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아이들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뿔(웅진)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래 전 사놓고 이제야 읽는 중. 삼분의 일을 넘어섰는데 ‘스밀라‘와 비슷한 구조다. 아이들은 지키는 일.어둡고 아리송하고 쫄깃쫄깃하다. 뜨끔뜨끔해지는촌철살인들로 가득하다. 교사. 부모. 필독을 권하고 싶은데 난독에 걸릴 듯. 난 궁금증을 참고 천천히 읽는다. 근데 품절이라니ㅡㅡ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1213-4 심봤다!!! 쌍둥이자리 유성우 

2020년 12월 13일 저녁 시간. 긴급히 타진된 밴드 톡. ˝오늘 유성우가 내린대요.˝ 뭐? 진짜? 첫 눈 내린 날, 유성우도 내린다고? 쌍둥이자리 유성우는 매년 12월에 볼 수 있다고 한다. 밤 10시.옷을 단단히 껴입고 아이들과 함께 별들이 잘 보일 만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인공의 빛이 들이치지 않는 어두운 공간으로.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 화성시.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진행하는 유튜브 실시간 중계를 켜놓고 아이들과 함께 목이 빠져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눈이 내린 뒤 구름 걷힌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서울에서 화성으로 이주 와 가장 많은 별들을 본다. 아이들과 함께. 오리온 자리 쪽으로 유성이 많이 떨어진다 하여 그쪽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때 쉬잉~유성이 떨어졌다. 우와~~~~ 나만 보았다. 아쉬워하는 아이들. 10분쯤 기다렸을까?
아주 밝은 유성이 대각선으로 길게 땅으로 떨어진다. ˝우와 우와 우와 우와!!!˝ 이번에는 셋 모두 보았다. 아들이 말한다. ˝엄마, 심장이 터질 것 같아.˝ ㅋㅋㅋ 심장이 터질 것을 우려했던가. 이후론 하늘이 이만큼 밝은 유성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딸이 두 개, 아들이 한 개를 더 본 후 너무너무 추워(드디어 영하로 떨어져 발이 동태가 될 지경인지라) 열한 시쯤 집으로 퇴각했다.

나는 아쉬웠다. 하여 식구들 모두 잠든 2020년 12월 14일. 밤 12시 10분. 옷을 아까보다 더 껴입고 밖으로 나섰다. 오리온 자리가 이동했다. 방송에선 북두칠성이 보인다고 하는데, 내가 있는 곳에선 북두칠성을 찾을 수가 없다. 다른 별자리들은 몰라서 봐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하여 나는 오로지 오리온 자리에만 의지한 채 하늘이 가장 넓게 보이면서 가장 어두울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10여 분의 탐색 끝에 드디어 찾았다. 아파트 뒷산, 가로등이 많이 비치지 않는 생태교. 이 자리에서 40분을 서 있는 동안 네 개의 유성을 보았다. 일곱 개를
채우고 싶었으나 춥기도 춥고, 무엇보다 내내 목을 쳐들고 있느라 목을 가누기 힘들어 발길을 돌렸다. (나중에 알았는데, 유성우를 볼 땐 누워서 보란다)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아쉬움이 발목을 잡아 그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는 거야 하는 심정으로 우리 동 건물 뒤쪽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유성이 휙 지나갔다. 일곱 개!!! 심봤다!!!

유성 일곱 개를 보았다고 내 인생에 무슨 개벽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유성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나는 참 즐거웠다. 2020년 11월 2일부터 읽기 시작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덕분에(오늘로 43일째) 나는 이제 유성우의 실체를 안다.

˝유성우는 하늘이 선사하는 자연의 불꽃놀이인 셈이다 . . . 유성 하나하나는 겨자씨보다 작은 미세한 고체 알갱이다. 흐르는 별이 아니라 나풀나풀 떨어지는 먼지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이렇게 작은 고체 알갱이는 지구 대기에 들어오자마자 대기와의 마찰로 인하여 고온으로 가열돼 빛을 방출하지만, 지상에서 약 100킬로미터 상공에 이르기 전에 완전히 소멸되고 만다.(172)

