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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의 딸
최인호 지음, 최다혜 그림 / 여백

"누군가의 아버지가 남긴 우리 가족의 이야기"
지난 9월 25일, 최인호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만 1년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가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얘기했지만, 자신의 딸 다혜, 그 딸이 낳은 딸 정원을 떠올리며 남긴 글타래를 보면, 그곳은 가족의 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가 병상에 들기 전에 시작되었겠지만, 병상에 들어서야 무르익었고, 병상에서 벗어나서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가족이 가장 그립고 애틋한 그때, 그는 딸과 함께한 40년 세월을, 손녀를 마주한 12년 시간을 어떻게 써내려 갔을까.

이 책은 최인호의 가족 이야기이자 최인호의 가족이 함께 만든 책이다. 딸 다혜가 표지와 본문 그림을 맡았고, 손녀 정원은 악필로 유명한 최인호의 필체마저 또박또박 정자로 바꾸어놓았다. 손녀가 자기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평생 몸에 익은 작가의 글쓰기 습관까지 바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대단한 작가의 가족 이야기가 아니다. 결혼을 앞둔 딸을 생각하며 인생의 연속을 실감하지만, 주민등록등본에서 딸의 이름이 사라졌다는 걸 발견할 때까지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남긴 우리 가족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가족을 떠올리거나 추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인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의 글이 그러하듯이.
- 에세이 MD 송진경

책속에서 :
 딸아이의 문갑을 열어본 순간 나는 성장한 딸이 목욕하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가 낯이 붉어지는 아버지처럼 왠지 겸연쩍고 한편으론 대견하기도 하고 또 한편은 섭섭해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네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고, 그 딸은 너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 그 엄마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단다. 이제 네 딸도 언젠가는 엄마가 되어 또 다른 딸을 낳게 될 것이다. 네 엄마의 엄마가 그리하였듯이. 그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그러하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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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시
이성복 지음 / 열화당

"1976-1985, 이성복의 가리워진 길"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며 보냈던 시절이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와 <남해 금산> 무렵. '아픔'과 '치욕'에 관한 아름답고 서슬퍼런 문장들. 그간 어둠 속에 묻혀있었던, 이성복의 미발표 시 150편을 한 권으로 엮어 냈다.

"아버지 저의 날들이 이리 곤비하니 숨을 그늘이 없어요" (초토일기 넷)이라고 말하는 절망. "연애는 안 되고, 연애는 잘 안 되고 아무도 우리 생일을 기억하지 않았다"(연애는 안 되고)라고 말하는 떠돎. "나는 기억한다 아저씨, 같이 가도 돼요? 누이는 덥석 팔짱을 끼었다 그래 가자 삼단요 펴진 네 방으로, 그래 나는 실연했다" 라고 뇌까리는 치욕. (1978년 10월) 같은 문장들이 어둠 속에서 꽃을 피운다.

앞으로의 시적 여정도 바로 이 지점, 1976-1985년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최근작 <래여애반다라>의 정제된 감정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성복이 처음 출발했던 자리, 이 시퍼런 문장들이 한층 새롭게 보일 듯하다.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를 묻는 산문집 <고백의 형식들>과 시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고 말하는 대담집 <끝나지 않는 대화>도 함께 출간되었다.
- 시 MD 김효선

함께 읽기 :

<고백의 형식들>
<끝나지 않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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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황선미 지음, 신지수 그림 / 비룡소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신작 동화"
국내 창작동화로는 처음으로 100만부 판매를 돌파한 <마당을 나온 암탉>, <나쁜 어린이표>의 주인공. 한국 작품 최초의 미국 펭귄출판사 출간, 영국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1위 랭킹에 이어 2014 런던 도서전 오늘의 작가로 선정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황선미 작가의 신작동화. 초등학교 4학년 자경이는 같은 반에 전학 온 명인이의 구두 한 짝을 몰래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쓰고,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반장 혜수의 강요에 못 이겨서 그랬다.

