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런던 소재 British Library.

도서관 하면 "정숙"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리던 나에게,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쳐나는 이 곳의 느낌은 차라리 문화적 충격에 가까웠다. 왠만한 박물관을 뛰어넘는 수준의 전시공간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도 가볍게 산책 나온 느낌의 시민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드나들며 '즐기는' 곳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서초역 근처의 국립 중앙 박물관을 몇 번 간 적이 있었는데, 건물 전체를 무겁게 짖누르던 정적에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위축되었던 기억이 난다. 열람실을 점령한 고시생들 앞에서 자칫 의자라도 끄는 소리를 냈다간 쏟아지는 눈총들이 얼마나 따가웠던지. 주말에 가볍게 책이라도 읽으러 온 내가 왠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연극이나 음악 공연장만이 "문화 공간"이라는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말로는 책을 읽자고 하면서 정작 편한 마음으로 책과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주지 않는다. 서점도 좋은 곳이긴 하지만, 편한 까페같은 느낌의 도서관이 집 근처에 하나 있더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납세자들이 세금으로 그 정도 문화공간을 제공받을 권리는 있다고 본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8-0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건 완전 카페 겸 박물관인데요. 한국 도서관들은 다 그게 그모양. 비슷비슷해요. 다양한 분위기와 느낌의 대형 도서관들이 생겼음 좋겠는데.

turnleft 2007-08-03 13:21   좋아요 0 | URL
한국도 건물들은 그닥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그 건물을 활용하는 방식이 너무 고답적인 것 같거든요. 예컨데 앉아서 공부하는 열람실도 있고, 그냥 음악 조용하게 틀어놓고 소파 같은거 배치해놓은 열람실도 있으면 좋겠죠. 매점도 좀 세련되게 바꾸고하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까요?

비로그인 2007-08-0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꾹 누르고 ..턴레프트..트..님

turnleft 2007-08-03 13:23   좋아요 0 | URL
아니 뭐 이런 글에 추천을.. ^^; 옙, 이번엔 이름 제대로 쓰셨습니다. 도장 꽝!

비로그인 2007-08-0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다르긴 한데, 고려대에서 이런 느낌의 구조물, 그러니까 공간감각을 느꼈던 것 같아요.

마늘빵 2007-08-03 10:15   좋아요 0 | URL
대략 느낌이 비슷하긴 하네요. -_- 고려대 도서관이랑. 근데 그래도 그다지...

turnleft 2007-08-03 13:23   좋아요 0 | URL
고대 도서관엔 가 본 적이 없어서.. -_-a

비로그인 2007-08-05 20:30   좋아요 0 | URL
한번 가보세요 고대 도서관.. 좋아용

네꼬 2007-08-03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한 소음이 허용되는 도서관. 얼마나 "다같이" 문화적이어야 하는지. --;;;

(에, 이렇게 슬쩍 첫 발자국을--- 쿨럭.)

turnleft 2007-08-04 02:33   좋아요 0 | URL
에.. 근데 그게 그리 어려운 문제 같지는 않아요. 우리가 해 본 적이 없을 뿐이지, 다른 나라 사람들은 많이들 하고 있잖아요. 시도해볼만 하지 않을까요? '배려'와 '자유'를 조화시키는 연습도 될테구요 ^^

마노아 2007-08-04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 그런 도서관을 만나고 싶어요(>_<)

turnleft 2007-08-04 02:35   좋아요 0 | URL
옳소!! 나중에 혹시 돈 많이 벌면(퍽이나) 사립도서관 같은거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트라팔가 광장에 비가 내린다. 잔뜩 찌푸린 하늘과 비에 젖은 보도블럭. 내가 기억하는 전형적인 런던의 인상이다.

