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중심, 하리야마 씨 1
나리타 료우고 지음, 민유선 옮김, 야스다 스즈히토 외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세계의 중심, 하리야마 씨


                                                                                     ― 이것이 나리타 료우고 퀄리티!


  몇 년 전, 당시 라이트노벨은 대원에서 내는 NT노벨 밖에 없던 시절, 한 친구는 매달 NT노벨에서 나오는 책을 전부 구입하고 있었다. 내가 대단하다고 놀라자, 자기는 남들이 화장품에 쓰거나 다른 거 안 사고 그 돈으로 모으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 친구였다. 어쨌든 간에, 그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바카노!』 읽었니? 라고. 이미 이름은 몇 번 들어본 책이었지만, 아직 안 읽었다고 대답했다. 추천 평은 몇 번 봤지만, 제목도 끌리지 않았고, 소재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아 구입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나는 나리타 료우고의 『바카노!』를 구입했다. 당시 NT노벨을 모조리 보고 있던 친구의 입에서 나온 한 권의 책 제목이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바카노!』를 처음에 읽고 참신하다고 느꼈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해서 오히려 강렬한 캐릭터 성을 띤 매력적인 바보 커플을 비롯해서 강인하지만 단순하고 올곧음으로 무장한 수많은 캐릭터들. 한 권이라는 분량 내에서 무리다 싶을 정도로 많은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다른 라이트노벨에서는 보기 힘든 구성을 사용해서 구조에서 오는 재미가 뛰어났다. 그렇게 이 작가, 보통이 아니구나, 기대할 만하구나, 라는 느낌을 가지고 2권을 펼쳐 들자,


  숨 막힐 듯한 재미가 덮쳐왔다.


  1권에서의 플롯 구조는 몸풀기에 불과했다는 듯이, 2권과 3권을 이용한 이중 구성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한 권을 읽으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다. 3권까지 읽어야 사건의 모든 내막을 알게 되고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성만이 『바카노』의 재미를 모두 설명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바카노!』 시리즈는, 아니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은 캐릭터의 매력이 빛을 발한다. 아무리 뛰어난 구성이라도, 캐릭터가 살아있지 않으면 작위적인 장치로만 남아 위화감만 조성할 뿐이다. 그러나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과장되면서도 올곧음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캐릭터들이라,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감정 이입을 하거나, 동정을 하거나, 연민을 느끼거나, 애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너 정말 멋진 녀석이구나!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고 할까. 그리고 그 수많은 캐릭터들 중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는 바로 레일 트레이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캐릭터다. 2권에서 처음 등장한 레일 트레이서, 비노는 그야말로 엄청난 임팩트와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바카노』 시리즈는 연금술사들이 악마를 소환해 내어 불사의 술을 만들어 낸 것이 중심축이 되는 이야기로 특히 불사인들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비노는 불사인이 아닌 순수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바카노』 이야기 속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불사인이나 다른 악역들도 압도해버리는 그의 존재감은 소설 속 악마보다도 더 큰 인상을 심어준다. 그 때문에 구성과 캐릭터의 매력으로 만들어진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역시 레일 트레이서가 등장한 『바카노』 2, 3권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아직도 그 파워풀한 전투씬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이능력자들을 순수한 인간이 이렇게 압도해버리다니. 정말이지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 강렬한 캐릭터다.

  이 후, 『바카노!』 뿐만 아니라, 나리타 료우고의 모든 작품을 나오는 대로 사서 읽었다. 웬만한 작가라면 작품마다 편차가 있기 마련이다. 나리타 료우고도 이점에서는 당연히 그런 게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들은, 내용을 보고 구입하는 게 아니다. 오로지 작가의 이름 하나만 보고 구입하게 된다. 현재 국내에서 나오는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들은 일본에서 발매된 순서 그대로 나오고 있고 이는 작가가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만큼 작품들이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또한 일본과 동일한 발매 순서대로 독자가 읽어주기를 원하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감이 그만큼 뛰어난 것도 있지 않을까. 내 작품 중에 독자들 마음에 차지 않을 만큼 수준 낮은 작품은 없다. 그러니 내 작품 전부를 차례대로 발매하라고 말이다.

  마치 내 이름을 믿어라, 그러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줄 테니, 라고 선언 하듯이.

  그 리고 최근에 나리타 료우고의 이름을 달고 나온 『세계의 중심, 하리야마 씨』가 출간되었다. 그 동안 나온 『바카노!』 시리즈도 아니고 『뱀프!』 시리즈나 『듀라라라!』, 『바우와우!』 등의 장편 시리즈가 아니다. 이것은 후속권이 있긴 하나, 단편들이 모인 옴니버스 형식의 단 권이다. 출판사도 그런 까닭 때문에 기존 성격과 맞지 않고 판매량이 떨어질 듯한 이 작품의 출간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작가의 의지대로 출판을 감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읽고 나서 느낀 점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것이 나리타 료우고다.


