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6 매일 시읽기 28일 

밤길 
- 나희덕 

ㅡ 엄마! 저기 보석이 있어요. 
ㅡ 빛난다고 다 보석은 아니란다. 
    저건 깨진 유리 조각일 뿐이야. 

폐차장 앞은 
별을 쏟아놓은 것처럼 환하다 
빛에 이끌려 무작정 달려가려는 아이와 
그 손을 잡아당기는 나의 손, 
손이 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손은 언제부터 알게 된 것일까, 
유리는 유리일 뿐이라는 쓸쓸함과 
한번 깨어지고 나면 더이상 유리일 수 없다는 
두려움을. 예리한 슬픔의 파편을. 
그 유리의 끝이 언젠가 
아이의 실핏줄을 찌르리라는 예감에 
나는 큰 손을 움츠리며 
내 손 안의 여린 손을 다잡아보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보석처럼 빛나던 
한 세계의 광휘,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누가 붙잡을 수 있으랴, 
상처를 모르는 손이 그리로 달려가는 것을. 
제 슬픔의 빛을 빌려 
어둠을 살아가는 저 유리 조각들을 
보석이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어떤 손이 어떤 손에게 속삭일 수 있으랴. ​


다시 나희덕. 나희덕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살면서 한 번쯤 스쳐 지나간 장면이나 생각이 시로 되살아나는 감흥이 일곤 한다. <밤길>이 그렇다.

밤길에 깨진 유리 조각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다. 세상물정 아는 시인은 그것이 반짝이는 별들이 아니라 아이 손의 ˝실핏줄을˝ 찌를 수 있는 위험물임을 대번에 감지한다. 아이는 모른다. 몰라서 ˝빛에 이끌려 무작정 달려˝갈 수 있다. ˝무작정˝이라는 시어에서 멈칫했다.

‘아는 것이 힘‘일 때도 있지만, ‘모르는 것이 힘‘일 때도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모르면 아이처럼 ˝무작정˝ 덤빌 수 있다. 그렇게 뛰어들었다 베고, 할퀴고, 채이고, 넘어지고, 구른다. 그런 경험치가 쌓여야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는 것은 ˝유리는 유리일 뿐이라는 쓸쓸함˝과 ˝한번 깨어지고 나면 더 이상 유리일 수 없다는 두려움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은 ˝무작정˝ 뭔가를 하기 어렵다. 그 사실이 참 허전하다.

아이들에게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하는 소리를 많이 하고 살았고, 지금도 하고 산다. 다만 좀 줄였다. 해도 잘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처를 모르는 손˝에게 상처 입을라 아무리 말로 한들 들리지 않는다. 보여주거나,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내 아이들은 지금 ˝보석처럼 빛나˝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제 슬픔의 빛을 빌려 어둠을 살아가는˝ ˝유리 조각˝ 같은 어른인 나 또한 ˝보석이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사진은 영월 한반도지형. 딸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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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5  매일 시읽기 27일

이런 이유
- 김선우 

그 걸인을 위해 몇 장의 지폐를 남긴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필 빵집 앞에서 
따뜻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나오던 그 순간
건물 주인에게 쫓겨나 3미터쯤 떨어진 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를 내 눈이 보았기 때문

어느 생엔가 하필 빵집 앞에서 쫓겨나며 
부푸는 얼음장에 박힌 피 한 방울처럼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이 적막했던 것만 같고ㅡ

이 돈을 그에게 전해주길 바랍니다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잘 기억하기 때문

그러니 이 돈은 그에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미래의 당신에게 
얼마 안 되는 이 돈을 잘 전해주시길 


다시 김선우. 이 시를 읽자마자 떠오른 문구는 성경 말씀이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 시는 생색 내는 선행이 아닌, 무심한 선행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도운 것이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하필 그 순간 내가 그곳에 있었고, 하필 그때 내 주머니에 돈이 있어서였다고.

선행은 돌고돈다. 내 어미는 신세 지면 도움 준 그 사람에게 꼭 갚으려했다. 신세 짐이 말 그대로 짐이 돼버리자 어미는 무신세무보답의 삶을 살아가려 했다. 어미 곁에는 사람이 머물지 못했고 어미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예전엔 나도 어미의 생각을 따라 신세 진만큼 보답하려 애썼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어느날 현타처럼 깨달아버렸다.

선행은 돌고돈다. 반백년을 사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도움을 받고 살았다. 도움의 형태도 다양했다. 밥이기도, 돈이기도, 집이기도, 말이기도, 품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모든 걸 ˝도움의 손길˝이라 통칭한다.

시인처럼 나 역시 그 시절들을 잘 기억했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손길을 건넨다. 그리고 가능한 내가 한 일을 잊는다. 내가 그럴 수 있는 건 ˝말할 수 없이 적막했던˝ 그 어느 때 정말 별거 아닌 듯이, 옛다, 하며 불쑥 손 내밀어 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선행은 돌고돈다. 선행은 무심히 행할 때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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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4 매일 시읽기 26일

오메 단풍 들것네(1935)
 -김영랑(1903-1950)

˝오-메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 들것네.˝


오늘도 김선우의 시를 올리려다 마음이 변했다. 경기도서 충북 단양까지 내려오는 동안 바라다 보인 차창 밖 풍경에 딱 떠오른 시구,
˝오~~~메 단풍 들겄네.˝

김영랑은 내게 교과서 시인이다. 교과서 시인은 교과목에 들어 시험을 치게 했다는 이유로 독자들의 외면을 당하곤 한다. 시를 가슴으로
느끼기보다 머리로 이해하기 급급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일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시에 칼질을 하는 건 죄악이라며 모르는 낱말 뜻을 제외하곤 일체의 칼질(그러니까 참고서 설명)을 거부한 국어샘이 있었다.
우리는 칼질 대신 시를 읽고 감상을 적었다. 나의 감상. 선생님의 감상. 수업 방식은 신선했고 수업 내용은 지루하지 않았다. 물론 이 방식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중간고사 후 학부모들 전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고 국어샘은 입시 교육을 적절히(최소로 적당히) 가미해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국어샘이 입시 교육에도 양보하지 않았던 한 가지는 시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읽은 후 감상을 쓰게 한 것이었다. 2년간의 수업 동안 우리는 시,
수필, 자서전, 소설까지 다 써봤다. 물론 뭘 썼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 문학 사랑의 몇 할은 이 선생님의 공이다.

