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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창조 강박의 시대, 즐거운 창조는 어떻게 가능할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창조를 강조하는 ‘창조 강박의 시대’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흔히 말하는 창조란 개념의 허상을 지적하면서 제대로 된 창조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방법을 제안한다. 이름하여 에디톨로지, 즉 편집학이다. 요소를 섞는 수준을 넘어 각각의 단위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얽혀 들어가는 인식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이를 통해 즐거운 창조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특유의 유쾌함과 거침없는 주장으로 펼쳐낸다.

이 책에서는 에디톨로지를 세 가지 층위에서 분석하는데, 우선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에서는 마우스라는 도구가 발명되면서 인간 의식이 혁명적으로 변화했고, 이를 통해 열린 하이퍼텍스트 시대의 편집에 대해 말한다. 두 번째 ‘관점과 공간의 에디톨로지’에서는 원근법의 등장으로 열린 인간 의식의 공간 편집을 살피고, 마지막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에서는 심리학의 대상, 즉 인간 개인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편집되었는지를 심리학 이론에 근거하여 추적한다. 본문을 가득 채운 갖가지 이야기와 눈길을 사로잡는 이미지를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는데, 결론에 가서도 세 가지 에디톨로지를 정합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편집의 가능성은 빈틈에서 열리는데, 이걸 열어보고자 하는 마음, 즉 재미, 흥미, 유희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창조가 가능하다는 편집의 묘가 아닐까 하며, 나만의 편집과 창조를 시작해본다.
- 인문 MD 박태근

책속에서 :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는 충분히 했다. 이제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 모든 창조적 행위는 유희이자 놀이다. 이같이 즐거운 창조의 구체적 방법론이 바로 ‘에디톨로지’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나도 없다! ‘창조는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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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고 사랑스럽습니다"
소라, 나나, 나기, 나나. 이야기는 각 인물이 조심스레 꺼내놓은 음성을 놓치지 않는다. 생활은 이어지고, 비참함과 사랑스러움이 계속된다. 아버지 금주씨는 공장에서 일하다 거대한 톱니바퀴에 말려들었다. 금주씨를 사랑한 어머니 애자는 세상에는 원한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라는 말과 함께. 동생 나나는 임신을 했고, 언니 소라는 아기 같은 건 싫다고 생각한다.

<백의 그림자> 황정은 장편소설. 2014년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 황정은이 그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비참한 죽음과 상한 음식의 존재를 기어이 서술하는 세계, 그리고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가능한 세계. 가급적 소리내어 이 세계를 만나볼 것을 권한다. 입 안에서 반복적으로 퍼지는 시적인 문장의 움직임을 느끼는 순간, 어느새 황정은이라는 하나의 경향이 도래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소설 MD 김효선

책속에서 :
 옛날에 애들이 했던 것처럼, 금주씨 장례식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서 만난 애들이 언니하고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친절하게 굴려는 거야. 걔들은 있잖아 친절을 베푼 거야, 불쌍하니까. 불쌍하고 무섭지만 아무튼 자기들 일은 아니니까, 언니하고 나를 멀리서, 멀리서 관찰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준 거야. 언니가 나한테 그러고 있어. 싫다고도 하지 않고, 싸우려고도 하지 않고, 지금 그러고 있어. 나는 다 알고 있는데? 성가시면서. 나를 싫다고 생각하면서. 언제나 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거짓말로 친절하지. 싫은 것을 감추고 보살피지.
나나는 걷던 것을 멈추고 털썩 앉으며 말했다.
언니가 그렇게 하니까 나는 굉장히 약해진 것 같고.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외로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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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 지음 / 열린책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프린스턴 대학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과 시카고 대학의 금융 담당 교수 아미르 수피의 책이다. 로런스 서머스로부터 '2014년 가장 중요한 경제학 책, 아마도 2008년 금융 위기와 뒤이은 대침체에 관한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격찬을 받은 이 책은 분명하고 강력한 증거를 바탕으로 대공황과 대침체 나아가 유럽의 경제 위기까지도, 엄청난 규모로 늘어난 가계 부채가 소비 지출의 급락을 초래하며 일어난 일임을 차분히 증명한다.

