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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철학
수게오르그 짐멜 지음, 김덕영 옮김 / 길

"돈이 어떻게 인격과 자유를 함양할 수 있는가"
1900년, 인류 지성사에 획을 긋는 세 권의 책이 나왔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에드문트 후설의 <논리 연구> 그리고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이다. 이 책들은 꿈, 논리, 돈을 축으로 대표적인 근대의 지적 흐름을 만들었다. 게오르그 짐멜은 막스 베버와 더불어 사회학의 고전적, 이론적 표준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데, 대표작 <돈의 철학>은 철학과 사회학을 아우르며 돈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제시한 고전이자 탁월한 지적 성과다.

본문은 두 가지로 구성되는데, 1부에서는 돈이라는 역사적 현상을 통해 이것이 인간의 내적 세계, 그러니까 개인 삶의 감정과 문화 전반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2부 ‘종합’에서는 돈과 영혼의 문제, 즉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상호 관계를 살피며 자본주의 화폐경제의 토대 위에서 어떻게 문화가 가능한가를 모색한다. 돈이 삶에 끼친 영향을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돈이 자유와 인격에 대해 갖는 의미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돈의 신격화와 악마화라는 극단적 양태를 보이는 한국사회에서 돈에 기반한 문화의 가능성을 찾는 일은 과제이자 운명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100년 전 짐멜의 '분석'과 '종합'은 여전히, 충분히 유효하다. - 인문 MD 박태근

책 속에서 : 
우리는 자본주의적 사회질서의 물적 토대는 화폐경제라는 엄연한 문화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전통적인 경제적 집단주의 대신 근대적인 경제적 개인주의의 함양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돈과 영혼이 결합될 수 있는가, 즉 어떻게 돈이 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함양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짐멜이 <돈의 철학>에서 그랬듯이!(옮긴이 해제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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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슬러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어."
하지만 너무 늦은 일들은 세상에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어'라는 말은 그다지 두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꽤 힘들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인간은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잘 잊고 살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코맥 매카시가 썼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저 평범한 문장에는 금새 공포에 가까운 압력이 드리워진다.

코맥 매카시가 창조한 인물들은 잠언이나 격언을 비유의 의미로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그 말들이 고통을 가리키고 있다면 백 퍼센트다. 누군가가 너무 늦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는 죽거나 죽음에 상응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누군가의 입에서 발화되는 순간부터 작품 전체를 짓누른다. 코맥 매카시는 두려움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너를 찾아내는 대로 죽일 거라고 말하는 대신에 태연자약하게 어떤 스너프 필름의 내용을 주절거리는 남자의 입에서 공포가 새어나오는 순간, <카운슬러>는 어둡고 좁다란 미로 속을 목숨을 걸고 달리는 수밖에 주지 않는다. 불꽃처럼 짧고 강렬한 이야기지만, 약간은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란다. 이 불꽃은 허공에 펼쳐진 불꽃놀이가 아니라 닿기만 해도 재생 불가능한 화상을 입히는 용접기의 불꽃이다. - 소설 MD 최원호

책 속에서 : 
신부: 거짓말하실 겁니까? 말키나: 아뇨. 하지만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실걸요. 그저 짓궂은 장난일 뿐이라고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그래도 그저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여자들이 여기 와서 섹스에 대해 말하지요? ...네. 고해를 하러 온 여자들이 하나같이 털어놓겠죠, 간통이나 간음을 했다고. 그렇지 않다면 뭐하러 고해실을 찾겠어요? 이곳에 오지 않은 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여자뿐이겠죠. 그러니 신부님은 자연스레 평범치 않은 여성관을 갖게 되었을 거예요. 여자는 항상 섹스밖에 모른다고 생각하겠죠. 아니면 섹스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하든가. 어쨌든, 내 생각에는 여자들이 신부님을 미치게 만들 속셈으로 음탕한 이야기를 지어낼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신부님은 알 수 없죠. 내가 여동생과 섹스를 했다고 말했다 쳐요. 그렇다면 믿으시겠어요? 정말 그랬어요. 밤이면 밤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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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는 눈
손철주 지음 / 현암사

