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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스릴러 소설의 또다른 가능성"
<나를 찾아줘>는 최근 소개되는 범죄 스릴러들에 비하면 현저히 느리게 시작한다. 다른 작품들에서라면 등장인물의 배경 정도로 간략히 소개될 법한 과거 이야기들이 계속 소개되면서 초반 전개 속도에 제동을 건다. 이쯤 되면 실종된 아내와 그 남편의 과거에 중요한 단서가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눈치챈다고 해서 금방 '과거'와 '현재'가 만나서 폭발하지는 않는다. 터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익혀야 한다. 이 익히는 과정을 좀더 즐겁게 만들기 위해 스릴러 작가들은 많은 장치를 사용하며, 여기서 작가들의 개성이 드러난다. 길리언 플린의 경우에는 보통 스릴러 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수준의 섬세한 묘사를 선보인다. 속도감에서는 확실히 불리한 장치다. 그러나 <나를 찾아줘>는 그걸 감안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한 커플이 만났다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 대해 남녀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토로하는 모습, 그리고 21세기 미국을 강타한 불황이 젊은 노동자들에게 미친 영향 등 길리언 플린의 그물망에는 동시대의 삶의 조각들이 풍요롭게 들어차 있어서 그걸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다. 그리고 이 디테일들이 모여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튼튼하게 구축해 낸다.
 
<나를 찾아줘>는 이런 독특한 개성 때문에 다른 스릴러들과 직접적인 비교가 어려우며, 때문에 전형적인 스릴러를 기대했다간 초반에 진을 다 뺄 수도 있다. 천천히 책 속으로 들어가시기 바란다. '남과 여' 또는 '사랑과 전쟁'을 즐기다 보면 미스터리의 중심이 어느새 곁에 와 있다. 
- 소설 MD 최원호

책 속에서 : 
닉과 나는 가끔씩 사랑을 증명한답시고 남편에게 몹쓸 짓을 시키는 여자들을 비웃는다. 그것도 아주 대놓고. 무의미한 임무, 무수한 희생, 끝없는 자잘한 항복. 우리는 이런 남자들을 '춤추는 원숭이'라 부른다… 이거 입어, 그거 입지 마. 지금은 이 일을 하고 시간 나면 이 일도 해. '시간 나면'이란 바로 지금이야.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나를 위해 반드시, 반드시 포기해야 해. 그러면 나는 당신이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증거를 갖게 될 거야. 그것은 여자들의 시합이다… 남자들이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것들을 시시콜콜 나열하는 것보다 여자들이 더 좋아하는 것은 거의 없다.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 자기야, 나 감동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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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감각 기르기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옥희 옮김 / 마음산책

"이것이야말로 요네하라 마리다"
언젠가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연이어 소개하며 "또 요네하라 마리냐?"라고 묻는다면 "이번에도 요네하라 마리다."라고 답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발언을 취소하고 이렇게 바꿔야겠다. "이것이야말로 요네하라 마리다."라고.
 
일본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요로 다케시와 문학평론가 고모리 요이치부터 작가, 정치인, 통번역가에 이르기까지. 요네하라 마리가 열한 명의 대담자와 펼치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무규칙이종대화'에 가깝다. 전공 영역인 통역과 번역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국제 분쟁, 교육 문제, 일본 문화론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그는 때로 인터뷰어로 때로 인터뷰이로 자리를 바꿔가며 자기가 경험한 세계와 자기가 보고 싶은 세계를 재치 있고 힘있게 그려낸다.

아쉽게도 요네하라 마리는 2006년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에 글 이외에는 그를 만날 방법이 없었다. 물론 글만으로도 그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요네하라 마리의 나머지 절반, 혹은 시작이라고 할 그의 '말'을 채집한 표본이다. 나는 말과 글은 다르고, 둘을 사용하는 능력에도 편차가 있다고 믿어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건 나의 착각일 뿐이었고 제대로 갖춰진 언어 감각이란 양쪽 모두에서 빛을 발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책을 꾸준히 읽어왔지만, 그가 없어 안타깝다는 감각이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싶다. 살아있는 그의 말과 글을.
 