책은 가계 부채가 단순히 빚을 지고 있는 가계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먼저 지적한다. 채무자들이 소비 지출을 급격하게 줄이며 발생하는 '수요 부족'이 일으키는 재앙에 가까운 경제적 효과는 채무자들을 넘어 결국 경제 전체에 미친다. 저자들은 특히 정부의 기존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지나치게 은행과 채권자의 이해를 보호하는 데만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며, 구제 금융을 통해 금융 시장의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는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위험의 암시와 함께 책은 가계 부채가 급증하게 된 원인의 분석과 악화된 과정, 그 해결책까지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가계 부채 1,000조 시대를 맞이한 우리가 지금 주목해야 할 책이다.
- 경영 MD 채선욱

책속에서 : 오늘날 남의 돈을 빌려 와서 소비를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우리는 정작 빚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잊을 때가 있다. 부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채무자가 가장 먼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손실이 채무자에게 집중되는 현상은 부의 불평등과 따로 떼어서 볼 수 없다. 대출이 많은 경제에서 집값이 폭락하면 순자산이 적은 채무자들이 손실의 가장 큰 부분을 감당하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도는 더욱 악화된다. 저축자가 손실을 입는 상황이 오더라도 상대적인 측면에서 이들의 상황은 오히려 개선된다. 위의 예에서, 집값 하락 이전 주택 소유자는 집값의 20퍼센트를, 저축자는 8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주택 소유자는 전 재산을 잃게 되고, 저축자는 집값의 100퍼센트를 보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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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 전경린 장편소설"
섬세하고 감각적인 고유의 문장으로 여성의 삶을 그려온 전경린 장편소설. 작가는 이 소설을 괄호에 관한 소설로 소개한다. 타자와는 가능한 한 부딪치지 않고 돌아서 가고, 변하는 것은 변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세상과는 최소한만 연루되고, 이야기를 억제한 채 감정과 시간이 흐르는 이야기. 그의 해변빌라에선 물처럼 관계가 밀려들고, 다시 사라지고, 또 다시 밀려온다.

어린 시절 큰 고모부를 아버지로 알고 자라던 '유지'는 그의 죽음과 함께 고모 '손이린'이 자신의 생모임을 알게 된다. 존재를 부정당하고 보지 않는 존재처럼 살아가는 소녀는 생물교사인 '이사경'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게되고 그의 앞에서 옷을 벗는다. 사건은 추문이 되어 이사경의 아내 '백주희'에게 전해진다. 묘한 관계성 속에서 '유지'는 해변빌라에 초대된다.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묻지 않고, 다루기 어렵거나 난처한 것들은 괄호에 묶어놓고 사는 삶. 그러나 존재는 발견되고, 괄호는 열리고, 삶은 움직인다. 전경린의 이 소설은 그렇게 삶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 소설 MD 김효선

책속에서 : 해변 모래사장에 유목이 하나 올라와 있었어요. 유목은 뭉텅하게 잘린 가지 하나를 위로 뻗은 형상으로 사람 크기만 했지만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도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워 보였어요. 슬픔이라는 단어는 약해요. 비통 같은 현재형도 아니에요. 차라리 바다 전체의 무게로 변한 감정이었어요. 얼마나 오래 바다 밑을 떠돌았는지 나무의 결이 부식되어 켜켜이 부풀었고 나무 표면과 해진 틈 속에 새끼 조개와 소리가 다닥다닥 붙어 진액을 빨고 있더군요.(...) 어쩌면 진실이야말로 인생에 아무 소용이 없지요. 무언가를 하는 것은, 진실의 조각들이 아니라 물결에 물결이 밀리는 것 같은 일상의 연결된 행동이니까요. 거인을 재운 듯한 정적이 몰려오면 바다는 더 밝고 맑아져서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 물결 위에 물결을 덮으며 느리게 다가왔어요. 내가 읽지 못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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