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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지음 / 모비딕

"카렐 차페크의 기묘한 미스터리 단편집"
SF 및 환상소설의 거장인 카렐 차페크가 쓴 미스터리 단편집이라니 궁금할 수밖에 없다. 과연 차페크는 본격적인 미스터리 소설에도 재능을 갖고 있었을까, 아니면 미스터리 소설의 설정과 개요를 가져와 평소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할까. 이 '양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후자에 가깝다. 사건 속에 담겨진 트릭은 범인의 정체나 사건의 진실보다는 이 세상의 기묘함 그 자체를 가리키고 있다. 말 그대로 '미스터리'다. 이 작품집의 서문 역할을 대신하는 <오른쪽 주머니...>의 첫 번째 이야기  '발자국'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눈이 쌓인 들판 한가운데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발자국을 본 남자가 경찰에 신고하지만, 출동한 형사는 이 신기한 사건에 대해 심드렁할 뿐이다. 형사는 범죄는 미스터리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그에 따르면 범죄는 최소한 동기라도 가지고 있고 또 법이라는 명확한 기준에 의해 처리되지만, 범죄 바깥의 일상들에 대해서는 법이나 정의처럼 명확한 판단 기준을 가질 수가 없다. 따라서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진정한 미스터리란 바로 각종 범죄의 밖에, 평범한 이들의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유도 결론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인생의 모든 국면을 미스터리로 선언한 차페크의 미스터리 단편들은 보통의 미스터리 소설들이 사용하는 소재를 끌어와 어딘가 다른 결과물들을 내놓는다. 사건을 해결한 형사는 자신의 날카로운 예감의 출처를 찾지 못해 불안해 하고, 배심원으로 참여한 남자는 남편을 살해한 아내의 사건을 방청하다 이 세상 자체가 무지와 악의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한다. 이 작품집 속의 미스터리들은 모든 삶 속에서 흐리게 빛나고 있다. 환상소설의 은총이 함께한 인상적인 미스터리 작품집. 과연 차페크다.
- 소설 MD 최원호

책속에서 :
 “이 세상에 미스터리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사실 모든 집, 모든 가정이 다 미스터리입니다. 여기 오는 도중에도 저기 있는 작은 집에서 어떤 여자가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미스터리는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 정말로 우리는 이 세상의 일에 무지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분명히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법과 질서는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정의는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경찰도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거리를 오가는 모든 사람은 미스터리입니다. 잡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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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폭격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기억과 폭격 사이, 배명훈의 맛있는 소설"
맨 처음 미사일이 떨어지던 날에는 서른 개의 현장이 전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쟁이 일상이 된 서울, 사람들은 미사일이 날아오는 이곳에서 월차가 없어 출근을 하고, 만나기 시작한 사람과 맛집에 갈 약속을 잡는다.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의 현장조사원 민소의 삶도 계속된다. 폭격당한 인도 식당을 조사하며 마살라 도사를 떠올리고, 데이트 코스로 애용하던 스페인 식당을 조사할 땐 오렌지 샐러드를 아쉬워한다. 그렇게 미사일을 맞아 사라진 네 개의 식당, 민소의 추리는 하나로 귀결된다. '그녀'와 함께 갔던 맛집이 연달아 사라지는 것은 그를 향한 '그녀'의 메시지가 아닐까.

그녀는 비행기 사고 이후 실종되었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음이 분명한 그녀가 남긴 메시지를 추적하기 위해, 민소는 사소하고도 사적인 기억들을 되짚어 나간다. 전쟁과 미사일과 이태원 식당이 공존하는 소설. '떡국 떡 모양으로 얇게 썰어서 바삭바삭 부드럽게 튀긴 가지 위에 꿀이 얹혀 있는데, 접시 가득 꽃잎 모양으로 펼쳐져 나와요' 같은, 더는 먹을 수 없게 된 음식에 대한 묘사와 '항상 그래. 굳이 콕 찝어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서만 사과를 해.'라는, 전쟁을 둘러싼 구조에 대한 포착이 공존하는 소설. 배명훈과 전쟁과 미스터리와 맛있는 것.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소설 MD 김효선

