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4 매일 시읽기 26일

오메 단풍 들것네(1935)
 -김영랑(1903-1950)

˝오-메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 들것네.˝


오늘도 김선우의 시를 올리려다 마음이 변했다. 경기도서 충북 단양까지 내려오는 동안 바라다 보인 차창 밖 풍경에 딱 떠오른 시구,
˝오~~~메 단풍 들겄네.˝

김영랑은 내게 교과서 시인이다. 교과서 시인은 교과목에 들어 시험을 치게 했다는 이유로 독자들의 외면을 당하곤 한다. 시를 가슴으로
느끼기보다 머리로 이해하기 급급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일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시에 칼질을 하는 건 죄악이라며 모르는 낱말 뜻을 제외하곤 일체의 칼질(그러니까 참고서 설명)을 거부한 국어샘이 있었다.
우리는 칼질 대신 시를 읽고 감상을 적었다. 나의 감상. 선생님의 감상. 수업 방식은 신선했고 수업 내용은 지루하지 않았다. 물론 이 방식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중간고사 후 학부모들 전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고 국어샘은 입시 교육을 적절히(최소로 적당히) 가미해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국어샘이 입시 교육에도 양보하지 않았던 한 가지는 시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읽은 후 감상을 쓰게 한 것이었다. 2년간의 수업 동안 우리는 시,
수필, 자서전, 소설까지 다 써봤다. 물론 뭘 썼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 문학 사랑의 몇 할은 이 선생님의 공이다.

단풍 나들이길에 떠오른 김영랑의 시. 나는 삶의 어느 때고 시가 이렇게 불쑥불쑥 떠오르기를 바란다. 시구들이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흘러다니기를 바란다. 출렁출렁, 찰랑찰랑, 술렁술렁, 살랑살랑. 강물처럼. 음악처럼.

교과서 시인을 교과 밖에서 만나면 더 내밀하면서 친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전남 강진에서 유복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김영랑은 열네 살
어린나이에 혼인 후 1년 반만에 부인과 사별했다고 한다. 그런 탓도 있었는지 누이와의 우애가 깊었다고.

‘오 메 단풍 들것네 ‘는 어느 가을날, 장독대 가까이 한 그루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잎을 보고 일어난 풍경이자 시인의 단상이다. 추석이
낼모래인 걸 보니 ˝골 붉은˝ 감잎은 붉은 기가 반쯤 든 잎 같다. 단풍이 옴팡 들기 전, 누이는 할일이 많고 걱정도 적잖다. 몸도 마음도
분주한 누이를 시인이 놀리듯, 달래듯, 나를 보라며 누이의 말을 고대로 외쳐준다. ˝오 메 단풍들것네˝

가을이다. 
잎꽃들이 피는 계절. 
다채로운 색의 계절. 
저 꽃들을 보라. 
오 메 단풍 들었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