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다르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저자들의 이름만 보더라도 매력이 흠씬 풍기는 신간이다. 이번에 <말과 활>의 창간호를 낸 홍세화선생의 요즘 근황과 생각들은 어떤지, 기생충 연구를 하는 서민교수의 굴욕 시절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지, 이충걸 편집장의 수려한 글발은 또 얼마나 마음을 동요하어 흔들어 놓을지 좀처럼 진정치 못할 호기심이 마구 들어 오는 것 같다.

같은 주제를 놓고 말하기 보다 제목에서처럼 스스로를 위한 이야기일수도 혹은 세상에 전하는 말일 수도 있는 제각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니 흥미롭다. 일곱 사람의 일곱 이야기가 수십가지의 프리즘처럼 아름답게 비춰질 것 같은 기대가 들어 온다.  

 

 

 

 

 

 

 

영국의 한 칼럼니스트가 쓴 <진짜 여자가 되는 법>은 베스트 1위는 물론 일년이나 탑10 안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그렇다면 왜? 무조건 솔직하고 화끈한 이야기를 한다고해서 다 그런건 아니니까.

어떤 식으로 발칵 뒤집어 놓았으리라는 단서는 목차를 읽어 보니 대충 감이 온다. '민감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한 모양이군'이란 짐작을 하는 중간에도 '이런 것까지?'하면서 동공이 커지는 주제들이 가득한 이유가 있다. 작가 케이틀린 모란은 직설화법으로 실날한 여자의 비밀 영역에 대해 혹은 궁금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 못한 치부와 혹은 찌질한 면에 대해서도 유머러스하게 풀어 낸다. 과연 여자가 되는 법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내가 과연 얼만큼 동의하고, 알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사뭇 기대가 되는 책이다. 

 

 

 

 

 

 

 

 

 

불문학자로 유명한 김화영교수의 <여름의 묘약>은 이 불볕 더위에 어떤 마법같은 말들로 여름을 나는 묘약을 선사해 줄지 궁금하게 하는 책이다. 묘약이란 말처럼 삶의 해답을 전해주는 신통함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 처방전같은 걸까.  

그녀에게 여름은 젊은 시절 프로방스에서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계절, 그리고 다시 사십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프로방스'에 대해 지금의 계절에 대해 말하려는 책이다. 그녀의 펜은 언제나 프랑스의 문호들과 함께 했던 만큼, 그들의 이야기 또한 김화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장소의 역사와 맞물려 흥미롭게 들릴 것 같다. 그녀만이 누린 한 시절의 묘약들이 함께 한다면 참 호사스러울 책이다.

 

 

 

 

 

 

 

 

 

<당신이 들리는 순간>은 홍대 인디씬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밴드에 대한 기록들이다. 순전히 인디밴드들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으로 기획된 만큼 저자의 유별난 태도가 엿보이는 듯 하다.

1부에는 주로 생활의 저항을 말하는 락밴드들을 위주로 말하고 2부에는 그 외의 세 밴드를 소개하고 있다. 

인디밴드들이야 너무 많으니까 추리고 추리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겠거니와, 락밴드가 아닌 밴드들의 수가 적군? 하면서 벌써부터 2권을 기대하게 만드는 듯 하다. 인디씬의 진면모 혹은 이면을 팬의 시선으로 재미있게 들려 줄 '소리가 즐거운 책'을 만난다면 또 어떤 기분이 들까.

 

 

 

 

 

 

 

 

 

 

 

 

 

 

 

작가 김얀은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알기 위해,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떠났다고 했다. 부모님과 친구 지인들이 충고해준 모두가 똑같이 말하는 안정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는 말이 인상 깊다. 

그녀가 만난 이방인과 함께한 나날에 대한 일화들, 여행을 하며 만난 이국적인 풍경 그리고 각 국에서 함께 한 남자들과의 이야기들도 어떤 인상으로 남았는지도 궁금하다.