단풍 나들이길에 떠오른 김영랑의 시. 나는 삶의 어느 때고 시가 이렇게 불쑥불쑥 떠오르기를 바란다. 시구들이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흘러다니기를 바란다. 출렁출렁, 찰랑찰랑, 술렁술렁, 살랑살랑. 강물처럼. 음악처럼.

교과서 시인을 교과 밖에서 만나면 더 내밀하면서 친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전남 강진에서 유복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김영랑은 열네 살
어린나이에 혼인 후 1년 반만에 부인과 사별했다고 한다. 그런 탓도 있었는지 누이와의 우애가 깊었다고.

‘오 메 단풍 들것네 ‘는 어느 가을날, 장독대 가까이 한 그루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잎을 보고 일어난 풍경이자 시인의 단상이다. 추석이
낼모래인 걸 보니 ˝골 붉은˝ 감잎은 붉은 기가 반쯤 든 잎 같다. 단풍이 옴팡 들기 전, 누이는 할일이 많고 걱정도 적잖다. 몸도 마음도
분주한 누이를 시인이 놀리듯, 달래듯, 나를 보라며 누이의 말을 고대로 외쳐준다. ˝오 메 단풍들것네˝

가을이다. 
잎꽃들이 피는 계절. 
다채로운 색의 계절. 
저 꽃들을 보라. 
오 메 단풍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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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 - 한빛비즈 교양툰 한빛비즈 교양툰 1
갈로아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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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공룡 좋아하는 초딩4학년 아들 보라 구매했는데 내가 보고 있다. 키득키득키키득. 완전 웃김. 난 과학에 관심1도 없던 1인인데, 갈로아 김도윤 과학천재에 과학전도사일세. 저자소개글부터 내 스탈. 아는 척 떠드는 만화 그리고 공부하며 수명을 깎겠대. 난 읽으며 지식이랑 수명 늘여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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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3 매일 시읽기 25일

김선우의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는 제목 아래 ˝2011년을 기억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2011년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인은 그 때의 풍경이 내면에 그려낸 풍경을 시로 담았다.

이 시를 읽고 나면 곁에 있든, 멀리 있든, 우리 모두가 ˝서로의 신˝이라는 근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사람 인 처럼 서로 기대고 살아야 한다. 모든 태어나는 것은 그 순간부터 죽어가야 하지만, 지금 살아 숨쉬며 살아간다는 그 사실이 ‘혁명적‘인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니 혁명은 무한할 밖에.

저기 먼 데, 거창한 무엇으로 존재할 것만 같은 ‘혁명‘을 시인은 우리가 내딛는 걸음 마다마다에 존재하는 ‘이웃‘으로 당겨왔다. 멋지다. 

이 시를 읽고 새삼 느낀 점. 글로 마주하는 여기 사람들도 ‘서로의 신‘이다.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2011년을 기억함 
- 김선우 

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 크레인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흔들리는 계절들의 성장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마른 옥수수댓 끝에 날개를 펴고 앉은 가벼운 한 주검을 
그대의 손길이 쓰다듬고 간 후에 알았다 
세상의 모든 돈을 끌어모으면 
여기 이 잠자리 한 마리 만들어낼 수 있나요?
돈으로 여기 이 방울토마토꽃 한 송이 피울 수 있나요?
오래 흔들린 풀들의 향기가 지평선을 끌어당기며 그윽해졌다 

햇빛의 목소리를 엮어 짠 그물을 하늘로 펼쳐 던지는 그대여 
밤이 더러워지는 것을 바라본 지 너무나 오래되었으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번져온 수많은 눈물방울이 
그대와 함께 크레인 끝에 앉아서 말라갔다 
내 목소리는 그대의 손금 끝에 멈추었다 
햇살의 천둥번개가 치는 그 오후의 음악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 되고자 합니다 
받아줄 바닥이 없는 참혹으로부터 튕겨져 떠오르며 
별들의 집이 여전히 거기에 있고 

온몸에 얼음이 박힌 채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빈 그릇에 담기는 어혈의 투명한 슬픔에 대해 
세상을 유지하는 노동하는 몸과 탐욕한 자본의 폭력에 대해 
마음의 오목하게 들어간 망명지에 대해 골몰하는 시간이다 
사랑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 길밖에 
인생이란 것의 품위를 지켜갈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압니다 
가냘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을 검은 하늘로 던져올릴 때 
하나씩의 그물코, 
기약 없는 사랑에 의지해 띄워졌던 종이배들이 
지상이라는 포구로 돌아온다 생생히 울리는 뱃고동 
그 순간에 나는 고대의 악기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태어난 모든 것은 실은 죽어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말한다 
살아가고 있다! 
이 눈부신 착란의 착란, 
이토록 혁명적인 낙관에 대하여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온갖 정교한 논리를 가졌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옛 파르티잔들의 도시가 무겁게 가라앉아가는 동안 
수만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올려졌다 
공중천막처럼 펼쳐진 하나의 그물이 
무한 하늘 한녘에서 하나의 그물코가 되는 그 순간 
별들이 움직였다 
창문이 조금 더 열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 중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의 가녀린 입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 
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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