엄청난 재미를 느낄 있다. 거기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감동을 준다면 소설은 좋은 작품이 것이다.

 

작품 <오 자히르>의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성공한 작가다. 노래 가사를 써서 다른 일을 필요가 없을 만큼의 돈을 벌었고, 부인 에스테르의 질책과 격려에 힘입어 그토록 바라던 글을 있게 되었으며, 그의 책들은 거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에스테르는 아름다울 아니라 현명하고 사려 깊으며, 기자로서 명성을 거두고 있는, 역시 대단히 뛰어난 여자다. 게다가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에스테르가 아무런 말없이 사라진다. 남편은 이유를 없고, 부인은 이제 남편에게 자히르, 집착의 대상이 된다. 작가는 부인이 사라진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 과거를 돌이켜본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언제부터 부인과의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했는지 반추하면서 부인이 말했던 사랑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부인과 함께 사라졌다고 짐작한 청년 미하일과 작가의 새로운 애인 마리가 과정에 도움을 준다. 결국 작가는 사랑을 깨닫고 부인과 재회한다.

 

배경이 현대의 프랑스고, 주인공들은 소위 잘난 엘리트들이다. 새로운 세계관 같은 애초에 찾아볼 없다. 물론 작가가 그런 염두에 두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부인과 부인에게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남편이란 설정도 진부하기 이를 없다. 부인은 남편과 대화하기를 원하는데 남편은 그걸 모르고, 그래서 부인이 집을 나가고, 뒤늦게 사태의 본질을 깨닫고 반성한 남편이 부인을 찾아가 재결합한다, 라니. <사랑과 결혼>이나 <아침 마당>같은 TV 프로그램, 여성지 상담 코너의 단골 소재 아닌가. 흥미진진한 전개 같은 기대하는 쪽이 이상하다. 오히려 얼마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결혼 전날 스스로 납치 당했다고 신고했던 철없는 예비신부 쪽이 소설의 소재로 신선하겠다.

 

에스테르가 집을 나갔는지, 작가가 어떻게 자히르에서 벗어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에스테르가 말하는 사랑, 미하일이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사랑, 작가가 마침내 깨달은 사랑, 사랑사랑사랑을 나는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은커녕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지도 파악이 된다. 사랑이 그렇게 어려운 거였나. 혹은 2년의 공백과 지구 바퀴의 거리로 해결이 가능할 만큼 쉬운 건가.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나는 구도의 여정이라지만, 카자흐스탄의 스텝이라는 배경은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다분하다.

 

작가와 독자 간에도 궁합이 있다. 남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나로서는 읽을 없거나 읽더라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작가도 있고, 별로 주목받지 못하지만 내게는 최고인 작가도 있다. 어차피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작가들과 책들이 있는데,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굳이 애써 읽을 필요가 있을까. <연금술사> 보고 나서 코엘료와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기회가 닿아 다시 < 자히르>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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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7-2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죠... 근데 전 아직 두권 더 있어요 ㅠ.ㅠ

urblue 2005-07-2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안 읽으시면 어떨까요? ^^;

물만두 2005-07-2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로드무비 2005-07-25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작가 책 안 땡겨서 한 권도 안 샀다오.
허리는 괜찮아지셨소?
휴가는?

니나 2005-11-26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 리뷰를 읽고 들어왔는데요, 파울로 쿄엘료 작품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오, 자히르'는 못 읽었지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 '악마와 미스프랭'은 좋습니다. 아무래도 '11분' 이래로 작품의 밀도가 떨어지는 듯합니다. 아쉽습니다. 사서 읽지는 않으시더라도 빌려 읽어 볼만합니다.

urblue 2005-11-2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나님, '베로니카'와 '악마와 미스프랭'은 읽고 싶었는데, 순서가 잘못 되었습니다. '연금술사'와 '오, 자히르'를 보고났더니 다른 작품은 읽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버렸군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작가인데, 한 번 더 읽어봐야 하나 싶기도 하구요. 말씀하시는대로, '빌려' 읽어보도록 하지요. 감사. ^^
 
 전출처 : 물만두 > 오, 자히르 중에서

얀트 법 (the law of Jante)

Janteloven은 덴마크에 전해져 오는 일종의 관습법이다. Aksel Sandemose(1899 - 1965)가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3년 작품인 'en flygtning krydser sit spor'(A refugee crosses his track)에 실렸다고 한다. 모세의 율법처럼 열 가지 지켜야 할 것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Du skal ikke tro du er noget.
  2. Du skal ikke tro at du er lige så meget som os.
  3. Du skal ikke tro du er klogere end os.
  4. Du skal ikke bilde dig ind at du er bedre end os.
  5. Du skal ikke tro at du ved mere end os.
  6. Du skal ikke tro at du er mere end os.
  7. Du skal ikke tro at du dur til noget.
  8. Du skal ikke le ad os.
  9. Du skal ikke tro at nogen bryder sia am dig.
  10. Du skal ikke tro at du kan vere os noget.