시인이기도 한 이병률작가의 사진이 같이 실려서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의 야릇한 여름 바람도 재밌게 기대해 볼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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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08-0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에세이 분야 13기 신간평가단원 중 1人입니다.
활동 기간만큼이라도 같은 책을 읽고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반갑습니다. ^^

puriul 2013-08-06 20:22   좋아요 0 | URL
네 꼼쥐님 당연히 저도 알고 있죠. ^^ 반갑습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고, 그렇네요. 하하
이번 13기에도 꼼쥐님 리뷰 많이 찾아 읽고, 배우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이번 달에는 어떤 책을 만나게 될까, 서재에 들르는 달뜬 기분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지. 평가단을 하기 전에도 신간 목록을 훑어 보고, 읽고 싶은 책을 메모 해두는 습관이야 있었지만 막상 평가단을 하고난 후 신중해지자는 책임감은 실로 큰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내 취향의 범위를 벗어나본 적 없는 지극히 이기적인 선별이지 않았냐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어지지만, 그래도 나름으로의 고심은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읽기 전의 호기심만으로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책의 강점을 소개하며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본 책의 리뷰들이 알라딘 서재에 들르는 독자들에게 얼만큼의 영향을 주었는지는 애매하거나 미미했을 것이다. 다만 한 권의 책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제 각각의 생각을 쏟아내고 공유할 수 있는 나눔의 느낌은 참으로 근사한 일인 것만은 확실하다.

책이 독자의 눈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또 다른 역사가 펼쳐지는 것이란 말이 새삼 실감나는 시간들이었다.

더불어 책이 선정되고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또 리뷰를 써낸 후의 물밑 작업들을 묵묵히 성심으로응원하며 도와주신 파트장님, 담당자님의 노고에도 감사드리고 싶다.

 

 

 

 

 

- 다섯권을 꼽다

 

 

<마흔의 서재>

도시에 살던 이가 다른 어딘가로 내려가 살게 되면 소위 ‘은닉’이란 표현을 쓴다. 이 말은 어쩐지 이상하다지 않을 수 없겠다. 타자 중심의 말이니까. 본인 스스로에게는 그곳이 어디든 어딘가로부터의 귀퉁이가 아니라 언제나 중심이 아니겠는가. 도시에 살지만 언제나 누군가의 조연이나 주변부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어디로든 가도 오롯이 자신만의 주인공인 삶을 사는 인생이 있다.

<마흔의 서재>를 읽으면서 작가의 느린 걸음으로 같이 두런두런 따라 걸으면서 사색하고, 언제라도 늦지 않았음을 일깨우는 담담한 다독임은 실로 큰 용기를 주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전형적이지 않은 구성이라 읽는 내내 많은 호기심이 자극되는 책이었다. 여백의 시간, 혹은 내가 생각하지 않아본 세계의 초시계가 째깍째깍 울리는 정적을 일깨우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현실을 벗어난 미지의 공간을 탐닉하고, 작가의 손에서 구현된 신비로운 예술품들이 이 책 안에 가득하다. 나무인형과 그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실타래 엮어내듯 밤새도록 듣고만 싶은 의외의 상상력으로 넘실대는 몰입의 책이었다.

 

 

 

 

