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발명과 근대 이산의 책 43
윤상인.박규태 외 지음 / 이산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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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실망했다. 이산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 지금까지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이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라면 당연히 내용이 알차겠거니, 생각하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것은, 영 기대에 못 미친다. 하필이면 이 출판사에서 내놓은 그 많은 책들 중에 유독 한국 학자들이 쓴 책이 평균선 아래여서 기분이 더 찝찝하다.
그 뿐일까, 이 책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BK21’에 참여한 학자들이 자기네들 성과를 중심으로 뼈대를 잡고 거기에 관련 분야 학자들의 글을 더 붙인 것이라 하는데, BK21이라는 세금 많이 들어간 사업의 실적이 이 정도라면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하나? 그 지원금 잘못된 데로도 많이 들어갔다는데 그나마 그 지원금 받아 이 정도 실적이라도 내놓았으니 칭찬해줘야 하는 것인지, 한국 대학 교수들의 수준이 이러저러 하다는 것에 새삼 실망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하기는, 싸잡아 ‘한국과 외국의 수준차이’라고 하면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감동하며 읽었던 이산의 책들, 그냥 ‘외국 학자들’이 아니라 조너선 스펜스, 윌리엄 맥닐 급의 세계 초초일류 학자들 것이었으니 단순비교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다. 뭐 따지고 보면 이 책이 한국 학자들의 책 중에 최악인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산의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별점이 많이 떨어진다(불행 중 다행인 것인지 이 책은 이산 책들 중에 유일하게 내가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얻어온 것이다).
책은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들이 BK21 ‘근대 일본의 국민국가 형성과 인문학의 역할’이라는 사업과제로 했던 연구를 토대로 기획됐다고 한다. 문학, 종교, 미술, 음악, 번역, 고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근대화’ 작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살핀다. 논문들은 제각각이다. 어떤 글은 일본 학자 글을 거의 짜깁기 한 수준이고, 어떤 글은 석사학위 논문처럼 딱 쓰는 사람 자기자신만을 위한 ‘아는척하기용’ 글이고, 어떤 글은 자다 봉창두드리며 염불하는 글이고, 어떤 글은 일본어로 발표했던 논문을 한국어로 다시 옮겨놓은 것이고, 어떤 글은 일본 재단 지원받아 연구한 뒤 일본 식민주의 칭찬하며 일본에서 발표했다가 여기 다시 실은 글이다. 중간중간 재미있는 대목도 있지만 어떤 글은 대체 누구 읽으라고 썼는지 모르겠고, 어떤 글은 읽으나 마나다. 나같은 사람 말고, 일본에 대해 전공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라면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어쩌면 이런 수준들은 책의 총론에 해당하는 머리말에서부터 예측됐던 것이었다. 대표저자가 머리말에서 인용한 책들이 거개는 일본 전공자도 아닌 내가 이미 읽은 것들이었다. ‘2차 사료’라는 얘기다.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과 거기서 파생된 후지타니 다카시 ‘화려한 군주’,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번역과 일본의 근대’, 니시카와 나가오 ‘국민이라는 괴물’ 같은 류의 책들을 ‘사료’라고 인용을 해놓으니, 그 책들을 ‘교양서적’으로 읽었던 독자로서는 학자들 수준에 뜨악한 반응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연구’를 해서 일반인들에게 쉽게 풀어 설명해주는 것이 학자들이 일반인용 책을 내는 이유일진대, 이미 외국 학자들이 쉽게 풀어 써놓은 것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세금 받아 연구한 겁니다” 하니깐 당혹스럽다.
물론 이 책에 인용된 사료들 중엔 나 같은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사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책의 토대가 되는 ‘일본의 발명과 근대’라는 틀 자체에서 홉스봄 ‘만들어진 전통’ 수준을 넘어서려는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시도가 안 느껴져 실망스러웠다. 분야별 각론에서는 ‘전통의 발명’이라는 개념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문학에서는 이러저러하게 전통을 발명해 군국주의로 갔다’ ‘미술에서도 이러저러하게 전통을 억지로 발명했다’ ‘음악에서도 일본은 이러저러하게 근대를 발명했다’ 하는 것 같아 거북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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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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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재미있다. 도킨스니까. 유머러스하면서 정곡을 콕콕 찌른다.

이 책은, 진화론을 비판하는 작자들이 하는 말이 왜 개소리인지를 까발리는 책이다(도킨스의 책에 대한 느낌은, 언제나 그렇듯이 ‘점잖은 말’로는 잘 표현이 되지 않는다. 도킨스는 대단히 인텔리전트하면서도 점잖지 않은 사람이니까).

