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진실 -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읽는 데에 좀 시간이 걸렸다. 날마다 초등 1학년 꼼꼼이 옆에 앉아 이 책을 보는데, 그림책 읽는 어린 딸과 모녀가 나란히 같이 앉아 독서를 하는 다정한 풍경엔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가끔씩 꼼꼼이는 엄마가 무슨 책을 읽나 쳐다보면서 “거짓된 진실?”하고 제목을 읽어보는데, 책 내용은 표지에 적혀있는대로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를 다룬 것이니,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아이에게 쉽게 설명해줄만한 차원은 아니다.
워낙 엽기적인 스토리를 끔찍해하는 차에 ‘증오의 문화’를 파헤친 책이라 해서 내심 위축된 채로 책장을 펼쳤다. 첫머리부터 심상치는 않았다. 1918년 미국 조지아주 발도스타라는 곳에서 ‘감히 남편을 죽인 백인들을 상대로 복수를 선언했던 겁대가리 없는 흑인 임신부’가 어찌나 처참하게 집단린치로 고문을 당하고 살해됐던지, 세기가 바뀌어 2001년 남미의 콜롬비아 알토나야라는 곳에서 부활절 주말에 ‘암살대’라 불리던 사람들에게 마흔명 남성들과 여성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살해당했는지.


“이 책의 짜임새와 방향은 이들의 죽음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 죽음들의 관계를 꿰고 있는 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경제 체제와 증오의 관계는 정확히 무엇인가? 경제와 인종 간에 관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관계인가? 우리 문화의 파괴적 행위를 깊이 파고들면 만나게 되는 여성에 대한 혐오는 또 어떤가? 어떤 형태의 잔학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심지어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있는가? 이 책을 쓰면서 내가 탐구하고 싶었던 것은 인식에 관한 것이다. 또는 인식의 결핍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저자 서문)

출발점은 ‘증오’다. 사실 우리는 그것이 어떤 형태의 증오인지, 심지어는 증오인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 홀로코스트에 동참했던 ‘학살기술자’ 혹은 ‘학살관료’들은 유대인 하나하나를 증오했던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프란체스코 피사로가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타왈파를 죽일 적에 그를 증오했던가? 혜진, 예슬이를 죽인 범죄자는 두 어린 소녀를 증오했었나? 혹은 효순, 미선양을 압살한 미군병사들은 한국의 소녀들을 증오했었나?

엄청난 내면의 증오를 갖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도저히 저지를 수 있을 성 싶지 않은 살상을 보면서 넘쳐나는 증오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단은 저 질문들에 답하기 이전에, 그것을 ‘증오’라 부르기로 하자. 그 엽기적인 살상, 특히 대규모로 혹은 빈번하게 저질러지는 그런 살상을 ‘증오범죄’라고 부르기로 하자. 인종차별, 흑인 린치, 강간, 홀로코스트, 인디언 학살,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지금 우리 사회, 우리 글로벌 시스템의 바탕이 된 근대의 형성 과정에서 증오범죄의 주요 가해자는 ‘서구 백인 남성’이었다. 저자는 증오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자기 자신도 포함되는 ‘서구 백인 남성집단’의 증오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입에 담기도 끔찍한 범죄들의 리스트를 훑어본 저자가 내린 결론은 현 세계 사회·경제체제를 특징짓는 범죄의 바탕에 깔린 증오감정이 결코 개인적인 현상이라든가 개인의 신체적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우리 사회체제의 일부이자 근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증오의 사회학, 증오범죄의 메커니즘이야말로 (서구에서 시작돼 이미 지구를 장악해버린) 우리 ‘문명’의 특징이라고 결론짓는다.


그 ‘문명’은 서구적 근대성과 일신교의 문명, 다양성을 말살시키고 끝없는 확장으로 지구를 정복해가는 문명, 불필요한 인간들(그리고 자연들)을 제거하는 생산 지상주의 문명이다. 이 문명에서 ‘생산’ ‘효율성’은 절대적인 명령이 되며 방해되는 것 혹은 불필요한 것들은 가차 없이 제거된다.

유대인들이 하나하나 이름과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닌 살덩이 지방덩어리로 분리됐듯, 그들을 죽인 이들이 그저 관료적 몸짓 하나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듯, 미군이 이라크 어린이들의 얼굴 따위를 떠올리는 대신 일련번호를 붙인 시설물들에 스위치 한 방으로 폭격을 가할 수 있었듯이, 우리 문명은 구체성을 죽이고 추상화시킴으로써 범죄를 범죄 아닌 것으로 만들고 학살 명령을 모든 이들에게 내면화시킨다.

