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소녀환상 1 - Seed Novel
키온 지음, JUNA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정의소녀환상

  현실을 붙잡지 못한 환상

  2008년 7월 디앤씨미디어의 라이트노벨 브랜드인 시드노벨로 나온 『정의소녀환상』. 이 작품은 제목에서 ‘소녀’가 언급되었듯이 마법소녀를 소재로 한 라이트노벨이다. 마법소녀들은 프릴치마를 입고 지팡이를 든 채 변신을 하는 귀여운 마법소녀가 아니라 도시를 부수고 핵폭발도 끄떡없는 물리법칙을 초월한 절대적 존재로 표현된다. 이 소설의 개성을 찾아보자면 그런 요소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재를 제대로 살렸느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아무리 소재가 참신하다고 하더라도 소설의 서사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면 또한 라이트노벨은 캐릭터가 주가 되므로 인물묘사가 제대로 살지 않는다면 소설은 재미를 갖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그 두 가지 점을 모두 놓치고 있다.
  이 소설의 시작은 평범한 여고생이 생리통을 없애고 싶은 마음에 덜컥 블랙 세피로트라는 유일한 정의의 마법소녀에게 힘을 전수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흥미로운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까지 생리통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마법소녀물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후부터는 인물도 평면적으로 나오고(아니, 평면적이라기보다는 아예 인물 캐릭터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이야기도 단순하기 그지없는 직선적인 전개이며 처음 이 소설의 첫 장을 읽을 때부터 모든 내용이 다 짐작이 가능한 범위 내이므로 독자가 어떠한 흥미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이야기를 읽는 내내 하품을 해야 할 정도로 지루함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의 구성 면에서 같이 시드노벨로 출판된 『해한가』 같은 작품을 보면 구조 자체가 세 사람의 시점을 번갈아 가면서 독자들이 이 사람들이 어떻게 엮이게 되는지, 또 그 만남이 무엇을 파생하는지 궁금하여 읽는 내내 긴장감을 가지고 읽게 된다. 하지만 『정의소녀환상』은 구조면에서 지나치게 단순하기 짝이 없는 플롯을 사용하여 읽는 내낸 긴장감을 유발시키지 못한다. 안 읽어도 그만인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단순해도 캐릭터가 제대로 살면, 사람들은 그 캐릭터를 보기 위해서 글을 읽는다. 특히, 그 점이 강화된 게 바로 라이트노벨이다. 라이트노벨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캐릭터 소설이라고 불릴 정도로 캐릭터가 중심인 소설이다. 니시오 이신은 캐릭터가 곧 스토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의소녀환상』은 캐릭터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정립할 시간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애정을 가질 여지가 전혀 없으므로, 이야기의 흥미를 잃는다. 예전에 구성과 문장 등이 엉망이었는데도 많이 팔린 작품 중 하나로 『가즈나이트』가 있었다. 이 『가즈나이트』가 수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것 하나는 캐릭터성이었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들이 등장했기에, 대사 하나만으로도 누군지 떠올릴 만큼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기에 근래에 들어 양장본으로 출판된 만큼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이다.
  소설에서 우선 가장 캐릭터가 살아야할 사람은 주인공이고 그 다음은 적 캐릭터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까칠한 여고생으로 나오지만, 그게 전부다. 주인공은 처음에 마법소녀의 힘을 전수받은 이후로 줄곧 전투 씬만 나오므로 어떤 속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꿈을 갖고 있었는지, 어떤 친구가 있었는지,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한 마디로 독자가 캐릭터에 공감할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았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친구 같은 인상을 주지 않고 종이인형 같은, 아니 작가의 목소리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점은 여고생답지 않은 화법이다. 글투가 전반적으로 소년의 말투라 도무지 여고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무리 말투가 험악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여고생이라고 하더라도 일기를 적으면 남자가 쓴 글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소설은 현실에서 로또를 맞는 우연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소설 안에서는 그런 우연이 남발하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아무리 완전 남자와 똑같은 말투를 쓰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소설 안에서는 좀 더 여자다운 느낌이 나게 써야만 했다. 그래야 더 몰입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 소설은 전혀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작가가 직접 말을 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단어 몇 개와 어투 몇 개만 수정했어도 아마 이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아니면 친구의 대사로라도 너는 왜 이렇게 여자답지 못한 말투를 쓰느냐고 핀잔이라도 줬다면 또 모르겠다.