 

자연선택은 점진적, 누적적인 과정이다. 어느날 갑자기 인간이 튀어나올수 있냐고, 박테리아가 어떻게 인간이 되냐고 묻는 ‘무식한 창조론자들’에게 도킨스는 점진성과 누적성을 무기로 반격을 가한다. 오랜 시간 점진적으로, 그리고 먼젓번 진화의 누적된 성과를 발판삼아 진화를 거듭하면서 박테리아가 두손 두발 달린 동물로 변화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창조주는 없다. 진화의 방향성 같은 것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인 과정인 자연선택에 미리 계획한 의도 따위는 들어있지 않다. 자연선택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는다. 전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통찰력도 없고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것은 ‘눈먼’ 시계공이다. (28쪽)

도킨스는 자연선택이 낮도깨비가 아닌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과정임을 보여주면서 지적설계론 등의 여러 외피를 걸치고 등장하는 반(反) 과학적인 창조론자들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더불어 ‘복잡성’ ‘계획’처럼 커다란 오해를 불러왔던 진화 연구의 개념들을 정리하고, 진화론을 의도적으로 오해, 왜곡했던 서양의 여러 학자들 혹은 지적 전통의 논리를 깨부순다.

 

처음 생물학 쪽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줬던 사람은, 내겐 스티븐 제이 굴드였다. 굴드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마음으로 울었다. 하지만 역시 도킨스. 정확히 이 두 사람이 ‘대립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 책 전반부에서 도킨스는 창조론자들의 억지 주장에 반박하고, 후반부에서는 굴드와 엘드리지 같은 ‘단속평형론자들’을 비판하는 데에 지면을 할애한다. 진화 연구자인 굴드가 괜시리 목소리 높여 “다윈과 다른 걸 발견했다!”고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아 다윈이 틀렸나보다” 오해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도킨스가 보기에 굴드의 주장은 다윈의 것과 차이가 없고, 오히려 다윈이 맞았음을 반증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굴드와 도킨스는, 도킨스의 회고(‘악마의 사도’)에 나온 것처럼, “석양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만한 사이는 아니”었고 쌈박질 깨나 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 모두 창조론에 맞서 싸웠던 진화론자였던 것은 분명하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굴드가 다위니즘에 대한 오해를 불러왔다고 아주 잘근잘근 씹는데, 독자들이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은 아니다. 둘 다 맞다. 진화의 사이사이 ‘빈 공간’과 도약이 있는 것도 맞고, 점진적 누적적으로 진화하는 것도 맞다. 무식한 독자는 저런 학자들이 멋진 글들로 싸워주면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도킨스의 논지는 명료하고, 표현과 사례들은 재미있다. 여러 동물들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비밀스런 힌트 마냥 재미있었다. 박쥐, 상어, 가오리 같은 동물들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도킨스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진화 실험. 그는 이 책에서 희한하게 재미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가지고 진화를 설명한다. 과학자들이 컴퓨터를 가지고 대체 무슨 작업을 하는 것인지, 컴퓨터가 과학자들의 작업을 어떻게 ‘진화’시켰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모델이어서 재미있었다.

“눈 앞에 이 우아한 형태(시뮬레이션 속의 이상한 도형)가 나타나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얼마나 큰 환희를 느꼈을지 독자들은 모를 것이다. 마치 가슴 속에서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주제곡)의 첫부분이 장엄하게 울려오는 것 같았다.” (110쪽) 정말 도킨스다운 표현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소금 결정 커지듯 광물 결정 커진 것이 생명체의 진화로 탈바꿈했을지 모른다는 부분. DNA를 가진 작은 단위들이 모여 성장하고 진화하는 과정의 전단계로 규소 같은 광물의 결정 결합을 상정한 것이 재미있었다(정확히 말하면 도킨스의 이론은 아니고 케언스스미스라는 다른 학자의 아이디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 이론이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얘기했던 meme (문화적 정보전달 단위)과 연결되는 부분은 시사점이 많은 듯. 요즘 큐빗이니 뭐니 해서 ‘정보전달자’를 가지고 지금까지 과학에서 등장한 ‘최소단위’를 대체하려는 주장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흙’에서 태어나 ‘유전자’를 지나 ‘생각’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진화’라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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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5-2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굴드에 대한 잡지글을 읽고 이것저것 좀 찾아봤더니 결국은 도킨스로 오게 되더라고요..제대로된 굴드책과 도킨스 책을 한권씩 읽어본다가 올해의 목표일듯 해요.근데 과학책들은 은근 비싸고 은근 절판이 빨라요.흑흑

