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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ㅣ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평점 :
당연히 재미있다. 도킨스니까. 유머러스하면서 정곡을 콕콕 찌른다.
이 책은, 진화론을 비판하는 작자들이 하는 말이 왜 개소리인지를 까발리는 책이다(도킨스의 책에 대한 느낌은, 언제나 그렇듯이 ‘점잖은 말’로는 잘 표현이 되지 않는다. 도킨스는 대단히 인텔리전트하면서도 점잖지 않은 사람이니까).
자연선택은 점진적, 누적적인 과정이다. 어느날 갑자기 인간이 튀어나올수 있냐고, 박테리아가 어떻게 인간이 되냐고 묻는 ‘무식한 창조론자들’에게 도킨스는 점진성과 누적성을 무기로 반격을 가한다. 오랜 시간 점진적으로, 그리고 먼젓번 진화의 누적된 성과를 발판삼아 진화를 거듭하면서 박테리아가 두손 두발 달린 동물로 변화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창조주는 없다. 진화의 방향성 같은 것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인 과정인 자연선택에 미리 계획한 의도 따위는 들어있지 않다. 자연선택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는다. 전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통찰력도 없고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것은 ‘눈먼’ 시계공이다.” (28쪽)
도킨스는 자연선택이 낮도깨비가 아닌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과정임을 보여주면서 지적설계론 등의 여러 외피를 걸치고 등장하는 반(反) 과학적인 창조론자들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더불어 ‘복잡성’ ‘계획’처럼 커다란 오해를 불러왔던 진화 연구의 개념들을 정리하고, 진화론을 의도적으로 오해, 왜곡했던 서양의 여러 학자들 혹은 지적 전통의 논리를 깨부순다.
처음 생물학 쪽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줬던 사람은, 내겐 스티븐 제이 굴드였다. 굴드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마음으로 울었다. 하지만 역시 도킨스. 정확히 이 두 사람이 ‘대립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 책 전반부에서 도킨스는 창조론자들의 억지 주장에 반박하고, 후반부에서는 굴드와 엘드리지 같은 ‘단속평형론자들’을 비판하는 데에 지면을 할애한다. 진화 연구자인 굴드가 괜시리 목소리 높여 “다윈과 다른 걸 발견했다!”고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아 다윈이 틀렸나보다” 오해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도킨스가 보기에 굴드의 주장은 다윈의 것과 차이가 없고, 오히려 다윈이 맞았음을 반증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굴드와 도킨스는, 도킨스의 회고(‘악마의 사도’)에 나온 것처럼, “석양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만한 사이는 아니”었고 쌈박질 깨나 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 모두 창조론에 맞서 싸웠던 진화론자였던 것은 분명하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굴드가 다위니즘에 대한 오해를 불러왔다고 아주 잘근잘근 씹는데, 독자들이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은 아니다. 둘 다 맞다. 진화의 사이사이 ‘빈 공간’과 도약이 있는 것도 맞고, 점진적 누적적으로 진화하는 것도 맞다. 무식한 독자는 저런 학자들이 멋진 글들로 싸워주면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도킨스의 논지는 명료하고, 표현과 사례들은 재미있다. 여러 동물들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비밀스런 힌트 마냥 재미있었다. 박쥐, 상어, 가오리 같은 동물들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도킨스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진화 실험. 그는 이 책에서 희한하게 재미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가지고 진화를 설명한다. 과학자들이 컴퓨터를 가지고 대체 무슨 작업을 하는 것인지, 컴퓨터가 과학자들의 작업을 어떻게 ‘진화’시켰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모델이어서 재미있었다.
“눈 앞에 이 우아한 형태(시뮬레이션 속의 이상한 도형)가 나타나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얼마나 큰 환희를 느꼈을지 독자들은 모를 것이다. 마치 가슴 속에서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주제곡)의 첫부분이 장엄하게 울려오는 것 같았다.” (110쪽) 정말 도킨스다운 표현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소금 결정 커지듯 광물 결정 커진 것이 생명체의 진화로 탈바꿈했을지 모른다는 부분. DNA를 가진 작은 단위들이 모여 성장하고 진화하는 과정의 전단계로 규소 같은 광물의 결정 결합을 상정한 것이 재미있었다(정확히 말하면 도킨스의 이론은 아니고 케언스스미스라는 다른 학자의 아이디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 이론이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얘기했던 meme (문화적 정보전달 단위)과 연결되는 부분은 시사점이 많은 듯. 요즘 큐빗이니 뭐니 해서 ‘정보전달자’를 가지고 지금까지 과학에서 등장한 ‘최소단위’를 대체하려는 주장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흙’에서 태어나 ‘유전자’를 지나 ‘생각’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진화’라니,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