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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CinDi영화제 섹션별 추천작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3주

날씨 여전히 더움.  

영화제의 가장 좋은 점은 영화계의 명사들을 직접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이 유명한 사람들은 저 멀리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같은 극장에서 나와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는, 동질감을 넘어선 우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고 또 황홀한 일인가!  

 

로샨느 새드나타 감독의 <살아남아라>는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비극, 킬링필드를 다루는 영화다. 로샨느 새드나타 감독은 10살 때 이 비극을 직접 겪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이모와 이모부를 잃었다. 당시 이모는 임신 6개월이었다. 감독과 어머니는 밤중에 당시 거주하고 있던 마을에 도망가 프랑스로 망명을 한다. 이 영화는 당시 학살을 경험했던 감독이 30년 만에 캄보디아에 돌아가, 당시 학살의 중심에 있던 민주 캄푸치아 대통령이었던 키우 삼판을 인터뷰하고, 자신이 10살 때 겪었던 일을 회상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미덕은 역사의 비극이라는 거대담론을 다루는 대신, 감독이 10살에 겪었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이다. 로샨느 감독은 키우 삼판에게 그 때 왜 그랬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키우 삼판은 자신의 신념을 믿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민족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다. 하지만 그의 민족주의는 그릇된 신념 위에 있었다. 그 당시 캄보디아에는 이데올로기는 있었으나, 인간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정부의 선동을 이해하지 못한 농촌의 '옛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을 숙청한다. 감독의 삼촌은 금지된 감정인 사랑을 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사람을 죽여 비료로 쓰는 것은 기본인 세상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모골이 송연한 장면. 감독과 어머니는 그들이 도망쳤던 마을에 가본다. 그 마을은 변한 것 없이 그대로 있었고, '옛 사람들'도 나이를 먹은 채로 있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갑자기 사운드가 죽고, 내레이션의 목소리는 공포를 느낀 것처럼 변한다. "저기 옛 사람들이 몰려온다. 우리를 죽인, 우리를 감시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킬링필드를 직접 경험한 10살의 로샨느 감독은 우리에게 묻는다. 저 순박한 사람들이 악마가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키우 삼판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그릇된 신념은 커다란 비극을 만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캄보디아의 역사는 과거형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가능태를 지닌 역사다. 우리 역시 비슷한 현대사의 비극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대통령 역시, 자신의 그릇된 신념으로 얼마나 많은 존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가! <살아남아라>는 캄보디아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감독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우리의 역사까지도 껴안는 흔치 않은 영화다.  

 

 

쉬 퉁 감독의 <점술가(算命)>는 점술가 리 바이청에 관한 이야기다. 리 바이청은 점술가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앞날을 봐준다. 액운은 피하게 하고, 길한 일을 얻기를 바라며 그는 점을 쳐준다. 그의 부인은 귀머거리에 벙어리이고 절름발이다. 그는 16년 전, 아내와 결혼했다. 그의 점을 보러 오는 단골손님들은 매춘부들이다. 그의 주변에는 소외되고 약자인 사람들만 가득하다. 리 바이청은 선인(善人)이지만, 성인(聖人)은 아니다. 그는 때때로 욕망을 발산하기도 하고, 물욕적인 욕심을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점술을 통해 그와 마찬가지인 사람들을 위로해준다.  

쉬 통 감독은 대학을 마친 인텔리전트다. 그런 그가 점술이라는 비이성적 행위를 믿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쉬 통 감독은 리 바이청의 점술이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것을 믿는다. 그는 평생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봐주면서 살아왔다. <점술가>는 한 평생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봐준 리 바이청의 삶을 위로해주는 영화다. 한 편의 영화가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면서, 또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다니! 감히 이야기하자면, <점술가>는 지금껏 내가 봐 온 영화들 중 가장 따듯한 영화다.  

  

총 펑 감독의 <미완성 생활사>는 중국 서북부 황양촨의 교사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교사들이 나오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은 리우 동야오 선생이다. 그는 미술 선생으로 부임했지만, 체육 과목을 맡기 시작하고 최근에는 음악 과목까지 맡았다. 선생들의 일상은 너무나 따분해서,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지낸다. 지루한 일상에서 가장 활기찬 시간은 술을 마시는 시간일 때다. 이들이 마시는 술은, 현실을 잊기 위한 취생몽사다. 그들은 계속 취한 상태로 깨어있고, 혹은 깨어있는 채로 취해있다.  

영화는 207분(3시간 27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 시시콜콜한 일상을 보여준다. 변화도 없고, 변하고 싶은 마음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죽이며 살아가는 중국의 교사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완성 생활사>의 놀라운 점은 별로 특별하지 않는 내용으로 영화가 꽉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평범하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찍고 기록해서 모은 것이 영화가 될 수 있고,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총 펑 감독은 직접 증명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진짜 영화의 힘이 아닐까?  

<미완성 생활사>는 디지털 영화라는 화두를 직접 몸으로 부딪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제 시스템 없이도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총 펑 감독은 직접 증명해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그 영화가 소개되어질 수 있는 플랫폼이 아닐까? CinDi 영화제는 어쩌면 디지털 영화의 플랫폼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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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1 0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1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4회 CinDi영화제 섹션별 추천작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3주

날씨 더웠음.  

