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7 #시라는별 42

산에서 
- 박재삼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젊어 한창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거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중년 들어 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이거든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로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오느니

사랑을 기쁘다고만 할 것이냐,
아니면 아프다고만 할 것이냐.


2021년 새해 해돋이 산행 이후 5개월만에 수원시와 용인시에 걸쳐 있는 광교산으로 가족 산행에 나섰다.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남매의 투덜거림과 징징거림이 먼먼 메아리로만 들릴 뿐, 나의 발걸음은 마지막 한 시간을 제외하고 내내 가벼웠다.

산행시간 8시간 10분. 산행거리 약 10킬로미터. 총걸음수 27000보. 

박재삼 시인의 <산에서>는 이날의 산행에서 만난 시이다. 이 시인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의아했다. 박재삼 시인은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경남 삼천포에서 자랐고 고려대 국문과를 중퇴한 후 몇몇 언론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1997년 예순다섯의 삶을 마감했다.

광교산이 알려준 박재삼 시인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생각이다. 오늘은 너~~~~무 피곤하여 산이 겪는 사철 중 초여름 광교산 풍경으로 나의 감상을 갈무리하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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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7 07: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도 너무 좋고, 경치도 너무 예쁘네요~!! 호수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네요. 주말을 너무 알차게 보내신거 같아 부럽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6-07 09:44   좋아요 4 | URL
이뿌죠. 지금 저 경치 값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다리는 욱신욱신. 눈꺼풀은 무겁무겁.^^;; 새파랑님은 책과 함께 주말을 늘 알차게 보내시잖아요. 책을 밀어내야 저런 풍경과 만날 수 있어요. 둘 다 가질 수가 없는 ㅡㅡ 새파랑님 새로운 한주 멋진 밑줄들 리뷰들 기대할게요~~~^^

청아 2021-06-07 10: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집근처 공원 걷기하고도 시체처럼 잤는데 8시간이라니 강철이시군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하~♡♡

행복한책읽기 2021-06-08 01:44   좋아요 1 | URL
산에서는 강철이 되었다 집에 오면 지푸라기가 되고 맙니다. 꺼이~~~~

mini74 2021-06-07 13: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곡절 많은 사랑. 곡절 많은 사랑따윈 해보지도 않은 주제에 그 싯구 참 슬프고 묵직하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6-08 01:47   좋아요 1 | URL
해보지 않아도 느낌 아는 미니님은 이해의 달인!! ^^

scott 2021-06-07 16: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곡절 많은 사랑, 곡절 많은 세월 시인의 서글픈 인생,하늘을 품은 호수 빛깔 이네요 행복한 책읽기님은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포착하고 우리는 북플속에서 감상 ^ㅅ^

행복한책읽기 2021-06-08 01:52   좋아요 3 | URL
저 저수지는 이날 산행의 쾌거였어요. 하늘, 산, 숲을 모두 품은 호수라니. 니체의 말을 살짝 패러디하자면, 모든 멋진 풍경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펼쳐진다는 ^^

희선 2021-06-08 0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산에서 시를 만나셨군요 설은 시간이 여덟시간 십분이라니... 오래 걸었네요 갑자기 그렇게 걸으면 안 좋을 것 같지만, 멋진 풍경을 봐서 좋았겠습니다 산과 호수 멋집니다 사랑은...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6-08 01:55   좋아요 3 | URL
사랑은 . . . 희선님의 이어질 말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군요.^^ 시간이 좀 길긴 했지만 간만에 산행다운 산행을 해서 기분이 정말 좋았답니다. 풍경은 언제나 산행의 덤으로 따라오는 축복이랍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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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6. 


유발 하라리 '인류사 3부작' 읽기 완료. 읽은 순서 호모데우스 - 사피엔스 - 21세기. 좋았던 순서 사피엔스 - 호모데우스 - 21세기. 

3부작을 다 읽고 나면 엄청 뿌듯할 줄 예상했는데, 웬걸 의외로 덤덤해서 심심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하라리 글에 익숙해진 탓인지 망치질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하라리의 명료함은 이 책에도 이어진다.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내용은 방대하며, 서술방식은 논리적이다. 하라리는 역사가로서 자신의 소임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우리 종의 미래에 관한 토론에 참여할 힘을 얻"게 하는데 있다고 말했는데, 자신의 저작물을 통해 그 소임을 멋지게 해냈다고 여겨진다. 