"그림이 곧 인생이기도 하다"
<사람 보는 눈>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전작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와 어떻게 다른가. 전작이 그림 속의 인생을 살피면서 그를 통해 그림을 읽는 독법을 은근히 제시했다면, <사람 보는 눈>은 보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그림이 불러일으킨 상념을 담았다. 따라서 쉬어가는 마음으로 읽기에 적합하다. 특히 편한 마음으로 읽으라고 나온 미술 교양서들이 너무 심심하다고 느껴진 분들에게 권할 만하다. 손철주의 글은 직접 옆에서 썰을 푸는 것마냥 구성지게 꾸려져 있어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혹시 선생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들이 실제 선생의 말투와 얼마나 닮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위 음성지원이랄까).

그러니까 그림 이야기라고 해서 꼭 뭔가를 외우고 기억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림이 곧 인생이기도 하다면 어느 저녁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만담 같기도 할 것이고, 잠들기 전에 드는 상념 같을 때도 있을 테니까. <사람 보는 눈>이 그렇다. 아무데나 펼쳐 콧소리 내며 읽어가기 좋은 삼삼한 책, 늦가을 정취에 어울리는 책이다. 
- 예술 MD 최원호

책 속에서 : 
이 그림은 초상화다. 아니, 얼굴이 안 나오는 초상도 있는가. 의아한 사람은 화면 가운데를 보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사각형 테두리 모양은 위패인데, '환월당대종사진'이라고 적혀 있다. 풀이하면 '환월당이라는 호를 가진 큰스님의 진영'이다. 화가는 얼굴 대신 이름만 가지고 초상화를 그린 셈이다. 큰스님이 무슨 대중들 볼 면목이 없어서 그랬을까. 물론 아니다. 모든 상(相)이 다 허깨비라서 상(像)을 그리지 않았다. 마침 스님의 호에도 '허깨비 같은 달'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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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올해의 문제작, 황정은 장편소설"
한 권의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와 두 권의 소설집(<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으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 황정은의 장편소설. "내 이름은 앨리시어, 여장 부랑자로 사거리에 서 있다"라고 자신을 서술하는 문제적 인물의 폭력의 역사를 '황정은풍'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는 가차없는 문장이 되짚어 나간다.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은 재개발을 앞둔, 무덤이라는 어원을 가진 '고모리'에서 살며 짐승을 다루듯하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당한다. 아버지도 마을사람도 이런 상황엔 무심하다. "씨발 상태가 되어 씨발년이 된 그녀는 그녀가 가진 짐승의 머리뼈부터 꼬리뼈까지를 다룬다." 이 소설이 서술하는 '좆같은, 씨발인' 순간들은 대체로 이 문장처럼 감정이 배제된 상태로 그려진다. 갤럭시, 앨리시어 같은 단어는 낯설어서, 우리가 경험하는 폭력과 치졸함의 세계가 새삼스럽게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효과적으로,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이기고 싶은" 앨리시어는 고모리의 죽은 개들과는 다른 길을 가기 위해 모종의 결정을 내리는데. 안과 밖을 오가는 고요하고 쓸쓸하고 무지막지한, '황정은 풍' 야만의 역사가 또박또박 놓인다. - 소설 MD 김효선

책 속에서 : 갤럭시는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서로간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쯤 얼마나 멀어졌을까. 별도 뭣도 없는 갤럭시의 공간空間은 얼마만큼 불어났을까. 하여간 근사할 것이다. 거대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별과 우주가스가 모인 곳은 붉은 머리카락 다발 같고 보라색 꽃 같고 용맹한 말의 머리 같고 노랗고 파란 눈동자 같을 것이다. 지금도 부지런히 팽창하고 있을 것이다. 팽창하고 팽창해서 별들 간 간격이 엄청나게 멀어져버린 갤럭시에서 앨리시어는 한 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점 먼지도 되지 않는 앨리시어의 고통 역시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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