˝유성들은 혜성이 남기고 간 부스러기들이다. 태양 근처를 통과하는 일이 반복되면 혜성은 태양의 중력과 열의 영향으로 여러 덩어리로 쪼개지고 중발하여 점차 분해된다. 이렇게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들이 그 혜성의 원래 궤도에 흩어진다. 따라서 혜성과 지구의 궤도가 서로 만나게 되는 지점에 유성의 무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무리와 지구가 만날 때 유성우 현상이일어난다.˝ (172)

어제와 오늘, 육안으로 간간히 유성을 보면서 ˝부스러기˝ ˝먼지˝ 주제에 왜 저렇게 예쁜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스모스>>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추위를 무릅쓰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노력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얻어 걸리면 보는 거지, 애써 찾아 보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나의 예상(어려울 것이다, 재미없을 것이다)과 다르게 의외로 술술 읽히고 뜻밖에도 엄청엄청 재미있다. 과학은 역사와 맥을 같이하며, 상상과 논리가 결합된 추론 동화처럼 읽힐 수 있다는 걸 반백 년 넘어 알게 되었다. 이제라도 알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삶이 하마터면 무재미로 빠질 뻔했는데, 내 인생에 과학이 들어와 또 하나의 재미가 곁들여지게 되었다.

나를 이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은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이었다. 그녀는 과학이 시라고 말했다. 자신이 이 말을 하기 전 과학을 시로 아름답게 풀어낸 앞서 나간 자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요하네스 케플러이다.

​​˝​아들에게 천문학의 매력을 일깨워준 이가 바로 어머니 카타리나 케플러였기 때문이다. 여섯 살의 케플러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집 근처 언덕에 올라 1577년의 대혜성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광경을 입을 딱 벌리고 지켜보았다.˝(진리의 발견 30)

2020년 12월 13일. 일요일밤 10시. 나는 중딩 딸, 초딩 아들과 혜성 대신 유성을 보았다. 우리 아이들은 수학에 젬병들이라 천문학자가 될 싹수들은 없다. 그러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 느낌을, 엄마의 호들갑 떠는 비명 소리를 몸에 간직하고는 살 것 같다. 2020년 11월 19일 밤. 딸과 잠자리에 누워 그 날 읽은 <<코스모스>>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딸아, 네 영어 이름 이니셜이 뜻하는 바는 농협(NH) 외에 또하나가 있다. 뭔 줄 아니? 바로 암모니아야. 암모니아 분자식이 NH3래.˝ 딸은 대경실색 ㅋㅋㅋ . ˝딸아, 매년 6월 30일을 전후로 황소자리 베타별 방향에서 유성우를 볼 수 있댄다. 엄마 별자리가 황소자리다. 엄마 죽거든 6월 30일에 떨어지는 유성우를 보거라.˝ 딸은 시큰둥하게 ˝응˝하고 대답함. ㅋㅎㅋㅎ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0-12-15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똥별 봐서 좋으셨겠네요 저는 한번도 못 봤어요 언젠가 볼 수 있다는 말 듣고 밖에 나가봤지만, 눈 오는 날이어서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별도 잘 안 보여요 예전에는 겨울 새벽에 밖에 나가면 별이 보이기도 했는데, 인공불빛이 아주 많아져서 그런 거겠지요 별이라도 보이면 좋을 텐데, 달은 잘 보여요 집 앞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달은 언제나 잘 보이겠지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0-12-18 21:52   좋아요 0 | URL
저도 반백년만에 첨 봤어요^^ 희선님은 저보다 일찍 보실 수 있어요. 매년 6월, 12월에 유성우 떨어진대요. 앞으론 다른 곳에서 같이 봐요~~~~^^

라로 2020-12-18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하세요, 7개나 보셨다니!!! 제 딸아이의 킨더가든때 장래희망이 우주인의사가 되는 거였는데 지금 열심히 꿈을 향해 가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가 이렇게 우주에 관심 많은 사람들 만나면 더 반가와요!!^^ 그런데 올려주신 사진은 잘 안 보여요!!ㅠㅠ 그리고 책 님이 <코스모스> 읽으라고 자꾸 부추기시네,,,ㅎㅎㅎㅎㅎㅎ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0-12-18 21:55   좋아요 0 | URL
어머 따님이 우주인의사를 향해 가고 있다고요. 넘넘 멋지네요. 이런 꿈을 어릴 적부터 꾸었다니, 떡잎이 달랐나 봅니다. #코스모스 는, 짱짱 추천. 라로님도 분명 걍 반할 거예요^^
 