딸기 2007-05-2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은근 비싸고 은근 절판이 빨라요.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고 번역이 매우매우 훌륭하다는 장점이 있지요. ^^
 
눈먼 시계공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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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고 대학교의 화학자 그레이엄 케언스스미스가 주장하는 ‘무기광물질’ 이론은... 생명 탄생의 수수께끼를 셜록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케언스스미스는 DNA`단백질 기구가 비교적 최근에 출현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대략 30억년 전 정도 되는 비교적 최근에 그것들이 출현했다는 말이다. 그전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복제자가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룩한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있었다. 그러던 중 DNA가 출현했고 그것이 훨씬 효율적인 복제자로 판명되자 원래의 복제 시스템은 DNA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잊혀져갔다.
...케언스스미스는 지구에 출현한 최초의 생물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규산염 같은 무기 결정에 바탕을 둔 존재라고 믿는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유기물 복제자 즉 DNA는 나중에 그 역할을 넘겨받았거나 찬탈한 것이 된다. ... 케언스스미스는 최초의 복제자가 진흙이나 점토에서 발견되는 무기물의 결정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원자들은 용액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 우연히 결정을 만나면 결정의 표면에 있는 적당한 위치에 끼어들어가는 자연스런 경향이 있다. 가끔 결정은 용액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씨’가 들어가야만 하는데, 그것은 먼지일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 가져온 작은 결정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이론에서 점토와 다른 광물 결정들이 하는 역할은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저급한 수준’의 복제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어느 순간에 ‘고급 수준’의 DNA로 대체되었다.-254쪽

문화의 진화는 여러 면에서 DNA에 기초를 둔 진화보다 빠르다. 이것 때문에 또다른 ‘넘겨받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가 주도권을 넘겨받기 시작했다면 그것들은 장차 그들의 부모인 DNA를(그리고 케언스스미스가 옳다면 조부모인 점토를) 저 뒤편으로 떨쳐버릴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는 컴퓨터가 선두에 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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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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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의 얼굴은 괴물처럼 일그러져 있어서, 왜 그런 모습을 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일그러진 얼굴은 원하는 방향으로 초음파를 발사하기 위한 절묘한 형태이다.
-56쪽

매미에는 세 가지 종이 있으며, 각기 모두 17년 변종과 13년 변종을 갖고 있다. 13년 변종과 17년 변종으로의 분화가 각각 독립적으로, 최소한 세 차례 일어난 것이다. 14년, 15년, 16년이라는 중간 주기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무시되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세 번에 걸쳐서. 왜 그럴까? 모른다. 단지 13이라는 숫자와 17이라는 숫자가 소수(素數)라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소수란 1과 자신을 제외한 어떤 수로도 나눌 수 없는 수를 말한다. 주기적으로 대규모로 발생하는 동물들은 천적이나 포식자, 기생충을 궁지에 몰아넣거나 굶어죽게 함으로써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대규모의 발생이 소수의 연주기를 가지도록 조심스럽게 조절된다면 천적들이 매미의 생활사를 거기에 맞추기가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이다.-172쪽

남반구에 있던 거대한 초대륙 곤드와나가 갈라지기 시작한 때는 공룡의 시대라 불리는 중생대였다. 남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가 나머지 땅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와 오랜 세월 동안 고립되어 있었을 때 그 대륙들은 공룡과 오늘날 포유류의 조상이 될 몇가지 동물들을 실은 독립된 화물칸이 된 셈이었다. ... 수백만 년이라는 진화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공룡의 빈 자리는 채워졌다. 그 자리를 채운 동물은 대부분 포유류였다. 원시포유류는 세 지역에서 전혀 다른 진화의 길을 걸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바로 사건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멸종된 남아메리카의 자이언트그라운드나무늘보를 닮은 동물이 구대륙에는 아무것도 없다. 남아메리카의 다양한 포유류에는 멸종된 자이언트기니피그가 포함된다. 이 동물은 지금의 코뿔소만한 크기였지만 쥐와 같은 설치류이다.(‘지금의’ 코뿔소라는 말을 쓴 이유는 구대륙의 동물군에는 한때 이층집만한 거대한 코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175쪽

