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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지음 / 교양인

"당신처럼 읽고 쓴다는 것"
반갑다. <페미니즘의 도전> 이후 9년 만에 만나는 정희진의 신작이다. 여러 지면에서 꾸준히 글을 만날 수 있기에 목마르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서평이자 독후감이자 칼럼이자 비평”을 모았기에 하나의 주제를 찾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토요일 느지막하게 일어나 눈을 비비며 읽다 퍼뜩 잠에서 깨곤 하던 ‘정희진의 어떤 메모’를 한데 모아 읽는다는 건, 생각의 각성제를 하루에 몰아 먹는 일과 비슷해 깨어 있지 않을 수가 없다. 경험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런 밤샘을 하고 나면 다음 날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아 피로를 잊는다.

어렵다. 정희진처럼 읽고 정희진처럼 써야 하는 게 아니고 당연히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정희진처럼 읽고 쓰기가 전하는 매력, 배우고 익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어떤 것들을 이곳에 옮기기에는 아직 내 몸이 이 책을 충분히 통과하지 못했다. “텍스트 이전의 내가 있고, 텍스트 이후의 내가 있”는 건 분명한데, 둘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분하여 글로 옮기기에는 “독후의 감”이 부족하다. 이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아직 각성에서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험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밤샘 후 좋은 기분은 오전에 끝이 나고 오후에는 깊은 피로가 몰려온다. “독후의 감”을 만나려면 텍스트와 적당한 거리도 필요하다는 핑계로 이제 이 책을 당신에게 권한다. ‘당신’처럼 읽고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길 바라며.
- 인문 MD 박태근

책속에서 :
우리가 접하는 책들은 대개 서울 출신, 남성, 서양, 중산층, 비장애인, 이성애자, 건강한 사람, ‘학벌 좋은’ 사람이 쓴 책이다. 사회는 모두 이들 ‘주류’ 시각 안에 포섭되어 있다. 간혹 협상하는 저자들이 있다 해도, 획일적인 시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대개 독자는 이 사실조차 모르고 읽는다. 사실, 나는 저자가 특정 인구 집단에 속하는 책은 거의 읽지 않는데,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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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 포레

"어둠의 뿌리를 찾아서"
한국에 소개된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들 중 본격적으로 범죄(성적 동기에 의한 연쇄살인)을 다룬 경우는 두 가지가 있었다. 대개 어두운 세계를 다루는 작가이지만, 뇌수술을 통해 자신의 노예를 만들려던 <좀비>가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례였다. 그 살인자, 주인공은 어째서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작가를 포함한 다른 누구도 마찬가지다. 악은 기원을 파악할 수 없는 채로 이미 거기에 와 있다. 어쩌면 세계는 애초에 부조리한 것이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선택당한 누군가가 그 세계의 악의를 대속하듯 받아들여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아동 연쇄 납치 살인범이 등장하는 <대디 러브>에서도 악이 어디에서 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악은 태양이나 달처럼 본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악몽>에 엮인 단편과 중편들은 악의 기원에 하나의 단서를 남긴다. 바로 사랑의 결핍과 그로 인한 강박이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세계는 누군가를 쉽게 떠밀어 버리고, 그 낭떠러지에서는 돌아올 수가 없다(고 믿어진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미국에 대한 은유일까? 그런 면도 있지만, 아마 아닐 것이다. '타자'에게 선사한 악의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악몽>의 공포는 타자들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장면의 아찔한 절망일까? 아니다. 그 절벽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슬픔이고 악몽이라는 사실을 <악몽>은 반복해 보여준다. 악의 기원을 신비의 영역에 남겨둔 <악몽>과 별도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악몽> 중 어느 쪽이 옳은지는 독자의 몫이다. 이런 비교는 늘 그렇듯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 소설 MD 최원호

추천의 글 :
 최악의 공포는 인간의 가장 깊은 약점에서 비롯되어 현실에서 실현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 스타 트리뷴

심리학적 공포의 대가라는 명성을 공고히 한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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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A학생은 C학생 밑에서 일하게 되는가 그리고 왜 B학생은 공무원이 되는가
로버트 기요사키 지음 / 민음인

"왜 학교는 돈에 대해 가르치지 않을까"
국내에서만 300만 독자가 읽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 신작이다. 저자 스스로 지금까지의 저작물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 책은 현재의 금융 위기가 돈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 학교 교육에서 비롯했음을 지적하며 자녀에게 '현실에서의 돈'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현재의 학교 시스템은 우리 아이들이 'A'학생(Academics, 학자형)이나 'B'학생(Bureaucrats, 관료형), 즉 피고용인이 되는 훈련에 열중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C'학생(Capitalists, 자본가형)을 키워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 점을 강조하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금융 교육을 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한다. 각 장 말미에 '부모의 행동 단계'를 함께 실어 아이에게 돈에 대해 가르칠 때 필요한 요령과 지침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 경영 MD 채선욱

책속에서 : 그리고 그들은 신용카드 빚을 갚기 위해 주택 담보 대출을 신청했다. 돈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단기 부채를 장기 부채로(또는 평생의 부채로) 바꾼 셈이다. 그러다 주택 시장이 붕괴했다. 주택 시장은 경제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주택 시장이 무너지자 일자리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성인들과 그 자녀의 인생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서 좋은 성적을 받고 보수가 높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어라."라고 말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조언을 따르면 손익 계산서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산을 짜는 데에만, 즉 얼마나 벌고 얼마나 지출하는가 하는 문제에만 골몰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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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비밀스러운 사랑의 집,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요가 노관으로 돌아왔을 때, '노관의 기와지붕 물매 사이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역사가 깊은 종갓집의 섬세하게 묘사된 풍경들을 본다. 어머니의 의자, 볼품없는 탁자, 성경책 같은 것. 두시 삼십분을 가리킨 채 멈추어 있던 괘종시계처럼 멈춘 채, 집은 비밀스러운 사랑의 기억을 품고 있다. 다정했던 어머니와 어머니를 열망한 율이삼촌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이요는 추억 속 집의 모습을 되살려낸다.

섬세한 묘사로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이야기의  고풍스러움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독일문학을 읽고, 종교에 의지하는 절제된 사람들의 모습들, 불가능한 사랑을 품고, 참고, 지켜내는 정갈한 모습들, 사랑이 이미 지나간 자리를 소설은 덤덤하게 응시한다. 작가는 이십 대에 처음 이 소설을 썼다. 채 완성하지 못하고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늘 마음 속에 머물렀던 그 소설을 수년이 지나고, 오십대가 되어서야 완성해냈다. 황석영, 류보선, 성석제, 이병천, 전경린, 하성란이 제4회 혼불문학상을 수여했다.
- 소설 MD 김효선

책속에서 : 율이 삼촌은 이즈음에서 말을 멈출 필요가 있는 듯 잠깐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사랑은 그녀를 중심으로 내 인생을 재편성했어. 나는 생이 끝날 때까지 운행을 멈추지 않는 그녀의 행성이 되었지. 하루 종일 주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다마 밤이면 그 무릎 아래서 잠들곤 하는 충실한 개처럼 이십 년 동안 그녀 곁을 맴돌고 있어. 내 세포 하나한가 그녀에게 연결된 것처럼 난 한 번도, 한 순간도 그녀에게서 벗안본 적이 없네. 이국 멀리에 있든, 길 위에 있든, 세상 어느 곳에 있든 나는 항상 그녀에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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