이것을 (영문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1. You shall not believe you are anything. (skal = shall, tro = believe)
  2. You shall not believe you are as worthy as us. (os = us)
  3. You shall not believe you are any wiser than us. (klogere = wiser)
  4. You shall not imagine you are better than us. (bilde = imagine, bedre = better)
  5. You shall not believe you know more than us. (ved = know)
  6. You shall not believe you are more than us.
  7. You shall not believe you are good at anything.
  8. You shall not laugh at us. (le = laugh)
  9. You shall not believe anything cares about you.
  10. You shall not believe you can teach us anything.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대개 "당신이 잘났다고 믿지 말라"는 내용이다. 겸손함을 강조하는 덴마크의 모습이 엿보인다.

물론 현대의 생활에 비추어 내용이 좀 진부한 감은 있다. 재밌게도 실제로 이 법에 대한 반대자(Anti-Janteloven)들도 있어서 일부러 거꾸로 행동하는 ("shall not"을 "shall"로 옮겨서 행동한다.) 사람들이 덴마크에 꽤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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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아나키즘 입문



(이 글은 1988년에 리즈 A. 하일리맨과 (지금은 없어진)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아나키스트 그룹 블랙 로즈에 의해 쓰여졌다.)


무엇이 아나키즘인가?


아나키즘은 오해로 둘러싸인 하나의 정치철학이다.이것은 대부분 아나키즘이 다양한 사고방식이어서 단순한 슬로건이나 당 노선들로써 특징지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사실, 10명의 아나키스트들에게 아나키즘의 정의를 묻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10개의 각각 다른 대답들을 얻을 것이다. 아나키즘은 단순히 하나의 정치철학 이상이다; 그것은 삶의 방식으로서 정치적, 실용적, 개인적 국면들을 모두 포괄한다.


아나키즘의 기본적 주장은 위계적 권위--그것이 국가이든, 교회이든, 가부장제 혹은 경제엘리트 이든--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하는데 본래적으로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은 창조성, 협동, 그리고 상호존중에 기초하여 자신의 일을 처리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권력은 원래 부패하게 되고, 권력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영구집권과 권력을 늘리는데만 신경을 쓰게 되어 주민들에겐 관심을 쏟지 않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윤리는 개인적 문제이며,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회의 안녕에 기반을 두어야지 사법부나 종교계의 압력에 의한 법제정(미국의 헌법 같은 것들)에 근거를 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 철학자는 개인들은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것을 신봉한다.

가족주의적 권위자들은 비인간적인 사고방식을 배양하여,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기 보다는 엘리트들이 대신 결정을 내리고, 요구를 대신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게 된다. 권위가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결정들, 예를 들어 무엇이 가치있는 죽음이고, 죽일 만한지 (군대징집 혹은 낙태 등)를 억지로 지배하려 할 때, 인간의 자유는 현격히 감소한다.


아나키스트들은 다양한 형태의 억압--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이성애중심주의, 계급지상주의, 국수주의를 포함하여--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며, 다른 억압들이 엄존함에도 단 한 곳에만 저항의 촛점을 맞추는 것이 쓸모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세계를 바꾸는 방식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과 반드시 상반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 아나키스트들은 현존하는 폭력적인 제도장치들의 전복을 위한 공식적인 조직과 폭력적 행동을 포함한 전략과 전술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지만, 거의 대부분은 단순히 현존 질서를 파괴하는데가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 새롭고 더욱 인간적이며 더욱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는데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역사속의 아나키스트


