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5  매일 시읽기 27일

이런 이유
- 김선우 

그 걸인을 위해 몇 장의 지폐를 남긴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필 빵집 앞에서 
따뜻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나오던 그 순간
건물 주인에게 쫓겨나 3미터쯤 떨어진 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를 내 눈이 보았기 때문

어느 생엔가 하필 빵집 앞에서 쫓겨나며 
부푸는 얼음장에 박힌 피 한 방울처럼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이 적막했던 것만 같고ㅡ

이 돈을 그에게 전해주길 바랍니다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잘 기억하기 때문

그러니 이 돈은 그에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미래의 당신에게 
얼마 안 되는 이 돈을 잘 전해주시길 


다시 김선우. 이 시를 읽자마자 떠오른 문구는 성경 말씀이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 시는 생색 내는 선행이 아닌, 무심한 선행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도운 것이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하필 그 순간 내가 그곳에 있었고, 하필 그때 내 주머니에 돈이 있어서였다고.

선행은 돌고돈다. 내 어미는 신세 지면 도움 준 그 사람에게 꼭 갚으려했다. 신세 짐이 말 그대로 짐이 돼버리자 어미는 무신세무보답의 삶을 살아가려 했다. 어미 곁에는 사람이 머물지 못했고 어미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예전엔 나도 어미의 생각을 따라 신세 진만큼 보답하려 애썼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어느날 현타처럼 깨달아버렸다.

선행은 돌고돈다. 반백년을 사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도움을 받고 살았다. 도움의 형태도 다양했다. 밥이기도, 돈이기도, 집이기도, 말이기도, 품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모든 걸 ˝도움의 손길˝이라 통칭한다.

시인처럼 나 역시 그 시절들을 잘 기억했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손길을 건넨다. 그리고 가능한 내가 한 일을 잊는다. 내가 그럴 수 있는 건 ˝말할 수 없이 적막했던˝ 그 어느 때 정말 별거 아닌 듯이, 옛다, 하며 불쑥 손 내밀어 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선행은 돌고돈다. 선행은 무심히 행할 때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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