<소설의 기술>

밀란쿤데라가 소설에 대해 깊이 통찰하여 얻어낸 면모는 한 편의 소설처럼 유려하다. 전에 없던 시선과 날카로운 진단들이 그의 소설가로서의 업적도 새삼 함께 끌어 올려주었음은 분명한 것이었다. 한가지 표정과 관점만을 말하지 않고 다만 어느 순간을 말할 때라도 그의 사고는 다양성을 이야기 한다. 소설에 대한 기술적 혹은 미학적 요소들을 이야기 하지만 밀란쿤데라의 기민한 시선이 모든 소설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설의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변종모작가의 책은 제목에서 풍겨오는 맛이 참 오묘해서 좋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처럼 아픔과 아련함들이 묻어나는 근사한 제목들이 그렇거니와, 이번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에서도 역시 그만의 향이 담뿍 담긴 세상의 이야기들이 함축적으로 담겨있어 좋다. '그래도'와 같은 말을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손길같은 따스함이 그의 글세계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세상의 상처와 풍경 사랑 온도 모든 것들이 그의 눈을 거쳐 손으로 전해지면 근사한 세상으로 비쳐졌던 이유들이 언제나 다음 책을 기대하게 해주는 전이같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하루키는 굳이 장황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름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자랑하지만, 이렇게 에세이로 만나는 하루키의 본모습은 어쩐지, 마냥 귀엽다. 이 책을 보면 언제라도 젊은 감성으로 자신만의 일상을 살아내며 차분히 앉아 소설을 쓰는 모습이 그려지게 된다. 섣불리 재단하거나 살아온 세월에 대한 권위도 부리는 일 없이 언제나 조심스럽게, 혹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삶을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가볍고 소소한 태도와는 상반되게 삶의 태도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심각함이나 엄숙함 없이도 늙어갈 수 있겠다란 작은 희망들이 읽는 내내 맴돌았다.

 

 

 

- 한 권의 책

 

<마흔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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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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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면 으레 문학을 말할 때 고뇌쯤을 어깨 위에 지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것만 같다. 시대와 맞물린 사실적인 이야기든 혹은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로든 얼마든지 변주하고 삶을 이행하면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세계를 꾸린다.

낱낱의 언어에는 온 말과 빈 말의 여지를 담고, 숱한 날 고민하고 정제된 말들의 성으로 독자들을 그렇게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해주는 것이다. 하나의 형용사를 위해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고심하고 모래알도 같은 작은 말은 우주가 되고 하나의 세계가 되는 말로 부푼다. 이 고된 과정들을 기꺼이 버티고 즐기는 것을 보면 '작가'라는 이름을 평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엄격하고 엄중해 보이는 선입견만으로 작가의 소명 따위를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읽고 쓰는 삶이 전부인 사람들에게 지독하게 주어진 시간의 오선지 위에는 이런 메타포가 그려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자주 작가에게 바라는 정직과 같은 잣대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어떤 이야기라도 해보지 않은 상상을 듣고, 보는 일로도 이렇게 즐거운데 말이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일, 세상의 추함과 아름다움, 지켜내는 것과 버리는 것, 의심하는 것과 사랑하는 일, 생의 얼개란 참으로 다양한 것인데 이를 정직으로 구축하는 일은 그 구체를 설명할 수나 있는 일일까?

생의 가장자리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며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들에는 과연 어떤 진정한 창조와 거짓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작가에게 바라는 엄격한 진실성, 진정한 창조란 예술가에게 도덕적 잣대 윤리적 권장을 위시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오히려 규범과 틀을 벗어난 밖의 이야기를 바랄 수 있을 때 세상이 주는 삶의 보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의 짐을 충분히 지어 본 사람, 어렵고 고된 삶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눈 씻을 작은 여유를 갖는 사람에게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는 예술이 곧 삶의 활력소를 주는 일일테다. 예술은 그런 기능으로도 족한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는 여러모로 세상의 가장 무겁고 은밀한 가장자리만을 떠도는 이야기를 선보이는 작가로 손꼽힌다. 그의 소설은 명징하고 파격적인 소재, 거침없는 표현들로 하루키의 작가적 인상을 최고조로 높인바 있다. 그런 그이지만 일상인 하루키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새삼 또한번 놀라게 되는 것 같다. 워낙 매체에 얼굴을 보이는 걸 꺼려해서인지 그에게 갖는 선입견이라면 평범과는 거리가 먼 강한 이미지가 지배한 것이 사실이다. 말 수가 없는 것 같다거나 쿨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 하루키는 소설처럼은 사는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 겸연쩍다.