그 희생자들은 감옥국가 미국의 곳곳에 들어선 교도소의 재소자들, 서부로의 확장 과정에서 절멸된 인디언, 흑인 노예들이다. ‘워블리’라 불렸던 지난 세기 초반의 좌파 노동자들,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독극물 누출로 무참히 죽어간 인도 보팔의 노동자들, 지금도 노예노동에 내몰리는 제3세계의 빈민들도 그 희생자들이다. 문명은 희생자 없이는 지탱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 자연까지 생산이라는 이름 하에 일렬종대로 늘어서도록 만들어 지구를 해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든 사람들/자연은 모두 홀로코스트적 문명이라는 이 하나의 시스템에 의한 희생자들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생산이라는 명제는 결국 몇 안되는 부자들만을 위한 것인데도 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자동차회사, 화학제품 회사, 석유회사들이 내놓는 물건들 속엔 우리가 세금이나 공공의료비용으로 때워야 하는 ‘숨겨진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숨어있는데도 우리는 그저 속고만 산다. 어쩌면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지금은 제 나름의 아메리칸 드림에 취해 속고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홀로코스트적 문명에 휩쓸려가는 수많은 필부필부들이 ‘허위 계약’에 속고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우리의 진정한 출발점은 어디일까.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문명 바로보기’다. 거짓된 진실을 보는 것, ‘그들이 우리에게 믿도록 만들었던 허위계약의 진실들’을 보는 것.

책은 다소 끔찍하면서도, 지지부진 중언부언이 많고 가끔은 기행문에다가 에세이 스타일까지 섞여 있어 긴장감이 떨어졌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중언부언이 많다 싶기도 하고, 내용과 관련해서도 홀로코스트적 문명의 끔찍한 증오범죄들을 결론적으론 기후변화 쪽으로 유도해가는 것 같아서 다소 비약이 있다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당신이 범죄라고 생각 않고 당연한 권리라 생각했던 것에 대해 누군가가 범죄라는 이름을 씌운다면, 당신은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흑인을 목매달고 불태운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 우리가 범죄라는 생각없이 저지르는 자연에 대한 홀로코스트 또한 범죄라고, 이를 부인하려는 우리의 마음 또한 흑인들을 린치한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불편한 진실'이다.
증오범죄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범죄들의 메커니즘,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더 크고 더 조직적이고 더 경제적인 ‘문명이라는 이름의 범죄’를 직시하기 위해서라면 이 책은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 같다. 그 다음은? 그건 잘 모르겠다. 우리는 눈을 떠 문명의 범죄를 직시하고 이 문명을 거부해야 하는 것인지, 대안의 문명은 어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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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세계를 바꾼다
니혼게이자이신문사 지음, 강신규 옮김 / 가나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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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구’라는 키워드로 변화하는 세계상과 다가올 미래를 그려내보인다. 책 표지에 ‘인구문제를 통해 미래 세계의 혁명적 변화를 예측한 충격적인 보고서!’라면서 느낌표까지 쿵 찍어놨는데, 책은 쉽게 읽히면서도 재미있다. 책 모양도, 표지도 예쁘고.

인구구조가 사회를 바꾼다, 어느 나라는 인구가 폭발 지경이고 어느 나라는 고령화 때문에 골치 아프다, 이런 사실쯤이야 뭐 이젠 상식이 됐으니 그리 충격적이진 않다. 하지만 책에 나와 있는 것은 아주 구체적인 자료들이어서 생생하고 재미있다.
예를 들자면 종교·종파별 인구 구성의 변화가 레바논 정정에 미치는 영향, 자살대국 러시아의 현실, 두바이의 차이나타운, 미국 내의 인구 이동과 정치적 역학관계의 변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느끼는 차이나 파워에 대한 경계심 같은 것들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현실화되고 있는 것들이어서 책 윗부분 접어놓고 밑줄 쳐가며 읽었다. 화폐 단위를 모두 원화로 환산해 표기한 것이라든가 한국 부분에 대한 설명을 충실히 보충한 것 등 출판사·번역자의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2004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존 케리를 ‘게리 하트’라고 적어놓은 것 따위의 사소하지만 어이없는 실수들이 보였고, 이미 인용 가치가 없어져버린(해마다 경신되는 지수라든지) 통계치들도 여럿 있었다. 신문 기획기사 시리즈를 묶어놓은 글의 한계이자 장점이랄까, 간단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워 좋은 대신 너무 짧고 간략하면서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부분도 있었다. 번역도 자연스럽게 하려고 애는 썼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정교하지가 못하다.