20201213  매일 시읽기 76일

눈사람
- 함민복

굴러굴러 
몸 만들었구나

차고 둥근 
물알 두 개

평편하게 
한 세상 살지 않고 

끝 찾아
다시 펼쳐 놓고 싶은

눈사람 
사람눈

2020년 겨울 첫눈이 왔다. 밤사이 뽀지게 내렸다. 펑펑까진 아니고 펄펄 내리다 샤락샤락 떨어지다 슬금슬금 물러서다 스리슬쩍 그치었다. 구름을 비집고 해가 얼굴을 내밀었고 아침 나절을 하얗게 물들인 눈들은 녹아내려 말라버리거나 흙속으로 스며들었다.

눈이 나리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시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지만, 오늘은 백석 대신 어제 펼친 함민복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 에서 ‘눈사람‘을 찾아 읽었다. 며칠 전부터 아들이 ˝엄마, 겨울인데 눈이 안 와 눈이 안 와!˝ 노래를 부르며 하늘 한 번 보고 한숨
한 번 쉬고, 하늘 한 번 보고 한숨 한 번 쉬었더랬다. 하늘님이 아들의(이런 아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원망 섞인 한숨 소릴 들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하얀 눈꽃 피운 산 풍경을 보고는 ˝우와 예쁘다 우와 예쁘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런 아이 또한 어디 한둘이었을까.

함민복 시인의 ‘눈사람‘은 어제 올린 ‘뻘‘과 비슷하게 보드라움의 힘을 이야기한다. ‘뻘‘이 말랑말랑하다면 ‘눈사람‘은 둥글둥글하다. ˝말랑말랑한 흙이˝ 발을 잡아주고 길을 잡아주었다면, 둥글둥글한 눈사람은 갔던 길 돌아보게 왔던 길로 이끈다. 바르고 넓은 ˝평편˝한 세상에 갇혀 살지 말고 삐뚤빼뚤하고 울퉁불퉁한 세상도 겪으며 살되, 너무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해지란다. 아이고, 이리 어려운 주문을 하시다니요. 시인이 ˝차고 둥근 / 물알 두 개˝를 포개고서 끝을 찾아 다시 펼쳐 놓은 것은 ˝눈사람 / 사람눈˝이었다. 이런 시적 언어 유희 참 좋다.

2020년 12월 13일. 눈이 나려 아들과 짧은 눈싸움울 끝내고 자그마한 눈사람을 만들어 사람눈에 담았다. 그 시간은 참으로 짧았다. 2012년 12월 5일. 서울에 첫눈으로 함박눈이 내려 딸과 아들은 시린 손들을 호호 불며 자기들 키 만한 눈사람을 만들고 눈 쌓인 골목길을
뛰어다녔다. 2012년 12월 7일. 옥상에서 녹지 않고 쌓여 있던 눈을 양동이에 퍼 담아 아이들과 함께 아빠, 엄마, 딸, 아들, 꼬마 눈사람을 만들어 냉동실에 보관했다. 그 시간들은 제법 길었다. 중딩과 초딩 고학년이 된 아이들은 이제 눈에 파묻히는 대신 핸드폰과 탭에 파묻히길 더 좋아한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옆지기도 싫다, 아이들도 싫다 하여 나만 홀로 시댁 근처 부천 원미산에 올랐다. 눈이 그친 산에서는 겨울 시린 바람이 매섭게 불어댔다. 휘이잉휘이잉. 쉐에엑쉐에엑. 높지 않아도 골짜기 깊은 산에 들면 언제나 파도 소리가 뒤따른다. 동무처럼. 적군처럼. 오늘의 바람은 동무로구나. 눈이 나린 뒤 산길은 말랑말랑함을 넘어 질척질척하다. 그럼 어떤가. 고요함 속의 고독한 즐거움을 누렸으니, 나, 조금, 둥굴둥글해졌으려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20-12-13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사람, 열심히 웃다가 결국 물로 녹아버릴 것 같아서 어째 짠하네요ㅠ

행복한책읽기 2020-12-14 15:37   좋아요 0 | URL
ㅋ 눈사람 사진은 8년 전이에요. 진즉에 녹아 없어졌답니다.^^

희선 2020-12-14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온 곳도 있고 비가 온 곳도 있군요 제가 사는 곳은 비가 왔을 거예요 눈은 안 보이고 그저 젖은 바닥만 보였으니... 어제 새벽부터 바람이 좀 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도 붑니다

저도 눈이 왔으면 해요 그냥...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0-12-14 15:39   좋아요 1 | URL
아이고. 눈을 바라는 희선님 맘이 여기까지 전해져요. 눈을 날마다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기다리게 돼요. 희선님 사는 곳에도 눈이 펄펄 나리기를요.
 