이 책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라리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 선민 사상을 시원하게 비판한 점이었다. 가장 좋았던 장은 소년 하라리가 어떻게 어른 하라리로 성장했는지 개인사를 털어놓은 21장이었다. 끝까지 파고 들라. 그렇게 판 우물의 바닥에서 하라리가 발견한 것은 명상이었다. "오직 관찰하라." 

하찮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는 명료성이 힘이다. - P8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자가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고, 기아로 숨진 사람이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으며,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다. - P39

인간의 행복은 객관적 조건보다는 우리 자신의 기대에 더 크게 좌우된다. 하지만 기대는 조건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다른 사람의 조건도 포함된다. 상황이 좋아지면 기대도 높아지며, 그 결과 여건이 극적으로 좋아진 후에도 이전처럼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보편 기본 지원이 2050년 평균인의 객관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꽤 높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주관적으로 더 만족하는 것과 사회적 불만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 P78

국민투표와 선거는 언제나 인간의 느낌에 관한 것이지 이성적 판단에 관한 것이 아니다. - P83

근대 후반에 이르러 평등은 거의 모든 인간 사회에서 이상이 되었다. 여기에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부상이 일부 작용했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대중이 전례없이 중요해진 요인도 있었다. 산업 경제는 평민 노동자 대중에게 의존했고, 산업화된 군대 역시 평민 병사 대중에게 의존했다. 민주주의와 독재 정부 모두가 대중의 건강과 교육, 복지에 대거 투자했다. 생산 라인을 가동할 건강한 수백만 노동자들과 참호에서 싸울 충성스런 수백만 병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P124

사람들이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구축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일 부족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 P173

이제는 신경학이 신령학을, 우울증 치료제가 푸닥거리를 대신한다. - P199

테러리즘이란 말 그대로 물리적 피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퍼뜨리는 방법으로 정치 상황을 바꾸려 드는 군사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적에게 물리적으로는 큰 피해를 입힐 수 없는 아주 약한 일당이 주로 사용한다. - P239

아예 신을 믿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사회에 도덕은 존재한다. . . . . . / 도덕의 의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어떤 신화나 이야기를 믿을 필요는 없다.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능력을 기르기만 하면 된다. 어떤 행동이 어떻게 해서 자신이나 남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낳는지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 P301

20세기 초 시온주의자들은 가장 좋아하는 슬로건으로 ‘땅 없는 사람(유대인)의 사람(팔레스타인인) 없는 땅으로‘의 귀환을 내세웠다.

ㅡ 놀랍고 무서운 슬로건이다. - P349

오늘날 과학 기술 혁명의 결과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진정한 개인과 진짜 현실이 알고리즘과 티브이 카메라에 의해 조종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자체가 신화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자 안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이미 자신들의 상자ㅡ자신의 뇌ㅡ안에 갇혀 있으며, 그 상자는 다시 더 큰 상자ㅡ무수히 많은 기능을 갖춘 인간 사회ㅡ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 P373

좋은 이야기는 무한정 확장될 필요는 없지만 지금 나의 지평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이야기는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엇 안에 나를 자리매김함으로써 내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내 삶에 의미를 준다. - P415

만약 ‘자유 의지‘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면 물론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다. 하지만 ‘자유 의지‘가 욕망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를 뜻한다면 인간에겐 아무런 자유 의지가 없다. - P453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이 진실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 그러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강연도 하고 수도원을 짓는 데 돈도 기부하는 등의 일을 해나간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 없음‘은 너무나 쉽게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 P463

실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고통의 가장 깊은 원천은 나 자신의 정신 패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뭔가를 바라는데 그것이 나타나지 않을 때, 내 정신은 고통을 일으키는 것으로 반응한다. 고통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조건이 아니다. 나 자신의 정신이 일으키는 정신적 반응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더한 고통의 발생을 그치는 첫걸음이다.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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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6 08: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읽기님의 하라리 3부작 완독 축하드려요. 저도 이런 분야의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여력부족으로, 책읽기님의 리뷰를 보고 지식을 쌓고있어요. 감사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6-07 09:33   좋아요 2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엔 거의 소설만 읽었어요. 나이 들수록 무지함이 넘 드러나서요.^^;; 이런 책이 제 생각과 다르게 재미가 있어요^^

scott 2021-06-06 12: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합니다!!