아나키스트들은 역사적으로 혁명적 운동들에서 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1798년에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강력한 원시-아나키스트적 요소를 지녔다. 피에르 조셉 프루동, 피터 크로포트킨, 미하일 바쿠닌, 그리고 에리코 말라테스타 같은 아나키스트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혁명적 아나키스트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나키스트들은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에서의 혁명적 운동에 본질적인 공헌을 하였으나, 볼셰비키가 권력을 공고히 하자마자, 아주 무자비하게, 억압당하였다. 1936-1939년의 스페인 혁명은 아나키스트 실천을 대규모적으로 드러내 보인 무대가 되었으며, 그 속에서 아나코-생디칼리스트, (무정부- 노동조합주의자) 조직인 FAI 와 CNT는 실현가능하고 비위계적인 사회, 경제적 대안을 성공적으로 창조해 내었다. 멕시코와 라틴 어메리카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노동조합 운동(예를 들어 '전세계 산업노동자들')은 아나코- 생디칼리스트의 영향을 받았다. 엠마 골드만과 알렉산더 버크만과 같은 주요한 아나키스트들은 1900년대 초반에 걸쳐 다양한 급진적 움직임들에 참여했다. 많은 사회적 변화와 1960년대의 대안적 삶의 형태 운동들(일부 페미니스트운동, 게이해방운동과 반전, 언론자유 운동 등을 포함하여)에는 강력한 아나키스트의 조류가 있었다. 비록 많은 경우에 그들은 맑스주의자/레닌주의자/마오주의자 에게 억눌렸거나 그늘에 가려졌다.


아나키즘은 무엇이 아닌가


아나키즘을 해명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무엇이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다:


공산주의: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공동체주의와 집산주의를 중시하는 반면, 아나키스들은 현존하는 그리고 최근에 무너진 공산주의자(더욱 정확하게는 맑스-레닌주의)국가들의 전체주의를 거부한다.

아나키스트와 맑시스트의 분열은 1870년대에 아나키스트들이 맑시스트들이 다양한 명목으로 (독재적) 권위주의를 지속시키고 있다고 인식하면서부터 심화되었다.

맑스-레닌주의 그룹들은 전통적으로 전위당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사상, 즉 기본적으로 반권위주의적이며 최대의 개인적 자유를 강조하는 아나키스트들과 정반대되는 사상을 강조해왔다.

정통 맑시즘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국가는 "소멸해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반면에, 우리들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 정권들의 국가권력의 강화와 이에 따르는 억압, 순응에 대한 강조를 반복해서 보아왔다.


자유의지주의: 자유의지주의자들은 자주 아나키스트과 혼동되며, 사실 많은 점에서 중복되기도 한다.

 

둘은 모두 개인적 자유와 국가체제를 없애고 싶은 욕망을 강조한다. 많은 자유의지주의자들은 개인을 가장 중요시하며 분별있는 사리사욕추구의 원칙을 강조한다.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서로 돕고 그 지역 모든 구성원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을 보다 중요시 한다.

 

자유의지주의는 그 경제적 관점에 의해 가장 자주 특징지워지는데, 그것은 제한없는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가장 중요시하며(몇몇 옹호자들은 스스로를 "무정부-자본주의자들" 이라 부른다),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무력의 사용을 용인하며, 개인의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는 어떤 정부의 간섭도 반대한다. 그리고 경제적(일반적으로 금전적)용어로 판단되지 못하는 가치들은 무시해버린다.

 

자유의지주의자들이 반국가적인 반면, 그들은 자주 모든 형태의 지배와 위계질서(자유의지주의 철학은 종종 "적자생존" 혹은 "(경제적)힘이 곧 정의"를 위해 노력한다)와 모순되지 않으며, 사회의 권력관계(특히 경제적 권력에 기초한)들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더욱 사회주의적인 관점을 갖는 경향이 있고, 부유한 자들은 더많은 이득을 보고, 운이 없는 자들은 불공평한 고통에 시달리게 만드는 어떤 체제라도 폐지할 것을 선호한다. 아나키스트들은 개인적 솔선수범, 지능, 그리고 창의력을 중요시하기도 하지만, 그런 능력을 조금밖에 갖지 못한 사람들 역시 당연히 존중받고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객관주의들은 자유의지주의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자유의지당은 상대적으로 온건하며, 선거개혁, 마약법률폐지, 그리고 정부의 조정을 줄이는 문제 등에 관심을 쏟는 경향이 있다.

많은 자유의지주의자들은 어떤 형태의 정부는 필요하나 그것은 가능한한 최소화되고 간섭이 없어야 된다고 믿는 "중도-아나키스트"들이다.

