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축하합니다!

 

'내이름은 빨강' 느무느무 좋게 읽었던지라, 파묵의 수상이 기쁘다.
올해도 후보로 거론된 사람은-- 바르가스 요사(어쩐지 정이 안 가는), 아모스 오즈(이 사람이 수상해도 굉장히 기뻤을 터이지만), 아도니스(통 접하기 힘들어서 잘 모르겠음), 고은 시인(문학성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걸 우리도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나;;)...

파묵의 수상- '받을 사람이 받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이름은 빨강' 이외의 다른 소설을 사실 읽지 못해서 단언하긴 힘든데, 98년 작품으로 2006년 상받았으니 노벨상 싸이클이 엄청 빨라지긴 한 모양이다. 과학분야에서는 업적과 수상 사이 시차가 최근 급격하게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젠 문학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라면 좀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진정 권위로운 상이라면, 특정 소설에 국한된 상이 아니라 작가의 모든 것에 대해서 주는 (노벨문학상은 그런 측면이 많으니깐) 것이라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오랜 동안의 평가 말하자면 '검증'이 철저하게 이뤄진 뒤에 한참 지나서 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도 든다.




파묵의 책 중에서, 유독 읽고 싶은 것이 있다. '이스탄불' 이라는 작품인데 작년에 나왔으니 신간이라면 신간이다. 아직 국내 번역 안 됐고 영어로 된 걸 살까 하다가 말았는데... 노벨상 탔으니까 이제 곧 번역돼 나오겠지? 이 작가가 이스탄불을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해 죽겠당...

 

Turkish Writer Wins Nobel in Literature

Published: October 12, 2006

LONDON, Oct. 12 — The Turkish novelist Orhan Pamuk, whose exquisitely constructed, wistful prose explores the agonized dance between Muslims and the west and between past and present, won the 2006 Nobel Prize in Literature today.

Tolga Bozoglu/European Pressphoto Agency

Orhan Pamuk was interviewed in Istanbul on Sept. 15.

Announcing the award from Stockholm, the Swedish Academy said in a statement that Mr. Pamuk’s “quest for the melancholic soul of his native city” had led him to discover “new symbols for the clash and interlacing of cultures.”

Mr. Pamuk, 54, is Turkey’s best-known and best-selling novelist but also an increasingly divisive figure in a nation pulled in many directions at once. A champion of freedom of speech at a time when insulting “Turkishness” is a criminal offense, he has run afoul of Islamists who resent his Western secularism, and Turkish nationalists who object to his unflinching, sometimes unflattering portrayal of their country.

The Swedish Academy never offers nonliterary reasons for its choices and presents itself as being uninfluenced by politics. But last year’s winner, the British playwright Harold Pinter, is a prominent critic of the British and American governments, and there were political implications once again in the choice of Mr. Pamuk.

The Conversation With Orhan Pamuk“You’re beginning to notice a certain sensitivity to trends — they are giving the prize as a symbolic statement for one thing or another,” Arne Ruth, former editor-in-chief of the Swedish daily Dagens Nyheter, said in an interview. Of Mr. Pamuk, he said: “he is a symbol of the relationship between Europe and Turkey, and they couldn’t have overlooked this when they made their choice.”

Mr. Pamuk, who said in 2004 that he has begun “to get involved in a sort of political war against the Turkish state and the establishment,” is currently spending a semester teaching at Columbia University in New York. Nationalist Turks have not forgiven him for describing the Turkish campaign against the Armenians during the First World War as genocide — a matter of bitter contention — and last year he narrowly escaped prosecution when a group of nationalists began a criminal case against him for remarks they considered anti-Turkish.

Because of the deeply mixed feelings Mr. Pamuk inspires back home, some prominent Turks had to walk a fine line today, expressing pride while trying to play down the significance of his political views.

“I want to believe that the Nobel Prize was given to him purely on his literary talents, but not political declarations,” Egemen Bagis, a member of Parliament from the ruling Justice and Development party, said. At the same time, Mr. Bagis said that the prize “shows how far Turkey has come in its contribution to the world’s arts and literature.”

In a brief interview with the Swedish newspaper Svenska Daglabet, Mr. Pamuk said today that he was “very happy and honored” and trying “to recover from the shock.”