그는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여느 회사원처럼의 규칙적인 패턴으로 실천하며 살아갈 뿐인 글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낮춘다. 낮춘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선입견들로부터 사실은 저 안그래요라는 듯, 굳이 말하지 않으면 몰랐을 부분까지도 드러내어 말한다. 집에서 그는 과하다 싶을 만큼의 많은 채소 먹기를 좋아하고, 매일 쪽잠을 자기도 하며, 가진 명성에 비해 심한 낯가림으로 고생스러운 아기자기한 성격의 하루키씨다. 소설 밖 하루키의 일상은 우리네와 같이 비슷하게 흘러갈 뿐이지만 역시 작가라는 비범함을 유별하게 드러내는 버릇이란 것은 어쩔 수가 없어 보인다.

가령 하루를 살더라도 매순간 의식하며 시간을 보낸다라는 인상이 그것이다. 날 선 시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을 가진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일단 그는 뭘 쓸까?’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을 참 얄밉게도 한다. 화재를 생각하기에 골머리를 쓰기 보다는 사물과 풍경처럼 눈앞에 보이는 사안과 사물, 호기심만으로 출발한 생각에 골몰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 말은 평범하지만 그 안의 비범성을 보는 또다른 눈을 가지라는 말과 같다. 적어도 하루키의 시선에는 세상에 평범이란 것은 없어 보이는 모양이다. 그냥 흘려보내는 것 같은 일상이지만 그는 항상 지금은 없는 이야기로 이야기를 창조하고 변주해 내는 천상 이야기꾼인 것이다. 끊임없이 가동되는 하루키 라디오의 주파수는 바로 이 유별난 호기심때문에 가능했던 모양이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지 연재물의 3권 중 마지막 이야기로 소소한 일상과 자신만의 철학을 솔직하게 일기 쓰듯 전하는 책이다. 여느 작가의 일상기라고 말해도 좋지만 그의 어투에서 특유의 버릇이 느껴질 때마다 영락없이 호기심 주파수라는 소제목을 달고 싶어진다. 그는 자주 어째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란 말을 사용한다. 일본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그들 말투가 원래 저런 식인가 싶어서, 숙어로 삼아도 좋은 말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왠지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은 일본인 특유의 소극적인 태도와, 약간은 애교 섞인 짜증, 귀여운 도발로써 자주 쓰이는 말인 모양이다. 하루키의 호기심은 왕왕 이런 식으로 표현되곤 하는데 그게 작가의 권위의식이나 엄숙함을 깨는데 많은 일조를 하는 것 같다.  

 

 

하루키는 보이는 청춘의 이미지만큼이나 아마 더 이상 펜을 들 수 없을 날까지 이런 파릇파릇한 감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같다. 그가 한 번도 뭘 쓸까에 대해 고민해본적이 없다는 말은 세상 어느 날도, 어떤 바라봄에도 평범한 것이 없다는 '다른 시선'에 머물고 있다는 걸 배운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새롭게 바라 보리라는, 그것이 내 삶에 부족한 부분이었다는 생각을 조금 해봤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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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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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그림을 볼 때면 여지없이 생각나는 궁금증이 있다. ‘왜 하필 이 장면이었어야만 했나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림 안의 풍경은 무조건 하나의 장면만을 담고 있으니 왜 하필이란 생각이 들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정지된 단 하나의 동작 안에는 그 안에 벌어진 이야기, 풍경들이 숨을 멈추고 일제히 가장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극대화된 상태로 멈추어 진다. 머금을 수 있는 최대의 공기를 품고, 찰나의 역사를 응축시키면 작가의 눈이 크로키처럼 빠르게 작동되어 연출되고 화폭에 담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물리적으로 크로키처럼 몇 초 안에 그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그 정교함이 예민해 보일수록 그린이의 을 탄복하게 되면서 상상의 나래는 한껏 부풀게 된다. 이미 멈춘 것이 아니기에 이후 완성되기 까지의 시간은 모두 작가의 상상과 의도로 꾸며지게 되어 있다. 그림 안의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작가는 가장 효율적인 배치를 정하고, 스토리를 꾸미며, 방향과, 비밀을 적절히 배치하는 연극판의 연출가처럼 판을 짠다만약 그림 안에 다 담지 못한 게 있다면 그런대로 미완인 채로 남겨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림은 그래서 서사가 정지된 와 같은 예술인지도 모르겠다. 순간에 명멸해버린 그 기운만이라도 담겨지면 그만인, 영원히 그 상태에서 정지해 버린 비극의 예술로도 불릴 수 있는 것이 회화 예술이 아닐까.