 

아나키스트 사회에서는 어떤 형태의 경제체제가 존재할 것인가의 문제는 미해결의 문제이다. 어떤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형태의 자본과 시장경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다른 이들은 노동자소유제와 완벽한 참여민주주의를 촉진시키는 체제를 선호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아직도 서로 자신의 체제와 가치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한 다양한 경제체제가 공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자유주의": 이 나라(미국)에 퍼져있는 정치적 관념은 아나키즘을 좌익과, 그리고 좌익을 자유주의와 같다고 생각하지만, 양에서도 질에서도 실질적인 차이들이 있다.

 

"좌익"의 생각은 많은 현대 정치학이 전통적인 좌익(자유주의)/우익(보수주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나는 경향이므로 1990년대에는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이 "진보적인" 주장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즘은 전통적인 정치적 스펙트럼에 포함되지 않는다. 어떤 이론가들은 경제적 권위주의의 정도와 사회적 권위주의의 정도를 두개의 분리된 축으로 바라보는 (이론적) 기반을 제안해왔다; 경제적 자유를 두둔하는 이들은 자주 사회적 자유를 적대시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현대의 진보적 정치학은 개인의 주요한 관심과 협력관계는 인종, 성 그리고/혹은 성적 성향에 기초하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정체성 정치학(identity politics)"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비록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정체성 정치학에 많은 시간을 쏟지만, 더욱 깊이있는 아나키스트 철학은 그렇게 (인종, 성 등으로) 나누는 것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될 날을 열망한다.

 

자유주의자들은 현존하는 제도를 개혁하는 노력(투표, 로비, 조직적인 시위같은 수단들을 통해서)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나키스트들은 더욱 근본적인 관점을 갖고 있고, 썩은 사회제도들을 완전히 갈아치우길 갈망하며, 어떠한 형태의 국가주의자들의 간섭에도 의존하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을 통하여 더욱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혁명적 변화 뿐만아니라 진화적인 변화의 유효성 또한 인정하지만, 그들은 사회의 진정한 재조직을 위해서는 어디든 존재하는 위계적 지배관계를 뿌리째 뽑는 것이 필수적임을 인정한다.

 

아나키스트들은 권력 자체의 구조(그것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민주적"이든 획일적이든 간에)가 문제의 근원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해결의 토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다. 어떤 아나키스트들은 비록 소규모의 지역적인 개선이라도 가치가 있다는 믿음으로 투표에 참여하고 조직적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런 행동들이 단지 임시적인 행보에 지나지 않으며,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런 행동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정부적 허무주의(니힐리즘): 니힐리즘의 신조인 "모든것에 반대함"과는 달리, 아나키스트들은 무작위적인 폭력, 파괴 그리고 "모두 자신만을 위하자" 라는 무법혼란을 조장하지 않는다(비록 이런 철학을 갖고서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부르는 부류는 항상 있지만). 아나키는 혼돈과 같다는 일반적 인식은 권력을 쥔 자들이 주입시킨 유행성 믿음에서 비롯된, 한심스러운 오해이다. 아나키스트들은 효율적이고, 잘 조직된 그대로의 사회가 비위계질서적, 탈중앙집중적, 그리고 참여적인 원칙을 바탕으로 성립될 수 있다고 믿는다.


논쟁의 몇가지 이슈들


아나키스트들은 여러 이슈들에 관해 전혀 다른 관점들을 갖고 있다. 의견불일치의 대표적 영역중 하나는 개인 대 지역사회의 문제이다. 개인주의 아나키스트들은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시 하는 반면, 아나코-공산주의자들(그리고 아나코-생디칼리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사회그룹의 이익에 초점을 둔다. 상호부조론자들은 그 사이 어느 쯤엔가 존재한다. 이상적인 아나키스트의 사회에서는 전체로서 지역사회의 요구들이 개인들의 자유의지와 자기결정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고 충족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또다른 논쟁은 생태환경론과 테크놀로지 이슈들에 관련된다. 고전적인 아나키즘은 과학과 합리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맑스주의 견해들과 유사성을 보이며, 기술적 진보는 일반적으로 사회에 이로울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준다. 많은 현대 아나키스트들은 기술은 본래 선하거나 악하지 않으나,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에 영향받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최대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방법으로 면밀히 조사되고,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다른 동시대의 아나키스트들은 반-기술적, 환경중심적 시각(가장 극단적인 원시주의자들과 새롭게 등장한 기술혁신반대주의자들)을 견지하며, 아나키스트 사회는 오로지 기술적 진보를 거부하고 더 원시적이고 지역화된 환경조화적 삶을 통해 달성된다고 믿는다.


