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원평가제로 인해 씨끌씨끌하다.

대학을 졸업한지 10 여년이 넘었건만, 요즘 제일 관심 가는 사안이다.

아마 조만간 학교에 가게 될 아들녀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교원평가제를 얘기하기에 앞서.. 전교조 얘기를 먼저 하는게 좋겠지..

고등학교 때 전교조라는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가 아마 88년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 전교조 소속 교사가 거의 없던 시기였고, 나름대로 학교 당국의 탄압이 심할 때여서, 전교조 가입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동경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지금도 당시에 구입한 참교육이란 마크가 들어간 열쇠고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당시에는 정말 학교폭력.... 지금은 학생들의 폭력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당시에는 교사들에 의한 학생폭력이 정말 많았다. 남학교 치고 시험 끝나고 나면 매질하는 소리가 온 교내를 뒤덮던 기억들이 아련히 떠오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참교육이라는 신선한 화두는 학생들에게 충분히 동경의 대상이었고... 전교조에 속한 교사들에게는 학생들 나름대로의 긍정적 평가가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다.

그런데, 최근의 경향은 어떠한가?

교원평가제 반대나 APEC 반대 등의 전교조 정책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특히, 교원평가제의 경우 대학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제도이며, 어느 조직에서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 문제가 아닌가 한다.

정말 우수운 것은 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교육 수준을 측정하고, 그에 따른 각종 처치를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교사들이 평가를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 아닐지...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왜 학생들은 평가를 하는가... 시험이라는 평가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을 생각해보지.. 예를 들어 수학만 잘하고 다른건 잘 못하는 학생에게는 기본적인 인성 교육 외에는 수학에 전념토록 해서 수학을 통해 자기 인생을 설계하도록 도와준다거나, 춤을 잘 추는 아이에겐, 기본 인성 교육 이외에는 춤과 관련된 과제나 활동을 통해 자기 꿈을 키우도록 한다거나..

하지만, 교사들이 앞장 서서 그렇게 교육 문화를 바꾼다는 얘기는 정말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들어봤다.

그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자신들의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 어떤 논리적 허점을 가지고 있는지.. 설마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어렵게 임용고시 통과해서 큰 돈 벌진 못해도 안정적인 삶을 누리려던 인생 계획에 큰 변화가 생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앞서는건 아닐까...

80년대 회사의 탄압에 저항해 노조를 결정하고 노동자의 인권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했던 노조가 집단 이기주의로 변질된 것처럼 전교조도 결국 그 전철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참교육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출발한 전교조의 요즘 모습에선, 그 어떤 희망의 불씨를 볼 수 없어 안타깝다.

발전적 대안의 제시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 반대를 위한 논리만을 주장하는 그들에게 앞으로의 내 자식의 교육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참담할 뿐....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것은 죽움 밖에 없다고 본다. 왜.. 더이상 변화의 여지가 없으니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변화의 주체가 되기 보다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전교조는 이제 참교육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교원이익연합회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초창기 전교조를 지지하고, 그 뜻에 동참했던 보통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아닐지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약대가 6년제가 되는 것이 의사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문제인가....

요즘 의사라는 사람들이 하는 짓들을 보면 참 가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요점은 밥그릇 싸움인데...

아니 약대 6년제 해서 약사들이 공부 많이 하는게.. 뭐가 어떻다고 지들이 나서서 난리속인지 모르겠다.

결국 이권이 걸린 조제권을 지키려는 건데... 참 어이가 없다.

약대가 6년제가 되든 2년제가 되든 필요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일진데... 왜 사촌이 땅 사면 배아프다는 식으로 난리블루스를 춰대는지..

나름대로 똑똑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라는 위치에 있으면 좀더 폭넓게 사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직 제약회사에서 보내주는 골프여행과 각종 서비스(?), 뒷돈들에 눈이 멀어 오만가지 생쑈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사협회 사람들의 뇌구조가 궁금하다.

아니 그렇게 전문성 따지고, 조제권이 중요하다면 의대 10년제 만들어서 우리는 10년 배웠으니 약대6년 보다 훌륭하다고 하면 될 것 아닌가..