▷ 이스라엘 인구는 700만명이 채 안되지만 하닷에셀 병원 같은 체외수정센터가 10곳 정도 있다. 영국 더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인구 1인당 불임치료시설 숫자가 세게 1위다. 신생아에서 차지하는 체외수정아 비율은 한국과 일본이 각각 1.4, 1.0%인데 비해 이스라엘은 5.0%에 이른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인구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세웠고 그 중 하나가 불임치료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불임을 개인적인 문제로 여기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국가 문제로 받아들여 적극 대처하고 있다. 둘째아이까지는 평균 2000만원 정도 드는 체외수정 비용 전액을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다.

▷ 레바논 정부 요직 배분 기준은 프랑스 통치 시대인 1932년에 취합된 종파별 인구 통계였다. 최신 수치가 밝혀지면 대립이 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구 통계수치를 밝히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1932년에 50%를 차지하던 기독교도는 지금은 30%대 아래로 출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이슬람 수니파에 이어 세 번째이던 시아파가 지금은 약 40%로 가장 많다. 인구에 걸맞은 정치적 권리를 얻지 못한 불만 때문에 시아파 주민들은 헤즈볼라를 광적으로 지지하게 되었고, 그로써 이스라엘과 충돌을 빚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뒤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레바논으로 도피했다. 60년 동안 난민들의 거주지는 텐트에서 빌딩으로 바뀌었고, 주민 대다수가 팔레스타인을 모르는 제2, 제3 세대가 되었다. 그들은 취직과 부동산 구입에 제한을 받고 참정권도 없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레바논이 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 있다. 대부분 수니파인 난민은 수가 약 40만명으로 늘었다. 그들에게 참정권을 준다면 이 또한 인구통계를 보완하지 않은채 겨우 유지해오던 정치적 균형을 무너뜨릴 것이다.

▷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은 “유럽 헌법은 터키 같은 대국을 가정하여 성립돼 있지 않다”면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제동을 걸었다. 만약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한다면 터키는 의사결정과정에서 독일과 똑같은 14% 가까운 투표권을 지게 되며, 유럽의회에서 12%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인도의 인구는 2035년에 이르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선다. 2050년에는 15억명을 넘어선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동남아 전체 인구와 거의 맞먹는 인구가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똑같은 브릭스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가 직면한 저출산·고령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 러시아 인구는 2050년에는 지금의 1억4000만명에서 1억명 안팎으로 줄어들 것이다. 노동인구는 2025년까지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2012~18년 사이에 노동인구가 가장 많이 줄어들 것이며, 그때는 해마다 약 100만명 이상 줄어들 것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동국인’ 이민을 유도하고 있다. 동국인은 본래 러시아에 있던 민족, 러시아어를 말하는 사람 등의 의미로 통한다. 이민 수용의 1순위는 재외 러시아인, 2순위는 슬라브 민족인 우크라이나인과 벨로루시인 등이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가장 부족한 인력은 단순노동 인력이다. 자국 경제가 발전한 만큼 우크라이나인 등이 러시아에 들어오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고 들어온다면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이민이 주류를 이룰 수 밖에 없다.

▷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수백여 개의 컨테이너 박스 사이로 ‘사호 시장 Four Tiger Market’이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이 나타난다. 바로 중국 이민자들이 모여 형성한 헝가리 내 차이나타운이다. 이곳은 원래 부다페스트로 유입되는 수입 물품을 일시 보관하는 일종의 물류기지였지만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컨테이너 박스를 상점으로 전용하면서 거대 시장으로 변했다.
인구 200만명의 부다페스트에는 현재 4만명이 넘는 중국인이 살고 있다. 동유럽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천안문 사태를 전후해 이곳으로 들어왔다. 헝가리 정부가 1988년부터 중국인의 입국 비자를 면제해 주었기 때문이다. 1991년 한 해에만 2만1000여 명의 중국인이 헝가리로 이주했다는 게 헝가리 이민국 관리자의 설명이다.