민족주의 문제 또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국제주의(혹은 그보다 '무국'주의)를 옹호하고,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국가가 인공적인 분리를 인민들에게 조장함으로써 그 권력을 증대시켜려는 시도의 명백한 표시로 인식한다. 민족국가는 인구의 하층계급은 전세계에 걸쳐 비슷한 비참한 환경에 처해 있는데도 다양한 엘리트들의 이해를 위해 복무하는 구성물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어떤 민족해방투쟁들(중동에서의 팔레스타인, 미국의 흑인민족주의자들, 그리고 전세계 억압받는 토착인민들의 노력같은 것들)은 지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작은 독립국가들은, 권위적임에도 불구하고, 착취를 자행하며 획일적인 제국들보다 더 낫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현대 아나키스트 운동의 조류들


오늘날의 "아나키스트 운동"은 더욱 정확히는 다양한 정치적, 철학적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는 서로 다른 운동들의 집합으로 볼 수 있다. 고전적 아나키즘의 원칙들을 기초로 삼는, 그리고 가끔은 그것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동시대 아나키즘의 범위를 넓히고 전통적 아나키의 견해를 재정의하는 다양한 그룹들이 있다.


아나카-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과 아나키즘의 이상을 융합한다. 아나카-페미니스트들은 고전적 아나키스트들보다 여성해방과 남성중심제의 역할에 더많은 관심을 쏟지만, (일부 페미니즘이 해왔던 것처럼) 다른 형태의 억압들을 제외하지는 않는다. 모든 여성 아나키스트들이 자신을 아나카-페미니스트로 여기지 않는 것과 같이 아나카-페미니스트가 꼭 여성일 필요는 없다 -- 그 구별은 대부분 자신의 가치들이 얼마나 "여성 중심적" 인가와 지배에 대한 어떤 관점이 강조되는가의 문제이다.

다른 많은 현재의 정치적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성분리의 문제는 미해결인 체로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위계적이고 부계적인 사회적 질서에 의해 강요되어온 인위적인 성적 역할의 분리가나키스트 운동에서도 지속되는 것은 아나키스트들이 성취하기를 바라는 진정한 평등의 창조 그리고 장벽들의 제거와 서로 상충될 수도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지배해온 운동에서 여성의 자리를 지킬 필요를 느끼며, 또한 여성문제에 대한 정당성은 반드시 연합이 이루어지기 전에 인식되고 조정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나카-페미니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여성문제들에 대한 국가주의적 대처방안들(여성들에 대한 폭력을 줄이기 위하여 시도되는 포르노에 대한 검열 등)을 거부하고, 자기-능력발휘와 직접적 행동을 지지한다. 아나카-페미니스트 조직은 탈중앙집중화, 참여적인 의사결정, 풀뿌리 단계에서의 활동 등에 대한 강조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아나카-페미니스트 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잠재능력의 실현이 전통적인 성분리 역할들을 뛰어넘으며, 모든 인간들에서 유익한 "남성적" 이고 "여성적" 특질들의 발달과 모든 관계들에서 평등을 장려함으로써 가장 잘 성취된다는 것을 믿는다.


많은 현대 아나키스트들은 자유의지와 자기결정의 이상들을 그들의 개인적 삶에 적용시키는데 집중한다. 이런 경향중에는 성, 가족, 그리고 개인들간의 관계들의 영역에서 다양한 옵션들을 인정할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관계들은 자유로운 선택과 모든 개인들의 동의에 기반해야 하며, 정부나 종교 혹은 사회의 제한들에 제약당해서는 안된다. 많은 퀴어 아나키스트들 --게이, 레즈비언, 성전환자, 그리고 특히 양성애자 --이 존재한다; 아나키즘이 이런 전통적인 범주화 획책들을 깨부수기 위해 쏟는 노력은 특히 비관습적인 그리고/혹은 주변화된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관련되는 것 같다. 페미니스트들 처럼, 어떤 게이/레즈비언/퀴어 그룹들은 반권위주의적 원칙들과 직접 행동들(예를 들면 지하에서 주사기교환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에이즈 활동가들과 비공인 마약 판매 클럽 등)을 포용한다. 결혼, 아버지중심의 핵가족제도, 강요되는 자녀양육 등이 당연시되는 것은 권력에 있는 자들의 이해에 복무하기 위해 마련되어 온 것인데, 아나키스트들은 더 널리, 오랫동안 행해져온 이런 옵션들보다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대안적 관계의 추구, 즉 비일부일처제, 대가족, 공동육아 등을 강조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동성애관계를 (정부로부터) 승인해받기를 바라기 보다는 개인적 관계들을 인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기를 원한다. 아나키스트 동성애자들 역시 일반적으로는 군대같은 공격적인 사회기관에 게이들의 숫자를 늘리려는 시도를 반대한다.