Born to a wealthy, secular family of industrialists in Istanbul in 195, Mr. Pamuk originally meant to be an architect. But he defied family pressures, quit architecture school and became instead a full-time writer, publishing his first novel, “Cevdet Bey and Sons,” about three generations of a family, in 1982.

Among his best known works is “My Name is Red.” The novel, first published in Turkey in 1998 and subsequently translated into 24 languages, introduced Mr. Pamuk to a wider audience and cemented his international reputation. Set over nine winter days in 16th-century Istanbul, it is at once a mystery, an intellectual puzzle and a romance with a range of narrators, including a murder victim who opens the novel by saying, “I am nothing but a corpse now, a body at the bottom of a well.” In 2003, it won the $127,000 IMPAC Dublin literary prize.

“Nothing changed in my life since I work all the time,” Mr. Pamuk said at the time. “I’ve spent 30 years writing fiction. For the first 10 years, I worried about money and no one asked me how much money I made. The second decade I spent money and no one was asking me about that. And I’ve spent the last 10 years with everyone expecting to hear how I spend the money, which I will not do.”

“Snow,” published in the United States in 2004, expands further on themes — alienation, religion, modernization, the hidden corners of Turkey — that Mr. Pamuk has explored over and over in his work. Writing in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Margaret Atwood called the novel “not only an engrossing feat of tale-spinning, but essential reading for our times.” The Turkish public reads Mr. Pamuk’s work, she said, “as if taking its own pulse.”

Ms. Atwood continued: “The twists of fate, the plots that double back on themselves, the trickiness, the mysteries that recede as they’re approached, the bleak cities, the night prowling, the sense of identity lost, the protagonist in exile — these are vintage Pamuk, but they’re also part of the modern literary landscape.”

Mr. Pamuk was quick to denounce the fatwa against Salman Rushdie over Mr. Rushdie’s work “The Satanic Verses.” In 1998, he turned down the title of state artist in Turkey, saying, “I don’t know why they tried to give me the prize.”

Mr. Pamuk’s Nobel comes at a particularly tricky moment for Turkey, whose efforts to join the European Union are viewed with suspicion by its own nationalists, by Europeans who worry about the country’s high proportion of Islamists, and by European governments, who are insisting that it first adhere to Western standards in human rights and justice.

Coincidentally today, a bill that would make it a crime to deny that the Turkish killing of Armenians from 1915 to 1917 constituted genocide was passed in the lower house of the French Parliament. And from Armenia, the foreign minister, Vartan Oskanian, praised what he said were Mr. Pamuk’s courageous words about the past, in a statement that is bound to irritate Turkey.

“Orhan Pamuk ventured into issues of memory and identity, and with intellectual courage and honesty, explored his own history, and therefore ours,” Mr. Oskanian said in an e-mail message to The New York Times. “We welcome this decision and only wish that this kind of intellectual sincerity and candor will lead the way to acknowledging and transcending this painful, difficult period of our peoples’ and our countries’ history.”

Reporting was contributed by Ivar Ekman from Stockholm, C.J. Chivers from Moscow, Nina Bernstein from New York and Sebnem Arsu from Istan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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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1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이 참에 몇 작품 더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수퍼겜보이 2006-10-1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남이네요~! ^^a

마노아 2006-10-13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훨씬 잘 생겼네요. ^^;;;
 

러시아에서 나치즘을 연상케하는 극우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인종차별 바람이 불고 있다. 옛 소련 해체 이후 기승을 부렸던 배타적인 민족주의에 크렘린의 정치적 계산이 겹쳐져 소수민족, 유색인종을 겨냥한 차별과 공격이 빈발하고 있는 것.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10일 러시아 정부가 국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불만을 희석시키기 위해 인종차별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민노동자 축출 등으로 이어지는 극우파들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기사를 실었다.


