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방> - 강미정

너, 아니? 가슴에도 끝방이 있다는 것 말이야
불꺼진 방 모서리를 지나 어두운 계단을 딛고 올라서서
다시 수많은 어두운 방을 돌고 돌아가는 끝방,
막다른 골목 같은 방
어둠을 담았던 쓰레기통을 씻어 말리고
어두운 방을 닦았을 걸레가 겹쳐져 널려 있는
그 옆, 고독하고 긴 복도를 닦은
밀대걸레가 세워져 조용히 말라가는 그런 방,
난 그 방 앞에서
똑똑,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간 가만히 내려
무슨 소린가 끊임없이 들리다가도 귀를 갖다대면 고요해지지
문을 열면 환하게 텅빈 방이 되어버리지
너 아니? 가슴에도 끝방이 있다는 것 말이야
여러 개의 어둔 방 모서리를 돌고 돌아가면
맨 끝에야 다다르는 막다른 골목 같은 방
수많은 빈 방 지키며 부르는 노래 간혹간혹 들리는
그 끝방, 가장 많이 아픈 아픔이
가장 많이 기다린 기다림이 산다는 방,
난 그 방을 들여다 볼 수가 없어 너무 화안해서
눈을 감고 말아, 눈을 감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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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7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8 0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Little Nemo in Slumberland

Winsor McCay 지음

"잠의 나라의 어린 니모"는 1905년에서 1913년까지 New York Herald 와 William Randolph Hearst's New York American 신문 일요일판에 매주 연재되었던 만화(Comic-Strip)다.(1924년 Winsor McCay는 다시 한 번 Nemo를 지면에 되살려내지만, Nemo라는 작품의 생명력은 아무래도 초기 작품에서 더 생생하게 드러난다) Nemo가 처음 신문지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1905년은 Comic-Strip 이라는 형태가 처음 등장한 후 10년도 채 안 되었던 시기였는데, Winsor McCay는 Nemo를 통해 그 때까지의 모든 형식적 시도들을 일거에 정리시키고 Comic-Strip의 기본 형태를 확고하게 정착시키는데 성공한다. 물론 Comic-Strip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붙는 수사는 Richard F. Outcault의 "The Yellow Kid"에게 돌아가지만, "The Yellow Kid"가 열어놓은 세계를 완전히 정착시킨 것은 Winsor McCay와 Nemo의 공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The Yellow Kid"가 시간이 지나면서 신문사 간의 무리한 경쟁과 상업주의에 물들어 Yellow Journalism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의 유래가 된 것에 비해, "Little Nemo in Slumberland"는 끝까지 꾸준한 작품성을 유지했던 것도 좋은 대비를 이룬다.

오랜 기간 연재되었지만 Little Nemo의 기본적인 구성은 동일하다. Nemo는 꿈 속에서 Slumberland를 여행하면서 온갖 모험을 하게 되고, 마지막 컷에서는 항상 그의 작은 침대에서 잠을 깨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꿈의 배경인 Slumberland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초현실적 공간이다. 그 속에서 왕인 King Morpheus와 Princess, Flip, Imp 등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Nemo의 모험을 이끄는데, 어떤 모험을 했느냐에 따라 Nemo는 마지막 컷에서 울면서 잠에서 깨기도 하고,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꿈에서 깬 것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혹자는 Winsor McCay가 프로이트보다도 꿈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한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Little Nemo에서 그려지는 꿈의 세계는 일부 프로이트파 학자들에 의해서 분석되기도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실제 경험하는 꿈의 세계의 특징을 상당히 잘 짚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데, Slumberland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서 Nemo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Nemo는 모든 사건들을 겪는 당사자이지만, 꿈을 예측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건 외부적인 사건들이거나 Flip의 장난의 결과다. 그 외에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이라던가, 갑자기 주변의 사물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던가 하는, 어렸을 때 누구라도 경험해보았을 꿈들을 Winsor McCay는 아름다운 그림과 색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Slumberland는 그의 상상력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공간이고, 이 상상력은 그의 손을 거쳐 형상화가 되는데, Winsor McCay는 거장이라 불리우는데 손색이 없는 탄탄한 일러스트로 Slumberland를 아름답게 재현해낸다. 아마 Nemo 가 끝까지 일관된 작품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누구도 Winsor McCay 만큼의 수준 높은 일러스트를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끝까지 작품을 직접 만들어내야만 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너무 오래된 만화라서 그런지, 국내에는 Nemo 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니모"로 검색을 하면 "니모를 찾아서"에 관한 내용만 잔득 나온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봐도 Little Nemo in Slumberland 는 책을 읽는 아이와 어른 모두 충분히 즐거워할만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특히 일러스트나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꼭 한 번 봐야할 책이 아닐까도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국내에도 Little Nemo가 정식으로 출판될 날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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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 진짜 신기하네요... 그림이 .. 그런데 이게 오래된건가봐요? 그렇구나...

turnleft 2007-08-07 03:43   좋아요 0 | URL
20세기 초반이니까 거의 100년 전 작품이네요. 으... 100년이라니, 상상도 잘 안 가네요 @_@

Joule 2008-10-04 0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체가 TinTin류의 벨기에 만화 같아요. 오랜만에 아마존에 쇼핑하러 가야겠군요.