고전적 아나키즘의 무신론적 집착(크게는 전통적, 권위적인 종교기관의 유해한 영향에 대한 반응에서 비롯된)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현대 아나키스트들은 다양한 다른 종교들과 기존 교단에서 파생한 해방신학의 영적인 성질을 강조한다. 이것은 인간 잠재력의 극대화는 인간의 이성 뿐만 아니라 그 인격과 문화의 정신적이고도 초월적 측면들까지도 필요로 한다는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도덕의 영역에서, 이런 성향의 아나키스트들은 법적, 도덕적 권위를 선언하기 보다는 개인적 책임과 타인들에 대한 배려를 더 중요시 한다. 정신적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삶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들의 믿음은 보통 환경보호적, 자연중심적 아나키스트들의 사상과 맏닿아 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는 "성스러움" 이라는 관념과 "상부명령"에 대한 의존이 전통적인 계급질서의 이념을 강화하며 완전한 자유의 충족에 적대적이라고 믿는 풍부한 무신론적 요소들이 남아있다.


펑크(punk), 대안미술, 레이브(rave), "죽은머리(deadhead)"와 급진적 학생들의 문화는 보통 아나키스트들의 이상을 신봉한다. 이런 젊은이들은 집단동거, 무단점거생활 (squatting), 정보소통같은 직접적 행동과 주체적 방법들 그리고 식량협동조합, 독립적이고 법인을 통하지 않은 음악제작, 배급같은 경제적 대안 마련 등에 기반하여 저항적 지역사회를 조직하고, 이것을 통해 소비사회에서 만연하는 부정과 삶으로부터의 소외 등을 탈피해 나가려 한다. 이런 젊은이들은 고전적 아나키즘(이라는 라벨을 붙이지는 않지만)의 많은 교리들을 받아들이는데, 이들은 일반적으로 저항적 활동과 일상생활에 있어서 반권위주의적이고 자결주의적 원칙들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적용시키는데 더욱 노력한다. 그러나 어떤 현시대의 아나키스트들은 이런 "생활방식주의(lifestylism)"를 피하며, 그대신에 더넓은 사회변혁을 위해 모양을 갖춘 그룹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더욱 집중한다.


아나키스트들은 비공식적인 한시기적 잡지에서 꾸준히 지속되는 신문과 책 출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의 출판 인쇄 계획에 참여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점점 더 많이 인터넷을 비롯한 다른 전자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사용하고 있다. 종종 인터넷은 아나키의 살아있는 예가 되어왔고, 중앙정부의 권력없이 성장하여 번영해왔다. 전자커뮤니케이션은 국가간의 경계를 초월하는 방법을 제공하며 또한 인종이나 성 같은 문화적 장벽이 갖는 중요성을 최소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증가하는 의존도는 "가진자" 와 "못가진자" 로 정보세대의 사회를 갈라 놓는 경제적 장벽들을 강화시킨다는 뚜렷한 위험을 갖고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전자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여 이벤트를 계획하고, 중요한 뉴스를 널리 알리며, 정보를 교환해왔다; 스펑크 프레스 같은 야심찬 기획 뿐만아니라 이메일 발송명단, 유스넷 뉴스그룹들 같이 아나키즘과 반권위주의에 공헌하는 것들이 있다. 명백히 정부는 인터넷의 자유를 두려워하고, 인터넷에서의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한다(음란과 테러를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아나키스트들은 전자커뮤니케이션에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중재된",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는 관계들을 거부하며, 기술이 환경에 끼치는 해악 때문이다.


결론


요약해보면, 아나키즘은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정의되는 철학으로서, 스스로를 노골적으로 "아나키스트"라고 부르지 않는 수많은 개인들과 그룹들에 의해 어떤 형식으로든 적용되어 왔다. 아나키즘은 삶의 모든 국면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자유, 자기 결정, 개인적 책임, 직접 행동, 그리고 자발적 행동의 창조, 상호보완성 등을 강조하면서, 아나키즘은 통찰력과 신축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조하기 위한 실행가능한 방법을 제공하며, 그것은 세계를 개혁할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사회변화를 위해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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