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보기 힘든 향수34-mini_christian lacroix

크리스챤 라크르와
Christian-Lacroix
패션의 귀재, 새로움의 창조를 위한 연금술사
크리스챤 라크르와는 1951년 5월 남프랑스 아를르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세방스, 프로방스 출신인 가족들로 인해 바로크 시대의 유머와 전통적인 관습을 복합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었다.
1944년 폭탄 투하로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린 GALLO-ROMAN에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는 그림 그리기를 즐겨했으며, 그 자신만의 패션세계를 꿈꾸어 간다.
또한 그는 유년시절 바르셀로나와 베네치아에서 성장하게 된 후 몽펠리에 대학에 입학한다. 그는 라틴, 그리스어, 예술사, 문학, 영화 전반의 예술학위를 수료할 만큼,
다방면에 특출하고자 하는 그의 욕심을 맘껏 과시하기도 한다.
그는 1973년 파리 소르본느 대학과 에콜 드 루브르에서 17세기 의상학 논문을 준비하며 박물관 큐레이터의 꿈을 먼저 꾸게 된다. 그즈음 그의 삶의 방향을 전환시켜 줄 사람을 만나는데 그가 바로 후에 그의 동반자가 된 프랑소와즈로 크리스챤 라크르와가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첫번째 도움을 준 사람이다.
프랑소와즈는 라크르와의 패션과 무대의상을 칼 라거펠트, 피에르 베르제와
안젤로 탈라찌에게 소개할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로 인해 그 당시 패션계를 주도하고 있던
유명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크리스챤 라크르와의 이름이 불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라크르와의 천재적인 재능에 확신을 갖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중 패션하우스, 개인디자이너, 럭셔리 상품회사의 전문 고문관이며 홍보를 맡던 쟝자끄 피카의 눈에 띄어 라크르와는 78년 HERMES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화려한 고급스러움의 색채 감각을 발전 시키게 된다.
그 후 1980년에는 동경황실 디자이너로 잠시 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부터 라크르와는 그의 재능과 캐릭터를 탄탄하게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 다음 해, 쟝 파뚜 사에 들어가 미술감독으로의 책임을 맡으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그후 당시 침체 상태였던 오트쿠튀르에 도전한 크리스챤 라크르와.
이 도전을 계기로 컬러와 화려함을 존중하며 80년대의 특징으로 귀결되던
'풍족함'을 극대한으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끊임없이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며 라크르와만의 개성있는 캐릭터를 쌓아온
그의 노력은 1986년에 드디어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바로 세계 패션인이라면 누구라도 그 영예를 생각하게 되는 황금 골무상을
1986년과 1988년 두해에 걸쳐 수상하기에 이른다.
1988년 이후 그는 매 시즌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크리스챤 라크르와 브랜드로
두 종류의 최고급 오트쿠튀르 컬렉션과 프레타포르테를 동시에 발표하고 있다.
이와 같이 크리스챤 라크르와의 끊임없는 새로움에의 도전과 화려함에 대한 집착, 격정적이며 감각적인 표현은 바로 오늘날의 그를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성공하게 만든 열쇠이다. 크리스챤 라크르와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열정적이고 쾌락적인 삶을 추구하는 탐미주의자인 것이다.

그의 이름을 딴 향수, 크리스찬 라크르와는 그의 고향 카마르구지방에 있는 바다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만든 소라 모양의 용기에, 어린시절 '빨간색 물감 한통을 삼켜 버린 꿈'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질감의 빨간색 직물 패키지에 담았다.
향기
탑노트: 만다린, 히야신스
미들노트 : 쟈스민, 카사블랑카 백합
베이스노트 : 이끼와 샌달우드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플로랄 느낌의 향
몸에 걸치는 것에서 입는 사람의 내면의 매력을 끌어내는 디자이너 크리스찬 라크르와가 2000년 1월 그의 향수를 디자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