책속에서 :
 "여기도 맛집이 있었어요?"
민소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모든 미사일 공격이 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아니, 그 어떤 미사일도 그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닐 가능성은 여전히 높았다.
'만약 메시지 같은 게 있다면 내용은 뭘까. 그 네 개의 단서를 가지고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언뜻 떠오르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 네 개의 현장을 하나로 연결하기 어려운 바로 그 이유. 즉 그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단서들을 연결 지으려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은 그 사람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변수를 가설에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이승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다. 만약 사라진 네 개의 식당과 관련된 메시지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내용은 바로 그 전제 조건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사실일 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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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원작, 신현주 글, 조혜진 그림, 김선욱 감수

"이미지를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또 다른 버전이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 더 많은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면 이 사회가 정의롭게 돌아가고 있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지켜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올바른 삶을 살 것인가’ ‘어떤 문제 상황에서 가장 옳은 판단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성찰하는 것은 성인뿐만 아니라 10대들의 몫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영상세대를 위한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

원작을 직접 읽는다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본문 속에 등장하는 판단의 상황,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상황을 감각적인 이미지와 간결한 글로 보여준다. 텍스트는 줄었으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각각의 딜레마에 대한 마이클 샌델의 해설을 덧붙여 명료한 파악이 가능하도록 했다. 10대들에게 단지 정의의 기본 원칙과 좋은 사회의 정의라는 지식을 늘려주는 것이 아니라, 마이클 샌델 교수 문답을 따라 가며 스스로 ‘정의’, ‘좋은 삶’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 연령을 떠나 <정의란 무엇인가> 원전을 읽기 전 입문서로 활용해도 좋다.
- 어린이 MD 이승혜

원저자 마이클 샌델의 말(한국의 10대 독자들에게) :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세계에서 앞서 가는 경제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된 지금, 한국인들은 좋은 삶의 의미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일인당 소득이 어느 정도 달성된 뒤에도, 돈으로 더 많은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아니면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활동과 관계에 달려 있을까? 불평등이 심화되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확대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부유한 부모가 그렇지 못한 부모에 비해 자녀의 사교육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는 상황은 정당할까?

사실 이러한 질문들은 극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지요. 하지만 의견 충돌이 두려움 때문에 이러한 질문들을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을 미루거나 피해서는 안 됩니다. 정의에 관해 경쟁하는 여러 원칙들을 두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은 성숙하고 자신감 넘치는 민주주의의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아직 읽기 어려운 여러분들이, 10대가 읽을 수 있도록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쉬운 내용으로 표현한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의 질문에 동참해 주기를 희망합니다. 정의, 공동선, 시민의 의미 등 커다란 철학적 물음에 대해 생각하는 즐거움을 10대 학생 여러분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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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밀턴 마이어 지음 / 갈라파고스

"비극은 침묵에서 시작된다"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향수와 비판과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1955년 독일, 목수, 고등학생, 빵집 주인, 교사, 경찰관 등 평범한(?) 열 명의 나치는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밀턴 마이어는 당시 1년 동안 독일에서 지내며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들의 나치 가담에는 독일을 구하기 위해서,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치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각자의 이유가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결국 자신의 안위가 있었다는 걸 밝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는 걸 다시금 확인한다.

이들이 나치의 핵심에서 히틀러와 공조하며 큰 직접적 이익을 얻었을까? 나치의 목소리를 주변에 전하며 나치 독일을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섰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범재판에 회부되거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는 아니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역사적 책임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6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 책이 꾸준히 읽히는 까닭은, 그들이 여전히 막중한 역사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방증이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수많은 방관자와 동조자가 여전히 다른 침묵으로 끊임없이 세상을 망치고 있다는 의심 아닐까. 이 책은 그 의심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될 것이다.
- 인문 MD 박태근

책속에서 : 내가 오늘 밤 당장 죽는다면 나는 매우 아쉬울 것 같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일들, 즉 내게는 매우 나쁘게 생각된 일들 때문이다. 그 일을 하고 나서 나는 내일 뭔가 매우 좋은 일을, 즉 오늘의 나쁜 행동을 보상하고도 남을 일을 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나치 친구들은 ‘실제로’ 오늘 밤에 죽어버렸다. 나치로서 그들의 삶을 기록한 책은 이미 완성되어버렸고, 이들은 자기들이 의도했던 안 했건 간에 좋은 일을, 즉 그들이 저지른 나쁜 일을 보상할 수도 있을 법한 일을 할 기회조차 더 이상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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