사피엔스가 하리리 쵝오작이라느것에 동감!!
[20세기 초 시온주의자들은 가장 좋아하는 슬로건으로 ‘땅 없는 사람(유대인)의 사람(팔레스타인인) 없는 땅으로‘의 귀환을 내세웠다.]
오늘의 밑줄 쫘악~✍️

행복한책읽기 2021-06-07 09:35   좋아요 2 | URL
감사감사. 저 밑줄 읽으면서 얼마나 섬뜩하던지요.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없는 존재들이란 거잖아요. 예수님은 그리 가르치지 않았을 텐데 ㅠ

mini74 2021-06-06 13: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피엔스는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그 뒤 책은 아직도 읽다만체 ㅠㅠ 휴가때 다시 도전할까 하는데 그런 책이 너무 많아요 ㅎㅎ 행복한 책읽기님 3부작 끝 !! 너무너무 축하드립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1-06-07 09:40   좋아요 3 | URL
어머. 미니님도 하라리를 끼고 계시는군요. ㅋ 저는 읽은 걸 후회하진 않지만 뒤의 두 권, 특히 21세기는 읽지 않아도 아쉽지 않을 책이었어요.^^;;; 더 깊이 들어가려면 총균쇠를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 . ㅋ 미니님 축하해주셔 감사해요. ^^

희선 2021-06-08 0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인류 삼부작이라고 하는 데서 두권만 봤네요 세번째인 이 책은 못 봤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다길래 봤는데, 두번째 보고는 다시 안 보다니... 여기에는 자기 이야기도 있군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6-08 01:57   좋아요 1 | URL
네. 하라리도 고민 많은 사춘기 소년이었더라구요. 그때의 고민을 잊지 않고 인류 삼부작까지 썼더군요. 매력적인 작가에요.^^
 
학교의 슬픔
다니엘 페낙 지음, 윤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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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밌다. 매 에피소드마다 키득키득, 푸하하 웃게 만든다. 학교의 슬픔을 유쾌함으로 승화시키는 다니엘 페낙의 유머와 통찰에 박수를 치다 결국 구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내겐 소장용. 교사는 필독서. 밑줄 넘침. 아직 다 못 읽었으나 강추하고파 100자평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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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4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매 버튼을 누르셨다니 완전 재미있나 보네요. 궁금합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1-06-05 00:24   좋아요 2 | URL
전 이쪽 주제에 관심이 많은데, 페낙이 글까지 잘 써서 말이죠. 새파랑님께는 <몸의 일기>를 추천합니다^^

붕붕툐툐 2021-06-04 2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필독서로 지정해 주셨으니 달리겠습니다!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6-05 00:25   좋아요 3 | URL
넵. 툐툐님은 꼬옥. 읽으면서 툐툐님도 이런 샘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있어요^^
 

20210603 #시라는별 41

연결 지점 
- 백은선 

노랑과 검정 
빨강과 검정 
초록과 검정 

텅 빈 무대에서 노래 불러 
노래 불러 

엄마 아빠 
안녕히 계세요

이제부터 누구에게 미안해야 할지 
사슴의 마음으로 고민하고 
사자의 발톱으로 점쳐보았지요 

세상에는 나쁜 것이 너무 많고 
자꾸다 다 보이는데 
왜요?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고자질하는 애를 혼내는 눈빛으로 
보세요? 

재스민은 몇 년 동안 꽃 피우지 않고 
유리호프스도 꽃 피우지 않아요 
블루베리도요 

엄마 
엄마 

부르면 아파져요 

토끼의 귀로 듣고 
조개의 발로 이동하며 

꽃이 없어도 죽지 않으면 좋아요 

반성은 짧고요 

질 나쁜 생각하며 살아요 
일희일비하며 

검정 다음 검정
검정 다음 검정 

다정하고 아름다운 
갈피갈피 정다운 
하얗게 빛나는 

섬을 섬이라고 말해도 누구도 눈총 주지 않는 

구름입니다 
총입니다 
초록 잉크입니다 
달력입니다 

한없이 풀리는 길고 긴 실타래입니다 

커다랗고 커다란 숨을 쉬었지요 
그림자의 방향이 바뀔 때까지 

선아 
사랑해 

꽃도 열매도 없이 오래 살자 

누구의 꽃도 되지 않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백은선 시인과의 첫 만남이 나쁘지 않다. ‘좋다‘가 아닌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시들이 쉽게 읽히지는 않으나, 곱씹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움받는 기분>>에 대해 지난번에 내가 쓴 짧은 평을 약간 수정하고 싶어졌다. ˝시로 쓴 고발서˝라기보다 ˝시로 쓴 고발극˝에 가깝다. 시인에겐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없이 풀리는 길고 긴 실타래처럼˝ 많다.