알렉산더 벨로프는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인종주의 행동단체 `불법이주반대운동'(DPNI)을 이끌고 있다. 주로 반(反)이민 거리시위 등에 집중하고 있는 DPNI 같은 단체의 활동이 러시아에서는 과격 일탈이 아닌 하나의 정치적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불법 이주 반대'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실제 이들의 행동은 배타적인 러시아 제일주의, 인종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소수민족들에게서 정치·경제적 불만의 희생양을 찾는 현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얼마 전 출간된 벨로프의 저서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극찬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는 옛 소련에서 독립한 뒤 친서방 노선을 걷고 있는 그루지야와 갈등을 빚고 있는데, 푸틴 대통령은 최근 그루지야계의 러시아 내 기업 활동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독일 나치 만행 피해자 추모단체인 ‘러시아홀로코스트기금’의 알라 게르베르 회장은 "푸틴과 벨로프가 말하는 내용은 완전히 똑같다"며 "러시아는 러시아인들을 위한 국가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DPNI 같은 인종주의 그룹은 모스크바에서 점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DPNI이 크렘린의 배후 조종 혹은 지원을 받는 것으로까지 의심하고 있다.


외신들은 러시아 곳곳에서 최근 소수민족을 핍박하고 공격하는 일들이 잦아졌다고 전한다. 지난 8월 북부 콘도포가 지역에서는 엿새 동안 소요가 일어나 3명이 숨졌다. 주민 다수를 차지하는 러시아계와 아시아계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아시아계 주민 수백명이 다른 지역으로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

지난 6개월 동안 사라토프, 치타, 로스토프, 아스트라칸, 이르쿠츠크 등에서 잇달아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한 조사에서는 러시아인들 57%가 "콘도포가 사건과 같은 일이 내가 거주하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다른 조사에서는 52%가 "러시아는 러시아인들의 나라이므로 비(非)러시아계 주민들을 제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증오범죄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소바센터의 갈리나 코체프니코바는 CSM 인터뷰에서 "콘도포가 사건 같은 사회적 폭발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통제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코체프니코바는 특히 러시아 정부가 대중들의 인종차별 정서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푸틴 정부는 체첸 등 러시아 내 소수민족을 억압하고 언론, 출판 등 정치적 자유를 교묘하게 탄압, 서방국가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수단으로 DPNI 같은 우익단체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인종주의가 푸틴 정부마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돼 유혈폭력사태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달초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옛 소련 지역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지방, 러시아 남부 자치공화국 등에서 쏟아져들어온 범죄자들 때문에 테러소굴이 되고 있다"면서 "그들로부터 러시아 원주민 인구를 지키고 러시아의 산업적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익단체들의 주장과 매한가지다. 푸틴 대통령 발언 직후 모스크바 경찰은 시내 카지노, 식당, 중소기업 등 그루지야계 사업체 여러곳을 압수수색하고 문 닫게 했다. 지난 6일에는 그루지야 정부가 러시아 군장교들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한데 대한 보복으로 그루지야계 `불법 노동자' 150명을 체포, 돌려보냈다. 교육당국은 공립학교 학생들 중 그루지야계 이름을 가진 아이들의 명단을 작성토록 일선 학교들에 지시했다.

이 조치 이후 이미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해 살고 있는 외국계 주민들 사이에서도 공포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작가 보리스 아쿠닌은 "검은 머리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이상 러시아에선 안전하지 않다"면서 "러시아가 인종혐오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


 

   '여기자 피살' 파장 속, 푸틴의 독일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0일 독일을 방문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등 에너지 공급협상 때문에 독일을 찾았지만 정작 푸틴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것은 최근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여성 언론인 피살사건이었다.

옛 동독지역의 유서깊은 도시 드레스덴에서 푸틴 대통령을 맞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청부살인자들에게 피살된 저널리스트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사건을 거론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증거"라고 푸틴 대통령의 언론 자유 제한을 대놓고 비판했다. 정상회담에 앞선 기자회견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러시아군의 체첸인 학살 등을 비판해왔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지난 7일 자기 아파트에서 총격을 받고 살해된채 발견됐다. 10일 치러진 장례식에는 모스크바 시민 수천명이 모여 눈물바다를 이뤘다. 폴리트코프스카야가 일했던 신문 노바야가제타 측은 당국의 수사 의지를 못 믿겠다면서 2500만 루블(약 9억2000만원)의 현상금까지 독자적으로 내걸었다.

푸틴대통령은 당국의 미온적인 대응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끔찍한 범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처벌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폴리트코프스카야는 러시아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또 "전세계에서 반(反)러시아 감정을 불러일으키려는 자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하필 드레스덴은 1980년대 옛 소련 정보국(KGB) 지사가 있던 곳으로, KGB 출신인 푸틴대통령이 1980년대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번 회담을 둘러싸고 독일인들은 동독을 쥐락펴락했던 KGB와 푸틴 대통령의 과거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미묘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AFP통신 등 외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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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1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6-10-1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알겠습니다. :)
 

회사 식당에서 점심먹다가 급히 사무실로 내려왔다.