▷ 지금 미국에서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애리조나 주는 지난 10년 동안 인구가 40%나 늘어났다. 반대로 중서부 노스다코나 주와 동부 웨스트버지니아 주는 인구가 줄어들었다. 철의 마을로 알려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의 인구는 이미 1940년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의 인구지도는 서고동저·남고북저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에 따라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방 하원의 주별 의석 배분은 각 주의 인구 비율을 기준 삼아 10년마다 조정되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인구 비율이 낮아지는 뉴잉글랜드 각 주의 의석 수는 줄어든다.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는 “이래도 가면 중앙에서 행사할 수 있는 발언권이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인구이동으로 말미암아 정당의 세력균형이 크게 변화할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이 선벨트 Sun belt 로 이동한다”. 미시건 주립대학의 윌리엄 프레이 교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1972년에는 북동부 스노 Snow 벨트와 남·서부 선벨트가 거의 비슷한 숫자였지만 2030년이 되면 선벨트가 스노벨트보다 1.7배 많은 수준이 된다.

▷ 이라크에서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이집트인 노동자가 200만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이라크 사람들조차 요르단 등 이웃나라로 빠져나가면서 노동 수요의 균형이 크게 무너졌다. 요르단에 살고 있는 이라크 사람은 어림잡아 40만명 정도이다.
아흐람 정치전략연구소가 어림잡는 아랍 각국의 실질 실업률은 이라크 66%, 팔레스타인 55%, 알제리 38%, 이집트 30%이다.

▷ 중국 저장성은 상하이 시 남쪽에 있으며, 윈저우 시는 저장성 내에서도 중간 규모에 속하는 도시로 동중국해를 바라보고 있다. 인구가 약 750만명인데 그중 150만명이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중국인들은 윈저우 사람들에게 ‘돈밖에 모른다’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장사를 잘한다’는 존경의 이미지를 동시에 품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윈저우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로 주목을 받았다.
인구이동은 중국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중국의 경우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나 사는 사람이 1억4700만명(2005년)에 달할 정도다. 특히 윈저우 사람들의 ‘떠돌아다니는 버릇’은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농사를 짓는 데 적합한 토지가 적은데다 대만과 가까웠기 때문에 국가에서 경제 지원도 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장사를 하러 떠난 것이다.
윈저우 만으로 흘러드는 구강을 지나면 시 경계 서쪽에 베이안춘(北岸村)이라는 마을이 있다. 중국의 농촌에서 고령자만 눈의 띄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베이안춘 젊은이들은 다른 마을과는 달리 여권을 가지고 마을을 떠난다. 가는 곳은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다양하다.


▷ 도시화가 진전될수록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식용육 가운데 특히 판매가 늘어난 것이 종교적 금기 대상이 되지 않는 새고기였다. 금기사항이 없는 중국에서는 소·돼지·양도 소비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식육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은 세계의 가축·식육 업계에 커다란 비즈니스 기회일 수도 있지만 사료를 조달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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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 경제, 공정 무역
마일즈 리트비노프.존 메딜레이 지음, 김병순 옮김 / 모티브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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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정무역에 대해 공부를 좀 해볼까 하고서, 제목에다가 ‘공정무역’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내 건 이 책에서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 미국 출장 가면서도 책을 잔뜩 싸 짊어지고 가 비행기 안에서 열심히 읽었다.

책의 원제목은 50 Reasons to Buy Fair Trade 이니까 책 내용하고 딱 맞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역이고, 공정무역 제품은 신뢰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민주적인 무역이며 인간의 얼굴을 한 개발을 촉진시키는 무역이고... 책 목차들만 봐도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겠다(그런데 목차의 50번째 항목을 과감히 ‘20’이라고 실수해놓은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일 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읽은 것인데, 정작 나한테는 크게 영양가는 없었다. 막스 하벌라르 책에서 읽은 내용이나 외신들 통해 접해온 것 등등과 별반 차이는 없다. 사례들을 많이 모아놨는데, 중언부언 반복이 많고 정작 케이스들은 간단하기 때문에 책 자체는 팸플릿 수준이다.
공정무역에 대해 들어본 바가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챕터 제목들이나 훑어보며 넘겨도 될법한 정도. 이러이러한 사례들이 있으니 더 알고 싶으면 알아서 찾아보시오(기타등등 사이트 참조)~ 하는데, 책이 정말 널널하다. 공정무역에 대해 처음 접해보는 독자들에게라면 쉬우면서 도움 되는 책일 수도 있겠다.


