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4 #시라는별 75 

빛은 어둠의 속도 
- 황인찬 

아빠들은 
나를 학교로 보내고 
나는 혼자 그네를 탄다 

언제나 이런 장면들뿐이라 조금 지겹지만 
나는 해야 하는 일들을 한다 

개미들이 죽은 잠자리를 끌고 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지켜본다거나 

눈 뜨기 직전의 싹이 매달린 가지를 부러 꺾는다거나 
아이들로 가득한 운동한 한가운데서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한다거나. . . . . . 

나는 배운 대로 잘하는 편이다

나는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다 
나는 약속 시간을 지킨다 
나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루에 하나씩은 꼭 선행을 한다 

내 옆자리 남자애는 내게 귓속말한다 

어제 선생님이 자기 아빠를 불러 
자기가 자폐증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노라고 

나는 그 남자애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시키는 대로 잘하는 편이다 

저녁의 교정은 크고 넓어서 
누가 누굴 잡아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 

누군가 교실 문을 하나씩 열어보며 복도를 떠나간다 

그러나 납치는 없었다 
아이들은 집에 가지 못해 교실에 가득하고 

이 시의 화자로 
아직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다소 부적절하다 

아빠들은 빈손으로
멍청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황인찬 시인의 『사랑을 위한 되풀이』를 읽다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지난 1년 반 동안 꾸준히 시를 읽어왔기에 시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생기지 않았나 여겼건만, 아뿔싸, 착각이었다. 이 시집은 희선님의 서재 리뷰에서 읽고 마음에 들어 진작에 구매했더랬다. 다른 시집들에 밀려
새해 들어서야 펼쳤는데, 아뿔싸, 새해 선택지가 난공불락이란 느낌이다. 꺼이.

더디게, 어렵게, 곱씹어 읽었으나, 나는 이 시집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가 없고, 지금은 다만 당황스럽다고만 말해야겠다. 시를 이해하기 힘들어 황인찬 시인의 이력과 그가 쓴 다른 글과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황인찬 시인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젊은 시인이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스물셋의 나이에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2012년 시집『구관조 씻기기』​로 제3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2021년 <이미지 사진>으로 현대문학상(시 부문)을 수상하였다. 황인찬의 등장으로 시류가 바뀌었다는 평이 나올 만큼의 각광을 받았다. 나는 그런 느낌을 이 시집의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라는 시에서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다르다. 내가 일찍이 배웠고, 읽어온 시들과는 말이다. 당혹스럽지만, 이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왠지 파고들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황인찬 시인이 2016년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와 가진 인터뷰 중 다음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메시지를 던지는 건 의미가 없어요. 아주 일시적이고, 심지어는 내가 무슨 메시지를 갖고 있었는지 나도 잘 몰라요. 그런 건 다 착각이에요.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고른 말이, 오히려 그 말을 선택하는 순간 훼손돼요. 손상되고 아무것도 아닌 덜 떨어진 종류의 말로 메시지가 갈 수밖에 없어요. 말하자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오’ 하고 짚어서 전달하는 게 아니고, 그물을 더 넓게 펼쳐서 던지는 거예요. 그러는 편이 원래 내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 생각, 진정성을 덜 훼손시켜요.”

메시지는 배제하고 그물을 넓게 펼쳐 세상을 그저 보여주려는 시인. 그런데, 그래서, 난해하다. 적어도 내게는. 이 시집에는 59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 중 <빛은 어둠은 속도> 라는 시가 가장 눈에 띈 것은 마침 엘리자베스 문의『어둠의 속도』를 읽고 있던 탓이었고, 이 시를
읽었을 때 ‘루‘ 같은 자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황인찬 시인은『어둠의 속도』를 읽었던 것 같다. 왜 아빠라는 단수가 아니고 ‘아빠들‘이라는 복수일까. 그렇다면 ‘나‘는 혼자가 아닌 여럿 나인 걸까. 모호해서 어려운데, 시인이 덫을 만들어 놓아 나는 당분간 여기서 탈출하지 못할 듯하다.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이 이 시에 담겨 영영 이 시로부터 탈출하지 못한다면 좋겠다
그것을 미래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이 손에 만져지는 돌이라면 좋겠다
(<그것은 가벼운 절망이다 지루함의 하느님이다> 중) 

추신. 플친 여러분. 요즘 마음의 여력이 없어 글도 못 쓰고 플친들 서재 방문도 못했네요. 다들 잘 지내실 거라 생각해요. 저는 다만 바쁠 뿐, 건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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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1-24 00: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몰라도 그냥 읽고 모르겠네, 하는데 행복한책읽기 님은 깊이 읽으려고 하시는군요 인터뷰한 글도 찾아보시고... 그물을 더 넓게 펼쳐서 던진다니...

행복한책읽기 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scott 2022-01-24 00: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혼자 그네를 타는 아이 ㅜㅜ
시어속에 아이와 세상사람들 사이에 소통의 부재가 느껴집니다
두툼한 책 한권 보다 시 한편에서 느끼는 것들이 많네요
책읽기님 올려주시는 시들
소즁😍

페넬로페 2022-01-24 09:2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시는 정말 잘 모르지만 그냥 읽을 때의 그 느낌만으로 읽을 수 밖에 없을 듯 해요 ㅎㅎ
책읽기님!
건강하시기만 하면 좋습니다^^

새파랑 2022-01-24 10: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읽기님 건강하시다니 다행입니다~!! 바쁘시더라도 시 한편씩은 꼭 읽으세요~!!

얄라알라 2022-01-24 1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 가득 행복한책읽기님의 느낌, 오랫만에 올려주시는 시와 글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mini74 2022-01-24 17: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 이야기도 사진도 좋아요 ~ 건강하시면 됐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