밥 얹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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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09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가을산 2006-10-09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네파벨 2006-10-0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거 병적으로 무서워하는데...(전쟁 위협이 대두될때마다 거의 패닉 상태로 암것도 못하고 우울..절망..)
뭔가..시사적 분석에 밝으신 딸기님께서 위로가 될 말이라도 한 마디...ㅠ.ㅠ

페일레스 2006-10-11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님, 잘 지내시나요? ^^

딸기 2006-10-11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군도 안녕 *^^*
 

아프리카를 운 좋게 세번이나 다녀오게 됐다. 이집트(북아프리카)를 빼고도 다섯 나라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케냐. 사실 아프리카 갔다왔다고 말하려면 이 두 나라는 가봐야 하는데(그 전에 내가 가봤던 토고, 시에라리온 이런 나라들로는 '명함'을 내밀기가 힘들다;;) 기회가 생겼으니 얼씨구나 좋아라 했다.
이번 출장은 회사에서 벌어진 자잘한 에피소드?들 때문에 기분이 좀 언짢은 부분도 있었고, 다녀와서도 개운치가 못하다. 하지만 출장 아닌 '여행'으로 생각하고 보면 '감격 100%의 여행'이었다. 다만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초원의 사파리, 마른 호수 바닥을 달리는 기분, 회오리 기둥과 신기루, 사자의 사냥, 레이저빔처럼 나를 쏘아버린 은하수, 희망봉의 평원에서 바람을 맞던 순간, 고래의 도약, 펭귄 바닷가, 흑백/빈부에 따라 두 개의 세상으로 나뉘어버린 남아공, 강도가 무서워 해진 뒤에는 돌아다닐 수도 없었던 요하네스버그, 도자기 화로 속 숯불이 빛나고 있던 나이로비의 까페, 그런 것들을 어떻게 말로 생생히 전달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경제도시 요하네스버그의 샌튼 거리에는 흑인과 백인 국민들 모두에게 영웅으로 추앙받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만델라 스퀘어라는 광장이 있다. 이 광장 주변에는 서울 강남 뺨치는 호화 쇼핑몰과 레스토랑들, 금융기관과 호텔들이 몰려 있다.
지난 25일 요하네스버그 구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는 샌튼을 찾았다. 1990년대 이래 기업 활동이 옛 도심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곳은 백인 상류층과 흑인 신중산층, 중국인과 인도인 등 유색인종들, 관광객들이 한데 모이는 호화로운 상업지역으로 변신했다. 흑백 분리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는 샌튼은 이제는 2010년 월드컵 개최를 앞둔 남아공의 경제개발 붐을 상징하는 새로운 도심이 돼 있었다.

# 흑인도, 백인도 "정치 대신 경제"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고(高) 유가, 그에 연동된 금·은·백금·구리 등 천연자원 가격 급등 덕에 남아공 증시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고, 남아공의 화폐인 랜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남아공은 과거 백인정권 시절 인종차별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제재를 당할 적에 석탄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액화기술을 개발했다. 고유가 시대에 이 기술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견학을 올 정도다.
1990년대 연간 10% 이상을 기록했던 인플레는 2000년대 들어와 4~5% 수준으로 안정됐다. 반면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로부터의 이주민이 끊이지 않는 남단 케이프타운의 경우 집값 상승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케이프타운에 거주하는 교민 이강하(38)씨는 "남아공의 발전은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다"면서 "2년전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살만한 물건이 없었는데 요새는 남아공 자체 브랜드도 많고 공업 제품 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샌튼의 만델라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던 흑인 청년 에드가(28)와 마이크(33)는 "외국 투자도 많아진다고 하고, 나라가 발전한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들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서 "빈부격차 같은 문제가 크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백인들이 떠나간 요하네스버그 구시가지 스몰(Smal) 스트리트에는 PC 트레이닝 & 비즈니스 컬리지라는 기술학교가 들어섰다. 아직까지 인구 80%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교육수준은 높지 않다. 정부는 유.소아 무상의료, 흑인 교육 확대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사설 기술학교들도 늘고 있다. 교민 허문준씨는 "젊은 세대들의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1~2세대가 지나면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인 상권과 흑인 거리, 인도계가 장악한 오리엔탈 플라자 주변 지역과 차이나타운 등 `무지개 국가'라는 별명답게 요하네스버그는 다양한 색깔로 모자이크되어 있다. 1994년 흑인정권 출범 이후 12년, 이제 사람들의 마음은 정치보다 경제로 확실히 이동해간 듯 했다.