책이 좀 허전하게 느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정무역이라는 개념 자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정무역의 문제의식은 좋은데, 그것은 글로벌 경제체제가 갖고 있는 모순을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라기보다는, 자유무역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 그리고 또한 공정무역이 세상에서 미치는 영향은 아직까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공정무역 하면 이러저러하게 좋습니다, 그러니 공정무역 제품 사세요”라고만 말하니 책 형식 뿐 아니라 내용도 팸플릿 수준.


암튼 같은 제품들이 있다면 나는 공정무역 제품을 사겠다. 

  

▷ 파탄의 가능성

아파드 푸즈타이 박사는 실험용 쥐가 유전자 조작 감자를 먹고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영국의 정치권과 의학 기관의 압력으로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Rowett 연구소에서 쫓겨났다.

2006년 런던사회과학연구소(I-SIS)는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에서 재배하는 유전자 조작 면화 때문에 발생한 심각한 중독 증상과 관련이 있는 “죽은 양과 병에 걸린 농민, 죽은 마을 사람들”에 대한 단서를 발표했다. 이와 비슷한 질병과 사망은 마드야 프라데시의 면화 재배 농민들과 필리핀에서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재배하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타났다.

▷ 다른 종류의 관광
1979년부터 공정부역을 이끌어온 트레이드크라프트는 독립 여행사 ‘새들 스키대들 Saddle Skedaddle’과 합작으로 ‘민중을 만나는 여행 Meet the People Tours’이라는 관광상품을 개발했다. 이 밖에도 투어리즘 컨선에서 펴낸 ‘윤리 여행의 길잡이 The Ethical Travel Guide’와 리스폰서블 트래블 닷컴 Responsibletravel.com 의 홈페이지를 보면 더 많은 여행사들과 상품을 만날 수 있다. 국제자연보호기금 Worldwide Fund for Nature 이 지원하는 여행은 생태관광 요소를 강하게 띠며 열대우림연합 Rainforest Alliance 은 미국 여행객들을 위해 이와 비슷한 여행 상품을 개발 중이다.

 

▷ 하루에 커피를 두 잔 마시는 사람은 1년에 커피나무 18그루를 소비하는 셈이다.

 

▷ 플렌테이션 농장의 노예

가장 최악의 경우가 코코아 농장이다. 전세계 초콜릿 산업에 들어가는 코코아의 절반 정도를 생산하는 코트디부아르에서는 20만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코코아 플랜테이션 농장의 위험한 노동 조건 속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에서 밀거래된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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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8-05-1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제품에 공정무역 가격이 비싸고 공정무역이 아닌 경우의 가격이 쌀 때,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관건아닐까요? 단편적으로 우리 이웃이 삶이 있는 재래 시장을 갈 것이냐 아니면 대평마트를 갈 것이냐?
http://blog.aladdin.co.kr/maripkahn/532494 ; 31번 문항

딸기 2008-05-15 07: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하지만 저는 좀 비싸도, 공정무역으로 갈 거예요. ^^

모든 소비자가 같은 품질이라면 싼 가격을 선호할 것이다, 라는 것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이죠.
그런데 소비자들이 꼭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모순이잖아요 ㅎㅎ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 미국산쇠고기를 둘러싼 무서운 음모와 충격적인 진실! 미스터리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광우병 다큐멘터리!
콤 켈러허 지음, 김상윤.안성수 옮김, 김현원 감수 / 고려원북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진작에 리뷰를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깐 없네... 작년에 쓴 것 그냥 올려요 )

틈 날 때마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책의 원제는 brain trust 인데 한국어판 책 표지에는 대문짝만하게 ‘광우병’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부제까지 합치면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책 표지 왼쪽 윗부분엔 ‘광우병에 관한 최신 연구보고서! 켈러허 박사가 최근 8년간 추적, 새롭게 밝혀지는 광우병의 진실 그리고 또다른 의혹들!’ 느낌표를 두 개 씩이나 받아가며 ('브레인 트러스트'라는 애매모호한 제목으로는 도저히 안 팔릴 것임을 예감했는지) 설명을 붙여놨다.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라고 하면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웬만한 소설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말 그대로 흥미진진하며 긴박감 넘치고 스릴과 미스터리까지 구색을 갖췄다. 거기에 저널리스틱한 포맷과 문체 하며 과학·의학 분야의 전문성까지 겸비했으니 이런 책은 좀 잘 팔려나가 주는 것이 좋은데 말이다.