진짜 있는 놈들이 더 한다구... 아주 정내미가 뚝 떨어진다.

이익단체의 임원이 되면 아주 권력의 맛에 취해 눈에 뵈는게 없는건가...

하긴 오직 개인적 성공이라는 목표에 매달려 전문의 자격증 취득에 온갖 역량을 쏟아 전문의가 되고, 주변에서 굽신굽신 하는 대접만 받다보니.. 눈에 뵈는게 없는가 보다.

하긴 요즘 세상에 누가 의사선생님이라고 불러주니나 하나.. 예전엔 그래도 병원에 가면 존경스러운 존재였고,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할꺼라 생각했지만, 최근 몇년의 일들을 보면 정말 장사꾼 중에서도 아주 악질 장사꾼들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오만가지 이유를 대면서 반대를 해봐야 결국엔 이권이 크게 걸린 조제권 사수라는건데...

그 조제권이라는 것이 결국엔 제약회사들한테 더 대접받고 싶다는 집단이기주의의 표현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하다.

배울만큼 배우고, 그래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면 그 위치에 맞는 행동을 보여줘야 하는데.. 쯧쯧쯧...

아예 장사꾼으로 나설꺼면 고객들한테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나을텐데...

그런 생각은 예초에 없고, 오직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인간들한테 내 생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 서슬프다.

열심히 돈 벌어서 의사들을 머슴처럼 부리면서 살던가 해야지.. 에잉~~~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11-06 0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5-11-06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대 6년제 하면 처방조제할 수 있게 되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병원 가야 할 병도 약사가 대충 보고 감기네요. 하고 감기약 지어주고.. ;;
사실 공부만 더 많이 하게 하고, 처방조제 권한을 확대해 주지 않는다면 의사가 들고 나설 이유가 없는데 말이에요. ^^;
약사가 지어주는 약 먹고 버티다가 고생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
게다가 약사들도 한약 취급 못하게 하니까 난리난리쳤잖아요. 저는 약사들을 더 못 믿겠어요. ;; (제 생각이에요 ^^)

마태우스 2005-11-0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아르미안님. 저 역시 님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약대 스스로 판단해서 교육과정을 바꾸려고 하는데 의사들이 간섭하는 것은 분명 월권이지요.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의약분업 이후 표면화된 의사들의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언젠가 예과 애들한테 이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시킨 적이 있어요. 예과 6년제 반대파의 주된 논리는 '약사를 못믿겠다' 그거 하나밖에 없더이다....

아르미안 2005-11-06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의견들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을..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의 이익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남의 밥그릇이 더 커보이는 것처럼 오류를 범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가.. 이러한 문제들은 과연 프랑스만의 문제일까...

사회 곳곳에는 불평등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요즘 유식한 말로 사회통합이니 복지니 하는 개념들도 이러한 불평등과 갈등을 무마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은 혹시 아닐까...

사회 곳곳에 내재한 갈등을 모두 정부의 힘으로 해결하길 바라는 것은 너무 안이한 태도일 듯...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대립, 여기다 종교 문제까지 가미되면 완전 화약고가 아닐까...

언제나 살기 좋은 세상이 오려나...

구겨진 ‘평등의 프랑스’

(::9일째 폭동, 차별·실업·소외…이민자들의 분노 폭발::)

계층 간 대립인가, 문명의 충돌인가. 예술과 패션의 본거지, 세 계 문화를 선도하는 예향(藝鄕) 파리와 그 인근지역에서 19세기 에나 벌어졌음직한 소요사태가 9일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이하 현지시간) 파리 외곽 빈민촌에 사는 무슬림 소년 2명이 경찰의 검문을 피하려다 사고사 당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빈민 이민자들의 소요사태가 프랑스 전역의 주요 도시로 확산 중이다. 곳곳에서 차량 방화 등 모방폭력이 기승을 부리고, 지금까지 차량 1200대 이상이 불타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소요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프랑스 땅에서 태어나서 자라 난 이민 2~3세대 청년들이다. 전 국민의 10%에 육박하는 이민자 들은 대부분 도시 주변부에서 빈곤층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폭력 상황은 명백히 계층 간 갈등 요소를 지닌다. 또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가 대개 아프리카나 아랍에서 온 이민자들이며 현 재까지 무슬림으로 살아왔다는 점에서, 이번 소요사태가 종교 간 혹은 문명 간 충돌의 요인을 갖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 다.