가죽 코트에 청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이 정체불명의 남자는, 그러나 묘하게도 도심의 풍경 속에 적절히 녹아든다. 무심한 시선. 관광객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가득 찬 이 곳에서도 누군가의 그저 그런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8-02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아저씨 멋있군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turnleft 2007-08-03 02:4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굉장히 언밸런스 하면서도 간지가 나지 않나요?
저는 쫙 빼 입어도 어정쩡한데 차이가 뭘까요? ㅠ_ㅠ

2007-08-02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3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원래는 주말 계획을 타이트하게 세웠죠. 오전 중에 청소, 세탁 등 기본적인 집안 일을 끝내고, 점심을 깔끔한 식당에서 먹고 까페에서 책을 읽으며 오후 시간을 보낸 다음, 저녁에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었거든요. 안그래도 요즘 바빠서 책 읽을 시간도 잘 못 내고 있는데다가, 주말에도 하루 밖에 못 쉬는지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주말에 대한 기대치를 온전히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알람 소리 말고 그냥 잠에서 깰 수 있다는건 기분이 참 좋죠) 별 생각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뉴스 읽고, 알라딘 서재 브리핑에 새로 올라온 글들 읽고 하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허걱!! 12시가 넘었더군요. 아직 씻지도 않은 꾸질꾸질한 상태로 이 아까운 휴일의 절반이 날아갔더군요. 시계가 혹시 거짓말을 하나 해서 휴대폰 시계도 확인했습니다만, 역시나.. ㅠ_ㅠ

점심은 대충 집에 있는걸로 떼우고, 청소 시작. 이것 저것 치우고 닦고, 나가서 장을 좀 봐가지고 집에 왔더니 어느새 4시 반이더군요. 6시 약속이니 잠시 짬이 있구나 싶어 소파에 책을 들고 앉았다가, 그만 또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_= 다행히 1시간 정도 후에 깨서 약속에는 무사히 나갔습니다만, 주말 하루가 정말 어/이/없/이 지나가 버렸네요.

다음 휴일까지 1주일 남았습니다. 모두 힘내서 달려봅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07-3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사진이 이뻐요 ..턴레프트님..!! 깔끔하고 깨끗하네요 ..
한주 멋지게 시작하세요 !!

거짓말좀 시계가 해줬으면 할때 많아요..저도 ㅠㅠ @.@

turnleft 2007-07-30 16:46   좋아요 0 | URL
ㅎㅎ 이쁘죠? 제 방입니다. 심혈을 기울여 지른(?) 시계인데 볼 때마다 흡족해 하고 있는 중이지요 ^^

비로그인 2007-07-3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 제 눈으로 읽기엔 왜그리 부지런하신 건지? ㅎㅎ
혼자 사시나 봐요?(맞나?)
주말은 쉬어도 어이없이, 바빠도 또 어이없이 지나가죠 크~
전 이번주엔 팀장님이 휴가중이라 ㅋㅋ 출근은 했어도 맘은 편합니다.

turnleft 2007-07-30 16:47   좋아요 0 | URL
부지런했으면 하는건데, 실제로는 전혀 그러지 못하다니까요 =_=
팀장 없는 사무실, 그거 낙원인데.. 팀장 돌아왔을때 내세울거리 재빨리 만들어두고 일주일 내내 노닥거리세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남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던 그들. 어떤 사람은 이 사진을 보고 아버지와 딸 같다고도 하고, 다른 사람은 심지어 원조교제(^^;) 설까지 제기했지만, 사진을 찍었던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둘러싼 공기가 달랐거든요. 여기 막 새 사랑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제 심장은 참으로 두근거렸습니다. "그때 사랑은 참 다정도 하여 반짝거리는 심장을 내게 주었"던 것이겠지요 :-)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07-2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웃.... 저 설레임이라니..
내가 다 두근거리네요 +_+.

찍는 사람도 그 피사체도 모두 "반짝거리는 심장"을 갖고 있었나 봐요. :)
그러니 담을 수 있었던 작품이지요 ^^

turnleft 2007-07-27 16:23   좋아요 0 | URL
연애의 많은 단계 중에서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설렘은 그 중 단연 하일라이트인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그 설렘의 기억이 조금은 희미하네요. 설레였다는 기억만이 존재하고 그 생생한 감각은 사라진 것 같아 조금 우울합니다 ㅎㅎ

마노아 2007-07-27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찍은 이의 시선도 이 속에 담겨 있군요. 역시나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

turnleft 2007-07-27 16:23   좋아요 0 | URL
"부러움" 같은건 안 느껴지십니까? ^^;
그러고보니 저 때는 저도 연애 중이었던 것 같긴 하네요.

twinpix 2007-07-27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선입니다. 어찌보면 강력 염장 사진이기도 하겠네요. 솔로는 그저..... 컴퓨터를 할 뿐입니다. 'ㅁ';;;;

turnleft 2007-07-28 00:26   좋아요 0 | URL
염장이라뇨. 저런 장면 앞에선 그냥 이렇게 한 번 읊조려 주세요. "좋~~ 을 때다"(응?)