해설을 쓴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독자들이 이 시집에 수록된 시와 만나는 시간을 ˝‘백은선‘이라는 이름의 ‘포에트리 슬램‘을 경험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포레트리 슬램 poetry slam‘은 시인이 각종 장치를 거둬낸 무대 위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몸만으로 시를 낭독해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퍼포먼스를 일컫는다고 한다. 수록된 시들을 몇 편밖에 읽지 않았는데도, 시인이 ˝텅 빈 무대˝에서 읽어준다는, 아니
고백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부터 누구에게 미안해야 할지 / 사슴의 마음으로 고민하고 / 사자의 발톱으로 점쳐보았지요˝ 

<연결 지점>은 세상 만물이 연결돼 있어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영향들 중 아주 크게 자리하는 감정 중 하나가 ‘미안함‘이 아닐까. 그런데 대체 누구에게 왜 미안해 해야 하는지 시인은 묻는다. ˝사슴의 마음˝ 같은 감성과
˝사자의 발톱˝ 같은 지성으로 미안한 것들을 떠올려 보지만 나쁜 것이 ˝자꾸만 다 보이는˝ 세상에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

꽃을 피우지 않아도, 열매를 맺지 못해도, ˝섬을 섬이라고 말해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시인은 살고 싶다. 이런저런 눈치 봐가며 숨 죽이듯 살지 않고, ˝커다랗고 커다란 숨을˝ 쉬며 오래 오래 살고 싶다. 줄기로만 호흡할 지언정 ˝누구의 꽃도 되지˝ 않고 오직 ‘나‘로 말이다.

지지 마 
꼭 이겨줘 

마음껏 생각할 수 있게 
생각한 대로 말하고 움직일 수 있게 

쓸모를 고민하지 않고 살아 있어도 된다고 

죽을 때까지 살아 있을 거라고 (<우리가 거의 죽은 날> 중) 

시는 백은선 시인이 생각한 것을 ˝마음껏˝ 말하게 해주는 무대다. 이 무대에서는 ˝쓸모를 고민하지 않고˝ 말해도 된다. 그러나 어느 무대든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기에, ‘고민하지 않고 마음껏‘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다만 백은선 시인은 그 직전까지 다다르고자 생각의 실타래를 길게 풀 뿐. 시인아, 당신 말대로 ˝죽을 때까지 살아˝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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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3 0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뭔가 어두운 느낌이 나지만, 이 시는 어렵네요.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나? 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6-03 16:37   좋아요 3 | URL
백은선님 글은 쉽지 않네요. 근데 매력 있어요. 이삼십대한테 추천하고픈 시집이에요^^

청아 2021-06-03 08: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자의 발톱같은 지성‘ 멋져요!!

행복한책읽기 2021-06-03 16:37   좋아요 3 | URL
요런 지성을 꿈꿉니다^^

scott 2021-06-03 16: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꽃이 없어도 죽지 않으면 좋아요 !
맞습니다
우리 모두 인생의 꽃처럼 활짝 피는 순간이 없어도
건강하게만 산다면 !!!

마지막 산딸기 !
행복한 책읽기님은
눈으로 시를 쓰듯 사진을 찍으쉼 (๑★ .̫ ★๑)

행복한책읽기 2021-06-03 16:38   좋아요 3 | URL
히야~~~ 눈으로 시를 쓰듯 찍는다 말해주시다니. 인생 찬사를 플친들께 듣습니다요.^^
scott님, 건강또건강하자구요^^

희선 2021-06-05 0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를 봐도 시인이 알고 싶다거나 소설을 본다고 그 소설가가 알고 싶다는 생각한 적 없는데 백은선 시인은 알고 싶기도 하네요 ‘쓸모를 고민하지 않고 살아 있어도 된다’는 말이 좋군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6-07 09:30   좋아요 1 | URL
그죠. 저 말 넘 좋죠. 희선님은 왠지 백은선 시인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이 시집도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 2021 뉴베리상 대상 수상작 꿈꾸는돌 28
태 켈러 지음, 강나은 옮김 / 돌베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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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딸과 중년맘이 모두 흡족해한 책. 중고딩들에게 강추. <한국의 전래동화와 미국의 환경이 합쳐진 것이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별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의 이야기는 어떤 별일까?>(중딩 평) 자기 별을 찾아가게, 또는 돌아보게 해준다. 후반부가 뻐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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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31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넘 읽고 싶어용!!^^

행복한책읽기 2021-06-03 08:55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은 금방 읽혀요. 제 사춘기를 돌아보는 추억 여행도 시켜주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