  이 책은, 역시 나리타 료우고 퀄리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만약, 나오지 않았다면 크게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이것은 나리타 료우고의 수많은 장점이 집약된 작품이다. 발매 순서대로 나온 덕분에 처음부터 괴물 같은 작가이긴 했어도, 또 다른 성장한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고 할까.

  이 책은 크게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 레전드」, 「마법소녀 893호」, 「친애하는 빛의 용사님」, 「기적의 중심, 하리야마 씨」


  각각의 단편들은 각기 다른 장르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괴담》,《꼬마 마녀》,《전설의 용사》,《메들리》다.


  일단, 첫 번째 「도시 레전드」부터 살펴보자면.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도시전설, 도시 괴담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로 괴담 「침대 밑의 도끼남」이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집에 애인을 데리고 온 날 밤의 일이다.

  침대와 바닥에 각각 드러누워 평소대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 그녀가 별안간 묘한 말을 꺼냈다.

  “자기야,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남자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려 하자 그녀는 더 비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말했다.

  “편의점 가서 사 오자. 응?”

  남자는 귀찮게 여기면서도 그녀의 말이라 마지못해 편의점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집에서 나온 그녀는 갑자기 굳어진 얼굴로 편의점과는 반대 방향―파출소를 향해 냅다 달리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모른 사내가 묻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 침대 밑에 피투성이 도끼를 든 남자가 숨어 있는 걸 봤단 말이야…!”


  ― 옛날부터 유명한 괴담 중에서


  한국에서도 유명한 도시전설로 몇 년 전에 실화라며 많이 들었던(비슷한 기사가 사실 몇 차례 떴던 것 같다) 이야기다. 이 유명한 괴담을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드는 작가의 솜씨는 뛰어났다. 이 이야기는 일단 나리타 료우고답게 구성부터 범상치 않은데, A사이드와 B사이드 두 가지 시선에서 이야기가 그려진다. 즉, A사이드를 읽으면서 도끼남 괴담 속에 처한 한 인물의 심리 묘사와 거기에 얽힌 새로운 반전 등으로 독자의 시선을 뺏는다면, B사이드에서는 도끼남의 시선으로 숨겨진 내막을 밝혀주는 것이다. 이런 구성은 독자에게 더 큰 재미를 가져다주고 이야기를 복잡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이 단편은 괴담 속에서도 한 청춘남녀의 마음이 변화하는 것을 그려주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 「마법소녀 893호」는 장르가 《꼬마 마녀》라고 나와 있듯이, 애니메이션 등으로 유명한 마법소녀물을 다룬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역시 평범한 마법소녀물이 아니고 작가가 새롭게 창조한 변형된 마법소녀물인 것이다.

  마 법소녀라지만, 실상은 마법소녀가 아니다. 아니 ‘진짜’ 마력을 가진 마법을 사용하는 소녀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마법소녀는 아닌 소녀가 벌이는 이야기다. 여기서 앞에서는 잠깐 언급되고 끝난 하리야마 씨가 좀 더 많이 등장한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성장 소설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마법 소녀’ 만화에 감화된 마법을 가진 소녀가, 마침내 진짜 마법이란 무엇인지 알아가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허나 마법소녀는 기뻐하며 받을 수가 없었다.

  스킨헤드나 다른 조직원들로부터 이곳 아미다파의 힘든 경영 상태를 들었기 때문이다.

  “저, 저어… 조직 분들이 돈에 쪼들리고 있는데 저만 이런 걸 받을 수는 없어요.”

  “인마, 어린애는 그런 거 신경 쓰는 게 아냐.”

  “그, 그치만…, 아 맞다! 제 마버―.”

  “마법으로 돈을 낸다고 해도 안 받을 거야. 아, 그런 녀석은 없을 거라곤 생각하지만 조직의 젊은 녀석들이 부탁해도 절대로 돈 같은 걸 만들어주면 안 돼. 그런 짓을 했다간 바로 내쫓을 테니 그리 알아.”

  “아으….”

  앞을 꿰뚫어보는 발언에 893호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마법 나라에 있던 무렵의 자신이라면 왜 받지 않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허나 지금의 그녀는 왠지는 몰라도 그것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자신의 사고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가, 감사합니다.”