최근까지도 오세아니아와 신대륙에는 고양이과에 속하는 맹수와 개과에 속하는 맹수가 없었다.(푸마와 재규어는 구대륙의 고양이로부터 진화되어 나온 것이다.) 그러나 두 대륙 모두에 유대류로서 그에 상응하는 종류가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주머니늑대(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라고도 불림)가 있었는데, 이 동물이 사람을 해친다는 이유로 그리고 일종의 ‘스포츠’로서 어마어마한 수가 도살되었고아직도 생생한 기억 속에서 비극적으로 사라져갔다. 주머니 늑대를 딩고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딩고는 더욱더 최근에 인간(애버리진)이 오스트레일리아로 들여온 진짜 개다.
남아메리카 대륙에도 진정한 개와 고양이 종류는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오세아니아처럼 유대류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단한 것은 구대륙의 검치호랑이를 빼닮은 틸라코스밀루스일 것이다. 틸라코스밀루스는 아가리를 검치호랑이보다 더 넓게 벌릴 수 있어서 훨씬 더 무시무시했을 것이다. 틸라코스밀루스라는 이름은 이 동물의 외양이 검치호랑이 Similodon와 주머니늑대 Thylacinus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졌다.-179쪽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또 땅을 파는 개미핥기가 있는데 바로 바늘두더지이다. 바늘두더지는 유대류가 아니라 단공류라고 불리는 알을 낳는 포유류인데 이들은 태반류와의 유연관계가 멀다. 이들과 유대류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유대류가 우리에게 더 가까운 친척이다.
...아프리카에는 이상하게 생긴, 개미 먹는 곰 또는 땅돼지(남아프리카산 개미핥기의 일종)가 있는데 특별히 땅을 파는 종으로 분화된 것이다. 유대류든 단공류든 또는 태반류든 개미핥기의 특징은 대사율이 극히 낮다는 것이다.-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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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Sahara Lounge (Digipak)
Kakao Entertainment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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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이래저래 기분도 가라앉은 상태였고, 또 우리 동네(사무실의 제 자리 부근) 기압골이 심상찮고... 그런데 창밖은 화창하고 해서 낮에 산책 나가리라, 했었답니다. 마침 문화상품권 1만원권 두 장이 생겨서 교보문고에 갔어요. 손목시계를 살까 꼼꼼이 장난감을 살까 외국 책 한 권을 살까... 모두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들이라 이 참에 하나를 선택해야지 했는데 뜬금없이 핫트랙스에서 CD를 사는 걸로 낙착.

사하라 라운지. 근사하죠? 푸투마요는 미국 월드뮤직 레이블인데요, 사보는 것은 저도 이것이 처음이예요. 이런 류의 월드뮤직 레이블로는 러프가이드 투~가 유명하고, 저도 그쪽은 '러프가이드 투 쿠반 뮤직' 때문에 아무래도 귀에 익게 느껴지는데(그렇다고 그 레이블의 CD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만;;) 국내에 들어와 있는 것들로는 푸투마요 쪽이 더 다양할는지도 모르겠네요. 듣기로는 러프가이드가 확실히 더 '학구적'이고, 푸투마요는 대중적이라고 해요.

푸투마요는 카이로에서 알제까지, 그러니까 마그레브를 테마로 잡은 것도 있고, 커피로 유명한 나라들의 음악, 와인이 많이 나는 나라들의 음악, 이런저런 다양한 테마로 지역들을 나눠 월드뮤직을 선보이고 있거든요.
마그레브 것과 사하라 것이 어떻게 다를지는 모르겠지만(지역적으로는 거의 일치하니까) 아마도 제가 산 것은 '라운지'가 붙어있으니 좀 토속적인 느낌이 덜하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듣고 있는데, 진짜 중동 가요들(이라크산 불법 복제 CD로 몇장 갖고 있습니다;;)보다는 훨씬 '월드뮤직'스럽네요. 중동을 '서남아시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중동 음악이 아무래도 유럽이나 미국 음악보다는 아시아적인 요소들이 있어서 친근하기도 하고 그래요.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유치해, 라고 말할만한 가요들도 꽤 있는 것 같고요. 뽕짝스러운 구석이 분명히 있거든요. 서양 좋아하는 사람들, 아시아적이고 뽕짝스러운거 노골적으로든 은밀히든 싫어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겐 중동 음악 들으라 얘기하기 싫습니다만.  이 사하라 라운지의 경우는 아시아적인 중동 음악이 아니라 세계화(미국화 유럽화) 된 듯한 분위기가 많이 나고(오늘날의 미국풍 한국 가요를 듣는 외국인들도 이렇게 평가할지 모르지요) 맛뵈기로 들을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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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동가요는 한번도 못들어봤는데 어떨지 궁금하군요. 음악은 들어봐야 아는데.

마노아 2007-05-2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음악은 제대로 들어야 감상을 하는 거죠. 저도 궁금하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