요하네스버그 신도심 샌튼의 넬슨만델라 스퀘어.
왼쪽편에 있는 동상이 할아버지랍니다. 이번 출장 통해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다시 한번 절감.
그런데 할아버지 동상이 굽어보는 광장에 백인 중산층과 관광객만 있다는 건
누가 뭐래도 아이러니로 느껴지더군요.



건물들 마구마구 올라가고 있는 샌튼의 모습



케이프타운 센츄리시티의 화려한 쇼핑몰
(서울에서도 강남 같은 곳 안 가보는 저에게는, 간만의 '도시 나들이' 였답니다)



요하네스버그의 두 얼굴, '흑인 마을' 알렉산드라의 빈민가입니다.


# `동물의 왕국'은 없다

모잠비크와 보츠와나 등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를 축으로 남아프리카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남아공이라면, 아프리카 동부에서는 케냐가 우간다 및 탄자니아와 동아프리카경제공동체(EAC)를 만들어 개발 붐을 이끌고 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조모 케냐타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뭄바사 로드는 차량으로 붐비고, 하일레 셀라시에 교차로를 지나 의사당과 관공서가 몰려 있는 다운타운은 번화하기가 아시아의 어느 수도 못지않다.
나이로비의 랜드마크라는 케냐타 컨퍼런스 센터를 중심으로 한 도심은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답게 매연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곳에서 자연 다큐에 나오는 것 같은 `동물의 왕국'을 보려면 멀리 외곽으로 대여섯 시간은 차를 타고 나가야한다. 삼성전자 나이로비지점의 박한배 지점장은 "나이로비에서 돈 벌어 지방에 있는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케냐판 기러기아빠들도 많다"고 현지인들의 교육열을 소개했다. 발전의 길에 들어선 케냐에서 사업 약속이나 회의에 늦는 `아프리칸 타임'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케냐는, 공항에서 비자 받을 때도 그랬고, 절차가 제대로 진행된다는 느낌. 경험상 가나 Ghana 는 절차가 진행은 되는데 무쟈게 느리고, 토고 Togo 는 절차를 진행 안 시키고 뇌물을 뜯는다...고나 할까)



나이로비의 번화가-- 매연 때문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어요;;



옥수수처럼 생긴 건물은 조모 케냐타 컨퍼런스 센터. 나이로비의 상징 같은 건물이고요,
조모 케냐타는 케냐를 건국한 초대 대통령의 이름이랍니다.



두 달 전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 워싱턴 헤리티지재단에서 연설하면서 "아프리카는 코너를 돌아나왔다"는 말을 했다. 빈곤, 질병과의 싸움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프리카의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발전 도상의 아프리카가 "1960년대 높은 교육열과 근면성으로 경제를 일군 남한과 닮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재섭는 자가 우리랑 아프리카를 언급하는 것이 어째 좀 거시기하네? 칭찬은 고맙다만)
특히 동부, 남부 아프리카의 개발 붐은 세계적인 관심거리다. 이집트 남쪽 인도양에 면한 수단은 석유 수출을 통해 번 돈으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들을 시작했다. 수도 카르툼에는 연일 건물이 들어서고, 정보통신(IT)기술 붐이 시작됐다. 다르푸르 지역의 무슬림-기독교 분쟁으로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제 전반은 급상승 중이다.

