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9 #시라는별 61 

천문의 즐거움 
- 김선우 

하늘을 오래 바라보다 알게 되었다 
별들이 죽으면서 남겨놓은 것들이 
어찌어찌 모여서 새로운 별들로 태어난다는 거 
숨결에 그림자가 있다는 거 
당신도 나도 그렇게 왔다는 거 
우리가 하나씩의 우주라는 거 

수백억광년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 
빛의 내음 
소리의 촉감 
온갖 원자들의 맛 

지구에서 살아가는 나는 가끔 
죽은 지 오래인 별들의 임종게를 발굴해 옮겨 쓴다 

그대들이 세상이라 믿는 세상이여, 나를 받아라. 내가 그쪽을 먼저 사양하기 전에. 

오늘 아침 닦아준 그림자에서 흘러나온 말
임종게가 늘 탄생게로 연결되는 건 아닐 테지만 
가끔 유난히 아름다운 탄생의 문양들이 있어 
우주가 지나치게 쓸쓸하진 않았다


16년만에 설악 산행에 나섰다. 이 여행길에 배낭에 끼워 간 책은 김선우의 『내 따스한 유령들』 느릿느릿 아껴가며 읽는 시집이다. 이 시를 읽고 모르는 낱말이 있어 찾아 보았다.

임종게(臨終偈)는 고승들이 입적할 때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이다. 
탄생게(誕生偈)는 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났을 때 외쳤다고 하는 게송을 일컫는다. 부처님의 탄생게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죽은 지 오래된 별들의 임종게를 발굴해 옮겨 쓰˝는 김선우 시인의 이 시는 내게 ‘천문의 즐거움‘ 뿐 아니라 ‘산행의 즐거움‘까지 물씬 느끼게 해주었다. 하늘이든 무엇이든 ˝오래 바라보다˝ 보면 전에 모르던 것들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된다. 16년 전 겨울 설악에서 나는 바람의 무늬가 새겨진 눈밭을 ˝오래 바라보다˝ 우주를 발견한 적이 있다. 소금밭 같기도 설탕밭 같기도 한 하이얀 눈밭은 우주와 이어져 그 속으로 나를 빨아들이곤 했다.

만 가지 경치가 올려다보이고 내려다보인다는 만경대(922.2m)에 앉아 ˝수백억광년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 / 빛의 내음 / 소리의 촉감 / 온갖 원자들의 맛˝을 오감으로 느꼈다. 하여 알게 된 것들

소나무 잎은 두 가닥, 잣나무 잎은 다섯 가닥 
마가목 열매 바닥에는 별이 박혀 있다 
둥글둥글한 돌 속에는 수정이 숨어 있다 
진달래는 아래서부터 거북이처럼 올라가고 
단풍은 위에서부터 내달리듯 내려간다
설악에는 ˝유난히 아름다운 탄생의 문양들이 있어˝ 
쓸쓸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 

사진 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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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29 07:0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설악산 사진보니 시원시원 하네요 ^^ 저 높은 절벽같은 곳에 올라가시다니 대단합니다. 무서움이 없는 책읽기님~!!

행복한책읽기 2021-09-30 12:52   좋아요 4 | URL
벌벌 떨면서 올라갔어요. 사진 남길라구요^^;; 설악은 기기묘묘 암벽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청아 2021-09-29 09: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온갖 원자들의 맛~♡ 암벽도 잘 타시나봐요! 사진 모두 훌륭한데 돌 사이에 핀 꽃 예술입니다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9-30 12:54   좋아요 3 | URL
암벽 못 타요. 겨우 올라갔어요. 무서워서 서 있지 못하고 앉아있었다는^^;; 돌 사이에 핀 구절초. 정말 기특하죠. 놀라운 생명력이에요^^

막시무스 2021-09-29 09:5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16년 전 겨울 설악에서 나는 바람의 무늬가 새겨진 눈밭을 ˝오래 바라보다˝ 우주를 발견한 적이 있다. 소금밭 같기도 설탕밭 같기도 한 하이얀 눈밭은 우주와 이어져 그 속으로 나를 빨아들이곤 했다.> 크~~~눈발 날리는 설악을 너무나 멋지게 그려낸 이 표현은 완전 시인 같으심요!ㅎ 등단하셔도 될 듯 합니다. 덕분에 설악산 구경 잘했네요! 즐건 하루되십시요!ㅎ

행복한책읽기 2021-09-30 12:55   좋아요 2 | URL
등단할까요?? 막시무스님이 물주 되어주심 생각해 보겠어라ㅋ 9월 마지막날도 즐겁게 보내시와요~~~^^

붕붕툐툐 2021-09-29 10: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히야~ 저같은 등린이에게 꿈의 산인 설악산! 바위 위의 자태가 넘나 멋지심다~~
시도 참 좋네용~ 당신도 나도 그렇게 왔다~ 우리가 하나씩의 우주다!

행복한책읽기 2021-09-30 12:58   좋아요 2 | URL
툐툐님 곧 설악을 밟을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등린이라는 표현 넘 좋네요. 툐툐 등린이 화이링~~~^^

scott 2021-09-29 12: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백억광년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
빛의 내음
소리의 촉감
온갖 원자들의 맛 ]

행복한 책읽기님은 플친님들에게 설악상의 풍경을 선물로 주셨네요
가을은 분명 인간이 하늘과 가장 가깝게 맞닿을 수 있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ㅅ^

행복한책읽기 2021-09-30 13:00   좋아요 2 | URL
네네. 정말 가을 하늘은 자연을 더욱 찬양하게 만들어요. 우주도 성큼 다가오는 느낌이구요.^^

얄라알라 2021-09-30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야, 행복한 책읽기님 덕분에 제대로 호강 하네요. 구절초 사진에 아찔한 고도의 청량감에


16년만의 산행, 제대로 하셨는걸요^^ 기분 끝내주셨겠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10-01 09:59   좋아요 1 | URL
네에 정말 좋았어요. 설악 입구부터 든 생각이 16년간 뭘하느라 이제야 왔지?? 물음표를 던졌는데. 아아들을 키웠더군요. 이제, 저도 독립을 할까 생각 중^^;;

2021-10-0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1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1-09-30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지인과 점심대화하다가 천문학자들이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이런 이야기했는데, 시를 읽어보니 다시 낮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이 단어를 몰라서, ˝계˝의 오기인가 할뻔했네요^^

좋은 밤 되세요. 행복한 책읽기님!

행복한책읽기 2021-10-01 10:02   좋아요 1 | URL
저도 저런 단어가 있는 줄 몰랐어요. ^^ 저 백신 2차 맞고 해롱대다 이제 좀 정신을 차리는 중이요. 몸살기가 제법 오래가네요.ㅡㅡ 북사랑님 10월의 가을을 같이 만끽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