  ― 『세상의 중심, 하리야마 씨』, 나리타 료우고, 대원씨아이, 127쪽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보던 《뾰로롱 꼬마 마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도 있고, 유쾌한 부분들과 나리타 료우고 특유의 느낌, 내용, 캐릭터들이 인상적이다. 기존에 『뱀프!』 등에서 느꼈던 주제와 캐릭터를 다루고 있지만, 약간은 다른 캐릭터들이 엇갈리고 다른 배경, 다른 조건에서 다른 감상을 전해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 인상적인 캐릭터는 역시 ‘긴지마’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역시 인간 중에서 가장 고도의 경지에 오른 듯한 묘사는 치열한 전투 장면을 연출하지 않고도 적절한 분위기와 몇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이후에 모든 이야기가 종합되는 ≪메들리≫에서 그의 존재감은 더욱 드러난다.


  그 다음 단편은, 「친애하는 빛의 용사님」이 다. 《전설의 용사》라는 장르로 독특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여태까지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를 내는 작품이다. 게다가 결말까지 암울한 베드엔딩으로 써져 있어서 이게 정말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마저 든다. 작가 후기를 보면, 나리타 료우고 역시 처음으로 써 본 베드엔딩으로, 자기도 이런 것을 쓸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소꿉친구인 여자아이에게 불려나간 남자아이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고백이라도 받을 줄 알았던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서 나온 말에 당황한다.


  “나 실은 용사야.”


  고백이 아닌 생뚱맞은 한 마디.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황당하다.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환생한 용사로 이제 악을 물리치러 섬을 떠나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무언가 굉장히 유쾌한 이야기가 펼쳐질 줄만 알았다. 머릿속에서는 혹시 ‘마을 사람A'도 있고 뭐도 있고 그런 건 아닐까, 라는 수많은 이야기가 마구 파생되기도 했는데, 정작 본편의 이야기는 마구잡이로 확대해나가는 이야기로 호러틱한 분위기까지 띄며 굉장히 잔인하기까지 하다. 섬에는 점점 여자아이와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까지 벌어진다. 마침내 주인공은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단 편이라는 정해진 분량 안에서 계속 몇 번이나 생각한 범위를 벗어나는 사고의 전환과 급격히 전환되는 이야기, 그리고 가슴 싸한 결말까지 근사한 작품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때론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한계를 뛰어넘는 발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나리타 료우고의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단편은 「기적의 중심, 하리야마 씨」로 앞서 나온 세 편의 글을 메들리 형식으로 종합한 단편이다. 각각의 단편들은 각기 다른 형식의 플롯과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 모든 서로 다른 장르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그로 인해서 재미도 배가 되고, 각 장르의 충돌에서 벌어지는 묘한 느낌의 색다른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나리타 료우고 표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할까. 수많은 개성 많은 캐릭터들을 다루는 솜씨는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듯한 나리타 료우고가 각기 다른 사고를 가지고 다른 상황에 다른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을 한 자리에 몰아놓고 펼치는 활극은 보는 이로 하여금 크나큰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게다가 표제에도 등장하고 간혹 얼굴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자세히 나오지는 않은 ‘하리야마 씨’의 출연 분량도 많이 늘어난 글이기도 하다. 그의 대사나 행동은 소시민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의 친화력이나 사고관은 아무런 능력도 없는,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 이런 능력자들이 판치는 세계에서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나리타 료우고의 많은 작품들이 물론 정신력이 뛰어났지만 그와 함께 육체적인 능력도 뛰어난 무투가적인 캐릭터들이 난무했다. 그렇기에 ‘하리야마’라는 캐릭터는 독특하다. 어떠한 신체적인 장점도 없는 이 캐릭터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들고 오히려 이야기를 정리하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나리타 료우고의 또 다른 능력을 본 것 같다고 할까.


  길게 적었지만, 요약하자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리타 료우고의 장점이 집약되어 있는 재미로 무장한 단편집이었다. 아직 나리타 료우고를 접하지 않은 독자라면, 권수가 많은 장편들보다 이 단편으로 처음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마음에 들면 발매 순서대로 읽어 보는 것을 권한다.

  나리타 료우고의 세계는 바보처럼 단순하면서도 자신을 믿고 강인한 신념을 가진 황당한 캐릭터들이 날뛰고, 아무리 잔혹하고 처참한 피가 튀는 이야기일지라도 끝에는 결국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야 말로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빨려 들어가는 재미를 얻고 싶은 독자라면 나리타 료우고는 충분한 재미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플롯을 제대로 가지고 노는 작가라, 플롯과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재미를 줄 것인지 제대로 연출할 줄 알고 있다.

  재미의 중심, 그곳에는 나리타 료우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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