왜 하필 이것이어야 했나란 물음에는 우연보다는 필연이, 아무리 사소한 풍경의 단서에라도 마치 맥을 짚는 의사의 손길처럼 정확하고 유연한 진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여인의 사소한 눈동자의 흔들림이 있다고 할 때 이 역시 결코 이유 없는 그냥이란 말을 갖다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연동하는 가운데 정지버튼이 작동할 그 찰나인 이유에는 유기를 갖는 서사가 작동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녀는 누구를 바라보고 있던 것일까? 그 전과 이후에는 어떤 일이 펼쳐졌던 것일까? 하나의 프레임 안에는 당초 모든 것들이 각자의 비밀과 필연을 품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비밀을 풀어달라는 애원이 숨겨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가의 의도와 이야기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해가 품어진다.

 

 

<눈을 감으면>에서 황경신 작가의 눈에 머문 찰나는 모든 상상의 가장 슬픈 지점의 곳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인 것 처럼 보인다. 그림을 보고 전후의 서사를 상상해 본 서른세가지 이야기가 이별, 슬픔, 성장과 사랑 네 가지 테마로 엮어져 있다.

황경신 작가는 월간 <페이퍼>를 통해 오랫동안 봐온터라 익숙하다. 유난히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슬픈 시처럼 흩뿌려 진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녀의 상상력은 우주의 빅뱅과도 같아서 창조적 폭발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리석게도 어떤 날 나는 그녀의 글이 달이 지나면 잊히고 사라져버릴 잡지에 실려도 좋은 걸까, 그러면 좀 아까운데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그녀의 글은 매달 보더라도 한 번도 대충인 법이 없는 그런 응축된 미를 가장 잘 보이는 글쟁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결이 촘촘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나 볼 때마다 의아했던 것 같다.

 

 

<눈을 감으면>에서는 그동안 많이 봐온 글쓰기에서 조금은 벗어나, 그림으로 출발한 상상의 서른세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여기에 실린 회화 작품들은 그리 유명한 작품들도 아니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던 것 같다유명한 작가라고 하더라도 대표작은 아닌 그림 위주로만 있어서 대부분의 작품들이 생소했다. 그래서 황경신 작가가 이야기하는 서사의 흐름 위에 나의 처음으로 보태지는 상상력이 흐르며 자유롭게 맥이 흐르는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황경신 작가의 이야기에는 지독히도 내면을 파고드는 매력이 있지만 그 비밀이 다 헤짚어지는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위험이 흐르는 점도 재미있다. 이것 때문일까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밝음 보다는 침잠해지는 기운이 지배되고, 곧 그녀가 의도한 눈을 감으면, 들리지 않은 소리와 보이지 않은 희망, 잡을 수 없는 사랑같은 것이 싱싱하게 튀어 올랐다. 이는 역동성이라기보다는 슬픔의 분출처럼 느껴진다. 어째서 그것이어야만 했나 하는, 그림 속 하나의 재스춰 만으로도 온 이야기가 일제히 일어나 유동하고 언어로 춤을 추는 것 같은 마법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그녀의 눈길처럼 섬세하고 유려하게 펼쳐지는 밤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오래 펼쳐 보게 될 것 같은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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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변종모의 글에는 그만의 독특한 향이 나 좋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전작들의 제목에서만도 그의 범상치 않은 언어에 대한 유별함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글에는 이방인의 정서, 익숙지 않은 조합, 아련함, 몇 번을 더 생각하게 만드는 여백의 말들로 무한함의 영원을 드러낸다.