  적 캐릭터인 화이트 소피아 역시 어떠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야말로 백색이라고 할까. 연극이라고 하는 갈등적 요소도 지나치게 미약하여 캐릭터를 살리지 못하고 그야 말로 도구처럼 움직이고 있어 독자가 아무런 감흥도 갖지 못한다. 이런 시점에서 이 캐릭터가 아무리 불쌍한 척해봐야 독자는 황당할 뿐이다. 이 캐릭터가 개성을 가질만한 사건이나 대사는 전무했고 스토리 내에서 의도된 바라 할지라도 조금의 개성도 가질 수 없었다. 원래 주인공보다 더 매력을 내뿜는 게 안티 히어로라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은 철저히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중심에 있는 안트로포스는 유일하게 개성을 획득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끝없는 전투씬 빼고 유일하게 읽을만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주인공과 안트로포스의 만담에 있을 것이다. 안트로포스는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나 적보다 더 개성을 획득하고 캐릭터의 매력을 선보였다. 거의 개성을 내보일 수 없었던 주인공과 소피아에 비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유일하게 소설을 살린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전체적으로 서사가 없다시피 하는 이유는 무분별한 전투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쓸데없는 전투씬의 반복은 독자를 피로하게 하고 글의 흥미를 잃게 만든다. 물론 반대로 보면 이 소설의 장점 중 하나는 황당무계할 정도로 거침없는 전투씬에 있다. 이걸 느긋한 마음으로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충분한 재미를 줄 것이다. 하지만 설정놀음 같은 전투씬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이 소설에서 건질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화려하고 강력한 전투씬만 늘어놓는다고 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건 캐릭터와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갈등과 서사다. 이 소설은 마치 영화 『디워』처럼, 작가가 정해놓은 이야기에 캐릭터는 딸려가면서 계속 뭐라뭐라 외치고 반응하다가 끝나버린다. 한 마디로 주인공이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내지 못하고 작가가 정해놓은 아주 단순한 이야기에 끌려가기 때문에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긴장감이 파생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독자들이 어떻게 될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질 여지가 없다. 특히 아무리 우주 단위까지 노는 전투씬이라도 긴장감이 전혀 안 든다면 의미가 없다. 그냥 설정집을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긴장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건 『가즈나이트』에서도 지적된 것과 같은데, 가즈나이트란 캐릭터는 설정 상 죽음조차 없는(3개월 후면 부활) 캐릭터이기 때문에 전투에서 긴장감을 느낄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즈나이트는 그것을 캐릭터 성과 만화적이고 유치한 필살기 같은 것으로 메꿨다면, 이 소설에서는 방대한 설정으로 메꾸려고 하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게 성공했냐고 한다면, 나는 회의적으로 본다. 아주 소수의 몇 사람은 흥미로운 요소도 적지 않겠지만, 이런 설정들은 그냥 흔히 여러 소설과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것들을 한 데 그러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의 감상평들을 읽어보면 충분히 몇 권으로 펴낼 이야기를 한 권으로 압축한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가 많다. 나 역시 이 글을 읽고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거대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압축하고 그것도 드라마를 빼버리고 전투씬으로만 채워서 글 전체가 허하게 만들었다. 전투씬을 빼고 이 소설을 본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허하다. 도대체 몇 페이지나 될까? 단편도 아니고 꽁트 정도의 분량 밖에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하면 이 책은 참으로 책값이 아까운 느낌을 받는다. 설정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즉 90% 설정은 수면에 숨겨야 하고 10%만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소설은 거꾸로 된 것 같다.
  애니메이션 『그렌라간』을 예로 들자면 이 소설과 유사하게 마지막에 가서는 거대한 우주적인 전투를 벌인다. 황당무계한 여러 설정들이 나오는 것도 똑같다. 하지만 『그렌라간』은 찬사를 받고 『정의소녀환상』이 혹평을 받는 것은 스토리의 부재에 따른 것이다. 『그렌라간』이 거대한 우주적 전투를 벌일 때, 보는 사람은 긴장감을 느끼고 주인공을 응원하게 된다. 그 이유는 1화부터 오래 시간 그들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들이 겪은 수많은 모험과 우정, 갈등을 전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엇을 희생했는지 알기 때문에 설사 옳은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무조건 주인공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 캐릭터의 희생이 애니메이션 전체를 유지하는 단단한 뼈대가 되고 있다. 마지막에 전투가 사실 우주적으로 나가지 않고 단순한 주먹 다툼이었더라도 보는 사람은 감동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한 캐릭터의 희생이 그들의 영혼을 계속 묶어주고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소녀환상』에는 그러한 이야기가 없다. 사랑하지만 이별하고, 배신당하고 친구들끼리 반목하고 누군가가 희생하는 이야기가 없다. 배경이 환상이든 현실이든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야기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뼈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 뼈대가 없이 망상 같은 설정 놀음이나 하고 있으면 독자는 공감할 부분이 없다. 그저 얘들이 왜 이러고 있냐? 도대체 이런 허황된 이야기가 가당키냐 하냐, 는 불만만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정의소녀환상』에는 죽어가는 일반 사람들이 많지만 마치 『슬레이어즈』나 『드래곤볼』의 파괴처럼 그 사람들이 실제로 죽어가는 지 피부로 와 닿지도 않는다. 다시 아까 예를 든 『해한가』만 해도 고작 한 사람의 죽음이 일으키는 파장이 소설 전체 내내 강력한 힘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있으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몇 천 만명이 죽어나간다 해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이다. 그건, 즉 수치로 이야기했을 뿐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까닭에, 플롯이 없는 까닭에 이 소설이 환상만 이야기할 뿐 현실에 뿌리박힌 환상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이다. 라이트노벨은, 또한 판타지 문학은 환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환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현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건 배경이 아니라, ‘인간’을 말한다는 소설의 전제조건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즉,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게 부질없는 거품처럼, 읽은 다음에 돌아서면 잊어버릴 허망한 작품이었다. 기억에 남는 캐릭터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전무했으며 작품의 메시지도 약했다. 다음 권을 읽고 싶을 정도로 궁금한 스토리도 없고, 다음 권을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캐릭터도 없다. 문장은 거칠고 엉성하여 읽는 내내 곤욕이었고 맞춤법조차 어긴 특이한 표현들조차 글이 훌륭하지 못하니 유치하게만 보였다. 차라리 정석으로 맞춤법을 지킨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흥미로운 소재를 갖고도 이야기의 부재 때문에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점이 아쉬운 소설이었다. 아예 짧은 단편으로 끝내든지, 아니면 여러 권의 장편으로 이끌어갔어야 할 소설이었달까. 시드노벨 입선작은 처음으로 읽은 작품이었는데, 실망감이 조금 컸다. 도대체 어떤 안이한 기준으로 이런 작품을 입선작으로 내놓고, 또 편집자는 설사 뽑았더라도 그 이후에 어떤 조언을 했기에 이렇게 나왔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앞으로는 시드노벨의 입선작을 볼 때는 조금 더 신중하게 변할 것 같다.
  그럼 이만 본의 아니게 길어진 리뷰를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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