# 부패, 에이즈 장애 넘어야

가난의 대명사였던 남서부 앙골라는 나이지리아에 이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제2의 산유국으로 부상했다. 확인된 석유매장량 250억 배럴, 매장량으로만 치면 세계 13위다. 석유수출구기구(OPEC)는 수단과 앙골라를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앙골라는 최근 OPEC 회의를 유치, 수도 루안다에 대형 컨벤션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아직 빈곤선 이하 인구가 전체의 70%에 이르는 빈국이지만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무려 19.1%에 이르렀다.
1990년 남아공에서 독립한 나미비아는 유럽, 미국 등지에서 온 부자들의 휴양지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관광수입이 급격히 늘고 있다. 보츠와나와 모잠비크도 1990년대 이래 꾸준히 경제개발을 추진해온 덕에 빈곤과의 전쟁에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남아있는 문제들도 많다. 가장 큰 사회불안 요인은 빈부격차와 부패다. 케냐의 경우 2001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정부 관리들의 부패를 이유로 차관 제공을 일시 보류했었고, 최근에는 세계은행이 같은 이유로 원조를 중단하는 사태를 만났다. 음와이 키바키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부패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대부분 국가들이 인프라 부족과 치안 불안 같은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에이즈로 인해 노동력이 잠식되고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일단 시동이 걸린 만큼 아프리카의 빈곤은 바닥을 쳤으며 발전의 `속도'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내다보고 있다.




■ DRC를 잡아라

신흥 석유부국으로 떠오른 앙골라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서방 투자자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은 콩고민주공화국(DRC)이다.
아직까지도 `자이르'라는 옛 이름으로 더 익숙한 DRC는 아프리카 중앙에 234만㎢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 한반도 10배 크기 땅에 개발되지 않은 천연자원들이 넘쳐나는 곳, 한국 교민의 말을 빌자면 `아프리카 한가운데의 무주공산'이 바로 DRC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르완다, 부룬디 등 주변 국가들과 함께 격렬한 유혈 분쟁을 벌였던 DRC는 지난 몇 년 동안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전의 극심한 혼란이 가신 것과 함께 DRC는 막강한 성장 잠재력으로 서방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확인된 석유매장량은 15억 배럴, 중동 국가들이나 인근 앙골라 등에 비하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우라늄 아연 같은 다른 광물자원들이 많다. 무려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전략요충지로 정치적 중요성도 크다. 콩고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사하라 남쪽 주변 아프리카국가들과 달리 가뭄 걱정도 적은 편이다.
내전 종식 뒤 조셉 카빌라 대통령이 이끄는 거국 과도정부는 국가 재건 과정을 무난히 진행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7월30일 역사적인 민주선거를 치렀지만, 아직 대선 결과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결과에 따라 정국 향방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카빌라 대통령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정불안이 가라앉으면서 서방 기업들은 DRC를 향해 쇄도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DRC 남부 광업 중심지 루붐바시에 외국 자본이 갑자기 밀려들고 서양인 광산기술자들이 넘쳐나 지역민들의 원성을 살 정도라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도 몇몇 기업들이 DRC 진출을 노리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고 있는 한 교민은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DRC의 구리를 채굴하려 하니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DRC와 한국은 1963년 국교가 수립됐으나 관계가 소원했다. 지난해 3월 카빌라 대통령이 방한해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한 뒤 킨샤사 상주공관이 생겨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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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09-29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고와 가나의 비교가 와 닿네요. 남아공의 극과극은 모랄까? 그래도 희망이 보이기는 한거죠? 우리 앞가림도 잘 못하면서 다른 나라를 이렇게 본다는게 좀 웃기지만...
좋은 곳 다녀오신거같아요.설마 이게 끝인가요?

비연 2007-01-02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슴다...아프리카 여행 가는 게 소원인 저로선...
 

아득한 옛날 천상세계를 다스리던 상제(환인)에게는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환웅은 언제나 지상을 내려다보며 인간세상을 꿈꿔오다가, 아버지로부터 천부인(天符印)을 받아 삼위태백으로 내려간다. 환웅은 곰에서 사람이된 웅녀와 만나 단군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단군신화의 내용이다.

역사가 오랜 대부분의 민족과 나라들은 자기네들만의 창조설화, 건국설화를 갖고 있다. 공동의 뿌리를 담은 이런 신화와 설화들은 민족·부족집단의 통일성과 자긍심의 원천이 되기도 했고, 전근대사회에서 통치자들의 정통성을 나타내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쓰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건국 영웅들의 이야기는 후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본보기가 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단군으로부터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개천절을 맞아 세계 곳곳의 민족기원신화를 알아본다. (무슨 말투인지 아시겠지요... 내가 왜 이런 걸 쓰고 있어야 하는건지) 특히 아시아 각국의 신화에는 단군신화의 모티브들과 겹치는 것들이 많다.