20201212  매일 시읽기 75일


- 함민복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집에 있는 함민복 시인의 《말랑말랑한 힘》을 꺼내 들었다. 이런 이유에서. 

갯벌에 가지 않아도 나는 날마다 말랑말랑한 것을 만지고 산다. 신체 연령 열한 살, 정신 연령 여덟 살쯤에 이른 아들은 잠들기 전 엄마와 같이 누워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별일이 없는 한, 나는 그 시간을 때론 기꺼이, 때론 마지못해, 할애한다.

아들과 한 침대에 누워 말랑말랑한 살들을 만진다. 뽀독뽀독, 반들반들, 맨질맨질, 까슬까슬. 부위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겨드랑이와 가슴한복판 사이 젖가슴이다. 여기가 가장 말랑말랑하다. 아들은 깔깔대며, 그만 그만을 외친다. 어젯밤 아들이 도란도란 무슨 얘기 끝에 물었다.

엄마, 엄마는 뭘 잘 먹어요?
밥 잘 먹지. 
밥잘 먹지가 머에요?
밥을 잘 먹는다고.
아하!
너는? 너는 뭘 잘 먹어?
나는 엄마의 마음이요.
뭐? 뭘 먹는다고?
엄마의 마음이라구요. 
(우와~~~순간 감탄)
엄마의 마음은 무슨 맛인데?
꽃향기, 스테이크, 베이컨. 

꽃향기도 먹을 거던가??
아무튼, 너가 좋아하는 것들이네. 
그걸 요리할 때 나던 냄새, 
그 냄새가 엄마 맛이구나.
그 맛으로 엄마를 기억하겠구나
엄마 마음 먹고 자란다는 아이야
네 말을 들으니 내 마음
삐쭉삐죽 모난 곳들
무엇으로라도 툭툭툭툭 다듬어
조금이라도 둥글둥글 만들어야겠구나
네 말랑말랑한 마음이 
피 나지 않도록

말랑말랑한 힘을 가져야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0-12-1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건 뭐 너무 말랑말랑 하잖아요!!!!!😍

행복한책읽기 2020-12-14 11:13   좋아요 0 | URL
말랑말랑한가요. ㅋ 그 힘이 태평양도 넘었네요^^
 
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1211 매일 시읽기 74일 

어리석다고? 아니, 그렇지 않아 
- 메리 올리버 

가끔 나는 나무 한 그루의 잎들을 세느
라 종일을 보내지. 그러기 위해선 가지마다 
기어올라 공책에 숫자를 적어야 해. 그러니 
내 친구들 관점에서는 이런 말을 할 만도 
해. 어리석기도 하지! 또 구름에 머리를 처
박고 있네 

하지만 그렇지 않아. 물론 언젠가는 포기를 
하게 되지만 그때쯤이면 경이감에 반쯤은 
미쳐버리지ㅡ무수한 잎들, 고요한 나뭇가지
들, 나의 가망 없는 노력, 그 달콤하고 중요
한 곳에서 나, 세상-찬양 충만한 큰 웃음 
터뜨리지. 


안도현 시인과 서정주 시인의 시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다시 메리 올리버의 시집을 펼쳤다. 분명 읽었는데, 시들은 다시 읽어도 거의 늘 처음 대하는 듯 새롭다. 다행히 이번 시는 그렇지 않다.

이 시는 메리 언니가 사랑해 마지 않는 자연의 경이를 보란 듯이 당당하게 예찬하는 시다. 장자의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을 떠올리게 하는 시다.

산에 들어 높은 바위에 앉아 울창한 숲과 드넓은 하늘과 멀디먼 지평선을 바라볼 때, 그 순간 시원한 바람 한 점이 내 몸을 감싸고 지나갈 때, 저런 달콤한 기분에 젖어들게 된다. 그런 순간이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하고, 지금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아직은 안 된다. 아직은 좀 더 찬양하다 죽으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