이민자 비율이 높은 이웃나라,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이 프랑스 소요 사태를 초미의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도 이 같은 사회학적 분석과 흐름을 함께 한다.

사태는 처음 검문을 피하던 소년들의 죽음과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초강경 범죄 대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것이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태로 발전하게 된 이면에는 프랑스 사회에서 수십여년 간 이어져온 뿌리 깊은 차별과 소외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들 이민자 혹은 그 후예들은 자신들이 형성한 슬럼가에서 프랑스 주류 사회의 높은 장벽에 막혀 신분 상승의 극단적인 제약을 안고 살아왔다는 게 현지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얘 기다. 빈민층의 젊은이들은 가난을 대물림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도 아랍계 또는 무슬림계라는 이유 하나로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차별을 쉼 없이 받아왔다고 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만들어진 국기(삼색기)가 상징하는 것은 자유 평등 박애이다. 인종 차별은 물론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 만연한 차별 행위는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치부로 거론돼 온 게 사실이다. 실제로 정부 공식 통계상 원적자 프랑스인의 실업률은 9%대이나 외국계 이주민 의 실업률은 14%대에 이르는 것으로 돼 있다. 대학 졸업자의 경우 격차는 더 심해 전체적인 실업률은 5%에 불과한데 북아프리카계 이민자 대졸자의 그것은 26%나 된다.

프랑스 소요 사태가 다소 진정되는 기미도 나오고 있긴 하다. 하지만 프랑스가 주류 사회와 이들 빈민 이민자 간의 뿌리 깊은 차별과 불신, 그리고 건널 수 없는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불씨는 계속 남을 것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사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번 폭동 사태가 혁명은

아니지만, 프랑스 정부의 ‘범죄 무관용’ 정책에 이민자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주택 및 교육 기회의 확대 정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소요는 언제든지 발생할지 모른다.

허민기자 minski@munhwa.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래는 오늘 나온 기사이다.

기사를 읽으면서 찹찹한 기분이었다. 6살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절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아이를 유치원에만 보내고 있는데.. 주변에서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 영어 학원도 안보내냐구.. 한글 선생도 안붙여주냐구.

유치원이 아이들이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노는 곳이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글도 아직 완전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6살난 아이에게 왠 영어..

하긴 명절에 아이에게 영어로 자기 소개하는 걸 시킨 다음.. 잘한다고 박수 치고 좋아하는 친척도 있지만... 아이는 아이답게 키워야 하는게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주변 상황들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비슷한 생활수준의 많은 사람들이 5살만 되어도 학습지 교사 부르고, 영어, 국어, 미술, 피아노 등등 각종 재능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고...

그래도 그럴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름의 소신이 있어 그렇게 키운다고 위안을 삼긴 하지만, 씁씁한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한 한 주변 사람들에게 하지 않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얘기만 나왔다하면 뭘 시켜야 한다느니...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느니 하는 말들이 많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아도 어자피 학교에 들어가면 거기서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살게 될 아이에게... 어린 시절은 즐겁게 놀았다는 기억 한자락 만들어주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지만, 강요에 의한 책 읽기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 지금의 이러한 자유방임(?)에 대한 결과는 앞으로 10년쯤 후면 어느 정도 나올 태구... 아이가 자라서 직업을 구하는 시기가 되면 더 확실해지지 않을까.. 20년 후에 어떤 육아가 더 좋은 방법인지 가려지겠지....

아무튼 아이답지 않은 아이를 만드는 무한경쟁은 아이를 애늙은이로 만들 소지가 너무 크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놀게 하면서 키웠으면... 쩝.. 나라두 지금의 소신을 지켜나가고 싶다.

"엄마, 한숨 쉬지마… 인생이 원래 그런거잖아"



[조선일보 김윤덕, 이자연 기자]

아파트 분양 추첨에 떨어져 낙담하고 있는 엄마에게 말한다.