아이들도 치밀하게 머리를 굴리며 자신의 영역을 탐색한다. 누구랑 어울릴지, 어떤 그룹에 속할 것인지,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춰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자신을 왕따로 여기는 눈빛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지. 어른들의 처세나 인맥 관리 못지 않게 치이고 스트레스 받는다. 그저 순수한 마음만을 나누기엔 너무나 복잡한 세상. 아이들은 피해자가 되기도 원치 않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아낸다. 마음을 다친 누군가를 발견했을 때 손을 내미는 것으로. 우리 모두에게는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또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이 작은 이야기가 알려준다.
- 어린이 MD 이승혜

책속에서 : 공부 시간에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괜찮아. 나 혼자서 저지른 일 아냐. 괜찮아. 난 이보다 더 심하게 당한 적도 있어. 괜찮아. 신발이 그것뿐이겠어. 다른 거 신으면 되지. 괜찮아. 명인이랑은 죽을 때까지 알은척 안 하면 돼. 그래. 얘들이랑 어울리면 돼. 마음에 안 들어도 친구잖아. 친구끼리는 싸우기도 하고 비밀도 나눠 갖는 거야. 얘들이 친구가 아니라면 내 친구가 어디 있다고. 나는 괜찮아지고 싶었다. 그래서 괜찮다는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하지만 괜찮지가 않았다. 목구멍에 덩어리가 걸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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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
사쿠라기 시노 지음 / 현대문학

"잃어버리면서도 살아가자면"
홋카이도 동부 구시로 시 외곽에 습지가 있다. 그 인근에 '호텔 로열'이라는 이름을 가진 러브모텔이 하나 지어졌다. 꽤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구시로 시는 작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며, 그의 아버지는 실제로 '호텔 로열'이라는 러브호텔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사쿠라기 시노는 모텔의 잡일을 도우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또는 그 일들이 남긴 잔해들을 마주해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호텔 로열>은 일종의 고백록이나 관찰기로 읽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일곱 편의 단편이 이어진 이 연작 소설집에 정해진 주인공은 없다. 종종 서로 다른 단편의 주인공들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 단편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것은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이 아니라 호텔 로열이라는 건물을 둘러싼 정서다. 몰락해 가는 도시 외곽에서 결국 폐업한 채 스러져 가는 모텔 건물과 그 인근의 쓸쓸한 풍경이 그곳을 스쳐간 사람들의 삶을 증언한다.

일곱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자각하고 있다.  어느새 폐업한 낡은 건물처럼 이들의 결핍은 좀처럼 당장 해결할 수가 없는 운명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어떡할까, 모자란 부분을 안고 사는 수밖에 없다. 몰락한 소도시에서 별 수 없이 눌러앉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삶이란 어차피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가끔 빛이 드는 듯도 하지만, 정말로 새로운 삶이, 더 좋은 삶이 다가올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삶의 궤적은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몰락하는 지방을 떠나지 못하고 그와 함께 무너지고 마는 러브모텔 건물처럼, 사람들의 삶이 쌓아온 관성의 무게 역시 다가오는 슬픔이나 좌절을 앞두고도 좀처럼 발을 움직이기 어렵게 만든다. 모두가 호텔 로열을 스쳐가며 자신의 무거운 두 다리를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는 그 무게를 감수하면서 힘겹게 떠나고, 누군가는 주저앉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다리가 무거워졌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이 망연한 결론 앞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갈 것인가. <호텔 로열>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그 질문 자체가 얼마나 쓸쓸한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꼭 한 번은 던질 필요가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 소설 MD 최원호

책속에서 : "저기 산 쪽에 있던 호텔 로열, 알고 있는가?"
"예, 근처에 묘지가 있는 거기지요?"
아오야마는 그 호텔이 지금은 폐허가 되었노라고 말했다. 아오야마의 몸에서 풍겨 오는 노인 냄새가 폐허라는 말에 묘하게 현실감을 더해주었다.
"얼마 전에 거기 사장이 죽어버렸구먼. (...) 호텔 로열 사장이 임종할 때 한 말이 있는데, 그게 참 웃긴다고 해야 하나, 눈물이 난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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