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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그는 어디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하루키의 장편소설들을 크게 분류하면 환상적인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들과 현실적인 배경에 더욱 집중한 작품들로 나눌 수 있다. <색채가 없는...>은 후자에 속한다. 하루키의 다른 어떤 장편보다도 그렇다. 아마도 가장 비슷한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상실의 시대>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소설이 보통 '하루키 소설'이라고 불리운다. <색채가 없는..>은 그렇게 보면 정말로 보통의 하루키 소설이다. 어딘가 괜찮은 곳에서 괜찮은 사람을 만나고 고급 문화와 인생에 대한 얘기가 오가며 로맨스도 적절히 섞여들면서 인생의 상처를 부드럽게 되짚는다. 앞서 '현실적인 배경에 더욱 집중한' 작품이라고 말했지만, 아시다시피 '하루키 소설'은 댄디 취향의 판타지로 먼저 기능한다. 한때는 이런 종류의 소설을 쓰려는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류는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여전히 하루키만이 이 시대착오적인 설정을 '하루키의 것'으로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예상하는 대로의, 기대하는 대로의 하루키다.
 
그런데, 한때 실험적인 설정을 이용한 작품들을 쓰던 시절을 지나 다시 '하루키 소설'로 회귀하고 있는 그의 행보는 어딘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데가 있다. 그는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 시작하기 이전의 미지의 공간을 향하려는 것일까?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의 전주곡처럼 간결하고 소박한 주제선율을 연주하는 이 신작 소설은 어쩌면 하루키의 미래에 대한 힌트일지도 모른다.
- 소설 MD 최원호

책 속에서 :
...그리고 남은 것은 체념을 닮은 조용한 사색뿐이었다. 그것은 색채가 없는 잔잔한 바다처럼 중립적인 감정이었다. 그는 텅 비어 버린 오래되고 큰 집에 혼자 동그마니 앉아 오래되고 거대한 괘종시계가 시간을 새기는 울적한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입을 다물고 눈길 한번 떼지 않고 시곗바늘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얇은 막 같은 것으로 감정을 몇 겹이나 감싸고 마음을 텅 비워 낸 채 한 시간마다 착실하게 늙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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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안녕 1994, 정이현이 전하는 안부"
"절대로 내 인생에서 사라지지 마." 가정불화로 졸부인 조부모 댁에 얹혀 살고 있는 소녀 세미는 그 시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남다른 기억력으로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지혜, 뚜렛 증후군을 앓고 있어 반복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준모. 1994년 강남 반포, 열일곱살 세 친구에겐 서로가 전부였다. 1996년 봄 마지막 파티를 하고 장미 한송이와 함께 비밀을 묻기까지, 세 아이의 알싸한 성장담을 정이현이 그려냈다.

오늘은 사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날렵하게 포착해온 작가가 90년대 중반 반포라는 공간의 감수성을 서술한다. 김일성 사망, 삼풍백화점, 94년의 폭염, 삐삐, PC통신, 나이트클럽, 스포츠카, 밍크코트, 강남의 교육열까지 작가는 적확하고 애틋한 눈으로 그 화려한 시절의 쓸쓸함을 포착해낸다. 그들처럼 우리 역시 "곧 어디엔가 도착할 것이다, 계속, 살아갈 것이다." 학교 앞 만나떡볶이,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 친구, 그게 마지막인줄 모른 채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사람들, 그렇게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들. 그 모든 것에 인사를 전하는 소설. - 소설 MD 김효선