책은 ‘광우병’으로 알려진 신종 질병이 어떻게 미국과 영국을 덮쳤는지를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책에 대해서는 줄거리 소개가 좀 필요할 것 같다. 반세기 전 뉴기니에서 일군의 학자들이 식인 풍습을 가진 원주민들 사이에 퍼져나가던 질병, 인간의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죽음으로 이르게 만드는 질병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얼굴 없는 공포’의 막이 올랐다. 용감하고 의로운 학자들의 잘못은, 연구 재료로 쓰기 위해 지구를 반바퀴 돌아 미국의 어느 실험실로 스펀지가 돼버린 인간 뇌조직들을 가져온 것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저자의 취재와 가설이 뒤섞여 있다. 연구자들은 오늘날 광우병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이 병의 희한한 병원균, 박테리아도 아니고 바이러스도 아닌 변종 프리온 단백질에 오염된 물질을 미국의 어느 농촌마을에서 연구했다. 그러나 ‘보안’은 그리 철저하지 못했고, 따라서 이 못된 단백질 병균(병균이라 부를 수 있다면)이 주변 지역으로 새어나갔으리라는 것이 저자의 추측이다. 이런 단백질에 오염된 ‘뇌 구멍 병’은 소 양 사슴 사람 밍크 등의 포유류에서 널리 나타났다. 이 모든 질병들은 다 똑같은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그 연관관계는 농업 이익단체들의 로비와 압력에 밀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심지어 같은 증상의 질병 이름들조차 사람, 소, 양, 사슴 등 종류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사람의 경우 변형크로이츠펠트야곱병, 소는 광우병, 양은 스크래피 등등).

그리고 1980년대 영국의 광우병 파동이 시작된다. 쉬쉬 하면서 마구잡이로 소를 죽여 버리던 영국 정부는 호된 시련을 겪고 나서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광우병이 이미 인간에게까지 퍼져나간 뒤였다.


더 무서운 일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 양, 사슴, 밍크 같은 동물들이 우르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질병에 걸린다는 것은 어쩌면 프리온 단백질이 생태계 곳곳으로 빠져나갔을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더, 더, 무서운 일은 미국에서 알츠하이머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광우병과 증상이 비슷하다. (광우병 걸린 쇠고기 뇌처럼 구멍 숭숭 뚫린 검역망 때문에 팔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오염된 쇠고기를 먹은 이들이 대량으로 광우병에 걸리고 있다면? 그런데 그 질병들이 알츠하이머라는 이름으로 애매하게 통용되어 진실을 가리고 있다면? (변형크로이츠펠트야곱병, 즉 ‘인간광우병’은 시신의 뇌를 부검하지 않고는 확인할 수가 없다)

더, 더, 더 무서운 일은, 이 책 앞부분에서 서울대 의대 교수님이 친절하고 상세하게 도움말을 붙여주셨는데, 한국인들의 경우 서양인들과 유전적으로 달라 프리온 단백질에 트리플 곱빼기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곰탕 설렁탕 기타등등 각종 ‘탕’자 들어가는 메뉴에 환장하는 나같은 사람은 그저 떨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미국산이 됐건 호주산이 됐건 한국산이 됐건, 어차피 쇠고기는 이제는 전지구적 환경 스트레스를 감안하더라도 ‘지탱하기 힘든(unsustainable)’ 음식이 된 것 같다. 이참에 쇠고기를 포기해버릴까...

 

(근데 이상한 것은, 나는 이미 작년에 이 책에서 '한국인 광우병 취약하다' 라는 추천사를 봤는데, 한림대 모 교수가 그런 주장 했다 해서 요즘 드잡이들을 해댄다는 것이다. 이 책에 글 쓴 저 서울대 교수님은 어떤 분? 한림대 그 분의 주장의 진실은 대체 뭘까? 이 책이 요즘 출간됐다면, 책은 더 많이 팔았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저런 추천사는 달지 못했을 것 같다. 교수들이 어디 세상 무서워서 저런 글 썼겠냐구... '위험한 것을 위험하다 하지 못하고 병 걸리는 것을 병걸린다 하지 못하니'... 호위호병을 못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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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5-13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한번 봐야겠군요. 이 책 나온지 일년 후에 뒤늦게(?) 여기저기 주목받네요. ^^ 딸기님은 일찌감치 보셨지만.

딸기 2008-05-13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미스터리 스릴러 흉내를 낸 측면이 있지만, 재미는 있어요. :)

이네파벨 2008-05-1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위호병을 못하는 세상! 촌천살인이군요~

그러고보니...