- 인문 MD 박태근

책 속에서 : 
요네하라의 입담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살아온 삶의 폭, 그녀가 지닌 관심의 폭, 그리고 인간 됨됨이를 느낄 수가 있다. 또한 대화 곳곳에서 독특한 유년 시절과 다채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국제적인 감각과 개방적인 사고,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용의 정신을 엿볼 수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대담집의 최대 미덕은 그녀의 톡톡 튀는 유머 감각과 풍부한 표현력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있을 것이다.(옮긴이의 말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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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 숲
권여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길을 잃은 이에게 숲에서, 권여선 소설집"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가 권여선의 네 번째 소설집. 잊어버린 것들, 기억해야 할 것들에 관한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렸다. <길모퉁이>를 돈 순간 다단계와 고시원, 급여 가불로 이루어진 세계로 도달하고 만 이.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에서 "대체 정우는 어디로 간 것일 생각하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하고 환각을 보는 이. 권여선의 소설 속 사람들에게 슬픔은 느리게 오고, 기억은 스산하게 휘몰아친다.
 
"우주와 김치찌개, 신과 소주, 불멸과 한 개비의 담배가 병존하는, 투박하고도 초현실적인 유아론의 세계"에 살고 있는 애처로운 이들. 절대 잊지 못하리라 곱씹던 기억도 사그라지고 내가 기억하고 있던 사건도 진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나날들. 길을 잃은 이에게, 숲에서 읽기 좋은 일곱 편의 소설이 삶의 기억을 담아 말을 건다. 
-
소설 MD 김효선

책속에서 : 
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두 정류장 남짓한 거리를 걸었다. 적당한 보폭으로, 내가 지나치게 고독하고 우울하고 허기지지 않도록 조금씩 나를 달래는 방식으로 소삭소삭 걷다 보면, 밤의 산책은 독서로 혼미해진 내 영혼에 가느다란 실금을 내고 그 사이로 신선한 바람을 살그머니 들여보내주었다. (...) 아무튼 나는 뭔가 밤의 세례를 받고 씻기고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으며, 혼돈한 사색 속에서 우주라든가 신, 불멸 같은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테마들을 사유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사색과는 별개로, 다른 한편 나는 심각한 허기에 시달리면서 세상의 온갖 기름진 음식과 짜릿한 소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을 그리워하며, 솔개 앞에 놓인 작은 병아리처럼 말초적인 감각의 유혹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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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기원
존 B. 던컨 지음, 김범 옮김 / 너머북스

"고려와 조선은 같은 나라일까, 다른 나라일까"
여말선초 하면 권문세족과 신흥사대부의 대립이 떠오른다. 권문세족은 대지주, 신진사대부는 중소지주, 권문세족의 사상적 기반은 불교와 (학문으로서의) 유학, 신진사대부는 사상과 학문 모두 성리학.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이런 비교 구도가 일반적이다. 이는 고려의 지배 계급과는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세력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제임스 팔레에 이어 해외 한국학을 이끄는 대표적인 학자 존 B. 던컨은 이런 인식과는 다른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고려 전기부터 조선 전기에 이르는 시기, 5000여 명에 이르는 관료의 출신 성분을 조사한 결과 두 계층 사이에 뚜렷한 단절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 왕조교체는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 걸까?
 
그는 "조선의 건국은 지방자치를 극복하고 중앙집권적인 관료적 정치체제를 수립하려는 고려 전기의 노력이 거둔 궁극적인 열매"라고 평가한다. 핵심만 간추리면 조선사회의 역동성보다는 안정성에, 두 왕조의 단절보다는 장기지속의 관점에서 고려-조선왕조 교체기를 바라봐야 한다는 결론이다. 한국 역사학계의 전통적인 해석과는 사뭇 다른 주장에 대해 어떤 평가가 이루어질지, 논쟁과 조정을 통해 어떤 새로운 시각이 드러날지 기대가 된다. 더불어 그간 다른 점에만 집중해온 독자의 시선에도 같은 점을 균형 있게 바라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  
- 인문 MD 박태근

추천의 글 : 
획기적인 연구이다. 조선왕조의 본질과 기원에 관련된 기존의 여러 통성을 뒤집은 독창적이고 원숙한 업적이다.(제임스 팔레, 전 워싱턴대 교수)
이 책의 통계적 증거는 조선 전기 지배층의 구성에 관련된 이전의 견해가 틀렸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던컨은 지금까지 가장 풍부한 증거를 모았다.(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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