“한숨 좀 쉬지 마. 인생이 원래 그런 거잖아.”

주변 식구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이모, 서른셋씩이나 먹어서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 안 해?"

선생님에게도 스스럼없다.

“선생님, 오늘 (신문) 헤드라인 봤어요? 검찰총장이 물러났대요.”

자기네끼리는 선생님을 두고 이렇게 얘기한다.

“싸가지는 없는데 실력은 있으니 우리가 참자."

이런 대화는 요즘 초등학생이 하는 말이다. 조선일보와 맘스쿨(www.momschool.co.kr) 공동조사 및 초등학생 20명 심층 인터뷰, 교사·학부모·학원강사 인터뷰에서는 초등학생 것이라 믿기 어려운 말이 쏟아져 나왔다. 더이상 아이들이 ‘애들’이 아니다.

마우스(인터넷)와 리모컨(TV)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세상을 너무 일찍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대학생이 읽는 책을 읽고, 성인의 말투를 닮아간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들은“우리 애가 언어 영역에 영재성이 있는 것 같다”며 은근히 ‘자랑 반, 기대 반’이지만, ‘진실’은 좀 다르다. ‘입심’에 비례해 지적 능력이 높아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7차 교육과정의 개방성이 오히려 초등학생들의 학력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판단, 지난 3월 학력평가를 부활시켰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 수도 2001년 6530명이던 것이 2003년 1만7677명으로 급증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과잉사회화’라고 설명한다. “군비축소 관련 웹사이트에 초등생 댓글이 올라온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는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에 오기 전 이미 머릿속 용량이 꽉 찬 아이들이 대학에 와서는 ‘교수님, 제발 요약해 주세요!’라는 말을 되풀이한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TV 및 인터넷 이용은 물론 대입 논술을 겨냥한 무차별 독서교육은 아이들의 조숙(早熟)을 재촉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양으로만 승부를 거는 ‘다이제스트’식 독서교육이 아이를 헛똑똑이로 만드는 것이다.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장은 “얼마 전 대치동 한 논술학원에서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을 초등학교 때 다 떼어주겠다고 광고해, 150명 정원에 그 세 배의 지망생이 몰렸다. ‘백 년 동안의 고독’ ‘과학혁명의 구조’ ‘카프카’ ‘대학-중용’을 과연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할까. 입시 과열이 어른 흉내만 내는 아이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사와 아이들이 평등한 인격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평등 교육’, 자율성을 중시해 가장 합리적인 교육방식이라 믿어온 ‘열린 교육(Open Education)’의 함정도 드러나고 있다.

조연순 이대부속초등학교 교장은 “요즘 아이들이 자기 의사와 감정 표현이 확실하지만, 대신 깊이와 집중력이 없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책임의식이 부족하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교육에 진저리를 치는 부모들이 정반대 방향으로만 가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효정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은 “과거 아이들이 웃어른과 형제를 통해 어른이 되는 법을 익혔다면, 요즘엔 컴퓨터가 그 역할을 대리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조숙한 아이들이 늘면서, ‘죽음’, ‘허무함’등을 고민하는 경향도 짙어진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20명에 대한 심층면접에서 ‘죽음에 관해 고민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15명이 ‘그렇다’고 대답했고, 청담동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는 “학교, 학원을 뛰어다니며 이렇게 숨가쁘게 살 필요가 있을까. 나는 도시가 싫다. 늙으면 조용한 산속에서 남편이랑 단 둘이서 살겠다”고 말했다. 이현정 송라초등학교 교사는 “5학년만 되면 중고생처럼 뭐든지 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즘’이 나타나고, 허무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 과제물을 위해 인터넷에서 정보를 너무 자주 검색하거나 게시물을 무비판적으로 베끼는 일은 삼가고 ▲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행동을 무조건 대견해 하지 말고 ▲‘조숙’한 언어 사용을 ‘영재성’으로 착각하지 말며 ▲ 명작이라고 무조건 읽게 하는 것보다는 한 권이라도 깊이 있게 정독한 뒤 부모가 함께 토론하라고 충고했다.