벌써 며어어어엋년 전 (대략 5년 정도) Scientific American 지의 한국판(사이언스올제) 번역일을 할 때 캐나다에서 사슴들이 광우병(광록병??)에 걸려 대량으로 폐사시키고 어쩌고 하는 기사를 번역한 일이 있어요.
그 후로 단순하게 그냥...녹용만 피했다죠...(뭐 녹용이 제게 다가올 일이 별로 없어서 굳이 피할 일도 없었지만...홍이장군에 녹용이 들었다길래 아이들 안먹인 정도...)

그런데 이거 원....소고기를 끊기란 참......

그리고...

얼마전에는 인터넷 포털 기사에서 석유가 40년 정도면 매장량이 고갈되고 대체에너지 개발은 그 시기를 따라잡지 못할거라는 암울한 이야기를 읽고서...이런 세상에 애들을 낳아논게 잘한 일인지 마구 두려워했답니다. 딸기님 언제 석유 특집도 부탁드립니다~ ~ ~ (딸기님 전공분야 중 하나 아닌감유?)

딸기 2008-05-14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유... ㅋㅋ
제가 뭘 잘 알겠습니까. 이것저것 책 읽다보니 들은 풍월 정도지요.
매장량 고갈은 사실 문제가 아니고요(왜냐면 땅 속에 들어있는 양을 인간들이 몽땅 다 퍼낼 수는 없는거니깐)
학자들은 peak (파낸 양이 남아있는 양과 같아지는 시점)를 중시한다더군요.
피크 지나면, 남아있는 거 퍼내기도 힘들어지고... 한마디로 생산성이 팍 떨어진다는 거죠.

사우디가 이제 피크를 지난 것 같으니, 석유경제가 얼마나 버틸지는 시간문제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핵발전 하겠다고들 나서는데...
안전성은 차치하고(안전성이 문제라면, 안전하게 운영하기만 하면 해결될수도 있으니깐 여기서 각설하고)
쓰레기 치울 방법을 아직 인류가 못 찾았자나요.

더 웃긴 것은, 울나라 프랑스 이런 곳들에서 핵발전소 깨끗하네, 에너지 자급률 높일수 있네 하는데
우라늄은 어디서 공짜로 나옵니까?
얼마전 호주에서 나온 외신 보니깐 우라늄 채굴이 점점 더 온실가스 많이 내놓는 쪽으로 가고 있대요
우라늄 광산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는 거지요. 우라늄 모자란단 얘기예요

다시 쇠고기로 돌아가서
저 책에 아마도 이네파벨님이 번역하셨던 사례와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광록병 얘기가 나옵니다.
저도 녹용... 피하고 싶지만 별로 피할 일이 없었는데
이제 쇠고기는 되도록 피해야겠어요
저는 정말 고기 마니아인데... ㅠ.ㅠ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 워튼스쿨 경제경영총서 8
C.K. 프라할라드 지음, 유호현 옮김 / 럭스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협소하게 말하면 ‘공정무역(Fair Trade)’, 좀더 넓혀서 말하면 ‘친절한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요새 관심이 많아졌다. 극단적 빈곤을 없애기 위한 제프리 삭스 식의 접근, 아프리카 빈곤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같은 것들이 뒤섞여서,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방식의 해법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게 됐다.
얼마전 빌 게이츠가 빈곤층을 생각하는 자본주의(게이츠의 발언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친절한 자본주의’ 혹은 ‘따뜻한 자본주의’ 정도로 해두자)를 얘기한 내용이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렸다. 그때 저널에서 신문 기사 한켠에 ‘게이츠의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소개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인도계 경제학자 C K 프라할라드의 이 책이었다. 책 원제는 ‘피라미드 밑바닥의 부(富)’인데, 한국에서는 딱 실용서 느낌으로 제목을 붙였다.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라니, 한국에 와서 멋대가리 없게 변한 책 제목 몇 순위 안에 끼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형편없는 작명이다. 책은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하다.