2007-07-27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8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8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8 0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28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사진을 올리셨던 거에요? 사진이 전 안 보여요.^^

turnleft 2007-07-28 09: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혜경님. 사진 지금도 잘 보이는데.. ^^;
F5 눌러서 다시 한 번 시도해 보세요;;

프레이야 2007-08-01 14:18   좋아요 0 | URL
네, 보여요^^ 흑백사진의 거친 질감이 오히려 따뜻하고 꾸밈없는
인상을 줍니다. 좋은사진과 글이네요..
 



 

꽤 먼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운전에 지쳐 잠시 쉬었다 가겠다고 한 도시의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책을 읽으며(아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습니다. 짧았던 휴가가 끝나는게 아쉽기도 했지요. 이 날 하루도 거의 저물어 가는데 집에 가려면 아직 먼 길이 남아있고, 그렇게 들어가 하루 쉬고 다시 일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으니까요. 맨날 피곤하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휴가(休暇)마저도 실제 쉬는(休) 것과는 거리가 멀게 보내는건 도대체 무슨 조급증일까 싶더군요. (이러면서도 올해 휴가는 어디로 갈까 고민 중입니다만)

그 때,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말쑥한 옷차림에 옷매무새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단정한 노신사셨습니다.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이신지, 아니면 어디 가시는 길에 잠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휴일 오후의 카페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죠. 하지만 그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던건, 흐트러짐 없는 그 모습에서 넘쳐나는 여유였습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신문지를 천천히 훝는 당신의 눈길에 어떤 서두름이나 조급함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당신의 주변으로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일주일의 휴가를 보내고 있던 나는 반바지에 허름한 티셔츠를 입고 의자에 널부러지듯 앉아 있으면서도 흘러가는 시간을 잡지 못해 마음은 안절부절이었죠. 반면 당신은 단추 하나 글러지지 않은 모습으로도 온전히 현재에 집중하며 그 순간을 즐기고 계셨습니다. 단지 물리적인 시간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여유란 얼마만큼의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차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도 그게 연륜이겠죠. 저도 저 나이쯤 되면 지금의 이 조급증을 어느 정도 덜어내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휴가의 끄트머리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ps. 책읽기 만큼이나 저는 매혹시키는 취미는 "사진" 입니다. 요즘 사진 찍으시는 분들이 워낙 많으니 별로 새로울건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찍어왔던 사진과 단상을 곁들여 페이퍼로 올릴까 합니다. 사진에 글을 다는건 이전에 시도해본 적이 없는지라, 너무 작위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하네요. ㅠ_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7-2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 직접 찍으신거에요? 할아버지의 그때 그 느낌이 고스란히 실려있습니다.

마노아 2007-07-25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히 인간미가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글도 좋지만요. 종종 보았으면 좋겠어요. ^^

twinpix 2007-07-2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집니다.^^ 자주 들릴게요.

나메코 2007-07-26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콘트라스트가 정말 좋은 사진이네요. 전문가 사진인줄 알았는데 직접 찍으셨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앞으로 사진 페이퍼 기대 할께요. ^^

turnleft 2007-07-26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사실, 이렇게 좋은 말씀들 들으면 헤벌쭉 해가지구 우쭐해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아프간에서 날아온 비보에 우울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네요. 고인의 명복을 빌며, 남은 분들이나마 무사히 돌아오시길 빌어봅니다.

다락방 2007-07-26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맙소사.
정말정말로 사진이 좋은데요! 글을 읽기 전에 사진을 어딘가에서 오려오신줄로만 알았어요. 앞으로 TurnLeft 님의 사진이 기대되요.

비로그인 2007-07-2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건 정말이지...
<에스콰이어>나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한 페이지에서 빠자나온 듯한 사진이군요 :)
이런 사진을 올리시고는 겸손한 페이퍼라니 ㅎㅎ
추천 한방 때리고 갑니다 :)

turnleft 2007-07-2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런.. 사실은 저도 제가 찍은 사진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 이후에는 사진 퀄리티가 점점 떨어질텐데 부담이 팍팍 되네요 ^^;
체셔님// 후훗 추천 감사합니다. 신경 쓸 일도 많고 우울한 일도 많고 해서 머리가 좀 아팠는데, 힘을 좀 내야겠습니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