#곰의 자손, 뱀의 자손

캄보디아가 자랑하는 앙코르 유적지의 돌다리들에는 코브라 모양이 새겨진 난간이 붙어 있다. 머리 일곱 달린 이 코브라를 `나가'라 부른다. 나가의 머리는 7개의 큰 바다를 뜻하고, 몸통은 신과 인간세상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옛날 뱀의 신 나가 왕의 딸인 소마공주는 서쪽 먼 나라에서 온 캄부라는 왕자와 결혼해서 아들 캄부쟈를 낳았다. 캄보디아인들은 자기네가 그 캄부쟈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웅녀와 왕자의 성별이 바뀌었을 뿐, 단군신화와 틀거리가 비슷하다. 한국인들이 곰의 자손이라면 캄보디아 사람들은 뱀의 자손인 셈이다.



단군신화의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 중 하나는 영웅을 낳은 웅녀로 변신한 곰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고대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동물들의 등장은 필연적이라 해도 될 정도다. 태평양 폴리네시아 제도의 몇몇 섬에 살던 부족들은 하늘에서 큰 새가 최초의 인간을 태우고 땅으로 내려왔다고 하는데, 신의 새를 형상화한 조형물들이 아직도 많이 전해 내려온다. 인류 문명의 수수께끼 중 하나인 거석상들로 유명한 이스터 섬에도 그런 새들을 가리키는 것 같은 암석 부조(浮彫)가 있다. 호주 원주민들은 거대한 뱀이 자기 몸속에서 우주를 만들어냈다고 믿는다.(이건 좀 신비스럽다. 어쩐지 뱀 같은 것이 나오면 멋지게 들리는걸) 고대 이집트인들이 숭배하던 태양신 아몬 라는 하늘의 숫양으로 묘사되곤 했다. 멕시코의 아즈텍족은 신들이 세계를 만들 때 들개의 일종인 코요테가 도왔다고 해서 코요테를 귀하게 여겼다.

#바람, 비, 구름


환웅이 상제에게서 받아갖고 왔다는 천부인은 바람, 비, 구름을 말한다.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심은 어느 지역에서건 신화의 바탕에 깔려 있다.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 속 주신(主神) 제우스의 벼락이 대표적인 예다. 서아프리카에는 천둥신 `샹고'가 있다. 샹고는 서아프리카 요루바족이 세운 오요 왕국의 전설 속 왕이었다. 그런데 자기 백성들로부터 배신을 겪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샹고는 훗날 여러가지 변형과정을 거쳐, 미국 등지로 끌려간 흑인 노예의 후손들에게 유독 숭배를 받는 아프리카의 신이 됐으며 쿠바로도 건너가 생명을 얻었다. 오늘날에도 미국 흑인문화에 종종 등장하는 아이콘으로, 머리에 도끼를 이고 다니는 신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켈트 신화의 `티라니스', 아시리아의 `아다드', 고대 수메르 문명의 `엔릴'은 모두 천둥번개를 지칭하는 신들의 이름이다.

인도 신화에서는 최고의 신 인드라가 천둥 번개를 무기로 쓴다. 이 무기를 `바즈라'라 부른다. 고대종교의 경전인 `리그베다'에 따르면 인드라는 수천개 갈퀴가 달린 막강한 바즈라를 휘둘러 악을 물리친다. 불교에서 제석천이 휘두르는 금강저(金剛杵)가 바즈라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웅과 웅녀의 만남


신과 인간의 만남, 하늘(남성성)과 땅(여성성)의 결합은 기원신화의 공통된 주제 중 하나다.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누스처럼 하늘과 땅은 최초의 부부 혹은 최초의 남매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 반대인 곳도 있다. 고대이집트인들은 남신이 땅을 지배하고 그 위에 누트라는 하늘의 여신이 몸을 활 모양으로 굽어 땅을 보호한다고 여겼다.