(잠시 후)

근데 이거 어떤 버전을 사는 게 가장 좋을까요. 괜히 어설프게 구입했다가 추가 구입할 때 내용 중복되면 마음 아프잖아요.

turnleft 2008-10-04 06:15   좋아요 0 | URL
저도 다양한 판본을 본게 아니라서.. -_-;

최소한 best 류는 사지 마세요. 이게 쭉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에 best 는 이야기가 전혀 흐름이 생기지 않더라구요. 돈은 좀 많이 들겠지만 전집(The Complete.. 로 시작되는) 쪽을 사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굳어 있는 조각에서 어찌 이리도 저릿한 관능미가 흘러 넘치는가.

로미오 & 쥴리엣. 센트럴 팍,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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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굿-
이런걸로 서재대문 하면 어때요? 멋지다~

turnleft 2007-08-06 17:47   좋아요 0 | URL
쿠.. 그럴까요? 근데 서재대문을 어떻게 만들더라.. -_-a
 



Seattle QueerFest 2007 행사 중 언니(?)들의 Dream Girls 공연.

예전에 꽤 인상깊게 봤던 영화 중 하나가 <타인의 취향>이라는 영화였는데(사실 다시 보려고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대여기간 내에 보지 못하고 결국 그냥 돌려줬다. 흠흠;;), 영화 내용하고는 별개로 나는 이 <타인의 취향>이라는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었다. 나랑 취향이 다르다고 해도 그걸 인정해줄 줄 알아야 한다.. 뭐랄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스스로가 대견하지 않은가 싶어 으쓱했었던 것 같다.

근데,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더라, 라는 지식과 실제 그런 사람들을 눈 앞에서 바라보며 이야기하는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더라. 솔직히, 난 그들에게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여자가 되고 싶다는(이건 사실 취향이라기보다는 정체성의 문제지만) 것도, 화장을 해서 예뻐보이고 싶다는 것도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버리기는 쉬운데, 그게 도무지 어떤 느낌인지 와 닿지가 않는거다. 생각해보니 <타인의 취향>은 결국 그저 "타인"의 취향일 뿐 내 취향이 될 수는 없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언제 "이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걸까 싶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언니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춤솜씨를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환호하는 사람들. 그들의 환호에 얼굴 가득 웃음을 싣고 더욱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래, 참 행복해 하더라. 나 따위가 그들을 이해하든 말든,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걸 하면서,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면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복을 내가 인정하고 말고가 어딨나. 그건 이해를 가장한 오만이었다. 나는 '다수'에 속한다는 안도감이 허락했던 배부른 관용.

공연이 끝나고, 당신들의 행복할 권리 앞에 나는 박수로 화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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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때론 더 중요한것 같아요.. 설사 이해되기는 어려워도.. 그래도 그걸 받아들이려 한다는 게 어디예요 ..그쵸? !

turnleft 2007-08-06 01:45   좋아요 0 | URL
그쵸. 이해가 되건 안되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겠죠. 하지만, 또 모든걸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고민이 남아요. 전두환을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 기준이 무엇인가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전두환의 경우야 워낙 극단적이라 할 말이 있지만, 좀 더 미묘한 경우들도 많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이번 아프간 선교도 종교적 신념을 실천할 자유와 그 외의 많은 이유들이 상충하는 경우인데, 막무가내로 신념의 자유가 우선한다고 밀어붙이는 것도 문제지만 거꾸로 손쉽게 '니들이 잘못한거야'라고 단정지을 수만도 없다고 봐요. 충돌하는 자유 사이의 조정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과제인데, 상황이 엄혹해서 그런지 별다른 고민 없이 일방적인 비난과 또 그에 대한 일방적인 반응만이 난무하는 것 같아서 참 답답하더군요. 수경님 말처럼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은데 말이죠.
 



그저 이러고 노닥거리는게 딱인데.. 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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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8-04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원이군요^^

turnleft 2007-08-05 00:51   좋아요 0 | URL
제가 저러고 있어야 낙원이죠. 남이 저러고 있으면 그냥.. 뭐..;;

마늘빵 2007-08-0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에 한 명 더 있음 더 좋겠는데요? :)

turnleft 2007-08-05 12:32   좋아요 0 | URL
무릎베개하고 말이죠? :)

네꼬 2007-08-06 11:51   좋아요 0 | URL
좌회전님, 정확하시다-

turnleft 2007-08-06 12:40   좋아요 0 | URL
나이 들면 느는게 몇 있는데, 뱃살, 주름, 흰머리, 그리고 눈치... 정도인 듯.. (흑, 쓰고 보니 슬프다)

다락방 2007-08-1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는 한명 더 없어도 될것 같은데.) 저 분위기에서 저러고 있는데 한명 더 있으면 귀찮을 듯. --;;

다락방 2007-08-1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urnLeft님, 저 이 사진좀 퍼가도 될까요?

turnleft 2007-08-19 16:26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