영화제에 참석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설렘이 주가 된다. 어떤 작품은 잘 알고 있는 감독의 새로운 작품일 수도 있고, 어떤 작품은 여러 영화제를 거치며 입소문을 탄 작품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신디에서 만난 작품들은 (한 편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작품들이었다. 이런 작품들을 만난 내 느낌은, 정말이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 "음, 영화, 내가 좀 알지!"하는 오만한 생각이 아주 박살이 난다고 할까. 이런 부끄러움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난 지금까지 할리우드와 충무로, 그리고 유럽에서 제작되어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에 얼마나 많이 길들여져 왔던가. <인셉션>의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영화제의 영화들은 주류 영화 속에 잠들어 있는 나를 깨워주는 킥이다. 오늘 본 영화들은 충분히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 영화들이다.  

 

리 홍치 감독의 <겨울방학(寒假)>은 시간으로 다루면, 겨울방학이 끝나는 이틀간에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은 할 일 없이 거리를 방황하고 친구 집에 놀러간다. 새로운 일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게 반복되는 쳇바퀴 도는 일들의 연속이다. 개학이 되도 달라진 것은 없다.  

리 홍치 감독은 고정된 카메라에 일상의 권태와 을씨년스러운 공간을 잡는다. 이런 것은 마치 늘어지는 시간의 흔적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시간을 버린다. 어른들도 시간을 버린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흐르지만, 모두들 시간을 죽이기만 한다. 아이들에겐 꿈이 없다. 그들의 꿈은 여자 친구와 결혼해서 자신의 씨를 자손만대로 퍼뜨린다거나, 혹은 이 지긋지긋한 가족들에게 벗어나 고아가 되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영화에 나오는 어른들(그들의 부모들)처럼, 이혼을 하거나, 정신이 나가거나, 모든 일에 무심해질 것이다. 영화에서 모든 행동들이 두 번씩 반복됐듯이.  

개학이 되어도 여전히 죽어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리 홍치 감독은 절규와 탄식을 오간다. 아쉬운 점은, 이 모든 것이 탄식하는 것에서 멈춰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세상에 개입할 수 없고, 결국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리우 용홍 감독의 <올가미(夜郎)>는 두 쥔이라는 한 경찰의 이야기다. 그에겐 만삭의 아내가 있다. 아내는 곧 출산할 예정이다. 그는 양 밍이라는 옛 애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녀의 동생 양 즈를 경찰로 취직시켜 같이 일한다. 두 쥔은 동생 두 리를 데리고 병원에 가 낙태를 시킨다. 모든 게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사건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두 쥔은 이성을 잃는다.  

영화에서 주인공 두 쥔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한 번에 설명되지 않는다. 처음에 양 밍이 등장했을 때, 그녀가 두 쥔의 동료 형사인지, 아니면 범인인지, 아니면 아내인지, 아니면 애인인지를 보는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두 쥔의 동생 두 리가 등장했을 때, 그녀가 창녀인지 부인 몰래 만나는 애인이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이런 내러티브의 전개는 관객들에게 서사의 흐름을 뺏는 대신에 인물간의 관계와 인물 그 자체에 더 몰두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이야기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게 함으로써, 우리는 두 쥔의 삶을 구경거리로 보지 않고 그 내면에 다가가기 위해 더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암울하고 어둡다. 머리는 깨어나지만, 가슴은 (아직까진) 울리지 않는다.  

 

<신디 익스트림 2: 퍼스널 아카이브>는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7편의 단편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 목록을 열거하자면, <0116643225059>, <빛을 찾는 사람들>, <우리 어머니의 정원>, <창문>, <아시아의 유령>, <에메랄드>, <뱀파이어>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을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한다면, 바로 데이빗 린치다. <0116643225059>는 <6명의 아픈 사람들>이 떠오르고, <우리 어머니의 정원>은 <할머니>가 감히 떠오를 정도다. 확실히 데이빗 린치와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빛과 어둠, 꿈과 무의식, 그리고 미지의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효과는 사뭇 다르다. 데이빗 린치는 무의식의 공포를 다루지만, 아피차퐁 감독은 애도와 그리움을 다룬다. 특히나 그의 작품 중 가장 무시무시한 <뱀파이어> 조차도 공포를 다루기보다는 미지의 존재를 소환하는 것 같은 주술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장 기대했었던 <에메랄드>는, 글쎄, 내 허접한 안목으로는 입에 거품을 물 정도는 아니었고, 짧게 "아!"하는 감탄사를 뱉는 정도랄까. 오히려 모르고 봤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를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내가 그를 따라잡기에는, 그는 너무 멀리 가 있다는 거다. <창문>에서 브라운관에 비치는 그 황홀한 빛의 윤무를 생각해보면, 감탄을 넘어 탄식을 불러일으킨다. 갑자기 그의 전작들을 모두 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쳐 오른다.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해원(지성원)의 이야기이다. 해원은 서울에서 은행 일을 하고 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그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은행에서의 실수로 그녀는 휴가를 구실로 회사에서 쫓겨나고, 그녀는 계속 연락이 오는 복남(서영희)에게 간다. 무도에서 살고 있는 복남은 마을 사람들에게 개, 돼지 같은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 복남은 딸과 함께 서울로 도망가려 하지만, 남편에게 잡히고, 딸도 죽게 되는 비극을 맞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복남이라기 보다는 그녀를 지켜보고 방관하는 해원이다. 복남의 살인으로 해원은 타인의 위험을 외면하지 않는다. 복남이 낫을 들었던 것처럼, 해원은 볼펜을 든다. 하지만, 해원이 세상과 맞서기 위해, 복남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나! 우리가 깨어나기 위해선 그만큼의 많은 피가 필요한 것일까? 깨달음은 쉽게 얻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정리하니 벌써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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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8-2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작품을 만나보고 발가벗겨진 느낌이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것에 대한 채움의 강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합니다. ^^

Tomek 2010-08-21 01:05   좋아요 0 | URL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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