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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변종모의 글에는 그만의 독특한 향이 나 좋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전작들의 제목에서만도 그의 범상치 않은 언어에 대한 유별함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글에는 이방인의 정서, 익숙지 않은 조합, 아련함, 몇 번을 더 생각하게 만드는 여백의 말들로 무한함의 영원을 드러낸다.
작가에게 여행이라는 것과 풍경의 기록이라는 행위는 마치 내부운동이 이는 일과 같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주의 온 색, 작용, 섭리 같은 것들이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응축되어 격렬함과 유유함, 시간의 순환 등 세상의 모든 성분이 담긴 성찰로 담긴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소박해 보이지만 유난히 아름답고, 평소 보지 못한 비밀을 전해주는 밀사의 언어 같다.
국경을 넘나든 숫자만큼,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과 나눈 눈인사만큼이나 숱하게 소박한 일상이 거듭되고, 여과되고, 정화된 투명한 얼굴의 글이 바로 변종모의 삶이라 말할 수 있을지.
새삼 여행자라는 업을 두고 사는 이들이 부러운 건 마음껏 삶에 기대사는 면 때문이 아닌가 싶어진다. 세상이 치열하게 극복해나갈 대상이며 한 발자국이라도 먼저 내딛어야 하는 경쟁 구조 속 삶 말고, 천천히 돌아가도 좋고 유보되어도 좋을 여행자의 삶처럼 꾸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어디든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해서 같거나 다름을 보는 시선이 아니라, 얼마동안든 그곳에서의 생활자로 그냥 바라보는 일을 하는 시선이 참 좋다. 오랜 경험에서 묻어 나오는 품위로 읽혀지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여느 여행자의 책처럼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장단점을 쉽게 말해주는 여행서도 아니고,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일화 일랑은 찾기 힘들다. 시종일관 그들의 삶에 묻힌 모습, 진지하게 다가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가 되고 그곳의 생활자로 머문 ‘지금 현재 내가 있는 곳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그런 삶이다. 역시 삶에 기대어 살 수 있는 삶이 진짜 쉼이고 진정한 여행은 아닐까.
신작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에서는 좀 특별하게 작가의 혀끝에 감도는 맛의 여운에 대한 여행의 일을 담았다. 시선이 음식에 가 있긴 하지만 결국은 그것들이 내 혀로 전해지기까지의 소소한 하루와 사람들의 잔잔한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 어느 곳이든 한 접시의 인생이 깃들여 있는 건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고유의 역사와 환경, 문화가 녹아 들어간 음식이 모두 제각각인 건 그래서 참 흥미로운 여행의 시작인 것이다. 하루라도 먹지 않는 날이 없는 것을 감사하면서 풍요롭지 않지만 접시 하나, 대충 넣어 만든 한 잔의 커피에서 느껴지는 맛의 풍경은 먹어보지 않아도 따뜻한 정이 전해지는 군침이 도는 맛일 것 같다.
작가의 아름다운 말과 맛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강렬하게 잊을 수 없는 매력을 또 차곡차곡 쌓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그가 직접 찍은 사진의 기록들이다. 전작들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그는 유난히도 맑게 빛나는 사람의 눈동자를 주시하곤 한다. 아이의 극대화된 얼굴 안에는 순수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 천진하고도 수줍은 미소의 입가를 보면 소박한 한 접시의 음식을 작게 오물거리는 모습 역시 떠오르게 만든다. 동원될 수 있는 모든 감각들이 일어나서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 고요한 부축임을 영락없이 당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세상 어느 곳을 가든 마음이 전해지는 맛을 느껴볼 수 있다는 건 삶의 가장 근원적인 감사의 일일 것이다. 작가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그들이 주는 양식으로 배를 채우며 인상을 마음으로 채운다. 맛의 정취는 여행지에서 주는 일부의 풍경일 테지만 소박한 맛이라도 결코 잊을 수 없게 되는 이유는 그 일부가 모여 전부가 되기 때문은 아닐까.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날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