(김윤덕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sion.chosun.com]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누구나 멋지게 살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유럽인의 삶.... 뭐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사랑하는 삶은 참 본받고 싶다.

언제나 저런 집에서 살아보나... ^^*

‘예술의 경지’ 유럽의 정원들


아파트 거부하는 유럽인들이 만든 ‘자연을 소재로 한 예술’
집은 아름답게, 삶은 풍요롭게…아름다운 정원 문화

미디어다음 / 강대진 독일 통신원

유럽의 집들은 마당이 있어 아름답다. 마당, 즉 정원은 집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그 집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정원에서 자연이 주는 달콤한 휴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정원은 단순히 나무나 풀을 심어놓은 곳이 아니다. 이들에게 정원은 자연을 소재로 만든 예술품이다. 나무와 풀, 그리고 물을 조화롭게 배치한 뒤 정성스럽게 가꾸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예술품과 견줄 만한 유럽의 정원들을 소개한다.

자동넘김 설정정지 빠르게 보통 느리게
새 정원에 핀 달리아
새롭게 완성된 정원에 달리아가 활짝 피었다.
마무리 되어가는 정원
완성된 새 정원
새 정원에 핀 달리아

유럽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사는 도시에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싫어한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등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들은 도심에 고층건물을 세우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당연히 아파트도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독일은 잠시 고층아파트 붐이 일었던 70년대 이후 10층 이상의 아파트가 거의 지어지지 않았다. 고층아파트가 지어진다 해도 대부분 도시 외곽에 생겼다.

유럽 사람들이 고층건물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인공적인 고층아파트가 삶의 질을 낮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지리적으로도 평지가 많아 고층 건물을 지을 필요가 없다.

이런 유럽인들의 생각은 단독주택 위주의 주택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름다운 정원 문화를 발달시켰다. 유럽인들은 정원이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준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대도시에 살아 정원을 갖기 힘든 이들은 도시 외곽에 자신만의 정원을 따로 만들기도 한다. 외곽의 땅을 빌려 오두막집을 짓고, 그 주위에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정원이 모여 생긴 정원촌은 유럽의 별난 풍경 중 하나다.

독일의 대도시 뮌헨에 살고 있는 사빙에(46)의 정원 역시 뮌헨 시 외곽의 정원촌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특히 영국 장미를 좋아해 자신의 정원을 영국 장미로 꾸미고 있다. 그는 매년 장미의 종류나 구도를 조금씩 바꾸며 정원을 관리하고 있다.

사빙에는 “주말마다 남편과 아이 셋을 데리고 정원으로 놀러가 함께 식사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며 “정원을 어떻게 꾸밀까 가족들과 함께 고민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항상 메모해 둔 뒤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엘사스 지역에 살고 있는 릴리 마틴(58)은 자신의 집 앞에 꽤 큰 규모의 정원을 가꾸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정원을 ‘작은 낙원’이라고 부른다. 마틴의 정원은 ‘작은 낙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영국 장미가 곳곳에 피어 있고 정원 한가운데에 있는 아름다운 분수대가 물을 뿜고 있는 마틴의 정원. 정원 한쪽을 흘러가는 개천과 그 위의 다리, 그리고 크고 작은 다섯 개의 연못은 이 ‘작은 낙원’에 운치를 더한다.

마틴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정원 가꾸기를 무척 좋아해 어른이 되면 꼭 나의 정원을 갖겠다는 다짐을 했었다”며 “꿈을 이룬 나는 프랑스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독일 함부르크에 살고 있는 헬가 마이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째 정원을 가꾸고 있다. 그가 정원을 물려받은 해는 1977년. 이때부터 정원을 가꿔오던 그는 2년 전 자신만의 독특한 정원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이후 정원을 새롭게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꼬박 1년이었다. 신경 쓸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이어는 무엇보다 나무와 꽃들이 섬세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정원을 완성하고 난 뒤에도 관리를 잘 해야 한다”며 “꽃과 나무들이 각각 계절에 맞게 잘 자라고 있는지, 자라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지도 계속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