아프리카 남동부에도 여왕의 전설이 있다. 어느날 땅이 불모지로 변해 남자들이 먹잇감을 찾아 나섰다. 남자들은 신의 땅에서 곡물을 베어가려다가 벌을 받았다. 그때 사불라나라는 여성은 자기네가 숲의 정령이 지배하는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 벌을 피했다. 사불라나는 신들에게서 먹을 것을 얻어내고 왕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


삼국유사에는 단군신화 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건국자들의 신화들도 실려 있다. 그중 박혁거세와 김알지 등의 신화는 난생(卵生)설화로 분류된다. 비슷한 이야기가 베트남 건국신화에 나온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농씨(神農氏)의 후손 구희는 바다속에 사는 용군(龍君)과 결혼했다. 구희의 뱃속에서 태반이 빠져나왔는데 거기서 100개의 알이 나왔고 알 하나하나마다 사내아이들이 태어났다. 용군은 물 속으로 아들 50명을 데려가고 구희가 땅에서 나머지를 키웠다. 그 아들들이 훗날 나라를 만들었다. 우리의 삼국유사처럼 신화와 전설들을 모아놓은 14세기 후반 베트남 문헌 `영남척괴열전(嶺南척怪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시아의 신화는 크게 단군 신화와 같은 천손(天孫)신화와 알·상자 속에서 영웅이 나오는 난생신화로 나뉜다. 북방 기마민족인 스키타이, 알타이, 몽골족은 하늘에서 건국자가 내려오는 천손신화를 갖고 있는 반면 대만이나 타이, 자와섬, 인도 원주민 등 남방계 농경민족에게서는 난생신화가 발견된다. 학자들은 삼국유사에 양쪽 신화가 다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에 북방계-남방계가 혼재했던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 신화의 약속


같은 신화, 같은 꿈, 같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갖는다. 기원신화, 건국신화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공동체를 통합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동체가 시련에 처했을 때 건국신화는 미래에 대한 약속이 된다.


티벳의 민족서사시는 게 사르라는 영웅의 전설을 담고 있다. 게 사르는 천신의 아들인데, 내분에 휩싸인 티벳 종족들이 적의 공격으로 위험하게 됐을 때 게 사르는 큰 새로 변신해 한 족장 부인에게 다가간다. 그 순간 하늘에서 빛줄기가 내려오고 신의 아들은 여인의 품으로 들어가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는 장성한 뒤 여러 부족을 불러 모아 나라를 세우고 적들을 무찌른다. 티벳 사람들은 게 사르가 역사적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에 점령된 티벳인들은 그가 곧 나타나 티벳에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멕시코의 아즈텍족은 무력을 숭상하는 민족이었다. 뒤에 더 폭력적이고 잔인한 스페인 제국 식민주의자들에 정복됐지만, 유럽인들은 아즈텍족이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서양 학자들이 아즈텍에서 뒤늦게 발견한 `평화로운 문화'는 아즈텍 이전에 있었던 톨텍족의 것이었다.

톨텍 왕국은 깃털 달린 뱀 형상의 신 케찰코아틀을 숭상했다. 그런데 암흑의 신 테스카틀리포카는 평화의 지배자인 케찰코아틀을 질투해 마법의 약을 먹여 무력하게 만든 뒤 왕국을 멸망시켰다. 무력해진 케찰코아틀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평화의 대업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아즈텍족의 지배를 받던 톨텍족은 스페인인들이 왔을 때 케찰코아틀이 도래한 걸로 알고 환영했으나 곧 더 큰 배신을 맛봐야했다. 케찰코아틀은 신의 재림이 아닌 공룡의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학자들은 북미에서 화석이 발견된 백악기 익룡에게 케찰코아틀루스라는 이름을 붙여 고대인들의 신을 기념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에게는 마나스의 전설이 있다. 이 나라에 가면 마나스 공항, 마나스 대로, 마나스 동상 등 곳곳에서 같은 이름이 붙은 건축물이나 기념물 따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마나스는 전설 속의 왕자로, 키르기스 민족을 압제자들에게서 해방시킨 영웅이다. 마나스는 옛 소련에 묶여있던 이곳 사람들에게 민족정신의 상징이었다.

1991년 독립 뒤 아스카르 아카예프 전대통령은 15년간 집권하면서 스스로를 마나스와 동일시하는 선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짓 마나스의 화신은 지난해 3월 `레몬혁명'으로 결국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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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9-2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고 나서 생각하니 이거 퍼가도 되는건가요???

딸기 2006-09-2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도 되지요, 물론. 내용이 후져서 그렇지... ^^

클리오 2006-09-29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퍼가요... ^^ 여러 이야기 잘 읽었어요..

하이드 2006-09-29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나 저거 봤어요 봤어요 ^^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