기본 발상은 단순하다. ▲이제는 다 같이 잘 사는 자본주의를 모색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저소득층은 왜곡된 시장구조 때문에 여태까지 자본주의의 혜택을 못 입었다 ▲자원봉사와 구호활동 만으로는 안 된다, 민간기업이 들어가서 자본주의적 방법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저소득층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기업들에게도 이익이다, 왜냐면 40~50억명 저소득층 시장은 구미 부자들 시장 못잖은 엄청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저소득층들의 세계도 충분히 ‘시장성’이 있음을 살피고, 저소득층은 브랜드 가치를 모른다거나 좋은 상품에 관심이 없다거나 첨단 기술을 수용·소화할 능력이 없다는 식의 편견은 사실이 아님을 여러 사례들을 들어 보여준다. 책은 전제와 사례가 번갈아 나오는 형식으로 돼 있다. 다만 저소득층 시장을 개척하려면 상품의 포장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른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런 혁신을 통해 저소득층 시장에 훌륭히 진입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준 기업들의 사례를 분석한다.
뒷부분은 거의 케이스 스터디인데 전반부에서부터 계속 인용돼 왔던 기업들 사례를 좀더 상세히 설명해놓은 수준이라 동어반복이 많아 대충대충 읽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참신하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1. 일반적으로 저개발국의 저소득층은 고비용 경제 구조 속에 있다. 그들은 쌀부터 신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다. 뭄바이의 고소득층 지역인 와든 로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저소득층 지역인 다라비 사람들은 똑같은 서비스에 평균 20배 정도의 비용을 지불한다. 이러한 현상은 나라마다 규모는 다르지만 아주 보편적인 것이다. 저소득층에게 불리한 이런 비용 불일치 구조는 지역 중간 상인들과 비효율적 유통구조에 기인한다. 만약 민간 부문의 많은 기업이 저소득층 시장에 진입한다면 이러한 문제점들은 쉽게 해결될 수 있다.

2. 사람들은 빈곤층이 브랜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저소득층은 브랜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치 또한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저소득층 사이의 브랜드 인지도는 보편적인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의 도전 과제는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훌륭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3. 보편적인 관점과는 달리 저소득층 고객들은 첨단 기술을 쉽게 받아들인다. 저소득층 소비자들은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들을 받아들이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4. 저소득층을 소비자로 전환시키려면 구매력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물론 현금이 부족하고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저소득층에게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접근 방식은 제품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박애주의식 자선 사업은 기분 좋은 일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저소득층의 구매와 선택을 촉진시키기 위한 접근 방식 중 하나는 단위 포장을 작게 만들어서 그들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구매력을 창조해 내는 또다른 접근법은 혁신적인 구매 계획 및 구매시스템을 제공하는 것.
- 브라질 카사스 바이아 가전제품 판매
- 멕시코 세멕스의 시멘트 판매)

5. 빈곤층이 소비자로 바뀔 때 그들은 제품과 서비스 그 이상의 것을 받게 된다. 그동안 중산층만 누리던 민간 기업들로부터의 관심과 선택을 통해 이제 저소득층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알게 되었다.
저소득층에서 일어나는 가장 흔한 문제점 중 하나는 정체성 결여다. 그들은 주로 사회의 바닥층에 있고 투표자 등록이나 운전면허 또는 출생신고와 같은 법적 정체성을 갖지 못한다. 이러한 양상은 민간 부문의 생태 시스템이 나타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합법적 정체성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 없이는,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우리가 당연히 받는 신용 대부와 같은 서비스를 누릴 수 없다.

6. 저소득층 시장에선 물 문제가 핵심적이다. 물을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아니면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 같은 수준의 기능을 제공해주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까?
포장 문제는 저소득층 시장의 환경 친화적 개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50억의 잠재적 사용자를 감안하면, 포장 원료를 포함한 모든 자원의 1인당 사용량은 극히 중요하다. 심지어 재활용 체계조차도 비실용적일 수 있다. 농촌 지역이 넓게 분산되어 있고 재활용을 위한 쓰레기 수거 또한 경제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원을 사용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에너지든, 운송을 위한 화석연료든, 인간의 청결함을 위한 물이든, 안전과 미적 감각을 위한 포장이든 환경과 생태계를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아마도 점차적으로 선진 시장보다는 저소득층 시장에서부터 더욱 혁신적이고 환경파괴가 없는 해결책들이 나타날 것이다.

7. 잘 인식돼 있으나 명료하게 표현되지 않는 개발의 실체는 여성의 역할이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에 대한 접근법은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기회 부정과 같은 오랜 전통을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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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8-05-0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어 책 제목때문에 위의 글도 안 읽을뻔했습니다. ^^;

딸기 2008-05-08 14:19   좋아요 0 | URL
책 제목 진짜 품위 없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