책 속에서 : 
뒷사람이 문을 두드릴 때까지 나는 거기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부스 밖으로 나오자 땀으로 등판이 다 젖었음을 알았다. 너무 사소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할 그런 것들만이 계속 궁금했다.
나는 여전히 도서관에 나갔고 짬짬이 지혜와 만났다.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고 애플하우스의 떡볶이도 몇번 먹었다. 지혜는 여전히 자주 투덜거렸고, 엠과 디의 사이가 요즘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 같다며 우울해했다. 입으로는 "어떻게 되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알았다. 준모는 여간해서 밖에 나오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틱이 점점 심해졌다가 가라앉았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준모네 엄마가 지혜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요즘 혹시 준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물었다고 했다.
"무슨 일이야 항상 있고 또 없는 거지 뭐."
지혜가 쭈그렁 노파처럼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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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아픈가
에바 일루즈 지음 / 돌베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전작 <감정 자본주의>에서 독특한 시선으로 자본이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분석해낸 에바 일루즈가 이번에는 현대의 사랑을 사회학의 관점으로 들여다본다. 사랑을 통해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현대성'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 현대성이 사랑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를 동시에 분석하려는 시도다. 이렇게 말하면 딱딱해 보이지만, 우리는 <오만과 편견>과 드라마 <사랑과 전쟁>이 어떤 부분에서 같고 다른지 이미 직감하고 있다. 이 책은 둘이 왜 다른지를 합리성과 자유라는 현대의 특성에서 찾아내고, 사랑을 심리학의 치유 대상에서 해방시키며 왜 둘이 여전히 같다고 착각하는지를 밝혀낸다.

그 스스로 마르크스가 상품을 가지고 했던 작업을 사랑으로 해보려고 했다고 밝히듯, 이 책은 자본주의 문화와 문법이 사랑이라는 낭만적 관계의 영역으로 어떻게 침투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촘촘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런 해석을 통해 아픈 사랑이 해소되거나 아프지 않은 사랑을 향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아픔 없는 열정적 사랑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이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왜 현대의 사랑에 더욱 적절하고 절실한지 깨달을 수는 있겠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는 덤이다. - 인문 MD 박태근

책 속에서 : 
내 궁극적 관심은 마르크스가 상품을 가지고 했던 작업을 사랑으로 해보려는 데 있다. 사랑은 구체적 사회관계들로 형성되며 산출된다는 점, 사랑은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경쟁하는 사람들이 각축을 벌이는 시장에서 순환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로써 귀결되는 논점은 몇몇 사람이 그 외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조건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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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몸값
에드 맥베인 지음 / 피니스아프리카에

"남의 아이의 몸값"
더글러스 킹은 두려움을 모르는 야심가다. 그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팔아넘길 수 있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한 회사를 집어 삼키려는 음모가 벌어지는 와중에 한 아이가 유괴된다. 문제는 그 아이가 더글러스 킹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괴범은 더글러스 킹에게 몸값을 내라고 요구한다.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남의 아이의 몸값을 댈 것인가? 그리고 이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더글러스 킹 자신의 인생까지 바쳐야 할 난관으로 발전한다. 내 아이가 아닌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킹의 몸값>은 심각한 딜레마를 주제로 펼쳐지는 일종의 심리극처럼 보인다. 이는 매우 둔중하게 움직이는 주제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사건을 맡은 87분서의 형사들이 출현하면서 드라마는 강하고 빠르게 발전한다. 피니스아프리카에 출판사에서 낸 87분서 시리즈의 전작 <살의의 쐐기>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서스펜스 활극이었다면 <킹의 몸값>은 범죄에 얽힌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를 그려내는 선굵은 미스터리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스토리텔링에 완전히 집중하는 에드 맥베인의 능력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서스펜스와 감동을 동시에 갖춘 멋진 작품이다. - 소설 MD 최원호

스티븐 킹의 추천사 :
나는 전후 세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 에드 맥베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장르 소설에 리얼리즘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최초의 작가였다. 대중 소설의 한 분야를 창조했으며 196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했다. 『뉴 센추리온스』, 『에디 코일과 친구들』, 『대부』, 『블랙 선데이』, 그리고 『샤이닝』같이 이색적인 작품들은 모두 에드 맥베인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단순히 재미뿐만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솔직하게 반영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쓰는지 베이비붐 세대에게 가르쳤다. 그는 경찰 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사람 이상으로 기억될 것이고, 끝내주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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