 

 

작가에게 여행이라는 것과 풍경의 기록이라는 행위는 마치 내부운동이 이는 일과 같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주의 온 색, 작용, 섭리 같은 것들이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응축되어 격렬함과 유유함, 시간의 순환 등 세상의 모든 성분이 담긴 성찰로 담긴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소박해 보이지만 유난히 아름답고, 평소 보지 못한 비밀을 전해주는 밀사의 언어 같다.

국경을 넘나든 숫자만큼,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과 나눈 눈인사만큼이나 숱하게 소박한 일상이 거듭되고, 여과되고, 정화된 투명한 얼굴의 글이 바로 변종모의 삶이라 말할 수 있을지.

 

 

새삼 여행자라는 업을 두고 사는 이들이 부러운 건 마음껏 삶에 기대사는 면 때문이 아닌가 싶어진다. 세상이 치열하게 극복해나갈 대상이며 한 발자국이라도 먼저 내딛어야 하는 경쟁 구조 속 삶 말고, 천천히 돌아가도 좋고 유보되어도 좋을 여행자의 삶처럼 꾸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어디든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해서 같거나 다름을 보는 시선이 아니라, 얼마동안든 그곳에서의 생활자로 그냥 바라보는 일을 하는 시선이 참 좋다. 오랜 경험에서 묻어 나오는 품위로 읽혀지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여느 여행자의 책처럼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장단점을 쉽게 말해주는 여행서도 아니고,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일화 일랑은 찾기 힘들다. 시종일관 그들의 삶에 묻힌 모습, 진지하게 다가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가 되고 그곳의 생활자로 머문 ‘지금 현재 내가 있는 곳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그런 삶이다. 역시 삶에 기대어 살 수 있는 삶이 진짜 쉼이고 진정한 여행은 아닐까.

 

 

 

신작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에서는 좀 특별하게 작가의 혀끝에 감도는 맛의 여운에 대한 여행의 일을 담았다. 시선이 음식에 가 있긴 하지만 결국은 그것들이 내 혀로 전해지기까지의 소소한 하루와 사람들의 잔잔한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 어느 곳이든 한 접시의 인생이 깃들여 있는 건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고유의 역사와 환경, 문화가 녹아 들어간 음식이 모두 제각각인 건 그래서 참 흥미로운 여행의 시작인 것이다. 하루라도 먹지 않는 날이 없는 것을 감사하면서 풍요롭지 않지만 접시 하나, 대충 넣어 만든 한 잔의 커피에서 느껴지는 맛의 풍경은 먹어보지 않아도 따뜻한 정이 전해지는 군침이 도는 맛일 것 같다.

 

 

작가의 아름다운 말과 맛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강렬하게 잊을 수 없는 매력을 또 차곡차곡 쌓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그가 직접 찍은 사진의 기록들이다. 전작들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그는 유난히도 맑게 빛나는 사람의 눈동자를 주시하곤 한다. 아이의 극대화된 얼굴 안에는 순수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 천진하고도 수줍은 미소의 입가를 보면 소박한 한 접시의 음식을 작게 오물거리는 모습 역시 떠오르게 만든다. 동원될 수 있는 모든 감각들이 일어나서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 고요한 부축임을 영락없이 당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세상 어느 곳을 가든 마음이 전해지는 맛을 느껴볼 수 있다는 건 삶의 가장 근원적인 감사의 일일 것이다. 작가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그들이 주는 양식으로 배를 채우며 인상을 마음으로 채운다. 맛의 정취는 여행지에서 주는 일부의 풍경일 테지만 소박한 맛이라도 결코 잊을 수 없게 되는 이유는 그 일부가 모여 전부가 되기 때문은 아닐까.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날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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